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한국 무(巫)의 신격 중 하나. 주로 굿의 뒷전에 모시는 하위신으로 분류된다.
내용
걸립신은 굿의 연행 후 뒷전에서 모셔지는 하위신 중 하나로, 학자들에 따라 잡귀(雜鬼) 혹은 잡신(雜神)으로 분류되거나 정신(正神)과 잡귀잡신의 중간 정도로 파악되는 양상을 보인다. 정신에는 포함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잡귀잡신으로 분류하기에는 어느 정도 신적 기능이 드러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성격이 명확하게 파악되지는 않는다.
‘걸립’이라 하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음식이나 물건 따위를 얻어 모으는 것을 의미하지만 보통 마을의 행사를 치르기 위한 기금이나 물건을 마련하기 위해 풍장을 치며 집집마다 도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를 다른 말로 ‘걸궁’이라고도 한다. 무(巫)에 있어서도 마을굿을 위해 무당이 집집마다 돌며 기원을 해 주고 쌀이나 돈 등을 걷어 오는 걸립이 있다. 이러한 용어로 인해 걸립신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얻어먹는 귀신 정도로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걸립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계면’이라는 용어가 있어 이 두 명칭 간의 관계에 주목하게 된다. 무당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행위를 ‘걸립한다’라고 말하지만 ‘계면돈다’라는 말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면은 굿의 한 제차인 계면거리라는 것이 있어서 뒷전에서 모셔지는 걸립신과 같은 하위신의 이미지와 차이가 있다.
계면거리는 ‘계면각시’ 혹은 ‘계면팔이’라고도 한다. 이 거리에서 무당은 계면떡을 팔러 군중 사이사이를 돌아다닌다. 지역에 따라 계면떡은 고기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농사를 위한 씨앗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기원을 해 주고 돈이나 곡식을 얻어 오는 형태인 계면돌기와 같은 것으로 판단되며, 걸립과도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걸립은 사실상 무당의 성무(成巫) 과정 중에 겪게 되는 한 단계이기도 하다. 내림굿 제물을 마련하기 위해 걸립을 하는 경우도 있고, 황해도 무당처럼 금속으로 제작된 신물(神物)이 쇠걸립을 통해 얻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걸립신은 이러한 과정 중에 무당과 연관을 맺게 된다.
걸립신의 성격 규명을 위해 크게 두 가지를 거론하면 첫째, 걸립신은 일정 부분 정신(正神)들과 관련을 맺고 있다. 뒷전에서 가장 먼저 불리는 걸립신의 종류는 연행하는 무당에 따라 다르겠지만 꽤 여럿이다. 조흥윤이 기록한 무당 배경재의 뒷전에는 총 24걸립이 등장한다. 그 명칭으로는 ‘매옹남산불사걸립’ ‘본향부군걸립’ ‘성주걸립’ ‘지신걸립’ 등 여러 신령과 연결된 걸립신이 등장한다. 둘째, 계면돌기 혹은 걸립을 통해 필요한 것을 얻게 되는 과정을 보면 걸립신은 무당의 성무에 일정 부분 관여하는 신격으로 볼 수 있다. 아키바 다카시(秋葉隆)가 기록한 강화도 무당의 내림굿에서는 이미 신령을 받아들인 애기무당이 집집마다 공수를 내리고 걸립을 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간혹 내림굿에서 애기무당의 몸주로 걸립신이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
이 두 가지 사실로 볼 때 걸립신은 무당의 몸주가 되는 여러 정신(正神)과 관련을 맺고 있으면서 무당의 성무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무당들이 걸립신을 신당 입구나 거실ㆍ처마 등지에 모시는 것을 보면 몸주신령 및 무당과 연관을 맺고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신격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격은 동해안별신굿에서 구송되는 걸립굿 무가를 통해 더욱 확실해진다. 동해안별신굿에서는 걸립신을 위한 걸립굿이 연행된다. 경우에 따라 ‘걸립거리’, ‘제면굿’, ‘계면굿’ 등 명칭이 혼용되고 있다. 걸립굿에서 구송되는 무가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 반가(班家)의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신내림을 받은 후 시어머니는 걸립할머니가 되어 당골판을 돌아다니며 곡식을 걷었다. 어느 집에서는 걸립할머니를 구박하여 내쫓고, 다른 집에서는 빈집인 양 숨어서 걸립할머니가 돌아가길 기다린 데 비해 한 집에서는 융숭하게 대접하고 아들의 장래를 점쳐 달라고 하였다. 걸립할머니는 그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겠다는 점괘를 내주었고 후에 정말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이로 인해 다른 당골네들도 걸립할머니를 융숭하게 대접하고 집안의 우환 등에 대하여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걸립할머니는 당골네들이 두고 간 곡식을 빻아 계면떡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개가 먹어치우자 화가 난 나머지 그 개를 때려잡고 가죽을 벗겨 장구라는 악기를 만들었다.
이 무가는 다른 서사무가들에 비해 서사적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여겨지기에 서사무가에 포함하지 않는 경향도 있으나 내용으로 볼 때 걸립신은 무조신(巫祖神)적 성격을 일정 부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