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세상의 모든 사물에는 평이하든 특이하든 각각의 이름이 있다.
똑같은 모양이나 크기를 가졌다고 해서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일은 없다.
쌍둥이로 태어나서 구분할 수 없을만큼 같은 모습을 지녔어도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나무를 통틀어 나무라고 하지만 각기 다른 이름이 붙여져있다.
책 을 통틀어 책 이라고 하지만 종류별로 분류되고 얇고 두꺼움이 있고
책마다 찍혀 있는 제목이 틀리다.
인간이 입으로 내는 언어, 소리중에 이름만큼 자주 오르내리는 말도 없을것이다.
사람의 이름 속에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힘, 그런게 있을까.
흔히 부르기 쉽고 고운 이름이면 좋다고 말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이름 속에 그런 힘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름을 받아야 할 생명이 태어나면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작명소를 찾기도 하고,
고명하신 분들께 부탁을 하기도 한다.
부모 스스로 부르기 쉽고 좋은 글자를 선택하여 이름을 지어주는 일도 바람직하건만
평범한 사람들이 지으면 그냥 예사로운 이름이 되고,
예사로운 이름으로 불리면 특별할것 없는 삶을 살 것 같은 같은 마음에
획 수를 따지고 뜻풀이를 하며 이 이름만은 남다르다고 굳이 차별성을 부여하려든다.
[한 통의 박을 켜서 두개의 바가지를 만들었다.
한 개는 물을 긷는 바가지로 사용하고 다른 한 개는 똥푸는 바가지로 사용하게 되었다.
한 통의 박에서 나뉜 두 개의 바가지가 부르는 이름에 따라서
물바가지와 똥바가지의 판이한 운명으로 바뀌는 것이다.]
아래에 나올 유명한 작명가의 설론을 인용했는데, 이 설론에 따르자면
불리우는 이름대로 어떤 대상의 운명이 결정 지어진다는 얘기가 된다.
어찌 보면 맞는 말같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너무 억지스럽기도 하고 무섭기조차 한 말이다.
입살이 보살, 말 속에 씨 들었다,는 말이 있다. 위의 설론과 비슷한 맥락으로 들리지만
뜻은 확연히 틀린다. 위의 설론은 '했고, 됐다' 라는 결정적 설론이지만
아래의 말은, 무심코 하는 말속에 들어있는 암시적 효과를 경계한 교훈적인 말들이다.
소리의 파장이 사물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서술한 사례들이 많은데,
좋은 음악과 칭찬의 말을 들려준 식물은 곧게 자라고,
꾸중을 들려준 식물은 구부러져 자라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또 물에 클래식을 들려주었더니 물의 분자에 변형이 왔다는 기록도 있다.
그렇다면 나쁜 이름으로 지속적으로 불리는 것도 그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에 대한 이미지를
쇠뇌시키는 효과를 줄수도 있고, 이름이 풍기는 파장으로 그 사람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는 결론이다.
이런 예로 본다면 위의 '물바가지와 똥바가지'론은 옳은 말이고 타당성이 있다고 보여지지만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닌 물건, 바가지의 이름이기에 저런 설론이 가능한 것이다.
쌍둥이를 낳은 부모가 두 아이의 이름을 천재와 천치로 지을리는 만무한 일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희대의 살인마도, 대도로 불리던 큰 도둑도 이름만 봤을땐
살인마나 도둑이 될만한 특별한 뜻이 들어있지 않은 평범한 이름들을 가졌다.
인간의 내면을 울리는 아름다운 음악을 짓고 자연의 색으로 세상을 그려내는
고금에 회자되는 예술가들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그 동명의 사람들이 모두 그런 고귀한 영혼의 삶을 사는건 아니지 않은가.
위의 설론처럼 이름이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는건 아무래도 타당성이 없다.
나는 여자 이름치고는 별로 이쁘지도 귀엽지도 않은 이름,
그렇다고 흔하지도 않은 이름을 아버지로 부터 받았다.
내가 윤달에 태어난 것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는 내 첫이름은 '윤봉'이였다.
오십여년 전에 언니 둘과 오빠를 위에 두고 세번째 딸로 태어난 내 위치로 본다면
천덕꾸러기 딸년쯤으로 치부되어 딸 그만 낳으라고 딸막이, 아들 낳는 태로 돌리라고
둘애기 둘선 둘이, 쯤의 이름을 받아 마땅하였겠지만,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과
나이 차이가 많은 언니들의 관심으로 한번의 수정 과정을 거처서 윤달을 뜻하던'윤'자를
연할'연'으로 바꾸고 돌림자인 '봉'자를 넣어서 마무리한 '연봉'으로 받게 되었다.
흔하지 않고 남자 같은 이름이 어릴때부터 불만이였던 나는, 과연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까, 궁금해서 첫 애를 키우던 새댁때에 동명을 찾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여러날에 걸쳐 두꺼운 전화번호부 인명 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뒤졌지만
그 작업에서 동명을 찾기는 실패했었다.
조카가 첫 아이를 낳고 그 이름 짓기를 내게 부탁해서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좋은 소리 아카데미] 라는 근사한 간판이 붙은 곳이었다.
나처럼 촌스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슬이, 초롱이 등의 순 우리말 이름만 들어도
고상하고 격이 놓아보여서 연봉이란 이름을 쓸때마다 주눅이드는 판인데,
좋은 소리로도 부족해서 아카데미라고 영어로 적은 간판이 얼마나 유식해 보이고
대단해 보이던지 나는 그 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주눅이 들고 말았다.
아카데미라는 간판이 달린 사무실에 앉아있을 사람은 틀림없이 세상에서 제일
유식하고 잘난 사람일거라 생각하니 내 이름을 물어볼 일도 없으련만
연봉이를 어디다 감추고만 싶었다.
그러다가, 아이 이름 짓는데 내 이름 나올 필요야 뭐 있겠는가, 라는 생각에 평상심을
되찾았지만 절대로 내보일 일이 없을것 같던 내 이름이 필연시 나오게 되어있었다.
그 유식하고 대단한 좋은소리 아카데미란 곳에서는.
전직 국회의원 출신이며 미스코리아 누구의 아버지라는 그 분은 대중매체에 얼굴이 많이 팔려서
눈에 익은 분이였는데, 예의 똥 바가지와 물 바가지 론을 내 앞에 풀어 놓으면서,
누가 아이의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라며 이름과 소리가 불러오는 파장에 대해서
은근하고 권위적인 태도로 설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호기심 왕성하던 나는 열심히 메모까지 하며 경청을 하고는
손주가 되는 아이의 이름만 지어서 돌아왔다.
그런데 문제가 거기서 끝난게 아니었다.
평소에 내 이름을 남자 같다며 못마땅해 하던 남편은
내가 전해주는 얘기와 메모지를 보곤 망설임 없이 이쁜 이름 짓기를 종용하며,
일반 철학관에서 작명비로 이만원씩 받던 그때로선 거금이던 일금 십만원을 선뜻
내주는 것이었다. 다시 찾아간 그 곳에서 지어준 두개의 이름 중에
남편과 아이들과 올케의 의견을 종합해서 택한 이름이 연희 였는데,
울 형부님은 촌스럽다고 한 반면에 인테넷 상에서는 모두들 이쁘고 여성스럽다고 한다.
이제 연희란 이름은 십년 넘게 본명처럼 불리게 되고 우편물 겉장에도 쓰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명가는 애기 아닌 어른의 이름을 바꾸는데 대한 부담은 있었던지
내 이름 첫자인 연 자를 세개의 이름에 앞뒤로 배치해 놓았었다.
비록 똥바가지와 물바가지론에 현혹되어 새 이름을 짓기는 했지만
지금은 아버지가 지어주신 연봉을 자랑스럽게 쓴다.
쉰 고개를 넘어버린 아지매 특유의 뻔뻔함으로 내 소개를 해야 하는 기회가 생기면,
연봉 수십억짜립니다, 제가 억수로 비싼 사람입니다, 하고 너스레를 떨게끔 되었다.
몇년전에 제주도에서 농장과 펜션을 겸하시면서 글을 쓰는 김주덕님과
잠시 글을 주고 받은 적이 있었다.
연봉이나 주덕이나 여자 이름으로선 글자나 소리로도 이쁘고 고운 이름이 아닌데도
나의 인사는 늘 "주덕님, 연봉입니다" 였는데, 그 인사 속에는 남자 이름같은 두 사람의
이름을 일부러 의식시켜 부드러운 분위기로 이끌어 가려는 의도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그 글을 본 주덕님의 동서가
"형님도 연봉 받으세요?" 하고 물어오더란 얘기를 나누곤 한참을 웃었다.
그후 제주도에서 김주덕님과 직접 만나게 되었을때 "연봉입니다"라고 첫 인사를 했더니, 주덕님 왈
"주지도 않으면서 왜 맨날 연봉 받으래요?"
라고 응수를 해오셔서 첫 만남인데도 이름 덕택에 화기애애, 아주 친숙한 만남을 가질수가 있었다 .
아버지가 지어주신 연봉이와 작명소에서 돈을 받은 댓가로 지어준 연희란 이름 안에
도 어떤 파장이나 운명이 깃들어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길때가 있지만
과학 문명의 발전이 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 이름과 운명을 연관지어 생각한다는 것은
다분히 억지스럽고 낙후한 생각이다.
요즘은 법원에 신청하면 개명도 쉽게 할수가 있다고 한다.
정말 글자로나 어감으로나 본인의 삶에 영향을 미칠 혐오스런 이름이라면
새로 지어서 새 마음으로 살아야겠지만, 부모님으로 부터 받은 이름에 자신감을 부여해서
당당하게 앞세우고 사는게 좋지 않을까.
첫댓글 잼나게 보았어요~연희가 쪽이 더 좋아요~그치만 연봉도 많이 만 받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나저나 연봉님,연봉은 얼마나 돼슈? 연간 소득을 공개하다간 세무서가 겁나시나요? ㅎㅎ
ㅎㅎㅎ~밝히고 싶지만 온나라님 겁나서 못밝힙니다~~~ㅎㅎ~
ㅋㅋㅋ 연봉아~~~ 놀자. 혐오스럽거나 남자스럽지 않은데... 희소성에서 연희보다는 연봉이가 훨 더 값어치있어 보여유~
그럼요~나이 들어서는 연봉이가 훨씬 좋아요. 연희가 얼마나 흔한지 연희 없는 카페가 없더라구요~ ㅎㅎㅎ~
마음에도 생김새가 각기 틀리듯이 평생 함께 하는 이름에도 개성이 있다고 봐야 겠지요"연봉"부를 수록 정감이 가는 흔하지 않은 이름이란 생각이 듭니다.말씀처럼 당당하게 앞세우고 사셔도 충분할 듯 여겨집니다.
네. 그럴께요~ 채송화님. 세상엔 다양한 이름이 참 많아요~
파장은 어디까지인지는 잘 모르겠숨돠요~ㅎㅎ 아시쪄? ㅋ 제 이름은 끝자리가 자음인 거요~ㅋ"꼭"ㅋㅋ
ㅋㅋ~ 그 참 궁금하네. 그래서 그 남편 태풍이 잡혔대요? 알았어요~많이 불러드릴께요~~ 지야, 옥아, 순아.숙아~~ㅎㅎ~
캬캬캬.... 지 이름은 흔하고도 흔해서 같은 반에 두세명씩 있었고 중학교 때는 성까지 같은 친구가 있어서 큰, 작은이라는 수사까지 붙어 다녀서 엄청 싫었는 디 어느 날 호적등본인가 그런거 떼러 가니까 호적에 올려져 있던 지금의 이름... 단지 덜 흔하다는 이유로 그걸 쓰는 데 친구들이 그 이름을 안불러 주니
꼭 남의 이름 같답니다. 근데 미용실 아짐 말이 큰 딸 이름을 유명한 작명소에서 지었는 디 크면서 자꾸 아파서 그 철학관엘 갔더니 이름이 나빠서 그렇다고 하더라네요. 자기가 지어 주었으면서....ㅋㅋㅋ...
ㅋㅋㅋㅋ~~ 그 철학관 염감님. 돌팔이~~아님 선무당? ~ㅎㅎㅎ~ 자기가 지어준 이름 이자뿌꺼마는요
딸만 내리낳은 울엄마가 옥편 찾아서 비단처럼 아름답게 살라고 지어주신 이름인디... 지 이름 괜찮쥬? 연봉님은 쫌 어려워보이구요,좋고 연희님은 부드럽고 느낌이 좋아유...
금화조님 이름이... ..비단처럼 이쁘게 살고계시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