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독일의 광기를 만든 사람은 히틀러임과 동시에 독일의 광기가 히틀러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미국의 정신 분석가 월터 C. 랑거라는 사람이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직전인 1944년 초에 작성한 미국 OSS 극비 보고서 『히틀러의 정신 분석』에 나오는 말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다음과 같은 질문도 성립이 가능할 것이다. "1980년 5월의 광기는 무엇보다 전두환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우리들 모두가 지닌 광기가 아니었던가?" 마치 이에 대한 힌트와도 같은 히틀러의 '명언'. "위대한 웅변가는 청중들 대다수가 은밀히 생각하고는 있지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전두환은 그 때 우리들 대다수가 '은밀히' 기대하고 원하는 것을 단지 대신해서 수향하였을 뿐인가?
권력은 지지하는 군중이 존재함으로써 성립하고 보존된다. 권력 없는 군중은 현실에서 있어 본적이 없지만, 군중 없는 권력은 가설로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극히 자명한 이 사실은 왜 1980년 5월 광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서는 적용되지 않는가? "우리 모두가 전두환이고 노태우다"라는 말은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거짓된 권력의 부역자였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전두환을 지지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만 두려웠을 뿐이다. 그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1980년 당시 민주화 역량이 전체 국민을 설득하여 야만을 막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또한 틀린 설명이 아니다. 1980년 '서울의 봄'으로 기억되는 그 숱한 민주화를 위한 노력은 우리가 역사의 반역에 대해 단지 침묵하거나 방관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수있다. 그러나 한 사회의 변화를 대립하는 집단 사이의 현실적 역관계로 이해하는 이러한 설명은 언제나 그렇듯이 역사의 일면만을 밝혀줄 뿐이다.
개인 대 개인의 싸움에서도 한 사람이 완벽하게 패하는 경우는 힘이 모자란다는 사실과 내면적 굴복이 동시에 작용할 때다. 상대방의 압도적 힘에 쓰러질 때에도 내면적으로 굴복하지 않을 경우 패자는 사뭇 다른 태도를 나타내 보일 수 있다. 역사적 불의에 맞닥뜨린 개인과 집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현실적 역량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도덕적 태도와 내면적 자세 역시 그 못지 않게 중요한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다. 1980년 5월의 야만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였는가?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회군(回軍)'에 대한 평가는 전술적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1980년 '서울의 봄'의 민주화 열기는 왜 1980년 5월의 야만 앞에서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못했는가? 현실적 역관계에 대한 설명만으로 우리는 그 때 광주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의 철저함 침묵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신군부의 물리력과 잔임함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만으로 우리의 방관을 충분히 변명할 수 있을까? 차라리 우리의 양심과 도덕은 야만을 용인했다고 말하는 편이 옳지 않을까?
아직 우리는 단 한번도 이 사실에 대해서 집단적 참회의 경험을 가져보지 못했다. 지난 20년 동안 망월동으로 향했던 순례의 행진과 그 동안 계속되어 온 5월의 기념행사들 속에서 죽어간 영령들에 대한 살아 남은 자들의 부끄러움은 수도 없이 고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집단적 참회란 그러한 고백 행위만이 아니라 성찰의 작업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1980년 5월 우리 모두를 짓눌렀던 광기의 실체를 정직하게, 전면적으로 대면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그날 광주를 짓밟고 우리의 양심을 마비시켰던 광기의 진정한 실체는 무엇인가? 1980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왜 어이 없이 그 광기에 굴복하였는가? 그 광기는 전두환만의 것이었는가? 아니면 그것은 우리 모두 내면에 깊이 자리잡고 있던 반(反) 이성의 다른 이름인가?
내가 믿기로 1980년 5월에 보여진 광기의 실체는 국가 폭력이다. 그것은 특정 정치 군인의 범죄행위가 아니라 국가의 범죄행위이다. 당시 신군부는 공식적으로 집권한 것은 아니었지만, 국가 권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국가'였다. 국가를 자임한 이 권력이 국가 보위라는 명목으로 인간을 학살한 것이다.
국가는 추상적이고 권력은 구체적이다. 권력은 추상적 주체인 국가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시킨다. 이것이 바로 국가주의다. 국가주의란 국가의 정당성을 움직일 수 없는 진리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이념이다. 1980년 5월 전두환의 폭력을 묵인하였다는 것은 우리가 그의 권력을 국가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전두환의 광주학살은 전세계의 양식있는 이들을 세 번 놀라게 했다고 한다. 첫째는 우선 그 폭력이 가진 절대적 야만성 때문이었다. 1980년 5월 이후 자기 나라에 방영된 특집 방송을 통해 광주를 접한 독일인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히틀러가 잔인하였지만 제 동족을 한꺼번에 무자비하게 죽이지는 않았다. " 그러나 제 동족을 상대로 한 학살행위는 '킬링필드'를 포함하여 제3세계 독재 국가에서 드물지 않게 자행된 것이라는 점에서 광주 학살은 우선 야만의 전형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반응은 자못 다르다. 그것은 광주 학살 이후의 전두환에 대한 한국 국민의 지지였다. 전두환은 광주학살 이후 어떻게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국민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을까? 세 번째 반응은 간단한 것이다. 그것은 광주에서 보여 준 한국 군부의 그 무자비한 속도의 학살 행위와 사후 처리에 대한 놀라움이다.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두 번째와 세번째 반응이다. 광주 학살은 제3세계 독재 권력의 야만 행위와 분명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국가 권력이 다른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이데올로기적인 우월성과 정당성을 독점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 학살과 테러 행위는 특정 계급이나 특정 인종, 또는 명백히 적대적인 지역들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리고 폭력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허약한 명분보다는 원시적인 폭력의 위력이 두드러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광주의 경우는 달랐다. 광주는 불의에 대한 저항의 전통이 강한 도시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1980년의 상황에서 유독 광주가 학살의 대상이 되기에는 권력이 내세우는 명분이 너무 약한 것이었다. 남파 간첩의 내란 선동, 무기를 탈취한 폭도에 의한 군인 살해, 이런 것들이 명분이 되기는 했으나, 이들 역시 그토록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는 데 충분한 명분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왜 광주인가', '도대체 어떤 명분으로'라는 점보다는, 어째서 그런 취약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광주 외의 다른 지역에 강력하게 먹혀 들어가고 학살 이후에도 신군부 집단이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는가라는 점이다.
바로 이것을 이해하는 열쇠가 국가주의이다. 남과 북을 막론하고 한반도에서 국가란 엄청난 신화다. 우선 제국주의의 지배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경험은 제3세계 일반에서와 마찬가지로 (국민)국가에 선험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독재자 이승만이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국부'인 것은 우리의 의식에 권력자(집단)과 국가를 분별하는 능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1950년에 발발하여 3년간 지속된 한국전쟁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한 물리력과 전개심만큼이나 휴전 이후 남북간에 세계에서도 유례 없는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를 만들어 내고, 남과 북은 군사적 최대주의와 경제력의 우위를 통해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을 국가의 지상 목표로 설정한다.
남북한에서 반국가 행위나 반 사회주의 행위는 그것은 죄악시하는 강도가 다른 제3세계 나라의 그것과 다르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것이 주로 권력 집단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존한다면, 한반도 남북에서의 그것은 거의 전국민적 지지에 근거해 있다. 그것에 근거해 국가는 반국가적 행위를 한 인간에게서 인간성 자체를 박탈할 권리를 지니며, 국민들은 그가 감옥에서 온갖 비인간적 처우를 받으며 40년 이상을 갇혀 있거나 혹은 폭력에 의해 죽음에 이른다 해도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우리의 내면은 이렇듯 오래전부터 국가주의의 강력한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광주 학살이 그토록 무자비한 야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침묵시키고 야만의 권력이 국민적 지지를 그렇게 광범위하게 받을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러면 이제 한 가지 문제가 남았다. 전두환 신군부의 그 무자비한 속도의 학살 행위와 사후 처리! 이 문제는 바로 한국에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어째서 군부 독재(군사적 권위주의의 체제라고도 부르는)가 가능했으며, 우리 국민의 대부분이 그것에 지지를 보내왔는가 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12·12 군부 내 쿠데타에서 1980년 8월 17일 대통령에 취임하기까지 전두환은 어떻게 그 짧은 시간 안에 권력의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까? 나는 한국의 국가주의는 반공주의와 근대화주의와 속도주의의 결합체라고 생각한다. 전두환에 앞서 박정희가 18년간이나 절대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군부와 중앙정보부 등 통치 수단을 통해 국가 권력의 상층부에서부터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를 장악하고 매수하는 데 성공한 것에 따르지만, 무엇보다 그의 권력은 그가 내세운 근대화 시나리오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미국과 일본을 모델로 그들이 1백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이룩한 근대화를 자신의 자연적 수명의 마감 이전까지 단기간에 이루겠다는 맹목적인 확신. 그가 죽은 이후에도 우리 안에 엄연히 존재하는 그의 신화란 다름 아닌 속도의 신화이다. 한국 민중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면서 인간 생명에 내재된 활동력을 그것이 소진될 때까지 압착하여 계속해서 밀어붙이는 방식의 맹목적인 속도의 근대화, 우리 국민은 그것에 열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광적인 속도 숭배는 우리에게서 인간다움을 위한 자기 반성의 가능성을 박탈했다. 교육을 통해서는 자기 성찰의 능력이 없는 수신(受信) 형의 인간만이 양산될 뿐이었다. 무자비한 속도의 광주 학살과 사후 처리. 신속한 권력의 장악. 전두환과 신군부야말로 속도 숭배의 사회에서 국가 권력을 담당하기에 가장 적합한 집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전두환의 야만을 용인했다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닌지 모른다. 우리에게 조국 근대화를 약속했던 박정희가 죽고 난 빈 자리. 우리 대다수는 그가 우리에게 약속했던 낙원을 대신 실현시켜 줄 과단성 있는 권력을 고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김대중은 위험하고, 김영삼은 무능하고, 김종필은 부패에 관계되어 있다"는 미국 외교관들과 한국 군부의 평가는 어쩌면 당시 국민 대다수의 생각과 동일한 것은 아니었는지?
국가주의의 주술은 생각보다 무섭고 놀라운 것이다. 그것은 우선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켜 반(反
) 이성으로 이끌며 인간이 지닌 영혼의 가장 중요한 능력인 연민을 앗아간다. 만일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의식을 분리시켜내지 않는 한, 우리는 잠수정을 타고 온 북한 젊은이들을 우리의 군인들이 무자비하게 죽이는 광경 앞에서도 영혼의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국가가 인간성을 인정하지 않은 그들은 인간이 아닌 무장공비였을 뿐이니까. 우리는 따이한에 의해 학살된 베트남 양민에 대해서도 미안해야 할의무가 없다. 따이한은 국가의 명령에 따라 자유 수호를 위해서 임산부의 배에 대검을 찌르고 어린아이의 머리에 총알을 박은 것 뿐이니까. 모든 것은 국가가 한 것이고, 우리는 그저 국가를 대신해서 행동했을 뿐이다.
광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광주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자신들을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당시 계엄군이던 공수부대 병사들이 한결같이 했던 말이 있다. "우리는 군인들이다.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다." 그 중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다시 그곳에 가게 된다면? 내가 군인인 한 명령에 따라 똑같이 행동하지 않겠는가?"
'도구적 인간'? 한나 아렌트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 가운데 여기서 우리가 되새겨 보아야 하 것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열린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본 그는 아이히만이 유태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결코 그의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직무를 수행하는 '사유하지 않음'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 점에 있어선 이근안도 마찬가지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인 공수부대원들과 동일하게, 그 역시 국가가 시키는 대로 사람의 관절을 뽑고 물에 젖은 몸에 강약을 바꾸어 가며 전류를 갖다 댔다. 그의 포악해 보이는 얼굴은 사실 그가 지닌 '평범성'에 비하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오랜 도피 생활 중 대부분을 가족과 함께 보냈고, 마치 고행하는 은둔 수도자처럼 성서를 읽고 30여 권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내가 진정으로 궁금한 것은 그가 어떻게 그 긴 시간동안 멀쩡한 정신으로 자신을 고문한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잊고 지낼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며, 그런 그를 그의 가족은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였을까 하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 그의 가족이 그를 구박하거나 내쫓으려 했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다. 국가주의를 지탱해 주는 기본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주의)이다. 가족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서라는 동인이 없다면 개인은 국가주의에 일상적으로 동원될 의지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도구적 인간의 정신적 갈등을 해소시켜주는 곳은 바로 이 '무도덕적 가족주의'이다. 궁금하지 않은가? 우리의 가족은 아버지와 장남의 범죄나 불륜을 곧잘 용서해도, 어머니와 딸이 저지른 사소한 잘못은 쉽게 용서하지 않는다. 국가와 통하는 가족의 창구는 가능한 단일한 것이 바람직하다는데서 굳어진 관습이다. 국가주의는 모든 가정을 평범하게 만든다.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를 가정에 돌아가 씻는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악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주의)라는 현대의 신(神)의 섭리이다. 그런데 이 섭리는 국가와 자신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사람에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1980년 5월 계엄군에 맞서 싸우던 광주 시민군들의 차량에 휘날리던 태극기를 생각해 보라. 그들은 자신을 총과 탱크로 짓밟으려는 국가 권력에 태극기를 휘날리며 애국가와 「진짜 사나이」를 부르면서 저항하려 했다. 1985년 5월 광주 학살을 방조·지원한 미국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서울 미국 문화원을 점거했던 '삼민투'학생들의 가슴에 붙어 있던 커다란 태극기를 상기해 보라. 그들은 미국에 저항할 만큼 의식 수준이 높았지만, 정작 자신의 가슴에 단 태극기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기호요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우리가 1980년대의 법정에서 '국가' 보안법에 의해 단죄 받으면서도 "대한민국 만세! 민주주의 만세!"를 외칠 때 우리는 우리의조국 대한민국이 한 번도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경험해 보지 못한 전근대적 국가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우리에게 국가는 언제까지나 목숨이라도 바쳐야 할 애정의 대상이었다. 전두환은 국가를 잠시 더럽히고 모욕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국가를 '좋은 권력'으로 대체시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혁명이라고 우리는 생각했었다.
바로 여기서 국가 사회주의의 광기에 대항했던 독일의 반나치 저항 운동과 우리의 반독재 운동의 다른 점이 드러난다. 그들은 나치의 광기를 체험하면서 근대의 경험을 통해 얻은 자유와 이성을 오직 하나의 추상적 주체인 '국가 이성' 히츨러에게 헌납하고 스스로 천박한 군중으로 전락해 갔던 자신들을 철저히 반성했고, 자율적 시민으로서 자신들의 존재를 재생시켰다. 반면 '제3제국'의 붕괴를 통해 국가신(紳)의 종말을 경험한 독일인들과는 달리, 우리에게 있어 국가주의는 지금까지 전혀 극복되지 못한 채 남아있다. 우리 중 대다수의 사람들은 광주 학살을 광주만의 문제로 여기거나, 국가 권력의 의도에 따라 광주를 타자화시킴으로써 살아 남으려했다. 그리고 야만의 권력에 대항하려 했던 소수의 사람들조차도 그것을 극복하는 길을 상층부 권력의 교체에 국한시키거나, 근본적인 혁명을 상정하는 경우에조차 그것을 국가 권력의 계급적 성격의 변화로 간주함으로써 이후 현실적 모델로 생각했던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스스로를 해체시켰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광주의 비극은 광기에 찬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된 시민학살이었다. 내가 집단적 참회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1980년 5월에 나타났던 이 야만의 실체를 직시함으로써 그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던 국가주의의 주술로부터 벗어나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된 시민적 자유와 이성을 회복하는 길을 함께 찾아 나서자는 제안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이렇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일체의 국가행위를 비판할 수 있는 자율적 시민의 확산을 통해, 지난 시기 우리 사회 운동의 구성적 무능력을 극복하고 탈권력화된 시민공동체를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는 것인가?
(문부식)
첫댓글 전두환의 폭력을 용인하는 국가주의 사회 대한민국과 시민사랑은 무엇이 다른가? 라고 질문을 바꿔봐도 괜찮을 듯 합니다.
그래서 개새끼가 말하고자 하는게 무언데?
다른글좀 그만 퍼오시고.. 본인이 하고픈 이야기를 직접 하세요.. 왜 항상 다른글을 퍼와서 빗대어 표현하는지.. 그렇게 하면 유식해 보인답니까??
개인주의가 지나치면 이기주의가 되는거 아십니까?? 당신은 지금 이기주의입니다..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네..
읽기도 힘드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ㅎㅎㅎ 다른거 있죠~ 난 전재산이 29만원도 안되는데...
전 알바해서 모은 돈이 29만원보단 많은데.. 전두환보다는 부자군요 ㅎㅎ
이글을 쓴 사람은 국가주의를 극도로 혐오하고 있군요. 그런 의견을 가진사람도 있을수 있지만 과연 국가주의는 무조건 절대악이고 자유주의는 절대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존경하는 김구, 장준하, 함석헌, 문익환, 백기완 등도 어떤 면에선 자유주의라기 보다 국가주의에 가깝거든요
아데나워, 처칠, 드골, 디즈렐리 등은 더할 나위없이 국가주의자고요. 무조건적인 국가주의의 혐오는 이들 국가주의자와 극단적 국가주의의 발현인 파시즘과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것이랑 다름 없답니다. 문익환과 박정희가 뭐가 다르냐는것 같은 우문이군요.
문부식이 이 말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김구, 장준하, 함석헌, 문익환, 백기완 등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적하고 싶었을 겝니다. 자유주의자의 눈에는, 이들이 박정희나, 전두환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는 뜻이고요,
국가주의를 극복하지 않는한, 그 존경받는 인간들은 결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없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겝니다. 저도, 그 점에 동의를 하고 있고요..
ㅎㅎ 자유주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있지 않나요? 자유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국가 매커니즘을 붕괴시키기 위해 테러도 불사하는 아나키즘이 되거든요. 그것처럼 파시즘과 온건 국가주의의 차이는 반대축에 있는 자를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어요.
온건 국가주의와 온건 자유주의는 평화로운 공존의 관계이지 상대방을 죽여야 비로서 내가 사는 그런 관계는 아니랍니다. 글구 굳이 누구랑 누구의 공통점을 찾으려 애쓰면 막스하고 프리드만의 공통점도 무지하게 나오거든요.
그 위험이야, 국가주의자 입장에서만 느끼는 위험이지요. 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위험이야 내포된 것에 불과하고, 아나키즘으로 발전해야만, 국가주의자에게 위험으로서 실재하게 되지요, 그러나 자유주의자가 국가주의로부터 느끼는 위험은 현/재/ 발생하고 있고 실존하고 있는 위험입니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자유주의가 더 위험한 겁니까? 국가주의가 더 위헙한 겁니까?
그걸 되돌려 드린다면 국가주의로부터 느끼는 위험도 자유주의자들에게만 국한된 상황이겠죠? 그것도 개새끼님처럼 극소수의 자유지상주의자에게만요. 어느게 더 위험하냐고요? 둘 다 안 위험해요. 극단으로만 치닫지 않으면요.
글구요 개새끼님은 국가주의자랑 자유주의자를 칼로 두부 썰듯이 쫙 나눌수 있는걸로 생각하는것 같은데 그거 아니거든요. 국가주의와 자유주의는 불연속선상에 있는게 아니고 Linear한 개념이거든요.
보랏빛실루엣님! 지금 현재 상태가 국가주의자들의 위험이 극단으로 치달은 상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으로만 치닫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둘다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는 건, 당신이 국가주의자이기 때문 아닐까요?
ㅎㅎㅎ 정말 할말이 없군요. 더이상 대화는 안되겠네요. 서로의 입장차를 확인한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