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아시아 서사기행 83 / 아랄 해Aral Sea
곳곳에 버려진 폐선들로 사막화된 아랄 해
물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물 한 방울뿐 나의 입김을 불어넣고 나의 사랑을 불어넣어 예쁜 너의 두 손에 내가 들려줄 수 있는 건 둥글고 너그럽고 눈부신 이 물 하나뿐 나의 옛 조상이 물이어서 나도 또한 물이다, 한 방울의 물이 낭떠러지를 뛰어내리는 힘으로 녹색 혈관에 피가 돌던 그 순결로 오늘도 아낌없이 떨리는 나의 물방울 네가 흐린 날에도 내 몸은 뜨거웠기에 흐린 너의 가슴을 뛰게 할 수 있는 건 지금도 나의 이 정갈한 물 한 방울뿐 |
83. 아랄 해Aral Sea
아랄 해를 가보는 것은 우리 여정이 아니다
그곳까지 가기에는 너무 먼 여정
나는 그것이 못내 아쉬워
우리 현지 가이드가 비교적 한가로운 시간을 틈내
아랄 해에 대해 자주 묻곤 했었다
그가 들려주는 아랄 해의 사정은 끔찍했다
아랄 해에 대한 나의 염려는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아무다리야 강을 만나고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에서 시르다리야 강을 만났을 때부터였다
천산은 수많은 강물을 만들기에
본류에서 만난 강물은 어디선가 지류에서 다시 만난다
천산의 저 풍요로운 만년설의 젖줄이
중앙아시아의 고원을 적시지 않는 국가는 없다
그러나 아랄 해가 겪는 염려는
어디를 가든 내 마음의 주위를 감돌며
끝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토록 풍성한 수량의 강물이 점차 말라가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런 탓이었을까
간밤에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아랄 해에서 거룻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위대한 바다에서 평화를 낚는 꿈
잡은 고기는 바구니에 넘치고
어망에 갇힌 풍요는 바다보다 크다
나는 만선의 기쁨을 싣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너무 많은 고기로 그만 배가 가라앉는다
나는 물에 빠져 누군가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허우적거리다 깨어보니 꿈이다
나는 식은땀을 흘린다
아랄 해Aral Sea -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사이에 있는 염호鹽湖
‘Aral Sea’는 ‘섬들의 바다’라는 뜻
일천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의 호수는
캘리포니아 주의 절반과 맞먹는 크기
세계 네 번째로 큰 내해內海가
지금은 죽음의 위기에 내몰린 호수
옛적에는 물밭이 너무 커서 바다라 했다
그래서 Lake가 아니라 Sea다
그러나 지금은 바다도 떠나가고 없고
호수는 호수라도 수량이 빠른 속도로 감소하는 위기의 호수
호수의 남북 길이 사백 킬로미터
동서의 너비 이백구십 킬로미터
평균수심 십육 미터
최고수심 육십팔 미터
황어黃魚와 잉어, 철갑상어와 유럽잉어들이 우글거려
한때는 어선들이 바다를 매우고
아랄 해를 남북으로 횡단하는 여객선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아랄 해는 죽어가고 있다
그 원인은 구 소비에트 정부가
연방국의 목화생산을 독려할 목적으로
천산을 발원지로 하는
아무다리야・시르다리야 두 강의 수로를 돌린 것과
그로 인한 과도한 관개수로의 개설로
아랄 해로 흘러들던 수량이 급속도로 줄어든 탓
바다는 사분의 일로 줄어들었고
수량의 감소로 인한 염도의 증가로
황어黃魚도 잉어도 철갑상어도 죄다 사라졌다
수위는 낮아져 일백이십 킬로미터나 후퇴하고
바다를 메우던 어선들은
고철이 된 폐선廢船으로 가득한 언덕으로 변했다
염분의 상승・살충제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호수의 오염과 수질악화
유입 강수량의 절대적 부족으로
수량은 칠십 퍼센트나 감소한 형편
러시아 정부의 은밀한 무기실험
산업폐기물, 구리제련소로 인한 오염
소비에트 시절 우라늄광으로 인한 방사능의 침투
화학비료의 지나친 살포
말라버린 강바닥에서 일어나는
소금먼지와 모래먼지로 호수는 사막화되고
거주민의 폐질환과 물 부족으로 인한 질병의 증가
조류와 어류는 사실상 멸종상태
연안의 동물들도 대부분 사라져
사이가산양도, 세이커매도, 사향노루도
지금은 보호종이 된 형편
아랄 해는 방금도 죽어가고 있다
사정의 심각성을 소비에트도 알고
우즈베크도, 카자흐도, 투르크도 알고 있지만
이론은 많고
아랄 해를 구하고자 하는 연구는 많아도
아랄은 조금씩 고사枯死하고 있다
이제는 바다가 아니라 호수
멀지 않은 날에는 연못이 되고
나중에는 웅덩이가 되었다가
먼 뒷날에는 아득한 전설 속으로 사라질까
그래서일까
아랄 해를 구하고자 몰려드는 연구자들을 볼 때마다
현지인들은 이렇게 비아냥거린단다
연구하러 온 사람들이 책을 들고 오는 대신
물 한 동이씩만 들고 왔어도
지금쯤 아랄 해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을 것이다
누가 아랄 해를 구하는가
누가 풍요의 바다를 죽음의 호수로 내모는가
구하고자 하는 기도는 많은데
왜 바다는 서서히 인간의 곁을 떠나는가
누가 아무다리야 강의 가을을 죽이고
누가 시르다리야 강의 봄날을 살해하는가
바다여 살아서 돌아오라
태초에 우리 아비의 아비가
또 우리 할아비의 아비가 바다에서 걸어나와
사람으로 솟아나서
그대가 사람이고
내가 사람이고
우리 사랑이 또 사람이니
생명의 남상濫觴이여 존재의 고향이여
아랄 해, 저 거룩한 ‘섬들의 바다’여
문득 불빛처럼 기적처럼 또 아득한 그리움처럼 다시 솟아나
이 아름다운 행성의 아침과 저녁을 채워 다오
인간의 사악한 가슴을 적실
두루 넘실거리는 따스한 봄볕으로 채워 다오
굳건히 몸을 일으켜 다시 살아나
인류의 가슴속을 새로 흐르거라
중앙아시아, 저 유목의 고향을 다시 흘러서
목양의 계절을 다시 한번 흠뻑 적셔 다오
천지의 이슬 한 방울씩 다시 모여
호수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
우리 그리움이 되고
우리 꿈이 되고
뜨거운 우리 사랑이 되어
영원의 고향으로 거기 머물러
잃어버린 우리 뱃노래를 되돌려 다오
(이어짐)
첫댓글 ㅁ감사합니다. 물이 있는 또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는 우주인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