삼성 라이온즈를 담당하고 있는 매일신문 채정민 기잡니다. 라이온즈에게 2016 시즌은 새 보금자리에서 야구를 하는 첫 해라 어느 때보다 의미가 깊습니다. 이 공간에서 푸른 유니폼을 입었거나 입고 있는 사나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수비가 탄탄한 팀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삼성 라이온즈는 막강한 전력을 구축했다. 1970년대 고교야구의 정점에 있던 경북고와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 출신의 스타들이 대거 포진했다. 이 덕분에 삼성은 공격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최강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특히 내야 수비진은 삼성의 대표적 강점으로 꼽혔다.
이 같은 전통은 시간이 흘러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내야 수비의 핵은 '키스톤 콤비(keystone combination)'라 불리는 유격수와 2루수. 오대석-배대웅, 류중일-강기웅과 김성래, 박진만-박종호에 이르기까지 삼성의 키스톤 콤비는 공수에서 화려한 면모를 자랑해왔다. 지난해에는 김상수와 야마이코 나바로(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가 호흡을 맞췄다.
요즘 삼성은 새로운 키스톤 콤비로 시즌을 치르고 있다. 유격수 자리엔 김재현이 나서고 2루수 글러브는 백상원이 낀다. 올해 초 해외 전지훈련 과정에서 그렸던 청사진과는 사뭇 다르다. 나바로가 일본으로 떠나고 기존 선수들의 부상이 겹치면서 이런 그림이 그려졌다. 새 키스톤 콤비는 아직 선배들만큼 화려하진 않다. 그들 자신도 아직 덜 영글었다는 걸, 주전 경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잘 안다. 그렇기에 매번 그라운드에 나설 때마다 각오를 다진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으니 최선을 다하겠다고.
삼성 라이온즈의 키스톤 콤비 김재현과 백상원. 채정민 기자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 2루수 백상원
"아직 2루가 '내 자리다' '주전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조동찬, 최재원 등 내야수 모두가 경쟁 상대입니다. 아롬 발디리스가 곧 돌아오니 경쟁은 더 치열해지겠죠."
백상원(28)은 삼성의 7년차 우투좌타 내야수다. 남도초교, 경상중, 경북고, 단국대를 거쳐 푸른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그에게 1군의 벽은 높기만 했다. 조동찬, 나바로 등이 2루수로 뛰는 동안 그는 주로 2군에 머물렀다.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에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타격에는 재능이 있지만 수비가 약하다는 평가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올해 초 그에게 인생 최고의 기회가 왔다. 나바로가 이적하고 무릎 부상을 당한 조동찬의 복귀가 늦어지는 가운데 애초 자주 출장 기회를 잡을 것으로 보였던 최재원이 해외 전지훈련 도중 손목을 다쳐 전력에서 이탈했다. 결국 전지훈련을 거쳐 시범경기 때까지 방망이를 날카롭게 돌렸던 백상원이 2루수로 낙점받았다.
"시범경기 때부터 전력을 다했죠. 주전 자리가 확고한 선수들과 달리 정규시즌에 맞춰 체력과 컨디션을 조절할 입장이 아니었으니까요. 이번이 제 야구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었어요. 다행히 감독님 눈에 들어 출장 기회를 잡았고, 지금까지 1군에서 뛰고 있습니다."
시즌 개막 후 2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그의 올 시즌 기록은 통산 기록을 뛰어 넘고 있다. 백상원의 2013~2015년 1군 통산 성적은 88경기 103타수 25안타. 올해는 5월 30일까지 47경기에 출전했음에도 139타수 34안타를 기록 중이다.
1군에서 '제대로' 뛰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그에겐 체력을 관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일단 코칭스태프의 조언을 귀에 새긴 뒤 잘 먹고 잘 쉬는 데 집중하고 있다. 홈경기가 있는 날엔 웨이트트레이닝 훈련도 빠트리지 않는다.
"아직은 괜찮은데 여름을 잘 나야 하겠죠. 경기가 없는 날에도 다음 경기가 신경 쓰여 그냥 집에서 쉬는 편이에요. 아직 여자친구를 만나거나 이것저것 사생활을 챙길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요. 일단 저는 야구부터 잘하는 게 중요합니다. 절 잘 모르는 분들께 제가 삼성 선수라는 걸 각인시켜야 하고요."
백상원이 타격 연습 도중 김한수 코치의 조언을 듣고 있다. 채정민 기자
백상원 스스로 꼽는 장점은 컨택 능력. 멋쩍게 웃으면서 '굳이 하나를 든다면'이라고 단서를 붙였다. 하지만 일찌감치 그의 컨택 능력을 눈여겨봤던 이는 또 있다. 고(故) 장효조 2군 감독은 백상원의 타격 자질을 높게 평가했고, 스카우트로 재직하던 시절 백상원을 직접 뽑았다. 장 전 감독은 입단 1년차였던 백상원이 첫 한 달 동안 3안타만 치는 등 극도로 부진했음에도 꾸준히 기회를 줬다.
"다들 외박을 나가는 날 장 감독님이 절 부르셔서 약속이 없으면 따라나서라고 하셨어요. 한 식당에 들어가시더니 소고기를 사주시고 소맥 폭탄주를 만들어 건네시더니 '편하게 해라. 안타 하나도 못 친다 캐도 1년 내내 시합에 나갈 끼다'고 하셨죠. 너무 감사했어요. 공교롭게도 그 다음 주부터 미친 듯이 안타를 치고 그 해 2군 수위 타자가 됐습니다."
백상원의 올 시즌 목표는 단순하다. 최대한 1군에서 많이 뛰는 것이다. 그는 아직 타율 등 구체적인 기록을 말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꾸준히 출장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저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고 싶어요."
◆'하루하루가 즐겁다', 유격수 김재현
유격수는 힘든 자리다. 내야 수비진의 중심을 잡으면서 다양한 수비 포메이션을 이끌어야 한다. 활동 반경도 다른 어느 포지션보다 넓다. 특히 삼성 유격수라는 자리는 팬과 코칭스태프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 쉽지 않은 곳이다. 명유격수들이 거쳐 갔기 때문에 이 자리를 맡는 선수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
현재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선수가 3년차 내야수 김재현(25)이다. 주전 유격수 김상수(26)가 발목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4월 26일부터다. 출장 기회가 많아지니 프로 입단 후 통산 기록과 올 시즌 기록과의 차이도 커졌다. 입단 첫해인 2014년과 2015년을 더한 성적은 81경기 48타수 8안타. 반면 올 시즌엔 44경기만 출전했음에도 89타수 23안타(5월 30일 기준)를 기록 중이다.
"제 좌우명이 '모든 일을 억지로 하기보다 항상 재미있게 하자'입니다. 경기에 꾸준히 출장하는 게 처음이에요. 사실 제가 이렇게 뛰고 있다는 게 내심 신기하기도 합니다. 요즘 야구가 정말 재미있고 일상이 즐거워요."
김재현도 프로 입단 후 백상원과 비슷한 처지였다. 주로 2군에 머물렀고 1군에선 백업 요원이었다. 다만 백상원과는 정반대 이유로 1군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백상원이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이 부족해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는 게 힘들었다면 김재현은 수비력에 강점이 있지만 공격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삼성 라이온즈의 유격수 김재현. 주전 유격수였던 김상수의 공백을 잘 메우고 있다. 채정민 기자
김재현의 강점은 자타공인 안정된 수비력이다. 하지만 최근 송구에서 몇 차례 실수가 있었다. 김재현도 그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요즘 타자들이 워낙 빠르니 수비수 입장에선 부담이 되죠. 평소 어깨만 활용하기보다 리듬을 타면서 공을 앞으로 끌고 나와 온몸으로 송구하는 스타일인데 빠르게 공을 던지려다 보니 균형이 다소 흐트러졌던 것 같아요. 지금은 다시 제 리듬을 찾았습니다."
요즘 김재현의 모습은 기존의 평가와 차이가 있다. 수비뿐 아니라 타석에서도 기대감을 갖게 한다. 타격에 눈을 뜬 것 같다는 말들이 있다고 하자 쑥스러운 듯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예전보다 방망이가 날카롭게 돌고 있는 건 사실이다.
"수비에 비해선 아직 많이 부족해요. 다만 타석에 섰을 때 느낌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이게 마지막 타석일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고, 쫓기듯 방망이를 휘둘렀거든요. 최근에는 출장 기회가 늘면서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다음 타석까지 생각하고 타석에 서죠."
키스톤 콤비를 이루는 백상원과의 호흡은 좋은 편이다. 2군에서 같이 경기를 뛰기도 했기 때문에 낯설지 않다. 원정경기 때 백상원과 한방을 쓰는 룸메이트 사이기도 하다. 김재현의 말을 빌리면 백상원은 심부름을 안 시키고 맛있는 것도 사주는 등 좋은 선배다.
김상수가 복귀하면 다시 주전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김상수가 쌓아온 이력을 생각하면 김재현에게 유리하지 않은 싸움이다. 하지만 김재현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을 생각이다.
"상수 형이 복귀하면 팀에 큰 도움이 되죠. 저의 출장 기회가 줄어들 수도 있지만 반가운 일입니다. 대신 한 번 수비하러 나갈 때, 한 타석에 들어설 때라도 기회가 오면 더 집중할 겁니다. 아직 갈 길은 멀잖아요. 작은 기회라도 소중히 여기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겠죠."
기사제공 10구단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