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경북대 명예교수 '나무 박사'
박상진
그가 귀를 대면… 나무가 속삭인다, 역사의 비밀을
문갑식 기자/조선일보 [Why][문갑식의 하드보일드] : 2012.04.21.
"팔만대장경을 강화도서 새겼다고? 국보 15호 떠받치는 기둥이 알래스카 나무라니… 무령왕은 어릴 적 일본에서 자랐다"
무령왕 관목은 일본산 金松… 신라 천마도, 고구려 수입품 누명 쓸 뻔… 충무공·퇴계선생, 잠자리가 뒤숭숭할 것…
#무령왕릉의 진실
1971년 세상을 뒤흔든 무덤 하나가 열렸다. 526년 사망한 무령왕(武寧王)과 그 왕비가 함께 잠든 곳이다. 드물게 도굴범의 손을 타지 않은 고분(古墳)에서 보물이 쏟아졌다. 그해 7월의 일이다. 20년 뒤 한 학자가 거기서 나온 1㎜짜리 나무 부스러기를 현미경으로 살핀 뒤 이런 결론을 내렸다. "무령왕 관목(棺木)은 금송(金松)이다!" 밤나무로 알았던 게 잘못됐다는 이야긴데 그 짤막한 말에 뜻밖의 진실이 담겨 있었다.
#팔만대장경의 비밀
합천 해인사 장경각에 세계 최대의 목조유물이 있다. 판본만 8만1258장, 무게가 280t인 팔만대장경이다. 800년 전 한반도를 몽골군이 유린할 때 고려인들은 부처의 힘으로 침략에 대항하고자 강화도에서 불경을 나무에 새겼다. 그 사실(史實)에 의문을 품은 사람이 있었다. 어떻게 4t트럭 70대 분량의 판본이 상처 하나 없이 강화도에서 서울을 거쳐 합천까지 올 수 있었을까? 그가 나무를 들여다보더니 외쳤다. "대장경은 해인사 부근에서 만들어졌다."
#봉정사 극락전의 기둥
봉정사 극락전 기둥을 보고 얼굴색이 하얗게 변한 것도 그다. 국보 15호를 떠받치는 뒤쪽 기둥 두 개가 리기다소나무와 알래스카 가문비나무였던 것이다. 보수공사 때 값싼 수입 나무로 눈속임했지만 그의 눈을 피할 순 없었다. 아산 현충사와 금산 칠백의총과 안동 도산서원엔 왜 일본산 나무가 버티고 선 걸까. 박상진(朴相珍·72) 경북대 명예교수는 "하늘에 계신 충무공과 퇴계 선생의 잠자리가 뒤숭숭할 것"이라고 했다.
#인연
인체 해부학이 의학의 근본이듯 산림학의 기본은 목재형질학(Wood anatomy)이다. 딱딱하고 하품 날 것 같은 분야를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수준으로 발전시킨 게 바로 박 교수다. 그를 운명처럼 이쪽으로 이끈 인연이 있다. 대구 영남고교 시절 선생님의 한마디에 그는 임학과(林學科)를 지망하게 됐다. "자네 같은 청년이 달가스처럼 헐벗은 우리 민둥산을 푸르게 살려냈으면…." 또 한 번의 인연은 일본 유학시절 강우방과의 만남이었다.
‘나무 박사’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덕수궁의 소나무를 둘러보고 있다. 그에겐 1㎜ 남짓한 나무 부스러기가 역사의 비밀을 파헤치는 유력한 도구가 된다. 마치 CSI처럼 그는 무령왕릉,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여러 유물의 진실을 찾아냈다./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1주일간 광주를 떠나지 마시오!”
―그런데 왜 달가스가 되지 못했습니까.
“생각만 그랬고 실제로는…. 달가스는 못 됐지만 산림과학원 임업연구소 연구원으로 10년을 일했으니 나무와 인연이 끊어진 건 아니었죠.”
―당시 우리 산이 그리 형편없었나요.
“우리가 화면으로 보는 요즘 북한의 산과 똑같았습니다. 홍수가 나면 금세 산사태가 났으니까요. 50년 만에 우리의 산이 이렇게 울창하게 변한 건 기적에 가깝습니다.”
―1975년 일본 교토대로 유학을 갔습니다.
“임업연구소에 다니던 중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선발됐습니다. 이화여대에서 미술사학을 가르치고 국립경주박물관장을 지낸 강 교수를 만난 곳이 거기였어요.”
―그 만남을 왜 ‘인연’이라고 합니까.
“임학이란 게 현미경만 줄기차게 들여다보는 학문입니다. 그런 절 강 교수가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해설을 해줬어요. 그와 6개월간 교유하면서 목재형질학을 우리 문화재와 접목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학도의 눈을 차원 높게 만들어줬으니 그런 게 인연 아닐까요.”
―목재형질학과 문화재를 이으면서 일약 유명해진 게 ‘신안 보물선’사건 때입니다.
“1979년 전남대 전임강사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4년 전 신안군 지도읍 앞바다에서 이른바 ‘신안 보물선’의 존재가 밝혀졌어요. 그 배가 어느 나라 것인지 궁금했어요. 현지에서 자그마한 파편 조각을 얻어 분석해봤어요. 대부분이 중국 삼나무였고 극히 일부 일본 삼나무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걸 논문으로 써 한국임학회에 보고했는데 당시 한 신문에서 ‘중국’을 빼고 ‘일본 삼나무로 만들어졌다’고 대서특필한 겁니다.”
―일본 삼나무로 만들어지면 뭐가 달라집니까.
“그 배가 일본 배라면 유물의 소유권을 놓고 분쟁이 생길 수도 있지요. 그 보도를 접한 일본 측에서 ‘공동연구를 하자’는 제의까지 왔어요.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문이 확산됐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퍼럴 때 안기부 광주분실의 고위 관계자가 찾아왔어요. 표본을 압수해가며 ‘1주일간 광주를 떠나지 말라’고 하더군요.”
―오보(誤報) 덕에 첫판부터 대박이 난 셈입니다.
“처음 목재형질학을 문화재에 접목해본 건 보물 322호로 지정된 제주 관덕정(觀德亭)의 재질을 파악해낸 것이었습니다. 육지에선 정자를 소나무로 짓습니다만 관덕정은 제주에서만 자라는 ‘조록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대단히 단단하지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관목에 얽힌 비화도 많지요.
“무령왕릉은 고고학계에선 졸속 발굴로 유명합니다. 하루 만에 발굴을 마친 이유가 있었어요. 국민적 화제가 되자 장관이 대통령에게 하루라도 빨리 보고하려고 그랬답니다. 제가 무령왕릉 관목에 관심이 많았는데 ‘관목은 밤나무다’는 딱 한줄이 그렇게 의심스러웠습니다. 중앙박물관에 당시 유물부장으로 있던 이건무 전 문화재청장을 찾아가 사정했지요.”
―관목을 뚝 떼어주면 문화재 훼손 아닌가요?
“당연히 문화재 훼손이죠. 나무 세포 조사에 필요한 샘플은 클 필요가 없어요. 사방 1㎜정도 되는 부스러기만으로 충분합니다.”
―관목이 참나무 아닌 금송인 게 왜 중요합니까.
“금송이 소나무의 일종 같지만 소나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나무송이’라고 하는 금송은 활엽수로 일본에서만 자랍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무령왕의 관을 짤 나무를 일본에서 들여올 정도면 어릴 적 무령왕이 일본에서 자랐다는 설(說)을 뒷받침할 수 있게 되지요.”
◆모든 나무에는 사연이 있다
― 팔만대장경 조사도 논문 때문이었습니까.
“그때는 부산MBC에서 의뢰가 왔습니다. 우리는 목조 문화재에 관한 한 굉장한 선진국입니다. 팔만대장경이 대표적이지요. 팔만대장경은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졌지요. 근거가 있어요. 옛 문헌에 ‘화(樺)’라는 글자가 나오거든요.”
―그런데요.
“화가 지금은 자작나무를 뜻하지만 옛날에는 산벚나무를 뜻하기도 했습니다. 모양과 색깔이 흡사하지만 차이가 있어요. 자작나무는 북방에서, 산벚나무는 남해안에 많습니다. 장경각 밑의 먼지며 부스러기를 살폈지요. 그 결과 팔만대장경의 60% 정도가 산벚나무인 걸 알아냈습니다. 사실 그게 자연스러운 설명이 되는 거지요.”
―뭐가 자연스럽게 설명이 된다는 겁니까.
“팔만대장경은 지금 봐도 놀랄 만큼 깨끗합니다. 그게 자작나무라면 전쟁통에 그 많은 자작나무를 구하러 북쪽으로 다녀와야 하는데 논리적으로 말이 됩니까? 산벚나무뿐이 아닙니다.”
―다른 나무도 있습니까.
“나머지 40%가 돌배나무, 후박나무, 거제수나무입니다. 거제수나무도 자작나무로 착각할 만큼 비슷합니다. 거제수나무는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데 남쪽에 많지요. 후박나무도 남쪽에만 있고요.”
―고려사에 ‘강화도에서 새겨 보관해오던 경판이 태조 7년 한강을 거슬러 용산(龍山)에 온 뒤 그 이듬해인 정종 원년 1월 해인사로 옮겨 인쇄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태조가 7년간 재위한 뒤 그해 5월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정종에게 양위합니다. 정종이 인쇄했다는 시점과 8개월 차이가 나는데 8만장을 그 짧은 기간에 그렇게 깨끗하게 옮겼다? 대장경에는 또 다른 증거도 있습니다.”
―또 다른 증거?
“대장경은 귀족부터 지방호족, 승려, 노비가 만든 겁니다. 재미있는 게 경판의 옆에 일종의 사인 같은 게 음각으로 새겨져 있어요. 서지학자 중에 그걸 분석한 분이 있는데 제작자 대부분이 해인사 부근 거주자로 밝혀졌습니다.”
―듣다 보면 나무 부스러기가 여러 비밀을 품고 있습니다.
“해군 의뢰로 거북선과 조선시대 전투함인 판옥선(板屋船) 발굴과 구조를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전투함은 용골(龍骨)구조입니다. 우리는 서해안 조수간만의 차가 커 용골 대신 평저선(平底船)이라고 평평한 구조로 돼 있지요. 그렇게 만들면 배가 두꺼워져 보통 소나무를 씁니다. 그걸 보면 전투형태도 알 수 있게 됐지요.”
―전투형태가 어떤데요.
“일본 배는 기동성이 우수한 대신 약합니다. 조선 판옥선은 무겁지만 강하지요. 그럼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부딪쳐서 상대 선박을 부서뜨리는 ‘박치기’밖에 없죠. 사서의 ‘당파(撞破)’라는게 그 뜻입니다.”
―거북선은 찾았나요.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 당시 세척밖에 없었습니다. 펄 속에 깊이 묻혀 있다면 모를까 없을 확률이 높지요. 바닷속 유기물들이 나무를 갉아먹으니까요. 판옥선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천마도도 처음에는 자작나무로 오인했지만 거제수나무나 사스레나무로 드러났습니다. 왜 그리 역사에 자작나무가 자주 등장할까요.
“백화(白樺)는 유용했습니다. 껍질이 종이 대용(代用)이었으니까요. 지금이야 서울에서도 볼 수 있지만 그 당시엔 북방에서만 살았거든요. 자작나무, 거제수나무, 사스레나무는 현미경을 통해 세포를 살펴보지 않고는 가려내기 힘들 만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천마도가 자작나무 재질이라면 고구려에서 수입했다는 뜻이 되겠네요.
“일본에 있는 목조 반가사유상도 그래요. 그들이 내심 국보 1호로 치는 게 교토 광륭사(光隆寺)의 목조 반가사유상인데 그게 소나무입니다. 일본에는 당시 소나무가 자라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백제에서 만들어줬다는 뜻이 됩니다. 나무는 나라의 흥망(興亡)을 유추해내는 도구도 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신라가 망하기 50년 전에 경주시민이 거의 숯으로 밥을 지었습니다. 연료로서 숯은 열 효율이 장작의 10%밖에 안 됩니다. 숯을 많이 만들려면 주변 산의 나무를 남벌할 수밖에 없지요. 그건 왕조를 망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나무 찾아 전국을 떠돌다 보면 해괴한 것도 많이 발견하시지요.
“봉정사 극락전 기둥 같은 게 그런 건데 지금은 다 바꿔놨어요. 요즘은 문화재 관리도 수준급이니까요. 아산 현충사, 금산 칠백의총, 안동 도산서원은 지금도 그대로지만요.”
―금송이 왜 거기 심어졌을까요.
“사연이 있어요. 세 곳의 금송이 다 청와대 경내에 있던 겁니다. 청와대가 예전에 조선총독 관저였잖아요. 박 대통령이 현충사 등을 만들고 복원하면서 귀한 나무니 가져다 심으라고 한 겁니다.”
―좌파가 ‘박 대통령은 뿌리부터 친일파’라고 하겠군요.
“그런 소린 예전부터 있었습니다만 전 달리 생각합니다. 그분이 일본군 장교 지낸 일로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그게 일본에만 자라는 금송인 걸 알았다면 내려보냈겠습니까, 턱도 없는 얘기지요. 모르고 선심 쓴 건데….”
―지금이라도 잘라내야 할까요?
“지금도 ‘대통령 기념식수를 어떻게 잘라내느냐’는 의견이 강해요. 저도 잘라내는 건 반대입니다. 다만 위치가 너무 민망하니 옮기자는 거지요.”
―경복궁 등 서울의 5대 궁궐에 있는 수종 250종을 분석해 ‘궁궐의 우리 나무’라는 책을 냈습니다. 왜 궁궐에 관심을 가졌나요.
“자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는 걸 보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나무가 가장 많이 모인 곳이 어딜까 하고 생각했어요. 바로 궁궐이죠. 일제강점기에 원형을 잃긴 했지만 지금은 예전 모습대로 복원됐습니다. 지금은 전국의 고목을 살피는 중인데 혹시 전국의 고목이 몇 그루인지 압니까?”
―모르죠.
“천연기념물 200여그루는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시·도에서 관리하는 보호수가 1만4000그룹니다. 다 사연이 있어요. 예를 들면 경남 함양의 김종직 나무 같은. 전 힘닿을 때까지 그걸 다 모을 겁니다. 나무별로 최고는 무엇인가 하는 식으로.”
―그럼 용문산 은행나무도 꼽힐 것 같은데 마의태자가 심은 지팡이가 나무가 됐다는 설화는 말이 됩니까.
“은행나무는 용문산 것이 최고인데 마의태자 지팡이는 뭔가를 상징할 겁니다. 우리가 뭔지 모를 뿐이지요. 그런 사례가 많아요. 침향과 매향(埋香)도 비슷한 겁니다.”
―침향과 매향?
“동남아에서 자라는 침향은 연기가 만병통치라고 알려질 만큼 향기가 좋습니다. 귀족만 키울 수 있었지요. 그래서 일반인들은 향나무를 땅에 묻고 1000년이 지나면 침향이 된다고 믿었는데 그게 뭘 뜻하겠습니까? 미륵사상이지요.”
―이렇게 나무에 대해 잘 아시니…, 광화문 현판이 왜 쩍 갈라졌는지도 아시겠네요.
“당시 대목장이 자기가 관리하던 나무 가운데 10년간 말린 것을 가져왔는데 속은 안 말랐거든요. 거기에 각자(刻字)를 했으니 갈라질 수밖에요.”
―10년을 말렸는데도 건조가 안 됩니까, 나무가?
“통나무는 10년을 말려도 속에 수분이 있습니다. 통나무를 켠 뒤 몇 달 말리다가 글을 새겼으니 그 꼴이 난 겁니다. 광화문 현판은 그 뒤로도 한자냐 한글이냐를 두고 갑론을박 말썽입니다.”
―나무와 함께 산지 50년이 넘었습니다. 본인과 비슷한 나무가 있습니까.
“은행나무는 너무 명품이고 소나무는 절개나 지조의 상징이니 자랑하는 것 같고…참나무쯤 되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