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토리 여행2 - 돗토리의 사구를 보고 큐쇼코엔을 거쳐 돗토리 성터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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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서부 효고현 희메지 역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달려 미야모도 무사시의 고향을
지나 1시간 반 만에.....
산음(山陰)에 해당하는 돗토리 鳥取(조취) 역에 내려 코인로까 에 배낭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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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광장의 "0 번" 정류소에서 돗토리 사구(砂丘) 로 가는 버스를 타고는 20분 가량을 달려
사큐 카이칸 砂丘會館 (사구회관) 에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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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砂丘) 는 센다이강 모래 위에 다이센 산의 화산재가 쌓이고 동해에서 불어오는해풍이
더해져 10만년에 걸쳐 만들어진 황금빛 모래 언덕인 사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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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돗토리 사구 砂丘 는 동서 16km, 남북 2.4km 에 이른다는데, 우마노세 馬の背 에 올라
동해(東海) 바닷가에 서니 만감이 교차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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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동해(東海) 라 부르는 이 바다는 100여년 전부터 현재까지 국제적으로는
공식 용어로 Japan Sea (日本海 일본해) 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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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서양인들이 동아시로 진출하기 시작한 16~ 18세기에 유럽인이 작성한 지도에는
동해, 조선해, 한국해, 동양해, 중국해, 일본해 등으로 쓰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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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 이후에 제작된 세계지도 부터는 거의 대부분이 Japan Sea (日本海 일본해) 로
통일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후 한미합동 군사훈련이 있었는 데, 중국측 항의로 서해가 아닌
동해에서 실시하면서 미국은 훈련장소를 "일본해" 로 발표했으니 이게 현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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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선시대에 고종의 조선 정부는 이 바다를 동해가 아닌“조선해”라고 불렀는데
1,895년 명성황후 시해후 경복궁을 빠져나와 아관파천을 겪고는....
1,897년에 서울 소공동에 원구단을 쌓고“대한제국”를 선포하면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서는 바다 이름을 “大韓海 대한해” 라고 바꾸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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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05년 을사조약(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뺏기니 일본측 명칭인 Japan Sea
(일본해) 만 통용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1.921년에 국제수로국 IHB 가 창설된다.
이 기구에서 “해양과 바다의 경계 Limits of Oceans and Seas ”라는 해도집을 발간하는
데 ,일본측 명칭인 “Japan Sea 일본해" 만 올라 지금에 이른 것이다!
해방이 되고서도 우리 정부의 대응은 50년동안이나 전혀 없다가 1,999년 민간에서 반크
가 결성될 무렵을 전후해서야 동해 표기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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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전부터 우리 정부는 우선“일본해(동해)” 병기를 주장하여 다른 나라의 일부
민간단체에서 그렇게 쓰는 곳도 있으나....
정부 차원에서는 미국이나 영국등이 강력하게 반대 하니..... 당분간은 공식적으로는
일본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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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북해가 없듯이 서해, 동해, 남해는 방향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라!!! 동해
(東海)는 일본에서 보면 서쪽 바다 인데, 동해(東海) 라고 부르라고 요구하기는 그렇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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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본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동해 가 있으니... 나고야에서 도쿄에 이르는 바다를
끼고 달리는 길을 도카이도(東海道 동해도) 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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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일본에서 보면 동쪽 바다도 동해, 서쪽 바다도 동해가 되는 것이니.... 고종의 조선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동해 가 아닌 조선해(대한해) 로 부른 전례도 있고 하니!!!
몇년전에 동아일보에 정부 관리가 일본해(한국해) 로 병기하는 방안을 슬쩍 흘린 기사가
났는데, 아마도 국민들의 의견을 떠보는 것일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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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에서 재외 공관을 통해 75개국 353개 지도를 수집한 결과 일본해 표기가 74.2%
에 동해 표기는 23.8% 기타 2% 인 데.....
중요한 것은 국가 공식차원에서 동해로 표기한 지도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국제
수로기구 IHO 에서 오래 전부터 일본해로 단독 표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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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HO 에서는 18차 총회를 대비해 "해양과 경계" 책자 본문에는 현재의 "일본해 단독표기"
를 그대로 유지하고.....
그 대신에 부록 에 "일본해/동해" 로 병기하는 문제를 검토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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砂丘(사구) 를 내려와 도로 건너 사구회관에서 점심을 먹고 정류소로 가니 붉은색 고풍
스러운 루프 기린시 관광버스 가 서는데 관광객들이 눈치를 보며 망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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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눌도 비쌀거라는 선입견으로 주저하는 것을 억지로 손을 잡아끌어 타고보니.....
어??? 요금은 일반 버스보다 오히려 60엔이나 싼 300엔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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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탄 이 루프 기린시 관광버스는 요금도 300엔으로 저렴할뿐더러 시내 주요 관광지
를 순회하니 여행자에게는 안성마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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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는 돗토리 시내로 들어와서는 자그만 강이 나타나더니... 이윽고 돗토리 성 이
있다는 큐소코엔 앞에 서기에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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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 이 강은 돗토리 성을 둘러싸도록 팠던 해자 인 모양이네? 하여 공원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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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큐쇼코엔 久松公園 (구송공원) 은 벚꽃과 철쭉의 명소라고 하는데 공원 안에 서양식
건물인 진푸카쿠 부터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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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푸카쿠 仁風閣 (인풍각) 은 1,907년 돗토리성의 성주인 이케다 가문의 별장으로 세워진
프랑스 르네상스 양식을 도입한 건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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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다이쇼 천황) 방문시 숙소로 사용되었다는데, 동쪽에는 에도시대 말기에 조성된
정원인 호류인 鳳龍院(봉룡원) 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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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진푸가쿠(仁風閣) 는 돗토리성의 성터 아래쪽에 지은 메이지 시대의 건축물로
영주의 영빈관 용도로 사용된 건물이라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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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의 일본엔 유럽의 문물이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는데, 우선 생각나는 것이
덕수궁 에 지은 석조전 이니 같은 류의 건물인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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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다시 돌아나와 산길을 걸어 올라 돗토리성 을 찾아가는데..... 한 때 3천개를
헤아렸다는 일본의 성들의 운명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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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무너진 것 외에도 도쿠가와 막부에서 반란을 염려해 지방의 성을 허물고 이후
메이지 유신으로 다시 성들을 해체하고 2차대전시 미군의 폭격을 맞는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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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지금 일본에는 천수각을 갖춘 성은 전국에 겨우 수십개에 불과하다는 데......
후쿠오카 성이나 다카마쓰 성처럼 여기도 천수각 은 없어져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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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돗토리조 鳥取城 (조취성) 는 전국시대인 1,545년 영주 이케다 池田(지전) 가문이
축성하여 메이지유신 까지 12대에 걸쳐 거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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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슈카쿠의 흔적과 니노마루 터를 둘러보며 옛일을 생각해 보노라니.... 이 성을 공격해
함락시킨 자는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시수길)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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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 는 오와리(나고야) 의 다이묘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로 들어가서는 북쪽 미노국
(美農國) 을 칠 때 적을 포섭하는 재주를 부려 궁지에 몰아넣어 성을 함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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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0년에는 노부나가의 매제인 오오미(교토)의 아사이 나가마사가 배후를 공격해 왔을
때 “신가리(뒤에 남는 희생 부대)”를 자임해 큰 공을 세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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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 는 마침내 장수가 되어 1581년 여기 난공불락이라 일컫는 돗토리성(鳥取城) 을
공격하면서 부하들의 희생을 줄이는 방법을 고심한다.
작전에 앞서 수개월 전에 상인들을 불러 공작을 시작했으니, 돈은 시세의 몇배를 주더라도
돗토리 주변지역의 곡물 을 모두 사들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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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값이 천정부지로 뛰자 돗토리 성 안에 있던 비축 병량 마저 히데요시가 고용한 상인
의 손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 사실을 확인한 히데요시는 병력을 이끌고 돗토리로 진군하면서 의도적으로 농민들에게
가혹행위를 자행해서 겁에질린 농민들은 돗토리 성으로 몰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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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히데요시는 돗토리성을 포위하고 주변에 작은 성과 진지를 구축한후 병사들에게
탄약과 철포, 군량미를 보급한후 공격을 전혀 하지않고 포위만 하게 한다.
그의 목적은 성으로 어떠한 보급품도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었으니 장기전으로 가서 성
안에 있는 병사와 농민들을 모두 굶겨죽일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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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된 100일 동안 성내부에서는 군마와 소가 먼저 죽었고, 사람들이 그것을 다 먹은
후에는 마침내 굶어죽은 시체인 인육 을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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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 는 막대한 전비를 쏟아 부었지만 돗토리성은 당시 히로시마 일대의 대영주인
모리(毛利)씨 수중에 있는.....
시마네현의 이와미 은광산(石見銀山) 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으니, 모리 씨는 성의
함락을 막기 위해 해상과 육로로 보급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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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유사한 예로는, 이듬해 히데요시는 모리(毛利) 씨의 명장 시미즈(淸水)가 지키고
있는 비쥬(備中 오카야마)의 다카마쓰성(高松城) 공략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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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에는 5000의 병력이 농성을 하고 있었지만 히데요시의 병력은 3만이라 장마를 앞두고
누구도 상상치도 못한 대토목공사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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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2년 5월에 철야작업을 하여 높이 11m 폭 36m 의 제방 12㎞ 를 쌓았는데, 여기에 구축
한 작은 성이 15개소, 동원 인원은 10여만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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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한 인부는 고액의 보수를 주고 일을 시켰으니 총경비는 전(錢) 63만 5040 관문에
쌀 6만 3500석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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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이 완성되고 아시모리강의 물길이 바뀌었으니 3면이 늪으로 둘러싸여 있는 다카마쓰성
은 주변이 물바다가 되니 고립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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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군이 성을 구하기 위해 왔지만 물에 갇혀 요새에는 접근도 할 수 없었으니 히데요시
는 전쟁의 개념을 종래의 전투 위주에서 시장 장악과 토목공사 로 확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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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돗토리성은 제대로 된 전투도 없이 마침내 항복하는데,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
들도 영양실조로 인해 대부분 장님 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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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내려와서는 기차역이 그리 멀지 않으니 시가지를 천천히 걷는데 타이뻬이 처럼 상가
옆 인도까지 지붕을 덮어 더위와 비를 피하도록한 것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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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가게에는 한국 식품과 잡화를 판다고 적어 놓았고.... 이어 꽃 가게와 100엔숍을
지나 몇 블록을 더 걸어 돗토리 역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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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덕분에 공부 잘했습니다 소바 맛나 보여요 ^&^
아...소바!
여름철 일본 여행은 소바가 제격이고
다른 계절에는 우동이나 라면이며 덴푸라가 좋지요!!!
그런데 여름에는 우동도 찬 것이 있더군요?
잠깐의 여유로 생각 여행 하고 갑니다
다녀 온 곳이지만 얕은 준비로 보았기에~
놓친 것이 많아요 많은 도움 됐습니다*
아... 여기 돗토리를 다녀오셨군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연을 즐겨야하는데....
우린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빠르게 다닌지라 아쉬움이 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