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한 겨울나기
無路 이 영 주
봄부터 가을까지는 죽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는 아내의 말처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냈는데 겨울은 비교적 한가한 편이다.
높은 산꼭대기에 있는 우리 집 주변의 나무들은 수척한 사람처럼
하얀 설원의 이불을 덮고 긴 겨울잠을 잔다.
나 역시 겨울나무처럼 긴 겨울을 한가하고 여유롭게 보낸다.
집에서 책을 보거나 붓글씨를 쓰고 가끔 아내와 콜라택에 들러
춤을 추고 오는데 푸근하더니 새해가 되면서부터 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푸근한 날씨 탓에 일주일이나 연기되었던 동내 겨울 축제가 시작되었다.
부녀회원들과 함께 겨울축제장에 나가 일을 돕는 아내를 매일 데려다 주고
오는 일이 아침부터 시작되는 중요한 하루 일과다.
우리 집은 인터넷이 안 되어 장수화실(경로당)에서 인터넷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어느 날 문득, 그래 올해는 3년 전 산불이 난 후 등산로에 작은 나무들이
무성해 등산로가 막혔으니 등산로를 정비하자.
그래야 병풍산을 거쳐 우리 집 앞으로 내려오는 등산객과 차 한 잔
나누면서 도시 사람들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아내가 말려 둔 나물과 농산물을 구입해가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병풍산 정상까지 가는 등산로는 엉망이었다.
잔가지와 산초나무로 등산로는 다 막히고, 타 다가 남은 큰 나무들이
등산로 길을 가로막고 누워 있었다.
산불에 손잡이로 쓰던 밧줄은 다 타버리고 군데군데 타다 남은
밧줄은 늘어져 있었다.
안내판도 다 타버렸는지 흔적도 없다. 답사를 끝낸 이튼 날부터 시간이
날 때 마다 기계톱과 예초기, 낫을 준비하여 등산로를 정비했다.
매월 첫 주 일요일이면 아버님 산소에서 가족모임을 갖는데 이번에는
가족들까지 총동원하여 아버님산소 옆 개울에 나무다리를 설치했다.
나무다리는 철사(반생)로 중간 중간을 묵어야 튼튼한데 철사를
묵는 방범이 있었다.
통나무다리를 완성하고 집에 내려와 집에서 기른 각종 야채와
장작불에 구운 고기를 섞어 먹는 맛은 정말 끝내주었다.
맛도 맛이지만 우리가 합심하여 다리를 놓고, 가족끼리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더 큰 즐거움 이였다.
열흘 넘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형제들과 등산로를 정비하는 동안
팔과 다리에는 나뭇가지에 긁혀 상처투성이고,
저녁을 먹자마자 아침까지 골아 떨어졌다.
어느 정도 등산로 정비를 끝내고, 산불로 인해
아버님 산소로 넘어 온 나무들과 불에 탄 주변의
나무들을 잘라와 패서 장작을 만들었다.
가시가 있는 나무들이 비교적 톱으로 잘 잘렸다.
자기 몸이 약하기에 방어하기 위해서 가시로 무장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자연의 이치에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나무 자르는 일도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기계톱은 조금만 방심하면 크게 다치고 나무가 쓰러질 방향을
잘 보고 잘라야 하기에 한순간이라도 방심할 수가 없다.
온몸이 땀범벅이 됐지만 그 거대한 나무가 넘어가는 것을 보니
통쾌하고 시원하다.
하루 종일 나무를 손수레에 실고 백여 미타 되는 집까지 가지고와서
절단기로 똑같은 길이로 잘랐다.
시골집에 똑같은 길이의 장작을 정갈하게 쌓아 놓은 집을 보면
왠지 풍부함과 겨울준비를 마친 여유를 느꼈다.
나무마다 특성이 있어 특성을 잘 알아야 하니 장작을 패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큰 것과 작은 것 두 종류의 도끼를 준비하여 나무에 맞게 내리찍지만
생각대로 잘 쪼개지지 않았다.
나무에도 결을 보면 갈색이 좀 짙고 나뭇결이 쫌 갈라진 쪽이 있는데
그 곳을 도끼를 내려 쳐야 한다며 동내분이 나무를 세워놓고
시범까지 보여 주웠다.
생전처음 장작을 패서 그런지 동내분이 가르쳐 준대로 하지만 잘되지 않았다.
장독을 깰지 모르니 장독대 반대편에서 패고,
손주들이 방에 있을 적에 장작을 패라고 단단히 일침을 놓고
아내는 겨울축제장으로 출근을 했다.
아내의 말대로 장독대 반대편에서 팼는데 쪼개진 장작이 옆으로 튀어
높게 설치해 놓은 태양열 판으로 떨어져 사다리를 놓고 꺼냈다.
힘들던 장작패기를 며칠 동안 반복하니 차츰 익숙해져 생각한대로
나무가 쪼개지기 시작했다.
짝~ 나무가 쪼개지는 소리에 통쾌함과 여유마저 느껴졌다.
온몸을 땀으로 샤워를 하지만 가지런히 쌓이는 장작더미를
볼 적마다 조금씩 통장에 늘어가는 잔액을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장작을 패는 동안 손자, 손녀들과 아내마저 보이지 않더니
아래 밭에서 높은 산에는 눈이 아직도 녹지 않았는데,
봄이 오고 있는지 봄의 전령사 냉이를 캐갔고 올라오고 있었다.
저녁에 냉이 국을 끓였는데 어찌나 신선하고 맛있는지!
겨울의 냉이 맛은 입가에 단 맛마저 느끼게 한다.
그동안 할머니가 해 주는 반찬을 먹은 탓인지 손주들도
맛있게 잘 먹는다.
농촌에서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마무리 한다.<2017.2>
첫댓글 아련한 옛정취를 느끼게 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농촌 살림에 잘 적응하시는 무로님, 글씨도 순하게 쓰셔서 수월했습니다.
겨울에는 쌀, 김치, 장작만 있으면 걱정이 없었지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