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언닌. 26년만에 온 자유야.”
효은이 주위를 둘러봤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고 빌라주변의 잘 정리된 녹음 사이를 가른다. 아담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어디 찾아오신 건지?”
빌라 출입구에 들어서자 마르고 깐깐하게 생긴 빌라 관리인이 그녀들을 막았다.
“민신후 변호사 댁이요. 오늘부터 저희가 사용하기로 했거든요.”
상은이 빌라의 키를 내보이며 설명했다.
“제가 머무를 거예요. 잘 부탁드려요.”
효은은 자신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진 빌라의 경비아저씨에게 황홀한 미소로 인사를 보냈다. 그런 동생을 보고 상은은 한숨을 삼켜야 했다.
“너 제발 아무나 보고 웃지 좀 말아. 저 아저씨 홀려서 어쩌겠다는 거야?”
“언니는. 여자 혼자 사는데 남자 힘이 얼마나 필요한데. 이렇게 눈도장을 찍어두면 다 쓸데가 있어.”
“가증스러워. 넌 니 미모를 지금 이용하고 있는 거야.”
이게 동생의 본색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상은은 기가 막혀서 효은을 노려봤다.
“무슨 말을 그렇게 험악하게 하우. 우리 조카 다 듣겠다. 이용하는 게 아니라 활용하는 거지. 신이 주신 아름다움을 썩히면 그건 죄야. 언니.”
효은이 배시시 웃었다. 큰 눈동자에 웃음을 가득 담고 양쪽 볼에 깊은 볼우물을 패이며 웃는 모습은 아무리 동생이라도 정말 예뻤다.
“말은 정말 잘한다. 아버지가 널 너무 가르쳤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언니도 알잖우. 난 언니보다 아마 며칠을 더 굶었을걸. 맞기도 훨씬 더 맞았어.”
“그래도 나보다 더 키가 큰 거 보면 아버지가 아무래도 나 몰래 널 뭘 먹인 게 틀림없어.”
상은이 옛 생각을 하며 미소지었다.
캐나다 1세대인 부모의 고집스러운 한국식 교육 탓에 그들은 한국말과 한 핏줄에 대한 철저한 자부심을 계승받았다. 아마 굶으며 맞으며 자란 캐나다 아이들은 우리 밖에 없으리라.
특히 날나리 효은은 아버지와 엄청 많이 부딪혔었다.
“좀 작아. 내가 2인치만 더 컷으면 난 아마 5년 전에 세계적인 모델이 되 있었을 거야.”
“그래서 다행이야.”
정말 진지한 언니의 말에 효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정말 신기하다. 웬일로 니가 여까지 온 거야.
너 캐나다 생활 포기하기 싫어했잖아.”
상은이 무의식적으로 아직 채 부르지 않은 배를 감싸며 조심스럽게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글쎄. 아빠가 말안했어?”
“그럼 정말 내가 보고 싶어 온 거야?”
의심스러운 눈초리였다. 효은을 한국으로 보내면서 아버지는 임신한 내가 동생을 무지 보고 싶어한다고 달래서 보냈다고 하는데 그녀가 아는 동생 효은은 정말 내가 보고 싶다면 아버지 허락 없이라도 한국에 왔을 것이고, 아니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날 캐나다까지 불러들일 아이였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