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몰라 , 개복치라니 -박민규 (퍼온소설)

[언제나유후]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박민규

9호 구름

고무동력기를 타고-캐나다 조기유학을 떠났던 듀란이 돌아온 것은 오늘 오후의 일이었다. 정원의 잔디를 손질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세일즈콜이겠지, 오전에도 두 통의 가입 안내를 받았으므로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호두나무의 묘목을 손질하고 있을 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장갑을 벗기가 귀찮기도 해서,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마당을 팠는데, 강아지의 유골이 나왔다. 리플리였는지 머플리였는지, 그런 이름의 강아지였다. 이곳에 강아지를 묻은 게 언제였던가? 생각을 되살리는데 또 전화가 울렸다. 리플리인지 머플리인지의 유골 앞에서, 결국 장갑을 벗고 전화를 받았다. 듀란이었다.

 리플리였잖아. 듀란이 찾아온 것은 정확히 한 시간 후였다. 와서는, 한 시간 전에 헤어진 친구처럼 팔 년 전의 강아지 이름을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예전에 함께 산책도 시켰었잖아. 그랬던가? 그러고 보니 놀이터와 공터와, 그런 것들로 가득 찬 오래된 세계가-각이 닳은 주사위처럼 마음의 밑바닥을 구르는 느낌이었다. 왜 전화를 안 받은 거야? 세일즈콜이 하도 와서. 여기도? 여기도.

 정원 일은 곧 끝이 났다. 널브러진 가지들을 정리하고 나자, 잔디 위에는 나와 듀란과, 리플리의 뼈만이 남아 있었다. 다시 묻어야겠지? 아무래도. 쪼그린 채, 운동화의 풀린 끈을 묶듯 유골을 묻고 있자니, 반짝-조각난 뼈들이 팔 년 전의 강아지처럼 달려드는 느낌이었다. 그랬다. 리플리는 270수 만에 혹이 한 집 반 승을 거두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느낌의 바둑강아지였다. 잘 있어. 나는 리플리에게, 그리고 정원에게, 하물며 이십 년을 살아온 나의 집에게 고별을 고했다. 구름의 그림자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니까

 지구를 한번 떠나보자.

 라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만, 스무 살이 되던 날의 아침이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눈을 뜨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전날에 대략 이런 일들이 있었다. 철학개론과 세계사, 영어, 세 개의 수업을 연달아 듣고, 오후엔 수영을 하고, 저녁엔 애완용 거북의 식량을 사러 나갔다. 써놓고 보니, 이건 흡사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가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였다. 수족관의 불은 꺼져 있었고, 나는 담배와 바나나우유를 산 후 굶주린 다섯 마리의 거북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스무 살이 되었다. 알고 보면, 그렇다. 말하자면 일 년 전의 일인데-바로 그 순간 나는 이 세계가, 너무

 그렇고 그렇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바로 전날까지, 아무 의심없이 수영을 하고 거북을 키우던 세계였다. 너무, 그렇고 그래요. 안 그래요? 그리고 꿈틀, 세계를 떠받친 세 마리의 코끼리, 를 떠받친 거북 같은 것이 온종일 꿈틀대는 기분이었다. 이 세계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것인가. 수족관의 주인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래서 거북이 한 마리가 죽었다구요? 예, 오늘 아침에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제 마침 영화를 보러 가느라 문을 일찍 닫았거든요. 아, 영화는 어때습니까? 뭐, 그렇고 그랬습니다. 그나저나 죽은 거죽은 어떤 놈이죠? 기생충으로 고생한다던 녀석인가요? 아뇨, 그건 <궁>이고 죽은 건 아주, 아주 큰 녀석입니다. 혹시 장수거북인가요? 더 큰 것입니다. 그럼······ 설마하니 갈라파고스 코끼리거북? 갈라파고스 섬보다도 훨씬 더 큰 것입니다. 뭐랄까, 손님께선 애완동물의 사이즈에 대해 땀이 날 정도로 제대로 이해하고 계시는군요. 그럼, 편인가요? 그럼요, 애완(愛玩)이란······ 즉 사랑은 무한한 것 아니겠습니까?

 죽은 거북의 이름은 <궁>이었다. 실은, 그랬다. 궁은 생후 팔 개월 때부터 줄곧 기생충에 시달려왔고, 마침 영화를 보러 간 수족관의 주인이나, 혹은 게을러터진 나 때문에 여섯 살의 생을 마감했다. 그렇고 그런 예기로군. 일광욕을 하는 네 마리의 거북을 바라보는 나는 중얼거렸다. 수족관의 주인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이미 세계는-어떤 거짓말을 해도 그렇고 그렇게 들릴 만큼, 그렇고 그런 곳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말하자면 사실 죽은 거북의 이름은 <우>였으며, 살아남은 궁, 상, 각, 치 중 가장 무서웠던 <각>은-일광욕을 하다 말고 훌쩍 날아올라, 색동날개의 보잉747이 되었다.

 열네 살 때 나는 한 장의 엽서를 받았는데,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지구를 떠나보지 않으면, 우리 지구에서 가지고 있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제임스 라벨. 제임스 라벨은 아폴로를 탔던 우주인이고, 엽서는 캐나다에서 온 것이었으며, 엽서의 발신자는 듀란이었다. 엽서를 읽은 직후, 나는 다섯 마리의 거북을 구입했다. 엽서의 내용과 관련된 건 아니지만, 지구에는 확실히 다섯 마리의 거북이 있었다.

 듀란의 한국 이름은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나란히, 듀란듀란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친구가 되었지만-듀란은 캐나다로 건너갔고, 나는 한국을 벗어난 적이 없으며, 듀란듀란은 단 한 번도 한국을 찾지 않았다. 이것이 소위 <삼위일체>의 전형이란 걸, 훗날 함무라비 법전을 읽은 후에야 비로소 나는 깨닫게 되었다. 채팅이 가능해진 어느 시기에, 듀란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의 너와 캐나다의 나, 영국의 듀란듀란을 잇는 큰 삼각형의 공간을 떠올려봐, 그것이 곧 버뮤다 삼각지대를 이해하는 첫걸음이야.

 버뮤다 삼각지대는 미국의 마이애미와 버뮤다, 그리고 푸에르토리코를 잇는 삼각형의 바다를 일컫는다. 대략 북위 20도에서 40도까지, 서경 55도에서 85도에 이르는 400㎢의 드넓은 해역(海域)이다. 1973년 판 U.S COAST GUARD를 참고하자면-이곳에선 8000여 건의 조난 사고를 포함, 지난 한 세기 동안 53척의 배와 26대의 비행기가 한 조각의 잔해도 없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모르긴 해도 한국의 나와 캐나다의 듀란, 영국의 듀란듀란을 잇는 삼각지대에서도 아주 많은 실종사건이 있었다. 1991년판 U.S COAST GUARD를 참고하자면, 이곳에선 53척의 배와 26대의 비행기 정도로 규정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책의 258페이지 하단에 기재된 1위에서 10위까지의 실종물 목록은 다음과 같다 ①플랑크톤 ②크릴 ③정어리 ④고기압 ⑤태풍 ⑥나오미 캠벨 ⑦선박 ⑧우유 ⑨비행기 ꊈ김선기씨

 나오미 캠벨이라니. 그건 좀 그렇고 그렇잖아? U.S COAST GUARD의 내용에 대해 나는 강한 불만을 어필했다. 듀란은 책의 편집자인 하워드 로젠버드에게 직접 확인을 해야겠다며 채팅을 종료했다. 이틀 뒤 나는 듀란의 쪽지를 받았다. 그 나오미 캠벨이 아니래. 쪽지에는 간단히, 그렇게만 적혀 있었다.

 그 삼각지대는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해체상태였던 듀란듀란이 어느 날 갑자기 재결성의 뜻을 밝혔기 때문이었다. 한순간에 삼각지대는 사라지고, 듀란듀란은 인터넷 인기검색어 외국가수 부문에서 76위로 뛰어올랐다. 실종인물이 아닌-그, 나오미 캠벨은 여성모델 부문에서 9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축하할 일이지? 축하할 일이야. 듀란과 나는, 각기 캐나다와 한국에서 <아레나>를 들었다. 실종된 캠벨의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지구에선 이런 식으로 사라진 것들이 너무나 많다. 알고 보면, 그렇다. 어림잡아.

 지구의 나이는 45억 년이다. 인류의 나이는 300만 년이고, 나는 스무 살이다. 누가 뭐래도 세대 사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한다면 자본주의의 나이는 고작 400년에 불과하다. 나는 아무래도 그쪽이 편했다. 말과 눈치가 통하고, 우선 먹고 마시고, 입는 게 비슷했다. 즉 그런 이유로, 나는 지구와 인류보다는 자본주의와 함께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함께 늙어간다. 당신이라면, 아마도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어때 코스모가 느껴져? 열일곱 살 때 나는 처음 섹스를 했다. 클럽에서 만난 네 살 연상의 여자였고, 천문학을 전공하던 여대생이었다. 나보다는 그녀가 적극적이어서 유(類)의 그렇고 그런 얘기지만, 그렇고 그렇지 않은 기억이 딱 하나 남아 있다. 어때 코스모가 느껴져? 깜깜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분명 그렇게 물었었다. 어때 코스모가 느껴져?

 고등학교를 졸업한 듀란은 캐나다 창조과학단체의 인턴이 되었다. 쉽게 말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과학자들의 모임이라고, 자신의 단체를 소개했다. 뭐야, 그럴 리가 없잖아, 라고는 해도-나 역시 직접 본 게 아니므로,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영역다툼을 벌이는 <상>과 <치>의 엎치락뒤치락을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궁>은 여전히 기생충에 시달리고 있었다.

 듀란의 서클은 꽤나 많은 실험을 실시했었다. 꾸준히 메일을 주고받았으므로, 나는 그들의 실험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다. 크고 작은 실험들의 결과는 대략 이런 것들이다. 이윽고 지구의 중심까지 내려갔는데-거기엔 마그마와 핵, 보다는 위액(胃液)을 뒤집어쓴 1950년대식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하나 있었고, 마침 라디오에서 카펜터즈가 흘러나왔다는 둥, 또 아마존의 지류를 거슬러올라가니 그곳에선 복숭아 그 자체인 뺨과 엉덩이의 동자들이 울고 불며 엄마를 찾고 있었다는 둥.

 잭필드 4색 3종 선택 면바지 세트를 구입한 사회학과의 선배는, 마침 그중 베이지컬러를 골라입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아무래도 자본주의는 <39,800원>이 아닐까 싶어. 나는 요새 왜 자본주의는 <40,200원>이 될 수 없을까, 에 대해 골몰히 생각중이야. 학교의 후문에서 불과 50미터 떨어진 그의 자취방에서, 나는 비를 피하던 중이었다. 싸고 좋군요, 라는 말이 그래서 절도 나왔다.

 언젠가 나는 학교의 철학교수를 찾아간 적이 있다. 교수의 방은 가장 낡은 건물에 위치해 있었고, 교수는 마침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 방에 학생이 찾아온 건 1981년 이후 처음일세. 그런가요? 확실히. 그리고 이상한 침묵이 이어졌다. 골똘히 천장과 벽의 사방연속무늬만 바라보던 내가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런가? 그런데 날 찾은 이유가 뭐지? 그게, 실은 뭘 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랬군. 벽의 모서리에서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한 사방연속무늬처럼, 안타까운 얼굴로 교수가 말했다. 실은 나도 무슨 얘길 해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네.

 그날, 교수를 찾아간 이유가 생각난 것은 두 달, 이란 시간이 지나서였다. 수영장에서 만난 친구들과 등산을 갔는데, 그 산정에 어마어마한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누워, 사방연속무늬의 별들을 한참이나 보고 있자니, 교수의 강의 한 토막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어렴풋이 강의의 내용은 대략 이런 것이다. 결국 우주는 하나의 사유(思惟)입니다. 오래 전 지구가 네모라고 믿었던 때에 이 지구는 정말 네모난 것이었다는 얘깁니다. 다음날 나는 다시 교수를 찾았다. 오 자넨가. 네. 그리고 정작,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사람의 입에서도 무지개가 나올 수 있을까요?

 그날 밤 뉴스에선, 입에 250개비의 담배를 피워문 기네스맨의 토픽과, 건강상식-왜 치질은 인간만이 걸리는 것일까요? 와, 국정감사의 소식과, 특정 정당과 검찰의 대립과, 전직 대통령의 뇌물수수와, 연예인들과 파파라치간의 숨막히는 전쟁과, 이라크전의 현황과, 알뜰, 소비자 생활상식이 보도되었다. 이를 닦고 나온 후, 나는 사전을 펼쳐 <뉴스>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뉴스(NEWS) 새로운 일이나 아직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일, 또는 그 소식, 나는 사전을 덮었다. 이제 지구엔 뉴스가 없어요. 지구를 세 바퀴 반 돌고, 저녁을 먹으러 돌아온 <각>이 색동 날개를 접으며 말했다.

 해를 등지고 말이야, 침을 열심히 뱉어보게. 무지개가 생길지도 모르지. 대답은 들려준 것은 마침 교수의 방을 찾았던 자과대의 교수였다. 그사이 교수실의 벽은 흰색의 페인트 칠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습니까? 벽의 경계를 지나, 이윽고 사라진 사방연속무늬처럼 나는 밖으로 나왔다. 해는, 등을 질 수 없을 만큼 중천에 떠 있었다. 바나나우유를 마시며 나는 듀란에게 편지를 썼다. 세상이 너무, 그렇고 그래. 듀란의 답장이 도착한 것은-뉴스를 보고, 사전을 찾고, 거북들에게 밥을 주고 난 후의 한밤중이었다. 너도 그러니? 나로선 무려 이런 느낌이야.

 알고 보니 홍키통크맨!(엘비스 프레슬리의 외양을 본딴 미국의 프로레슬러. 코믹한 악역을 주고 맡는다.)

 결국 그날 밤, 우리는 지구를 떠나보기로 결심했다. 제임스 라벨의 말처럼, 지구를 떠나보지 않고선 세계의 정체를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꾸준히 이런저런 실험을 해온 듀란이 있어, 나로선 한결 수월한 일이었다. 일단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야 해. 단체의 허락을 얻은 듀란이 곧이어 이런저런 스케줄을 알려왔다. 비자 같은 게 있을 리 없었으므로, 듀란이 나를 데려가기로 했다. 가능할까? 가능해. 9호 구름을 이용할 수만 있다면.

 서둘러, 9호 구름이 사라지겠어.

 듀란의 고무동력기는 뒷산의 넓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다. 갑자기 바람이 빨라진 탓에, 듀란의 음성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계산기를 꺼낸 듀란이 이런저런 계산을 하는 동안, 나는 열심히 프로펠러를 감고 있었다. 10만2062회전이야. 마닐라삼과 스코틀랜드 산 양(羊)의 내장 성분이 섞인 고무가 힘찬 소리와 함께 감기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혹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의 한쪽이 뭉클해졌다. 고무처럼 진득한 눈물이, 갑자기 샘솟았다. 상처를 통해 고무를 흘리고 선 한 그루의 고무나무처럼, 나는 살아남은 상, 각, 치, 우 들이 더 이상 싸우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9호 구름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바가 없다. 무역풍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 세계의 마지막 구름이며, 발생지가 앙코르와트란 사실만이-내가 구름에 대해 전해들은 전부이다. 만일 내가 돌아온다면, 언젠가 구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10만2062! 프로펠러가 다 감기고 나자 다시 바람이 잠잠해졌다. 이런. 듀란이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 조금만 뒤를 밀어주면 좋겠는데. 우리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침 약수터 쪽의 공원에서 누군가 운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달려갔다. 어쩐지 나는 그 남자가 이대근씨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 혹시 이대근씨가 아닌가요? 어, 나 이대근인데. 이대근씨는 흔쾌히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나는 고글을 쓰고, 기체의 뒷좌석에 앉았다. 앞자리의 듀란이 벨트를 매라는 신호를 손짓으로 보내왔다. 출발. 잠금장치의 레버를 듀란이 당기자 어머어마한 속도로 프로펠러가 돌기 시작했다. 고무동력기의 기체가 전체적으로 팽팽해지는 느낌이었다. 끄응. 이대근씨의 힘찬 기합이 뒤에서 들려왔다. 우리는, 날아올랐다.

 바람과, 고무가 풀리는 굉음이 귀를 찢는 듯했다. 고글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눈을 제대로 뜨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바람이 멎고, 굉음이 잔잔해졌다고 느껴진 순간, 거대한 구름 하나가 두 눈 가득 들어왔다. 듀란의 손짓이 없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9호 구름>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서슴없이, 우리는 구름 속으로 날아들었다. 구름의 냄새가 심하게 코를 찔렀다. 비릿함이 느껴지는 좋은 냄새였다. 마음의 벽을 뚫고, 무언가 사방연속무늬 같은 것이 창공을 향해 터져나갔다.

 개복치 여관

 여관의 처마에는 작고, 낡은 간판이 하나 걸려 있었다. 그 간판이 없다면 여관은 선술집으로, 혹은 창고로도 볼 수 있는 묘한 분위기의 건물이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목조(木造)의 간판은 그야말로 심플한 구성이었다. 간결한 필체의 <개복치 여관>과, 그 아래의 개복치 그림. 우리가 도착한 것은 한밤중이었으므로, 나는 어둡고 탁한 백열등 밑에서 흔들리는 간판의 그림을 가까스로 볼 수 있었다. 이런 그림이었다.

 개복치 : 몸길이 약 4m, 몸무게 약 140㎏인 거대한 물고기이다. 몸은 타원형이고 옆으로 납작하며, 몸통을 좌우에서 눌러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에서 뒤쪽을 잘라낸 형태이다. 온대성 어류로, 보통 바다의 중층에서 헤엄쳐다니지만 하늘이 맑고 파도가 없는 날에는 외양(外洋)의 수면 위에 등지느러미를 내밀고 천천히 헤엄치거나 옆으로 누워 뜨기도 한다. 무리를 이루지 않으며, 접근해오는 해파리 등을 먹이로 한다. 가장 크고 무서운 경골어류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알을 낳는 다산성 어류이다.

 여관의 로비에는 개복치에 대한 설명이 씌어진 커다란 액자가 걸려 있었다. 듀란과 나는 현관 맞은편의 소파에 앉아 사람을 기다렸다. 여기서 왜, 누굴 기다리는지 궁금증이 일었으나 비행의 피로가 나를 침묵케 했다. 여관이라고는 하지만-카운터가 있는 것도, 따로 벨보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로비의 중심에는 드러누운 포즈의 개복치 박제가 있고, 원형의 벽을 따라 크고 작은 액자들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모두가, 개복치에 관한 기사나 사진, 혹은 시와 에세이의 스크랩 들이었다. 이것이 샌프란시스코의 스타일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꽤나 특이한 여관임이 분명했다. 지루해진 나는 벽에 걸린 시와 산문 들을 감상하고, 다가가 박제된 개복치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입을 벌리고 누운 개복치의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궁>과 닮아 보였다.

 뉴 포트 비치에서 사람이 오는 중이야. 기지개를 켜며 듀란이 입을 열었다. 뉴 포트 비치가 어딘지는 몰라도, 듀란의 표정에서 그들이 늦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영업이 힘들지 않을까? 말 그대로, 여관은 텅 빈 느낌이었다. 박제의 벌어진 입에서 텅 빈 공간에서만 들리는 바람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정적(靜寂)도 실은 하나의 소리였다. 이미 하나의 소라고동이, 아니 정적이, 내 귀를 덮고 있었다.

 아, 여긴 숙박업소가 아니야. 다만 여관이란 명칭을 사용할 뿐 그 용도는 전혀 다른 곳이지. 여관이 아니라구? 뭐랄까, 아마도 박물관과 연수실의 중간 정도라 보는 게 옳을 거야. 물론 룸이 갖춰져 있긴 하지만, 일부 회원에게만 제공될 따름이지. 그럼 사설박물관 같은 건가? 그렇다고 봐야겠지. 이곳의 설립자는 버즈 앨드린이야. 버드 앨드린?

 달에 발을 디딘 두 번째 인간이지. 아폴로 이전에도 제미니12호를 타고 우주를 비행한 인물이야. 일설엔 달에 최초로 발을 디딜 권리가 앤드린에게 있었는데, 선장이었던 암스트롱이 그걸 가로챘다고도 해. 지구적이군. 지구적이지. 대신 앤드린은 달에 발을 디딘 후 소변을 보았지. 비록 우주복 안에서 이뤄진 업적이지만, 달에서 소변을 본 최초의 인류가 된 셈이야. 인간적이네. 그리고 돌아와 이렇게 말했어.

 우주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왜? 이유는 알 수 없지. 다만 지구로 돌아온 그는 꽤 오래 정신과 치료를 받았어. 병원을 나온 후에도 숨어 조용한 여생을 보냈고. 이곳은 그가 은둔해 있으면서 암암리에 설립한 곳이야. 그가 왜 이런 시설을 지었는지에 대해선 우리에게도 마땅한 정보가 없어. 그것 참, 개복치라니. 듀란의 얘기가 이어질 무렵, 밖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소리라기보다는, 고무동력이 내뿜는 소음이었고-소음이 듀란의 목소리와 겹치는 순간 나는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다. 귀를 덮고 있던 소라고동이 나와, 나를 포함한 차원을, 그대로 집어삼킨 느낌이었다. 나는 이미 쓰러졌거나, 혹은 블랙홀이나 거대한 개복치의 입 속으로 들어가버린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뜬 것은 이틀이 지나서였다. 눈앞에, 듀란이 있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나는 이틀 내내 혼수상태였고, 말도 안 되는 진짜 이유는 잠수병(潛水病)이었다. 말이 안 되잖아. 손에 물 한 번 적시지 않았는데. 이곳의 의료진도 이상하게 여기긴 마찬가지야. 물론 기압도 수압처럼 인체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너의 폐와 위에선 실제로 다량의 바닷물이 검출되었다고 해. 바닷물이라고? 글쎄 그렇다는군. 그럴 리가. 그날 점심때 뭘 먹은 거지? 그날 점심때 내가 먹은 건, 그러니까 평양냉면이 아니었던가.

 몸이 회복되면서 차례차례 <개복치 여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의료실의 닥터들을 포함, 대부분의 멤버들이 이곳의 근무자가 아니란 사실이었다. 즉 이곳은 멤버십에 의해 그때그때 소집되고 운영되는 특이한 구성의 조직체였다. 듀란을 통해 정식으로 연결(소개를 받고 알게 되는 일을 이들은 연결이라 부른다)된 회원은 모두 세 사람이었는데, 그들은 전적으로 우리의 외출(대기권을 벗어나는 일을 그들은 외출이라 불렀다)과 관련되어 있었다. 좋은 인상에, 모두가 뉴 포트 비치에서 온 인물들이었다. 아, 그날 밤 도착하는 소릴 들은 기억이 나요. 고무동력의 소음이 로비까지 들렸거든요. 고무동력? 우린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왔는데.

 인디언 잭 윌슨과 중국인 호(弧)는 말이 없었다. 아마도, 아메리카 들소와 팬더를 친구로 사귀어도 그보다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대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인물은 아담 앨드린이었다. 그는 로즈 애드린의 아들이지 이번 <외출>의 책임자였고, 들소와 팬더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을 해주는 사육사마냥, 친절하고 자상한 인물이었다. 특히 내가 앓았던 잠수병에 대해 그는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건 물론 이상한 일이지만, 이상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제 전화로 말씀드렸더니 아버지도 굉장한 관심을 보이시더군요. 어쩌면 당신, 아주 희귀한 체질일 수도 있습니다. 코스모를 잘 느끼는 체질, 즉 코스모에 민감하다고 할까요? 코스모란 단어를 듣는 순간, 그만 나도 모르게 열일곱 살 때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코스모가 느껴지냐고 묻지 뭡니까. 확실히 좋은 경험이로군요. 어쩔 줄 몰라하며, 아담이 얘기했다. 예. 라고, 내가 대답했다.

 당신은 왜 외출을 결심했습니까? 하루는 아담이 그런 질문을 던져왔다. 느꼈던 대로, 나는 진심을 털어놓았다. 갑자기 이 세계가-너무 <그렇고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고 그렇다구요? 그렇고 그렇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듀란에게도 아담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팔짱을 낀 채, 듀란은 들소와 팬더의 교미로 태어난 미지의 생물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순전히, 홍키통크맨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군요. 아담이 얘기했다. 우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성인이 된 인간은 반드시 지구를 나갔다 와야 한다-앙코르와트와 같은 나라에서 그것은 보편적인 상식이었다고 합니다. 나이의 기준이란 별 의미가  없겠지만 스무 살은 확실히, 세계에 대해 냉담해질 나이니까요. 군대라도 나녀오듯 지구를 떠나, 지구를 보고, 느끼고 돌아오는 앙코르와트의 젊은이들을 나는 떠올렸다. 생각만 해도 근사한 광경이었다. 그런 나라가 왜 멸망한 걸까. 그런 나라가 왜 멸망한 겁니까? 듀란이 물었다. 멸망이라뇨? 단지 그들은 지구를 떠났을 뿐입니다. 아담이 대답했다.

 버즈는 우주에서 뭘 본 걸까요? 하루는 듀란이 아담에게 물었다. 그건 저로서도 알 길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다만, 자신의 우주는 자신이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해오셨지요. 저희 인턴들 사이에선 버즈만이 지구를 보았다라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처럼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글쎄요. 제가 들은 얘기는 한 가지뿐입니다. 로비 한켠에 걸린 맨하탄의 전경 사진을 가리키며 아담이 얘기했다. 아버지와 함께 뉴욕에 갔을 때였습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앞에서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한 기억이 납니다. 얘야, 우주에서 보면 이건 빨판이 달린 한 마리의 기생충이란다.

 하늘에서 본다면, 여관의 건물은 전체적으로 ‘ㄷ’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중앙의 옴폭한 공터가 우주선의 발진 장소였는데, 평상시엔 건물의 주차장으로 활용되는 곳이었다. 하루하루 지구를 떠날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담의 지시에 따라 우리도 본격적인 비행 수업에 들어갔는데, 그것은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었다. 이곳의 피로를 푸는 것이 관건입니다. 인간이 우주를 여행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우선 피로하기 때문이거든요.

 나는 잠을 자거나, 뒤척이거나, 이층 침대의 위층에 누워 아래층의 듀란과 대화를 나누거나, 했다. 늘 그랬던 잠은 쏟아졌고, 어느 날 잠을 깨니 우주를 여행해도 좋을 만큼이나 피로하지 않았다. 좋은 기분이었다. 잠을 잘 자는 편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런 나조차도, 그러나 지구를 떠나기 전날만큼은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다. 느릿느릿 몇 번이고 양떼의 수를 세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하여 화장실을 들렀다. 느릿느릿 새벽의 로비를 가로질러 방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해서 평소엔 지나치던 작은 액자와, 그 속의 짧은 시를 나는 읽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시였다.

 옆집에 살던 울리불리를 거기서 보았네.

 반바지 차림으로 우리는 함께 헤엄을 쳤지.

 불리울리, 너는 아직도 미시시피에 사니?

 물장구 속에서 울리불리가 물었다.

-버즈 앨드린

 링고 스타

 그날 아침엔 링고 스타가 찾아왔다. 떠날 채비를 마치고,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끝낸 후 로비로 나왔는데 링고 스타가 서 있었다. 링고 스타가 서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링고 스타가 서 있는데 그냥 지나치는 건 더 이상한 일이란 생각이 들어, 이렇게 물어보았다. 혹시 당신 링고 스타가 아닌가요?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던 링고가 열 손가락에 낀 스물두 개의 반지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빙고! 내가 링고야. 자네들이 오늘 외출할 친구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링고가 손을 내밀었다. 내가 잡은 왼손엔 열세 개의 반지가, 듀란이 잡은 오른손엔 아홉 개의 반지가 빛나는 위성처럼 손가락의 상공에 두둥실 떠 있었다. 그는 슈퍼스타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구레나룻과, 슈퍼스타이기에는 조금 작은 키의 소유자였다. 링고가 개복치 여관과 <외출>의 후견인이란 사실을 안 것은 곧이어 나타난 아담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우리는 함께, 식당에 딸린 카페테리아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우주여행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듀란은 폴 스미스라는-나이아가라를 무착륙 횡단한 최초의 닭에 대해 얘기했고, 아담은 뉴올리언스의 경매시장에서 낙찰받은 역회전 회중시계를 자랑했으며, 나는 한국의 기생충약 광고에 대한 잡담을, 링고는 단파 라디오의 매력에 대한 칭송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차를 마셨다.

 문득 집과 상, 각, 치, 우가 떠올랐다. 이렇듯 지구의 반대편에서 잠만 자고 차나 마시다가 우주로 나간다, 라는 생각을 할수록 가슴 한켠이 아련해지는 것이었다. 나이아가라를 횡단한 닭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나이아가라를 횡단하지 못한 닭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집어든 각설탕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상념에 빠져들었다. 각이 진 고대(古代)의 지구가-말없이 손끝에서 자전하고 있었다.

 불안하십니까? 아담이 물었다. 나는 말없이, 각설탕을 찻잔 속에 집어넣었다. 빙고! 링고가 소리쳤다. 오래 전의 지구는 서서히 둥글어져, 이윽고 녹아 사라져버렸다. 폴 스미스가 고개를 돌렸을 때, 나이아가라는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건너온 세계는 반드시 사라진다. 불리울리, 너는 아직도 나이아가라에 사니? 물장구 속에서 울리불리가 물었지.

 개복치는 한 번에 3억 개 정도의 알을 낳습니다. 그중 성어(成魚)가 되는 것은 한두 마리에 불과하죠. 인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나를 바라보는 아담의 얼굴을 나는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이유로, 당신의 외출이 성과가 없다 하더라도 저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잔잔한 표정 속에 깃들어 있었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아주 잠깐, 옆집에 살던 불리울리에 대해 생각했을 뿐입니다. 빙고! 링고가 다시 소리쳤다.

 우리는 나란히 승강장으로 걸어갔다. 막연히 고무동력기와 같은 성질의 어떤 기체를 상상했는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한 대의 그레이하운드가 주차되어 있었다. 고무동력기가 아니었나요? 고무동력기가  아니지. 슈퍼스타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미소를 지은 채, 링고가 얘기했다. 명심하세요. 버스를 궤도까지 올리는 건 이곳의 잭과 호, 두 사람입니다. 이들의 의식이 버스를 쏘아올리는 것입니다. 부디 운전은 그때부터 시작하세요. 차체가 안정되면 운전은 아주 손쉬울 것입니다. 요령은 무엇보다 <상식>입니다. 핸들의 조작, 그뿐이니까요. 어떻습니까? 아담이 물었다. 무엇보다, 라는 듀란이 입을 열었다. 노란색이 참 마음에 듭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이건 뭐, 버스를 타고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고모를 찾아가는 분위기였다. 버스에 오른 우리는 차창에 붙어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음악을 틀어도 될까요? 물론. 링고가 손짓으로 오디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비치된 리코더의 버튼을 누르자 물론, 비틀즈가 흘러나왔다. 링고의 기분을 생각해 나는 한껏 볼륨을 울려주었다. 이봐, 자넨 꼭 돌아와야 해. 링고가 소리쳤다. 왜요? 아까 보니 자넨 슈퍼스타가 되기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앉은키를 가지고 있더군. 그렇습니까? 그럼 그럼. 참 돌아올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운전석 옆의 사물함을 열면 작은 버섯이 보일 겁니다. 그걸 드세요. 카운트를 하다 말고, 아담이 소리쳤다.

 분위기에 힘입어 왠지 우주에 나가면 고모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곧 마음을 가라앉혔다. 승강장의 양 귀퉁이에서 각각 잭과 호가 가부좌를 튼 채 명상에 잠겨 있었다. 반바지 차림으로 앉아, 우리는 눈을 감았다. 감각과 상식을 지닌 손이, 더듬어 벨트를 매고 차창을 닫았다. 버스의 등받이는 우주의 품처럼 깊고 푹신했고, 무덤에서 돌아온 맥킨지 신부가 손에 묻은 더러운 걸 닦아낼 즈음. 서서히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구원되지 않았어요. 저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저 외로운 사람들은 모두 어디서 살까요?(비틀즈의 노래 <엘리너 릭비>의 후렴구 가사) 버스는 날아올랐다.

 운항은 순조롭습니까? 스피커를 통해 아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조롭습니다. 핸들에 손을 얹은 채, 듀란이 얘기했다. 시속 20노트의 물옥잠이 된 기분이었다. 빙고! 링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교신은 곧 끊어질지도 모릅니다. 지구가 보입니까? 지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서서히, 절대 서둘러선 안 됩니다. 지구에서의 방향감각은 무의미하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구요. 아담의 말처럼, 교신은 곧 두절되었다. 교신의 마지막은-링고의 반바지 입어서 춥지 않어? 였다.

 여섯 시간 정도를 운항했지만, 지구는 보이지 않았다. 차츰, 우리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자칫 엉뚱한 곳으로 흘러온 게 아닐까? 삼각지대에서 사라진 플랑크톤과, 크릴과, 고기압 들이 일제히 머릿속으로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생각했다. 그리고, 존재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달의 뒤편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랬군, 옆집의 울리불리였군. 절로 함성이 터져나왔다. 불리울리, 이제야 그걸 알았니? 물장구 속에서 울리불 리가 속삭였다. 달의 지표를 따라, 듀란은 핸들을 고정시켰다.

 일정한 궤도를, 직선으로 한 시간 정도 갔을 때였다. 서서히, 달의 지표가 환해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 느낌은 아주 생소한 것이었다. 우주에서 보면, 우리가 알던 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다. 어두운 면의 달도, 밝은 면의 달도-실은 지극히 생소한 존재였음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나이아가라였다니! 끝끝내 홰를 치는 폴 스미스처럼,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언뜻 폭포 건너편의 거대한 암석 같은 것이 우리의 눈앞에 펄쳐졌다.

 지구다.

 누구의 입에선가, 탄성이 흘러나왔다. 지구는 전혀 둥글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납작했다. 아아, 내 생각이 옳았어. 듀란이 소리쳤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평평한 것만은 절대 아니었다. 그것은 뭔가 복잡한 느낌의 납작함이었다. 현재의 위치에선 길고 긴 측면밖에 볼 수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말없이 운항을 계속했다. 두근두근. 우리가 탄-시속 20노트의, 물옥잠의 부레가 부풀어올랐다. 그럴수록 지구는 몸을 뒤척여, 생소하고 난감한 자신의 평면(平面)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한 마리의 거대한 개복치였다.

 아아, 그 순간 거대하게 끔벅이던 개복치의, 아니 지구의 눈이 우리와 마주쳤다. 지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머나먼, 이를테면 오스트레일리아나 남극을 훨씬 지났을 지구의 하복부에서, 거대한 빛이 터져나왔다. 빛은, 잠시 우주의 어둠을 눈부시게 물들이더니, 무수한 갈래의 유성처럼 지구의 표면을 향해 쏟아져내렸다. 산란(産卵)이다! 듀란이 소리쳤다. 축복처럼 쏟아지는 3억 개의 알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를 긍휼히 여길 수 있었다. 나오미 캠벨도 저 속에 있겠지? 듀란이 속삭였다. 그 나오미 캠벨? 그, 나오미 캠벨.

 이제 핸들을 돌릴 때군.

 어렴풋이, 우리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문학동네 2004 겨울호)

[마리앙뚜와넷뜨]

와우~ !!

9호 구름 ...
지구를 떠나 9호 구름을 만났군요~
오우케이~ 여기 까지 ...ㅋㅋ

개복치여관은 낼~~

[마리앙뚜와넷뜨]

외출을 꿈꾸는 주인공 ...
나도
소소하고 자질구래한...심지어 지긋지긋하기 까지한 일상을 탈출하고자 하지만...
그 이유가 시답잖다
주인공처럼 듀란처럼....

[마리앙뚜와넷뜨]

지긋지긋한 일상의 소중함.....
일탈... 외출 ...여행을 해본 사람만이 알게되는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