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그리고 바르셀로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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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는 피카소와 가우디를 배출한 도시로 유명하다. 인구는 약 200만 명으로 국민 총생산의 20%를 차지하는 스페인 최대의 상공업도시이고 사라고사와는 자동차로 약 두시간 반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는 도시 곳곳에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약 10km에 걸쳐 ‘아베니다델라 디아고날’ 거리는 바르셀로나를 가로지르는데 로마시대의 유적은 물론 140여 년이 넘는 건물 등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현대의 빌딩이 들어찬 신시가지와는 대조를 이룬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80여 년 전에 만든 지하철은 마을이 생길 때마다 증설하여 편리성이 없는 것이 흠이다. 일방통행로가 많고 보행자 우선 신호 체계다. 돌출간판은 없고 약국 표시만 허용되고 있다. 시내에서 공중 화장실은 찾아볼 수 없다. 관공서에도 민원인이 사용하는 화장실을 따로 두지 않아 급하면 가까운 ‘바’를 찾아가야 한다. 구형건물은 주차장이 없고 길은 비좁아 주차 공간 확보가 어렵다. 오토바이, 소형차, 자전거가 많은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국민은 느긋한 성격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재건축 허가는 1년, 전화 이전에도 3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가우디의 예술혼이 관광으로 스페인의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는 일반화되어있다. 역과 전철역, 쇼핑센터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중심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자전거를 빌려 탄 뒤 목적지에서 반납할 수 있는 첨단 자전거 무인대여 시스템이 200여 개소에 이른다. 24유로를 주고 카드를 발급받으면 이용할 수 있다. 대여소에서 카드를 확인하면 해당 자전거의 열쇠고리가 풀리고 이를 타고 다른 대여소에 이르러 자전거를 잠근 장치에 넣고 역시 카드를 확인하면 열쇠가 잠긴다. 카드에는 인적 사항이 기록돼있어 분실의 염려가 없다. 곳곳이 가우디의 체취가 물씬 풍기고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명예가 후손들을 먹여 살린다. 가우디의 성가족교회(Sagrada Familia)는 우뚝 솟은 네 개의 첨탑이 사람을 압도한다. 요셉, 마리아, 예수로 이루어진 ‘성가족’을 뜻하는데 가난한 신자들의 민간단체인 ‘산호세’ 종교협회에 의해서 착공된 것으로 초대 건축가가 사임하면서 31살의 약관의 나이로 가우디가 뒤를 잇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계획은 ‘탄생의 문’ ‘수난의 문’ ‘영광의 문’ 등 3개의 파사트(정면)를 가지며, 각 파사트에는 성서의 장면이 묘사된 조각을 장식하고 세 문은 각각 4기의 탑으로 구성되어 12사도를 뜻한다. 그 안쪽에는 예수, 마리아, 복음 가를 상징하는 18기의 탑을 세우도록 계획하였다. 그러나 현재 탄생과 수난의 두 문과 8기의 탑이 착공 100년만 인 1982년에 완성되어 있을 뿐으로 미완의 교회다. 앞으로 107m의 쌍 탑과 양측 98.4m의 탑과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140m의 탑이다. 가우디의 성가족교회의 완성은 앞으로 100년~200년이 더 걸릴지는 모를 일이다. 탄생의 문이 있는 파사트는 가우디의 생전에 완성한 것으로 수태고지로부터 예수의 탄생, 동방 박사의 찾아옴, 헤롯왕의 박해를 피하여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족 등을 묘사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수난의 문 파사트에 조각된 최후의 만찬, 예수에게 입맞춤을 하여 로마 병사들에게 예수임을 알려주는 유다, 예수를 심판한 후 손을 씻는 빌라도 총독 등이 조각돼있는데 이 문은 가우디의 사후에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완성된 것이라 한다. 가우디는 입은 옷 그대로 공사 중인 성당 안에서 숙식했기 때문에 가끔 시내로 나갈 때는 그 차림새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전을 던져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돈까지 모아 기금으로 소중하게 썼다고 하는데 1926년 전철에 치여 사망한 때에는 너무나 초라한 복장으로 누군가를 언 듯 구분하지 못했다고 한다. 성당 지하의 전시실에는 가우디가 만든 설계도나 모형 등이 전시되어있으며 그의 묘도 있다. 설계는 얼마나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계산 위에서 치밀하게 구상되었음을 한눈 알 수 있다.
구앨 공원 (Parc Guell)은 바르셀로나 ‘쌀 루트’ 언덕에 있다. 멀리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구앨 공원은 공원이라기보다는 마치 동화 속 나라에 들어온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가우디 특유의 형형색색 모자이크로 장식된 건물과 자연이 어우러져 초현실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입구의 경비실과 관리실로 쓰려 했던 두 개의 건물도 갈색과 희색의 조화로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의 집을 연상케 한다. 정면 입구로 들어가면 두 갈래로 갈라진 계단이 나오고 이 두 갈래 사이에는 선명한 색채 타일로 뒤덮인 이구아나가(살라만드라) 있다. 그 아래쪽 계단에는 색채 타일로 만든 ‘까딸루니야’ 문장이 있고 그 가운데에는 입에서 물을 떨어뜨리는 뱀의 머리가 있는 둥근 장식이 있다. 신전 건물은 곡선의 천장과 천정의 화려한 타일조각이 조화를 이룬다. 반쯤 기울어져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인공석굴, 정문 아래 코끼리 다리 같은 기둥으로 된 마구간, 산책로 주변은 돌산에서 나오는 쓸모없는 돌로 종려나무와 같은 모양으로 쌓아서 아름답고 기괴스러운 조형물을 만들었다.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의 모습도 보인다. 십자가 모습도 특이하다. 어느 방향에서 보든 십자가로 보여 가우디의 십자가라고 불린다. ‘싸리플러스’의 열매가 말라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정면의 대 계단 위는 도리스식 기둥이 늘어서 있고 그 위는 광장으로 각종 행사장으로 사용하려 했다. 주변에는 삥 둘러 300m 가량의 파도모양 벤치가 있는데 조각 타일을 이용 아름다운 모자이크 장식을 했고 인체공학을 응용 앉으면 편하도록 했다. 바르셀로나 교외 언덕에 있는 구앨 공원은 원래는 이상적인 전원도시를 만들 목적으로 설계된 곳이다. 가우디의 경제적 후원자 구엘 백작이 평소 동경하던 영국의 전원도시를 모델로 이곳에 60호 이상의 전원주택을 지어서 스페인의 부유층에게 분양할 예정이었다. 당시로써는 매우 혁신적인 발상이었지만 그 구상은 실패하고 만다. 공원 부지는 돌이 많은 데다 경사진 비탈이어서 입주자가 없어 실패했다. 1918년 구엘이 죽은 뒤 아들이 시에 기증했고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구엘 백작 소유의 이 땅을 사들였고, 이듬해 시영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애초의 원대했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공원은 여전히 스페인이 낳은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가장 훌륭한 작품 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으며, 많은 시민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공원에는 과거 가우디가 살았으며, 지금은 가우디 기념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도 있다. 가우디가 사용했던 침대, 책상 등 유품과 “데스마스크”가 전시되어 있다. 마라톤의 신화, 황영조의 언덕 '몬주익' ‘몬쥬이크’ 언덕 하면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에서 우승한 황영조 선수가 떠오른다. 올림픽 스타디움 바로 앞에 황영조 선수의 조형물이 우릴 반긴다. 그의 달리는 모습과 그의 발,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양시와 바르셀로나 시의 우의를 기리는 기념비와 시비(詩碑)가 자리 잡고 있다. 스타디움의 돔 앞에는 흰색의 올림픽 기념탑이 있으며 이 조형물은 해시계의 역할도 한다. 우리나라는 이 대회에서 7개의 금메달을 획득 종합순위 7위를 기록했다. 몬쥬이크 언덕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시내 중심가에 우뚝 솟은 수도공사건물(Aqua Bar 빌딩)이다. 높이 142m로 모두 4600장의 유리창으로 되어있다. 밤이면 화려한 조명으로 이곳의 새로운 명물이다. 멀리 항구에는 대형 크루즈 2척이 정박하고 있다. 1천여 명이 타는 대형 크루즈가 정박하는 날이면 파오 광장 등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람블라스’ 거리는 북쪽의 ‘카탈뉴냐’ 광장에서 남쪽 항구와 가까운 ‘파오’ 광장까지 약 1km를 말한다. 원래는 작은 시내가 흘렀으나 19세기경에 현재와 같은 산책로가 있는 대로로 바뀌었다고 한다. 산책로는 ‘미로’가 디자인한 모자이크가 바닥에 깔렸고 거리 주변에는 꽃집, 애완동물, 액세서리, 노천 카페 등이 있다. 노천카페에는 많은 사람이 앉아 차와 음식을 즐긴다. 거리 중간쯤 산호세 시장은 돼지 뒷다리를 염장한 하몽은 물론 신선한 야채와 과일, 고기, 어패류 등이 진열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거리 곳곳에는 거리의 악사, 금색 또는 은색으로 치장한 옷을 입어 마치 동상처럼 되어 있는 사람들이 갖가지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푼돈을 모으는 모습이 이어진다. 드라큘라, 사형이 집행되는 사형수, 살인자의 모습도 연출되고 있어 섬뜩하다. 거리 끝 편 파오 광장에는 콜럼버스의 탑 (Monument a Colom)이 우뚝 서 있다. 높이 60m의 탑 위에 7,5m의 콜럼버스 동상이 서 있다. 1888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 당시 ‘까딸루냐’와 미국의 통상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그의 시선은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며, 오른손으로 먼 바다를 가리키고 왼손으로는 미국의 토산품인 담배 파이프를 들고 있다.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하고 귀환한 콜럼버스는 이 도시에서 ‘이사벨라’와 ‘페르난도’를 알현하고 탐험결과를 보고한다. 파우 광장은 그의 기함 “산타 마리아”호가 닻을 내렸던 ‘포트벨’ 항구에 면한 곳이다. 바르셀로나의 ‘그라시아’ 거리에 있는 ‘까사 바뜨요(Casa Batllo)’는 가우디가 1905년에서 1907년까지 약 3년에 걸쳐서 지은 건물로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돼있다. 뼈로 만든 집이라는 이 건물은 이름답게 창문의 살은 뼈 모양으로 디자인되어 있고 발코니는 물고기 아가미와 출렁이는 파도에 떠밀려오는 미역 줄기를 연상하게 한다. 부드러운 곡선미를 보여주어 그 분위기가 매우 독특하다. 1층부터 분위기가 다른 무늬와 곡선, 타원형의 창문 등 직선의 사용을 일부러 피한 듯이 보인다. 벽 대부분은 가우디 특유의 스타일인 깨진 세라믹 조각으로 모자이크를 해 놓았으며 색깔을 밝은 오렌지색에서 점차 초록빛 파랑으로 변해간다. 지붕은 아치 형태이며 선사시대 공룡의 등껍질을 보는 느낌이 들게 한다. 3∼5층은 임대를 해주고 있는데 월세가 우리 돈으로 1,300만 원가량 된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이곳은 바르셀로나 관광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지는 않지만 수많은 사람이 이 건물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 시내 곳곳에 가우디의 건축이 많다. 여러 곳을 가려면 Tourist bus가 있으며 1일 1인 15유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