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의
어느 날이었던가. 텔레비전에서 P세대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다. 그 동안 무슨 세대,
세대 타령을 워낙 많이 접해왔던 필자. 저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서 귀를 기울였다.
열정과 참여와 힘의 세 단어를 합쳐 P세대란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참 머리
한 번 비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렇다면 2002년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열정적으로 힘이 넘치며 그것도 모자라 잠재력까지 가지고 있단 소린데, 과연 진실로,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정말정말 그러할까?
P세대란
용어는 아마 2002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월드컵 열풍을 배경삼아 나온 말일 게다.
그 여름, 강화문 앞을 가득 메웠던 수백만의 인파를 보며 열정적이다, 힘이 넘쳐흐른다,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은 그럴싸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헌데, 여기서
딴지를 하나 걸고넘어지자면, P세대의 또 다른 모습, 그러니까 카드 빚에 쪼달려
강도짓을 한다던가, 자기 자식들을 강물에 내던진다던가, 인터넷 채팅을 통해 성매매를
한다던가하는 식의 모습들이 왜 세대규정의 포커스 안에서 벗어나 있나 하는 점이
궁금하다. 굳이 P세대는 Poor세대다(별 볼일 없는 세대)라고 규정한 한 네티즌의
비아냥을 예로 들지 않고서도, 참 이놈의 P세대란 용어가 원사이드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객관성이 없는 세대규정을 만들어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몇몇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에다 P세대를 쳐보니 동일한 출처를 가진 문서가 하나 검색됐다. <P세대의
라이프 스타일과 특성>이라는 보고서. 모든 사이트들은 이놈의 P세대란 용어가
이 보고서에서 비롯된 거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보고서를 만든
곳이 제일기획이라는 익숙한 단체라는 것이다. 제일기획이 무어냐? 누구나 다 하는
대기업 제일제당의 산하 단체가 아니냐? 한 세대를 규정한다는 건 사회적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중요한 걸 대기업에서 쿵짝쿵짝 만들어 버렸네? 나는 이게
또 모 대학의 모 사회학 교수가 만든 건줄 알았지. 뭐 물론 그놈의 제일기획이란
곳에도 나름대로 가방끈 긴 식자들이 득실거릴테지만,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다. 왜
우리들의 소중한 이름표를 너희 같이 돈버는 데 급급한 기업한테 맡겨야 할까? 아무리
시장경재에 의해 돌아가는 세상이라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아니 잠깐, 혹시
여기에는 어떤 내막이 숨겨져 있는 건 아냐? 그러니까, 이렇게 세대규정이라는 것도
잘만 이용하면 돈벌이가 되는 거 아니냔 말이지. 기업들이란 원래 돈에 죽고 돈에
사는 고철기계 같은 존재니까. 필자의 의심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무슨
세대가 어쩌구저쩌구. 매스미디어마다 세대타령을 해댔던 우리 사회의 풍조가 어디에서부터
시작했는지 한번 시간을 거슬러 생각해보기로 하자. 우선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신세대’란 단어이다. 요놈의 신세대란 단어가 일본의 ‘신인류’란 용어에서 차용됐다는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더라도, 한때 텔레비전이며 라디오며 신문 잡지를 도배하고도
모자라 식자들의 논문에까지 심심찮게 등장했던 이 신세대 신드롬을 우리는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신세대(新世代),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그냥 썰렁하게 ‘새로운
세대’라고만 나와 있는 이 단어. 그렇다면 기존 세대와는 무언가 다른 새로운 세대가
우리 사회에 등장했다는 것인데, 과연 그것이 사실일까? 시간을 쪼개어서 세대론
서적을 몇 권을 읽어보니 분명 그 신세대는 신세대가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80년대
전체를 위한 개인으로 일축됐던 사회적 분위기와 이별하고 개인을 위한 전체로 그
흐름을 이어나갔던 90년대의 새로운 바람. 소설책 한 권 보단 영화나 드라마를 선택하며,
딱딱한 정치 이야기나 사상담론 보다는 a가 b랑 사귄다더라 하는 식의 개인적 이야기에
치중하는 새로운 세대들. 그들은 분명 새로운 세대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어쩌다가 그런 신세대 담론이 기성세대들의 위기의식을 부추겼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젊은 놈들이 늙은이를 늙은이로 취급 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늙은이의
입장에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으나, 그것이 하나의 사회현상으로서 나타날
지경이 되었다는 건 분명 큰 문제일 것이다. 신세대가 아니면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식의 언론 매도. 예를 들자면, 모난 돌은 깨어지기 마련이라는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부정하고 ‘이젠 튀어야 산다.’는 식의 제목을 달고 게재된 신문기사 같은 것들.
왜? 나는 보일 듯 말 듯 묻혀 살며 자기일 묵묵히 하는 사람들이 보기 좋던데? 그러나
매정한 매스미디어들은 필자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의 입장을 깡그리 무시한
채, 꼭 튀지 않으면 이 세상 살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사회 분위기를 부추겨나갔다.
여기에 피를 본 사람들을 생각하면...... 평소 별 말도 없이 조용조용한 사람이 입사
면접에서 한 번 튀어보겠다고 되지도 않는 개인기를 펼쳐 보이는 그런 낮 뜨거운
장면을 상상해보면 쉽게 수긍할 것이다. 어, 그런데 매스미디어들은 왜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사회 분위기를 조장해 나갔지?
이런
의심을 해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신세대란 용어가 유행하는 것을 예의
주시하던 모 식품회사에서 ‘신세대 쥬스’라는 걸 만들었다고 치자. 이 신세대 쥬스를
많이 팔아먹으려면 홍보가 필요한데, 그 홍보의 최적지가 바로 신문광고라고 치자.
그래서 회사 관계자 중에 하나가 모 신문사에 연락해서 요즘은 신세대를 무시하곤
살아갈 수 없다는 식의 신문기사를 내도록 입김을 불어넣은 다음, 그 아래에다 자사의
신세대 쥬스를 큼지막하게 광고해 달라고 했다 치자. 그래서 결국 스스로를 신세대라
자처하는 A씨의 집 앞에 그 신문이 배달됐고, 그 신문을 읽어본 A씨가 나는 신세대니까
이 음료를 마셔야겠군, 하고 생각했다고 치자. 그런 식으로 모 식품회사의 신세대
쥬스가 대 히트를 기록했다고 치자. 어라, 그럼 이거 완전히 기업이랑 매스미디어랑
짜고 치는 고스돕이 아닌가? 물론 극단적으로 예를 들었지만, 이는 우리 사회에 울려
퍼졌던 세대규정의 변주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x세대니, z,세대니,
y세대니, n세대니 끊임없이 이름만 바꿔가며 강압적인 편 가르기를 자행해 왔던 이
모든 언론 플레이가 사실 모기업의 무슨무슨 상품과 연관되어 있다는 건 공공연히
드러난 사실이다. 신세대 하면 데미 소다 오렌지가 생각나고, x세대 하면 트윈 엑스라는
남성 화장품이 생각난다. 뭐 물론 기업측에서 상품을 하나 만들어놓고 이번엔 알파벳
몇 번째 글자를 따다가 새로운 세대규정을 해봅시다, 하는 식으로 회의를 했겠냐만은,
요 세대규정의 다른 한 편엔 뭔가 수상쩍은 구석이 없지가 않은 것만은 확실할 것이다.
손맛
좀 본 사람이 낚싯대를 드리운다고, 세대규정도 습관이 되다보니 이젠 여기서도 무슨
세대, 저기서도 무슨 세대, 앞뒤 구분 없이 무조건 세대 타령이다. 세대규정이란
것도 한편으로 따지고 보면 편 가르기인데, 남녀로 구분 짓고, 남북한으로 구분 짓고,
경상도 전라도로 구분 짓고는 것도 모자라 이젠 이 세대를 이끌어나갈 젊은 세대를
놓고 죽자 살자 난도질을 해대는 꼴에 이젠 정말 신물이 난다. 우리가 왜 인터넷
좀 한다고 해서 N세대가 되어야 하고, 80년대에 대학생활 좀 했다고 해서 386세대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잘라놓은 세대에 속한다는 자격증으로 ‘신세대 쥬스’
같은 걸 사 마셔야 하는가? 이건 분명 문제가 있다. 우리에겐 우리가 알아서 마음대로
상품을 선택한 권리가 있다. 이런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 생각하면 정말이지 분통이
터진다. 얼마 전에 모 라면회사에서 가칭 ‘P세대 라면’이란 걸 만들어놓고, 이
라면의 정식 명칭을 공모하는 걸 보며 짜증이 났던 적이 있다. <P세대 라면 이☆름은
지어진다 대축제, 힘과 열정의 참여세대 라면>, 아니 세상에, 그럼 이 라면을
사서 먹으면 힘과 열정의 참여세대인가? 정말 이런 식으로 라면 하나 사는데 까지
세대론적 고찰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난 정말 먹고 사는
데도 피곤한 사람이라구.
막말이지,
우리가 정말 P세대라면, 우리 사회의 앞날은 아무런 걱정 없이 창창해야만 한다.
힘과 열정의 참여세대가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간다는데, 그 앞을 가로막을 자가
누가 있을까?
허나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2004년 우리사회의 모습은 그야말로 개판이다. P세대의 힘이
한몫했다는 노무현 정권도 끊임없이 욕을 얻어먹고 있으며, 파병동의안 처리, FTA자유무역협정
같은 중대한 문제도 대다수의 젊은 층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월드컵 때의
그 뜨거웠던 열기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각각의 사항들의 yes, no를 따지기
전에, 강화문을 가득 매웠던 그 뜨거운 참여의식으로 국회의사당을 향해 소리 높여
외쳤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인데. 당신들은 자랑스러운 P세대입니다, 하는
식의 꿀 발린 소리에 가슴 뿌듯해하기 전에, 자신이 P세대란 용어에 어울리기나 하는지
개인적인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첫댓글 혹시......이게 그 문제의. 널 고민에 빠뜨린 그 논술문? ㅎㅎㅎㅎㅎ
왜.....벗고 있을까. 달파님은. 춥겠당. ㅎㅎㅎ
괜찮은데...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