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알프스 가는 길
강 문 석
일본인들의 자연보호 방법 중 유달리 관심을 끄는 것이 등산로 표시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산에는 무분별한 표지기가 서클이나 업소를 알리기 위해 나붙고 바위에는 커다랗게 낙서까지 새겨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헌데 일본은 주로 흰색 페인트로 있는 듯 없는 듯 ○과 → ↑ ↔ △ × ♂ ↗ ↳ ↶ ↣ 등으로 간결하게 표시하고 끝낸다. 드물게 적색과 황색으로 된 것도 눈에 띄는데 그것이 야광페인트라는 사실은 해가 떨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오후 4시, 첫 숙소 니시다케 산장에 당도했을 때 산장 옆 빈터에서 청년 서너 명이 야리가다케에 앵글을 맞춘 채 정적이 느껴질 정도로 캠코더 촬영에 몰두하고 있었다. 자연 형상에 열정을 보이며 영상으로 갈무리하는 젊은이들이 부러웠다. 그 옆 벤치에선 등산복 차림의 남녀 서넛이 물감으로 캔버스에 산을 옮기고 있었는데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북알프스 첫날 산행을 무사히 끝낸 저녁 6시, 내일 새벽의 이른 출발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왁자지껄 활기가 넘치던 산장은 저녁 8시 완전 소등이 되었다. 이제 사방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에 휩싸였고 건물 벽이 허술한지 바깥 냉기가 산장 안으로 파고들었다.
출국에 앞서 산행대장은 등산지도와 종주에 필요한 장비 품목을 알려왔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생생한 기록이었다. 산장숙소는 난방이 되지만 밤에 별 보러 나가거나 새벽에 일출을 보러 나갈 때 입을 방한복으로 긴팔 파일재킷을 준비하라고 했다. 파일재킷 말고도 긴팔 티셔츠와 고어텍스재킷 등 10여 가지나 돼 난 아예 무시해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다 챙기다보면 그가 신신당부했던 배낭 무게 줄이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카메라 장비만 챙기고 여벌 옷가지를 뺀 배낭을 꾸리면서 혼자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낄낄댔다. 등산화도 마찰력이 좋은 릿지화를 당부했지만 집에 서너 켤레나 두고 새로 구입하기가 뭣해서 유럽여행 때 몽블랑에서 사서 이제 굽이 많이 닳은 트레킹화를 그대로 신고 나섰다.
가깝게 마주 보는 2층 구조의 침상 4개에 잠든 이들은 고산을 오르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코고는 소리가 여름밤 무논에서 벌이는 개구리들의 합창을 방불케 했다. 북알프스가 아니면 어느 공연장에서 이런 라이브 공연(?)을 접할 수 있으랴 싶었다.
초저녁에 숙소에 들면서 산장 종업원에게 내일 날씨를 물었을 때 갤 거라고 했지만 자정 무렵 잠시 바깥을 나가니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변화무쌍한 고산 날씨는 기상을 관측하기도 그만큼 어려울 터였다. 산장 바깥은 칠흑 같은 어둠에 안개까지 휩싸여 화장실을 찾아가는데도 지척을 분간할 수 없어 맹인처럼 길을 한걸음씩 더듬어야 했다.
다음날 이른 새벽, 산장 출입문 안쪽 수도꼭지에 붙은 사발용기에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받아 고양이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이제 조금 전 안개는 간 곳 없고 스무나흘 하현달이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산장 매점에서 <일본 알프스 기타호다카다케北穗高岳 정상 360° 대파노라마> 사진을 구입했다. 화산석으로 이루어진 검은 고봉들 군데군데 순백의 만년설이 무늬처럼 박혔고, 그 너머론 넓게 펼쳐진 구름바다가 지평선까지 이어져 시선을 압도했다. 폭은 25cm로 겨우 한 뼘 정도인데 길이는 그 열 배나 넘었다.
새벽 5시, 산장을 나서자 어둠이 덜 걷힌 능선이 나타났다.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서니 야리가다케가 어둠 속에서 차츰 그 위용을 드러낸다. 등산로는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로 시작되었다. 그 순간 계곡을 타고 올라온 을씨년스런 새벽바람이 온몸을 뒤흔들었다. 바닥엔 잔돌이 깔렸고 곧 철제사다리가 나타났다. 사다리 쇠사슬을 붙잡고 힘들게 내려서자 그 밑에 높이 20미터나 되는 사다리가 또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길바닥엔 간밤에 내린 비가 흔적조차 없었다.
하지만 산비둘기 한 마리가 잠에서 덜 깼는지 종종 걸음을 치는 쪽 나뭇잎에는 빗물이 고였다가 또르르 흘러내렸다. 산행을 시작한 지 반시간, 아침 햇살을 받은 야리가다케는 어제 바라보았던 그 힘찬 기백은 간데없고 인자한 미소를 띤 거대한 부처의 형상으로 나타났다. 참으로 묘한 조화가 아닐 수 없었다.
산에서는 늘 별로 말이 없는 산행대장은 스틱으로 나뭇가지 빗물을 툭툭 털면서 혼자 저만치 휘적휘적 앞서가고 있었다. 이 구간 부족한 등산시설을 접하자 혹시 등산로를 잘 꾸며 놓으면 산을 찾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나 산의 훼손이 빨라지기 때문에 이 정도로 시설을 갖추고 말았을까 싶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드니 통나무 사다리가 3개나 이어지고 연달아 10여 개의 사다리가 나타났다. 발판을 밑으로 대어 튼튼한 볼트로 조였고, 세로로 설치한 통나무는 난간 대용으로 잡고 오를 수도 있는 튼실한 구조였다.
산장을 나선 지 한 시간 만에 마주친 대형 배낭을 멘 중년 여인은 카메라를 멘 나를 눈인사로 반색하나 했더니, 곧바로 정색을 하면서 “오기오쓰케데!”ぉ氣をつけで 라면서 주의를 당부했다. 그 밑엔 가파르게 수직으로 좁게 설치된 50계단짜리 철제 사다리가 버티고 있었다.
간밤에 우리가 묵었던 니시다케 산장 위로 아침 해가 솟아오를 때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땀에 젖은 몸속을 파고들었다. 벌써 차디찬 쇠사슬이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로 몸은 달아올라 있었다.
야리가다케가 바로 눈앞에 나타나는 능선에 오르자 계곡을 타고 올라온 강풍이 몸을 날릴 듯 달려들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이곳 만년설은 백두산처럼 깨끗하질 못한 것 같았다. 찌는 폭염에도 만년설이 저렇게 남을 수 있는 비결이 궁금했다. 기온차가 날 것으로 보이는 드높은 곳에도 다 녹아 앙상한 봉우리가 드러났는데 정상으로부터 사오백 미터 아래인 산중턱에 마치 흰 이불장처럼 산자락을 군데군데 뒤덮고 남아 있는 만년설의 조화가 놀라웠다.
해발 2800미터 지점, 바람을 피해 능선에서 약간 내려앉은 안부鞍部에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산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발전기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데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아 유리창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간밤에 묵었던 산장보다 규모도 크고 내부 시설도 훌륭했다. 이곳 산장들은 유럽 알프스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시설물의 색상과 모양까지도 그곳과 흡사하게 꾸며 놓고 있었다.
산장의 길이가 50미터나 되는 목조건물로 외벽은 검은 색에다 지붕은 적갈색으로 멀리서나 공중에서도 쉽게 눈에 띄도록 했다. 어제 산행 도중 우리 일행의 단체 사진을 찍어주었던 하라 노부오原 伸生를 만났다. 그는 작은 키에다 왜소한 체구였지만 다부져 보였고 대학생 신분에도 명함을 지니고 있었다. 어제 저녁 무렵 산장 뒤에서 캔버스에 그림까지 그리던 그는 내가 이번 산행의 사진을 골라서 보내주겠다는 말에 크게 기대를 거는 눈치였다.
해발 2985미터 야리가다케槍ケ岳 산장은 69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였다. 현대식 건물 외벽을 매끈하게 철판으로 감싸고 있었다. 연료용 대형 가스통이 여러 개 놓였고 크기가 서로 다른 포클레인과 굴삭기, 기름통 용접기 사다리 리어카를 비롯하여 철선 등 자재까지 갖추었다. 대여섯 명 인부들이 건물 보수작업을 하고 있는 옆엔 '국유임야 대부사용허가' 표지판이 서있었다.
산장에선 야리가다케 정상을 오르는 철제 사다리가 아주 가까웠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일본우동과 빵으로 늦은 아침식사를 마치자 곧바로 출발을 서둘렀다. 산장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는 경사로에는 굵은 통나무를 경계바닥재로 설치한 야영장이 여러 면 설치되어 있었다. 잠시 산행을 멈추고 돌아서서 남쪽에서 바라본 야리가다케 정상은 10도 가량 동쪽으로 기울어져 지금까지 보아왔던 위용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 다음에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