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의 연고 지역인 광주광역시와 타이거즈 야구단을 인수하겠다는 용단을 내린 기아자동차가 최근 '말바꾸기'를 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먼저 광주시는 고재유 시장이 공언한 야구 전용 구장 신축 계획을 슬그머니 '없었던 일'로 묻어버리려 하고 있어 야구계의 빈축을 사고 있다. 해태의 인수 기업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던 지난 4월 24일 고재유 시장은 한국야구위원회(KBO)를 방문해 "오는 2003년부터 야구장 신축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라며 야구단의 광주 연고 유지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 달 말 기아차가 타이거즈 인수 의사를 밝힌 이후 광주시는 마치 '광주 연고를 유지하게 됐으니 이젠 됐다'는 듯 "야구장 신축에 필요한 최소 800억 원의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다"며 전용 구장 신축 포기 의사를 공공연하게 내비치고 있다.
결국 시장이 직접 언급한 야구장 신축 계획은 야구단 인수 기업 유치와 내년으로 예정된 지방 선거를 의식한 '공약(空約)'에 불과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광주시의 이러한 무책임한 행정에 대한 기아차의 대응 또한 지나치게 즉흥적이고 계산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몽구 현대 기아차 회장과 김익환 홍보실장 등이 고 시장을 잇달아 만난 지난 달 말 기아차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고 시장과의 만남에서 야구장 신축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며 "어차피 광주시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알기 때문에 기존 구장을 개보수해 사용할 계획"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야구장 신축 문제'가 불거진 이번 주 초 그 관계자는 "조만간 광주시에 야구장 신축 약속을 지켜줄 것을 공식 요청할 계획"이라고 뒤늦게 고압적인 자세를 보였다.
심지어 또다른 기아차 관계자는 "광주시가 야구장을 새로 안 지어 주면 연고지를 옮길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물론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서는 전용 구장 건설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기아차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앞으로 본격적인 인수 협상을 앞두고 좀더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한 '협박성 카드'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광주시는 현재 지하철 공사를 위해 도로를 파놓고도 예산 부족 때문에 작업을 중단할 정도로 어려운 재정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모를 리 없는 기아차라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구장 신축보다는 차라리 기존 구장에 대한 개보수 예산(현재 약 6억 원) 증액을 요청하는 것이 좀더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과감한 투자로 야구판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SK도 지난 해 창단 당시에는 협상의 유리함을 위해 '창단 포기 불사' 발언을 서슴지 않아 눈총을 받은 바 있다.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린 기아차는 앞으로의 인수 협상 과정에서 구태의연한 노림수를 버리고 좀더 공명정대한 태도로 신생 구단의 참신한 이미지를 지켜나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