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극복하는 비결(고린도전서 10:12~13)
한참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시험에 부딪힙니다. 시험이 문제입니다. 궁금해서 아동부 부장에게 묻습니다. “요즈음 아동부 예배시간에 이 선생님이 왜 안 보입니까?” “시험 들었다네요.” 궁금해서 구역장에게 묻습니다. “요즈음 박 집사님은 왜 주일을 안 지킵니까?” “시험에 빠졌다네요.” 시험 드니 교회까지 떠나는 교인이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교인도 있습니다. “하나님! 시험이 없게 해주세요. 제발 시험을 만나지 않게 해주세요.” 이 기도가 맞는 기도입니까? 보십시오. 그렇게 살기 좋은 에덴동산에도 시험, 유혹이 있었는데 이렇게 타락하고 패역하며 유혹이 거미줄처럼 얽혀져 있는 세상에 어떻게 시험이 없겠습니까? 시험에 대해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만나는 시험마다 극복하게 해주세요,” 이 기도가 정직한 기도 아니겠습니까?
알고 보면, 이 넓은 우주는 일대 시험장이요, 여러분과 나는 수험생이요, 하나님은 채점관이십니다.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고 살아도 거기에 시험은 있습니다. 우리는 수험표를 달고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보시고 채점을 메기고 계십니다. “네가 언제 적 집사요, 권사인데 이걸 하나 못 참느냐? 어떤 때는 참 잘 참고 이겨냈다. 내가 다 봤느니라.” 하십니다.
첫째. 시험이란?
1. 시련(試鍊)이란 뜻
시험(試驗)을 영어로 Test라 하고, 헬라어로는 도키마조(δοκιμάζω)라고 합니다. 시련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시련을 겪게 합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연단시키고 훈련하기 위함입니다. 더 귀하게 쓰시려고, 이전에 알지 못한 은혜와 복을 받게 하시려고 시련을 겪게 하십니다.
알고 보면 시련은 건축 공사할 때 기초공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건물은 6개월이면 기초공사가 끝나는데, 여의도 63빌딩이나 잠실 123층 555m 롯데월드타워를 건축할 때 기초공사만 3년 이상 걸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기초공사 위에 수도 서울에 명물 빌딩이 들어섰습니다.
목사님들을 보십시오. 서울. 영락교회 고 한경직 목사님은 미국 유학 가서 프린스턴신학교 다니면서 학비 마련하다가 폐병이 들었고, 서울. 충현교회 고 김창인 목사님은 중학교 3학년 때 폐병이 들었습니다. 시련 아닙니까? 안산제일교회 원로목사로 은퇴하신 고훈 목사님은 스무 살 때 폐결핵이 재발했고, 55세 때 말기 위암, 췌장암, 십이지장암, 임파선암으로 거듭거듭 형용할 수 없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 시련을 다 이기고 큰 목회를 하지 않았습니까? 알고 보면 시련은 건축할 때 기초공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알고 보면 시련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학생은 학교에서 반복되는 시험을 통해서 실력이 늘고 상급학교에 진학합니다. 잊지 맙시다. 시련으로서의 시험은 이겨내면 이겨낼수록 나에게 유익합니다. 그런데도 가끔 시련을 못 이기고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알고 보면 시련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2. 유혹(誘惑)이란 뜻
유혹을 영어로 Temptation이라 하고, 헬라어로는 페이라조(πειράζω)라고 합니다. 찔러본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가 유혹합니까? 유혹은 요사스러운 귀신인 마귀(魔鬼)가 합니다. 왜 마귀가 유혹합니까?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 기도, 순종과 충성, 헌신을 못 하게 하려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교회와 주님, 천국과 멀어지게 하여 결국, 타락(墮落)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 기도하신 후에 시험을 받았습니다(마 4:1~2). 예수님이 받은 시험은 시련을 당한 것입니까? 유혹을 받은 것입니까?
또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는 시련을 당하지 않게 해 달라는 말입니까? 유혹에, 꾀임에 넘어가지 않게 해 달라는 말입니까?
어떤 때는 인간 편에서 내가 당한 시험이 시련인지? 유혹인지? 구별하기 모호할 때도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마귀의 유혹을 받아 유혹으로 끝났습니다. 아라비아 우스 땅의 욥은 마귀의 유혹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시련으로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시련은 이겨내야 하고 마귀의 유혹, 꾀임은 꼭 물리쳐야 합니다.
둘째. 시험을 극복하는 비결
시험은 어디로부터 옵니까? 시험은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시험을 극복하는 비결 몇 가지를 제시하겠습니다.
1. 자기 자신으로부터
(1) 모세는 혈기(血氣) 부리다가
모세는 나이 40에 확 끓어 오르던 혈기가 나이 80이 되었는데도 그 혈기 부리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했습니다. 반석에 말로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민 20:8) 했는데, 대드는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급한 성질을 못 가라앉히고 므리바 반석을 혈기를 부리면서 두 번 내리쳤습니다(민 20:11). 모세는 결국, 꿈에도 그리워하던 가나안 땅을 내려다보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요르단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죽었습니다(신 34:1~8). 모세는 나이 80인데도 성질머리 못 이겨 혈기 부리다가 시험에 들었습니다.
(2) 아간과 게하시, 가롯유다는 돈에 너무 집착(執着)하여 욕심(慾心)부리다가
돈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간은 여리고 성 무너질 때 외투 한 벌, 은 200 세겔, 금 50 세겔을 몰래 훔쳐 장작 밑에 숨겼다가, 아골 골짜기에서 훔친 것과 아들딸, 짐승과 함께 돌에 맞아 불에 타 죽었습니다(수 7:16~26).
선지자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를 보십시오. 고국으로 돌아가는 나아만을 뒤따라가 은 두 달란트, 옷 두 벌을 받아 집에 감췄다가 나병(癩病), 한센(Hansen)병, 문둥병이 들고 말았습니다(왕하 1~27). 가롯유다는 은 30에 눈이 멀어 믿음과 신의를 저버리고 메시야까지 팔아먹고, 목매달았다가 떨어져 창자가 곤두박질해 배가 터져 창자가 밖으로 흘러나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행 1:18).
아간과 게하시, 가롯유다는 돈에 너무 집착(執着)하여 욕심(慾心)부리다가 시험에 들었습니다.
(3) 데마는 세상 너무 좋아하다가
양이 양을 좋아하고 목자, 목장을 좋아하고 따라야 하는데, 양이 염소 좋아하고 가까이하다 보면 염소 뿔에 받혀 상처밖에 뭘 더 받겠습니까?
데마를 보십시오. 사도 바울과 동역자로 나섰습니다. 때로는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고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복음 전파에 너무 지치고 힘들어지자 자꾸 뒤를 돌아보다가 결국, 바울을 배신하고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데마는 타락하여 승려가 되었다고 합니다. 데마는 세상 너무 좋아하다가 시험에 들었습니다.
(4) 베드로는 자신만 너무 믿고 큰소리 치다가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분명하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 26:38, 41)고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대답은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 꼭 기도해야 합니까? 부흥회 때 꼭 은혜받아야 합니까? 그렇게 기도 안 해도, 은혜 안 받아도, 예수님 잘 믿을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만 믿고 큰소리친 것입니다.
그러다가 베드로는 맹세하고 저주까지 해가면서 법정이나 황제 앞이 아니라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는 시험에 빠졌습니다(마 26:69~74). 선임 제자가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자기 자신만 믿는 과신을 부린단 말입니까? 베드로는 자신만 너무 믿고 큰소리치다가 시험에 빠졌습니다.
(5)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이 당을 짓고 모세와 아론을 반역(反逆)하다가
반역이란 신의를 저버리고 등을 돌려 배반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레위 지파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이 당을 짓고 동조자 250명을 규합하여 모세와 아론을 반역했습니다. 주동자 네 명은 어떻게 됐습니까? 가족, 재물과 함께 갈라진 땅이 삼켜버렸습니다. 동조자 250명은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불살라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민 16:1~36).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은 당을 짓고 모세와 아론을 반역하다가 큰 시험에 빠졌습니다.
(6) 남보다 말이 많은 것 때문에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다 보면 꼭 부풀려 하고 없는 말도 지어내서 하기 쉽습니다. 지나온 과거에 물어보십시오. “집사님이 그랬다 매, 권사님이 그렇게 말했다면서요.”라고 따질 때 해명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할 말은 참는 것이 성도고, 성질은 있어도 부리지 않는 것이 성도며, 혈기는 있어도 내지 않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남보다 말이 많은 사람이 시험에 듭니다.
여러분! 시험이 어디서부터 옵니까? 다듬어지지 못한 나, 소양(素養)이 덜된 나, 정결하지 못한 나로부터 시험이 옵니다. 나 자신에게서 오는 시험을 극복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나 자신을 다스리고 정복해야 합니다. 시험당할 장소를 피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극복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 무장해야 합니다.
2. 내가 제일 가까이하는 사람으로부터
(1) 남편과 아내로부터
묻습니다. 아내가 제일 가까이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렇다면 아내는 누구에게 시험을 받습니까? 제일 가까이하는 남편으로부터 시험을 받습니다. 아내는 누구 때문에 맘 졸이며 맘 아파했습니까? 누구 때문에 그렇게 상처받고 울고 또 울었습니까? 아내는 제일 가까이하는 남편으로부터 시험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대답해 보십시오. 남편은 누구한테 시험을 받겠습니까? 남편은 누구 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하고 속상해하며 실망하겠습니까? 남편은 아내로부터 시험을 받습니다.
(2) 부모와 자식으로부터
부모 때문에 울고 있는 자식이 어디 한두 명이며, 자식 때문에 가슴을 치며 한숨짓고 있는 부모가 한두 명입니까? 시험은 내가 가까이하는 부모와 자식으로부터 시험을 받습니다.
(3) 허물없는 친구로부터
내가 제일 가까이하는 친구, 허물없이 툭 터놓고 사는 그 친구가 나를 돌려 세워놓고 뭘 좀 안다고 그렇게 흉보고, 욕하며, 시기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제일 가까이하는 허물없이 툭 터놓고 사는 친구로부터 시험을 받습니다.
(4) 교회 안에서 제일 오래 믿었고, 잘 믿는다는 교인으로부터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우리 교회에 출석한 지 제일 오래됐다는 생각이 듭니까? 내가 항상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로 갑질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하나님! 내가 새가족이나 타 교인에게 시험 거리, 신앙의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나 때문에 시험받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유의할 수 있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시간마다 만나고, 교회에서 제일 오래 믿었으며 잘 믿는다는 교인으로부터 시험을 받습니다.
시험을 누구한테 받습니까? 내가 제일 가까이하는 남편, 아내, 부모, 자식, 친구, 교인으로부터 받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제일 가까이하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시험을 극복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잊지 맙시다.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알고 무조건 참아야 합니다. 반문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 그 인간 만나 20년, 30년을 참고 살았는데 얼마나 더 참고 살아야 합니까?” “그래요. 20년, 30년 잘 참았습니다. 그런데도 시험이 계속된다면 내가 알지 못한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무조건 더 참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처럼 산부인과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었을 때, 자궁 입구에 발생한 자궁경부암(子宮頸部癌) 말기로 고생하고 있는 사모님을 8년째 한약(韓藥)을 달여 간호하신 박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렇다고 차도(差度)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어나서 한약을 벌컥벌컥 마시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날입니다. 정성껏 한약을 달여 방 문턱을 넘는 순간 “이 고생을 얼마나 더 시키려고 그럴까? 인제 그만 죽지.”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른 사모님은 그 한약을 받아 마시고 그 길로 돌아가셨습니다. 3일 장례를 치렀습니다. 목사님은 사모님이 8년 누워있던 자리를 바라보면서 “8년도 잘 참고 간호했는데 왜 내가 그런 생각을 했을까?”라고 하면서 후회가 된다고 흐느끼던 목사님을 잊을 수 없습니다.
3. 마귀(魔鬼)로부터
하나님은 마귀를 창조하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도우라고 지은 천사(天使)가 하나님의 보좌에서 하나님을 끌어내고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려다가 하나님께 저주(咀呪)를 받아 땅으로 떨어진 게 마귀라고 해설합니다. 그래서 마귀가 하는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일을 합니다. 그렇다면 마귀는 어떤 사람을 훼방합니까?
(1) 신앙생활을 시작하려고 이제 막 등록(登錄)한 자
새가족으로 등록한 교인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면담을 하는 데 눈물을 흘리면서 감격했습니다. “목사님! 교회 나오니까 이렇게 좋은데 진즉 나왔어야 했는데 이제야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목사는 이렇게 반응이 좋은 새가족을 만나면 기대가 됩니다.
등록 심방을 약속하고 화요일 새가족 심방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인사도 하지 않고 겸연쩍어하면서 “목사님! 저는 아무래도 교회를 못 나갈 것 같습니다. 들어오시려고 하지 말고 그냥 돌아가세요.”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담임 목사 심방 받기 전에 마귀 심방을 먼저 받았습니다.
등록한 주일 오후에 “수십 년간 절간에 잘 다니더니 무엇 때문에 교회를 나가려고 하느냐? 아무개도 예수 믿고 잘 못 됐고, 아무개도 예수 믿고 잘 못 됐는데 왜 교회를 나가려고 하느냐?”라고 유혹하는 이웃이 담임 목사보다 먼저 심방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이 말을 듣고 결심이 흔들린 것입니다. 마귀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려고 이제 막 등록한 자를 유혹합니다.
(2) 모처럼 은혜받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려는 자
부흥회가 열려 모처럼 은혜받으려고 하면 그렇게 마귀가 방해하며 유혹합니다. 은혜 못 받게 하려고 말입니다. 모처럼 은혜를 받아도 받은 은혜를 쏟게 하려고 마귀가 유혹합니다. 모처럼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꼴을 못 보고 마귀가 유혹합니다. “네가 뭔데 교회 가서 사는냐? 아무개는 교회 설립자인데도 그렇게 열심히 안 하더라.”라고 하면서 유혹합니다. 마귀는 모처럼 은혜받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려는 자를 유혹합니다.
(3) 불평불만이 많은 자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못마땅하게 여기고 매사에 불만을 품고 불평하면 마귀는 자기 밥으로 알고 역사합니다. 교회 안에서 무슨 불평불만이 그렇게 많습니까?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는 것도 병입니다. 마귀는 불평불만이 많은 자를 유혹합니다.
(4) 신앙생활에 졸고 있는 자
깨어 있지 못하고 신앙생활에 졸고 있으면 마귀는 참 좋아합니다. 아예 푹 쉬게 유혹합니다. 이게 마귀의 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마귀는 신앙생활에 졸고 있는 자를 푹 쉬게 하려고 유혹합니다.
(5) 과거에 약점(弱點)이 많은 자
남달리 살아온 과거에 약점, 결점, 허점이 많으면 마귀가 이렇게 유혹합니다. “너는 과거에 이런 일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냐? 그래놓고 교회에서 지금 무얼 하는 거냐?”라고 합니다. 하나님도 나를 용서하고 나도 나를 용서했는데 마귀는 20년 전, 30년 전 일을 끄집어내 놓고 내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남달리 살아온 과거에 약점이 많은 자를 넘어지도록 유혹합니다.
마귀는 이렇게 유혹해서 감사, 찬송, 기도, 순종, 충성, 헌신을 못 하게 하고 교회와 주님, 천국을 떠나 타락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마귀의 유혹, 꾀임을 극복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기도와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마귀의 유혹을 대적(對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 사탄아! 떠나가라.”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아무리 마귀의 유혹이 커도 하나님의 능력이 훨씬 더 크고, 하나님은 마귀의 유혹에서 피할 길도 주시며, 마귀의 유혹과 꾀임에서 능히 이기게 합니다. “불같은 시험 많으나 겁내지 맙시다. 구주의 권능 크시니 이기고 남겠네.”
사도행전 16: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4. 때로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은 왜 시험하십니까? 무엇으로 시험하십니까? 제가 교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목회하다 보니까 하나님은 바치는 것으로 시험합니다. 한 세상 살다 보면 지갑 속에 용돈이라도 좀 넉넉할 때가 있고 지갑이 바싹 말라 시내버스 교통비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갑이 텅텅 비어있을 때 꼭 추수감사절이 돌아옵니다. 큰 절기니까 하나님께 바치기는 바쳐야 하는데, 그래도 내가 권사요, 장로요, 목사인데 얼마나 바쳐야 할까? 라고 고민할 때가 있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시험 아닙니까?
지갑이 텅텅 비어있을 때 꼭 부흥회가 돌아옵니다. 모처럼 열리는 부흥회에 감사헌금도 시간마다 바치고 싶고 강사님 식사도 한 끼니 대접하고 싶은데 얼마 바쳐야 할까? 라고 염려할 때도 있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시험 아닙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에게서 오는 시험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 생각을 뚝 떼어 드려야 합니다. 두 번째 생각은 내 생각이요, 세 번째 생각은 벌써 마귀에게 빼앗긴 생각입니다. 첫 생각을 뚝 떼어 드리고 산다면 합격입니다.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창세기 22장에서부터 복을 받기 시작합니다. 창세기 22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모리아산 제단 위에 제물로 아들 이삭을 눕혀 놓고 칼을 드는 순간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께 바치는 걸 보니까 이제야 네가 외아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줄을 알았다. 하나님께 바치는 걸 보니까 이제야 네가 하나님 경외한 줄 아노라.”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서 별별 소리를 다 해도 바치는 걸 보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몸이나 시간이나 물질이나 은사나 하나님께 바치는 걸 보면 교회를 얼마나 아끼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2:9~12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여러분! 온실에서는 기둥감으로 쓸 재목을 길러낼 수 없습니다. 기둥으로 쓰일 재목은 어디에 있습니까? 깊고 깊은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아무도 모르는 것같이 보일지라도 주인은 압니다. 가뭄이 계속돼도 말라 죽지 않고 모진 비바람에 뿌리 뽑혀 나가지도 않고 엄동설한에 얼어 죽지도 않은 나무를 주인은 알아보고 큰 집을 건축하는데 큰 기둥감으로 쓰는 것입니다.
한번은 충청북도 제천에서 부흥회를 마치고 동해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갑자기 눈이 많이 내렸는데 기차표를 예약하지 못해 직행버스를 타고 대관령을 넘어올 때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내린 눈에 큰 소나무가 소나무 위에 쌓인 눈을 이기지 못해 퍽 쓰러져 있었습니다. 쓰러진 소나무는 아무리 큰 나무라도 썰어다가 화목(火木)으로밖에 쓰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쌓인 눈을 견디고 있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내가 성경 찬송가를 들고 가면 세상 사람들은 나를 보고 “저 사람이 이 교회 집사, 권사, 장로”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 말 한마디에 이리 쓰러지고 저 말 한마디에 저리 쓰러져서야 어찌 귀한 일꾼이 되겠습니까? 이 사람 만나 이렇게 원망하고 저 사람 만나 저렇게 불평해서야 어찌 큰 일꾼이 되겠습니까? 이 새벽에 만 가지 시험을 이길 하늘의 능력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8: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시편 26: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시편 66: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예레미야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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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님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김병훈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