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의 깃대봉 산행을 마치고 숙소에서 샤워를 마친 후, 흑산도로 나왔다
흑산도 주변에 있는 작은 섬...영산도, 다물도, 장도, 대둔도에 들어갈 계획이다
대둔도는 흑산도에서 북서쪽으로 약 3.2km 떨어져 있는 섬이다.
흑산군도를 이루는 4개의 위성 섬 중에서 가장 큰 면적을 자랑하며 주민도 제일 많다
대둔도라는 작은 섬에서 정창대, 김이수라는 큰 인물의 자취를 찾았다.
오후 3시 40분에 홍도를 출발한 여객선은 약 30분에 흑산도에 닿았다.
고래 모양으로 지어진 흑산도항여객터미널이 근사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여객터미널에서 '흑산도 아가씨'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가 나온지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언제 들어도 구슬프고 애닮은 느낌이 든다.
흑산도는 목포에서 출발하는 관광지 홍도와 가거도를 이어 주는 징검다리 섬이다.
섬의 95%가 상록수로 이루어져 멀리서 바라보면 검게 보인다 하여 흑산도라 일컬어졌다.
흑산도는 주변에 흩어져 있는 11개 섬의 해상교통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요한 수산, 라파엘 수산, 젬마 수산식당....
흑산도는 마을 전체에 천주교 문화가 스며든 지역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나는 흑산도에 들어오기 전부터 '라파엘수산'에서 홍어회를 먹겠다고 결정했었다.
그러나 세례명으로 간판을 단 식당들은 택배만 접수한다고 해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홍어의 고장답게 여객선터미널 입구부터 잘 삭은 홍어와 막걸리 냄새로 후각을 자극한다.
흑산으로 들어가는 관문은 여객터미널이 있는 예리마을이다.
대부분의 상업시설이 이 마을에 몰려있다.
우리는 아시아모텔을 숙소로 정하고, 주로 아시아식당에서 먹거리를 해결했다.
흑산도의 대표 특산물인 홍어는 홍갈색을 띠고 있다.
또한 찰지고 연한 연분홍빛 속살은 도톰하며 감칠맛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인이 날것인 상태로 발효시켜 먹는 유일한 어류인 홍어는 흑산 홍어를 최고로 친다.
식당에서 큰 접시는 5만원, 작은 접시는 4만원을 받는다
적당히 삭힌 홍어회와 흑산도 특산 고구마막걸리를 곁들이니 온갖 시름이 사라졌다.
‘만만한 게 홍어좃’이라는 민망한 말은 흑산도 홍어배에서 유래한 말이다.
홍어잡이 나선 선원들이 배에서 술안주감을 하려고 수놈의 거시기를 잘라 안주를 했다고 한다.
비싼 홍어는 팔아야 하고, 만만한 것이 홍어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을 잘라서 안주를 했다고 한다.
암컷은 꼬리만 달려있지만 숫컷은 꼬리 양쪽에 두 개의 생식기가 달려 있다.
예리마을에 먹거리촌이 자리잡고 있지만 한산하기만 하다
일부러 들어가 보았는데 상인들은 관광객이 들어와도 본체만체한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대박수산>에서 홍어회와 해물라면을 먹었는데...잊을 수 없다.
다음날 아침 9시 50분 대둔도에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부둣가로 나갔다
다물도와 대둔도를 오가는 엔젤호는 생필품을 가득 싣고 있었다
승객은 몇몇 노인들과 대둔도분교의 선생님, KT서비스 기사, 그리고 우리들이었다
배 안에 운행 시간표가 부착되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하루에 3회 운행한다고 해서 다물도와 대둔도를 탐방하려고 했는데...
선장이 2회만 운행한다고 해서 다물도 탐방은 포기해야만 했다.
대둔도는 수리, 오리, 도목리 3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에는 일부 민박집과 상점을 갖추고 있어 관광객들이 충분히 1박도 할 수 있다.
대둔도라는 이름은 '흑산군도에서 가장 높은 언덕을 지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엔젤호가 가장 먼저 접안한 오리마을에서 내렸다.
자산어보 탄생의 숨은 공로자 장창대를 기리는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손암 정약전은 '창대'라는 사람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저술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기록했다.
장창대의 본명은 장덕순인데 대둔도가 그의 고향이다.
섬에는 창대의 묘지가 남아있고, 그의 후손들도 아직 살고 있다고 한다.
이젠 정약전만 내세울 게 아니라 장창대의 공적을 앞세우며 섬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오리마을에선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오리 남쪽에는 가두리 양식장과 흑산도로 가는 엔젤호가 닿는 포구이다.
또 하나는 북쪽에 있는데 바로 마을과 접한 해안이자 피항지로 적합한 바다다.
마을 정자로 들어갔더니 코로나19 여파로 주민들이 돌아앉는 바람에 바로 나왔다 ㅠㅠ
도로에서 많이 내려가야 하는 도목마을 탐방은 포기하였다.
오리마을에서 약 30여분을 걸어서 수리마을에 도착하였다
수리는 보건진료소, 치안센터, 흑산초등학교 수리 분교장이 있는 행정의 중심지이다.
마을 입구에 대둔도 안내 지도가 세워져 있었다.
높이 164m의 성암산이 있어 흑산도 주변의 멋진 섬 풍경과 서해의 망망대해를 볼 수 있다.
마을 정자에서 주민들이 쉬어가라 했지만 폐가 될까 싶어 들어가지 않았다.
대둔도라 불려온 이 섬은 다물도와 이웃하고 있다.
대둔도는 흑산도 예리항으로부터 4km 떨어져 가까운 곳에 있다.
어미섬 흑산도와 관광 섬 홍도에 묻혀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섬이다.
이 섬에는 150여 가구, 500여 명의 주민이 우럭과 전복양식으로 생활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성암산에 올라가 보라고 해서 마을 안길로 들어갔다.
그러나 길이 희미하고 뱀을 만나는 바람에 포기하고 내려왔다.
마을 안길에는 옛날에 쓰던 우물과 '동양상회'라는 가게가 보였다.
이 마을의 대표적 인물은 김이수(金理守) 선생이다
조선 후기인 1743년 대둔도 수리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정조 15년(1791) 5월 22일, 그의 기록이 있다.
'흑산도 백성이 닥나무 세금 폐단으로 인한 원통함을 징을 쳐 호소하니 이를 시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 속의 주인공인 흑산도의 백성은 다름 아닌 김이수였다.
김이수는 지금의 흑산면 대둔도에서 살던 평범한 사람으로 당시 나이 35세였다.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해 수리마을길을 '김이수길'이라 명명하였다.
김이수길을 따라가면 그의 생가를 만날 수 있다.
방치되다시피한 초라한 생가 앞에 서니 마음이 아팠다.
해마다 전국 방방곳곳에 흩어진 후손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시제를 모신다고 한다
이젠 정약전의 그늘에서 벗어나 장창대나 김이수의 공적을 앞세워야 한다.
학교에 태극기가 나부끼는 것으로 보아 폐교되지는 않았나 보다
마을 사람들이 외지인을 꺼려하는 눈치가 보여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점심밥은 아침 식사를 하면서 도시락에 밥 한공기와 몇가지 반찬을 싸온 것이다
방파제 끝에 있는 부교가 함께 눈에 들어온다.
부교로 건너가서 마을을 배경삼아 인증샷을 담았다.
마을의 명물인 선바위 가는 길이 없어졌다고 해서 가지 못했다.
수리마을 앞에 있는 다물도가 손에 잡힐듯이 보였다.
다물도가 파도를 막아주는 바람에 이곳은 천혜의 양식장이 되었다
주민 대부분이 우럭과 전복 양식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바다 위로 보이는 가을 하늘과 구름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흑산초등학교 수리분교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다
현재에는 교사 1명, 초등학생 4명이 있는 작은 학교이지만 지금도 가을이면 운동회를 한다.
그날은 학생들보다 주민들이 더 많아 시끌벅적한 섬마을 잔칫날이 된다.
위도의 대리초등학교에서 2년동안 생활하던 쓸쓸한 추억이 떠올랐다.
마을 뒤에 있는 164m의 성암산이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다.
금년 2월에 산불이 났다고 하는데 불길이 마을까지 내려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성암산에 오르는 길을 정비해야할 것이다.
선착장 앞에 아주 근사한 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수리마을은 흑산면 관내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북방수정의 감로정(甘露井)인 생명수 마을'이란 뜻으로 수리(水里)라 하였다.
마을 정자에 사람들이 없길래 배낭을 내려놓고 쉬었다
정자 뒤로는 규모가 상당히 큰 보건지료소가 들어서 있었다.
보건진료소 뒷쪽 높은 언덕에 있는 것은 치안센터 건물이다.
수리마을에서 오후1시 20분에 출항하는 엔젤호에 올라탔다
선장이 수리마을에 살기 때문에 이곳에서 출발한다.
뱃삯은 섬 주민이 2천원, 외지인은 5천원씩 선장에게 직접 건네준다.
엔젤호는 가장 먼저 다물도에 들렸다
멀리서 보아도 작은 섬이라 별로 볼거리가 없는 것 같았다
'다물도 입도를 포기하기 잘 했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천혜의 어장을 갖고 있는 이곳은 해산물이 풍부하다 하여 다물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우리가 내려가지 않았던 도목리에 배가 닿았다
터널바위와 조개해변 그리고 다물도공소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엔젤호는 약 20여분 만에 흑산도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오후에는 흑산도의 명산으로 알려진 칠락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