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보감] 28. 도반될 자격 / 지화(知和)암주
지화 암주(知和庵主)는 고소(姑蘇)사람인데 성품이 고결하여 세상에 물들지 않았다. 한번은 호상(湖湘) 지방을 행각하다가 밤이 되어 객실에서 자게 되었는데 보교(普交 : 1048~1124) 스님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 지화 스님은 보교 스님이 침착하고 온후한 데다가 말없이 밤새도록 꼿꼿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기특하게 여겨서 물었다.
"스님은 만 리 낯선 길을 혼자 다니시오?"
"예전에는 도반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절교했습니다."
"어째서 절교했소?"
"한 사람은 길에서 주운 돈을 대중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돈을 똥이나 흙처럼 보아야 하는데 그대가 비록 주워서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하더라도 이는 아직 이익을 떨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는 헤어졌습니다. 두 번째 도반은 가난하고 병든 어머니를 버리고 도를 닦는다기에 내가 말했습니다. '도를 닦아 비록 불조의 경계를 넘어선다 하더라도 불효하는 이를 어디에 쓰겠는가.' 불효하거나 이익을 따지는 이들은 모두 내 도반은 아닙니다."
지화 스님은 그의 현명함을 존경하여 드디어 같이 행각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옛날 은산(隱山)화상을 본받아 우뚝한 산꼭대기에 띠풀 암자를 짓고 구름과 하늘을 내려다보면서 세상 바깥사람이 될 것이며, 세속에 떨어지지 말자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보교 스님은 맹세를 어기고 천동사(天童寺)의 주지가 되었다. 보교 스님이 지화 스님을 찾아갔으나 돌아보지도 않았다. 정언(正言) 진숙이(陳叔異)가 그의 서실을 암자로 만들어 주어 그곳에서 이십 년을 혼자 살았는데, 너절한 물건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호랑이 두 마리만이 시봉할 뿐이었다. 스님께서 한번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대나무 홈통에는 두서너 되의 찬물이 흐르고
창문 틈새로는 몇 조각구름이 한가롭다.
도인의 살림살이 이만하면 될 뿐인걸
인간에 머물러 보고 듣고 할 것인가.
竹筧二三升野水 牕間七五片閑雲
道人活計只如此 留與人間作見聞 「설창기(雪牕記)」
[선림고경총서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