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을 허물다 허 열 웅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우러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꺽대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공시가격 구백만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나는 큰 고을 영주가 되었다. (공광규의 시- ‘담장을 허물다’에서 발췌)
순수한 우리말인 담은 경계를 구분 짓고 시선을 차단하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백성들이 들여다볼 수 없는 궁궐의 높은 담, 권세가나 부자들이 도둑이 두려워 쌓은 견고한 담, 서민들의 눈높이에 맞춘 낮은 담 등 다양하다. 재료나 쌓는 방법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흙을 쌓다가 중간에 가끔 돌을 넣어 단단하게 만든 게 흙담이다. 돌담은 흙으로 채우지 않고 자연석(장대석, 사괴석, 막돌)만으로 주변에서 돌을 주워 쌓았다. 공기의 흐름과 배수가 자유로워 예전에는 서민들의 대부분의 담이었다. 쉽게 무너지지 않고 오래지탱하기 위해 직선보다는 곡선으로 쌓았다. 와편담은 토담을 쌓을 때 기와를 넣어 문양을 낸 담으로, 흙담보다 내구성을 높 인 것이다. 대개 양반가의 살림집과 사찰 등에 많았다. 꽃담은 기와나 벽돌을 이용해 각종 무늬를 넣은 담으로 창덕궁 낙선재처럼 여성 공간에 설치되었으며 꽃이나 포도송이 같은 그림을 넣었다. 담 대신으로 생울타리는 편백나무나 가시가 있는 탱자나무를 심어 담장을 대신했다. 활엽수나 싸리나무를 베어다 엮어 담처럼 두른 섶울타리도 있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초가삼간은 섶울타리 한 가운데 싸리나무로 엮은 사립문이 비스듬히 항상 열려있었다. 근래엔 시멘트 블럭을 쌓아 만든 담이 많다. 전통이 깃든 토속적이고 아름다운 담장의 풍경을 통해 옛것의 정취와 또 다른 공간의 미학을 느껴보기 위해 담장을 찾아 나섰다. 옛 한말韓末의 한양 풍광을 떠올려볼 수 있는 덕수궁의 돌담길을 천천히 걸으며 은은한 한국미를 감상했다. 멀리 양반들이 많이 살았던 하회마을의 담은 사람의 키보다 훨씬 높고 견고하게 쌓아 올려 서민들과 소통하기 어려운 벽을 느끼게 했다. 반면에 담 높이가 사람의 어깨 쯤 되는 서민들이 살던 낙안읍성의 한옥마을 담이 있다. 특히 이웃집과의 담은 더 낮아 평소에 아녀자들이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나가는 길거리에서도 집안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아늑하고 정겨웠다.
사람과 사이에도 담장이 있다. 도시의 삶속에는 담장이 너무 높고 견고하여 허물기가 쉽지 않다. 단독주택도 그러하지만 회색 아파트는 바로 앞집에 살아도 소통할 수 없는 담장으로 막힌 것이나 다름없다. 이사 와서 산지가 5년이 넘었는데도 앞 집 사람들과 정겨운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했다. 이사 온 후 승강기에서 앞집 남자를 만나서 ‘안녕 하세요’하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대답은 “예”한마디 뿐이었다. 그 뒤에도 여러 번 안녕 하세요 하면서 인사를 해도 ‘예’하는 똑 같은 대답이었다. 마음이 편치 않아 경비실에 알아보니 나보다도 나이가 한참 아래다. 요즈음엔 고개만 끄떡하고 만다. 앞으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기는 요원한 것 같다. 동창회나 근무했던 직장 동우회에 가도 마음을 활짝 열고 속내를 드러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해도 옆 사람과 한 마디 말도 없고 이야기를 거는 사람을 좀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게 요즈음의 현상이다. 전철에서도 모두 핸드폰에 정신이 팔려 옆에 누가 앉아있는지도 모른다. 그리 멀지 않은 30~40년 전만 하더라도 기차나 버스에서는 옆 사람과 먹을 것도 나누어 먹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친구나 연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먼 여행도 지루하지 않고 종착역에 도착하면 아쉬움으로 헤어지곤 했다. 시골에 살 때에는 이웃동네는 물론 고개 넘어 사람들과도 정겹게 소통하며 살았다. 부부관계에서도 보이지 않는 벽은 점점 두꺼워지는 것 같다. 젊은 부부의 이혼은 물론 황혼이혼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상황은 소통의 담장을 허물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자던 약속은 이제 서로 마음 상할 때 쯤 헤어지자는 말로 바뀌어가는 것 같다. 우리부부도 신앙문제로 담을 완전히 허물지 못하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내와 불교의 진리에 관심이 있는 쭉정이 신자로 마지못해 교회에 따라다니는 나 사이에 낮은 담이다.
요즈즘엔 공공건물이나 학교의 높은 담을 허물고 나무를 심거나, 밖에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낮게 철책을 세우면 정부보조금이 지급된다고 한다. 가정집도 담장을 허물고 주차장을 만들면 보상을 해준다. 이렇듯 건물의 담장은 허물거나 낮추는데 사람과 사람사이의 담장은 높아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요즈음 가장 심각한 청년실업문제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정년연장 둥과 연결된 세대 간의 담장을 허무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인 것 같다. 담장을 허물기 위한 노력은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여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즉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본다.
누군가와 진지하게 교감하고 대화하는 순간 나를 가둔 장벽은 허물어지고 무한우주가 내 것이 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어울려야 한다. 보이는 담은 물론 보이지 않는 담도 낮추거나 허물어야 온 세상을 품고 살아갈 수 있고 그곳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은 공시가격 9백만 원짜리 시골 집 담장을 허물고 큰 고을의 영주가 되었지만, 공시가격이 한 푼도 되지 않는 마음의 담장을 허물면 이 세상의주인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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