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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고대 서사문학의 걸작인 호머의 <오디세이아> 이후 그 작품의 주인공인 율리시즈(모두 아시다시피 율리시즈와 오디세우스는 동일인물입니다. 그리스어로는 오디세우스로 부르고 로마식으로 율리시즈라고 부르는 거죠. 그리고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을 끝내고 10여년 넘게 모험과 방랑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모험담 혹은 이야기입니다)는 그 특유의 모험과 방랑, 영웅적인 성격 등으로 인하여 후일 여러 예술가, 철학자 등을 비롯한 인문학자들에게 영감과 작품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여러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이 서사적 캐릭터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기도 하고 현재까지도 어떤 개인들에게는 자신만의 율리시즈적 경험담이 내재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제임스 조이스는 <오디세이아>에서 힌트를 얻어 하루를 살짝 넘긴 시간동안 세 사람을 중심으로 있었던 에피소드를 생각나는 것을 쓴다고 하는 의식흐름기법으로 <율리시즈>를 썼고 영화 감독인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율리시즈의 시선>을 통해 그리스 고국의 최초의 필름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작품을 통해 고대에서 우주시대까지의 하드SF 서사시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또 심지어는 <우주선장 율리시즈>라는 만화도 만들어졌고 카뮈의 지인이었던 로제 그르니에는 <내가 사랑한 개, 율리시즈>라는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개 이름을 율리시즈라고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여러 작품들이나 에세이, 제목 등에서 오디세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볼 수 있습니다. 호머가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오디세이의 출발을 알리고 영감을 주긴 했지만 그 캐릭터는 어느 혼자만의 것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따릅니다. 요즘 시대에 작품을 통해서 이 캐릭터에 조금이라도 영감을 받은 것이 분명한 이를 꼽는다면 저는 홍상수 감독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그의 주된 소재는 여행가서 겪는 일들입니다. 혹은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에서 생기는 현실의 얽매임과 일상성입니다. 이렇게 보면 홍상수 감독은 어떤 면에서는 제임스 조이스와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고대의 율리시즈는 온갖 고생을 하다 결국 귀향한다는 영웅담이지만 현대적으로 올수록 제임스 조이스나 홍상수처럼 여러 여정을 겪으나 별볼일 없는 에피소드로 귀결되는, 현대인의 일상성으로 작품 경향이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사실 율리시즈라는 캐릭터는 예나 지금이나 업무나 계획된 것이 아닌 이상 여정으로서의 경험은 그 후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존재입니다. 아마 이번 광주모임이 그 반증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임 하나에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하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쓰다보니 사설이 길어져서 써 봤고 조이스는 저와 비슷한 시간의 에피소드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썼기에 저의 분량은 애교로 봐 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아래의 글은 모두가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과 기대의 단편적 모음을 기억과 엉뚱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것이니 논픽션이라는 보증은 절대로 할수 없습니다^^
4부 정도로 나누어 연재할 것 같고 전체 23장 정도 될 겁니다. 물론 확정적인 건 아닙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읽으신 분들이라면 아래 글의 형식에 푸하하 크게 웃으면서 보실수 있지만 형식적 챕터만 따온거지 실제 내용은 조이스와 별 상관이 없을 겁니다. 그럼 재밌게 읽어주시기를...
ps. 일이 바쁜 관계로 실제 작성시간은 얼마 안됩니다. 철자 등에서 오류가 보이면 언제든 지적해주세요~
[ 남도의 날(Namdo's day) - 사건과 기억과 상상 사이에서 ]
제1장 4.27(금) 13:00 월계동 율리시즈 자택
모든 시작은 사소하다. 더군다나 그것은 의식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음에 생긴 조그마한 불씨가 머리에 자리를 잡으면 그것은 기대가 되고, 상상이 되고 계획이 되어 커다란 행동이 된다. 마치 먼 우주로부터 조그마한 별똥별이 지구로 서서히 다가오면서 가속도가 붙어 큰 불꽃이 되어 지구로 돌진하듯이...
율리시즈는 성실과는 거리가 먼 채로 게으른 천성에, 온갖 것에 대한 호기심은 많아서 좋게 말하면 다양한 관심사에, 안좋게 말하면 잡식성에 가까운 취미들이 있는데, 닉네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특유의 역마살이 있어서 여행과 드라이브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고 그 중에서도 남도를 좋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혹은 여행계획을 잡을 때마다 남도를 가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지리산이 좋아 남원을 거처 가기도 했고 강이 좋아 섬진강을 따라 이동하기도 했으며 섬이 좋아 보물섬으로 불리는 남해군을 한바퀴 돌기도 했으며 일출이 좋아 여수 오동도의 향일암을 돌기도 했다. 진도, 완도, 통영, 해남을 각각의 여행일정으로 잡아 별도로 돌아볼만큼 남도와 남해안에 대한 애정은 엷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늘, 당일이든 며칠이든 돌아보면서도 지나고나면 율리시즈에겐 시간이 아쉬웠다. 마음에 생기는 시간의 부족함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남도에 평생 사는 이들에 비하면 여행이란 쏜살같이 지나가며 간신히 보게 되는 주마간산격의 경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느낌이란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에 달려 있어서 아주 짧은 시간의 첫 인상일지라도 그곳의 느낌이 오롯이 전달되는 경우가 있다. 멋진 풍경은 몇초만 쳐다봐도 평생 기억이 갈 때가 있다. 몇십분을 본다고 해서 그 경험이 평생 가는 것도 아니다. 율리시즈가 해남의 미황사로 향하고 있을 때 생각지도 못한 병풍처럼 생긴 달마산 벽줄기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저 완만한 산들과 언덕만 있을 줄 알았던 땅끝마을 근처에서 동해안이나 북한에서나 볼 법한 깍아지른 높이의 산줄기라니. 이래서 편견은 없을수록 좋고 직접 봐야 아는 것이리라. 아니, 일찍이 유홍준 선생의 말대로 직접 본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는 법이니 그때 느낀 것은 이전과는 다르리니 여행이란 경험의 축적이기도 하지만 의식의 진화이기도 하다.
율리시즈가 전쟁영화의 첫손에 꼽는 걸작으로 생각하는 테렌스 맬릭 감독의 <신 레드 라인>장면중에 전반부를 보면 2차대전의 연합군들이 일본군들이 점령하고 있는 과달카날 섬을 탈환하기 위해 상륙작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종결부에서는 그 섬을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는 그 섬을 향해서 진격을 하다가 마지막엔 그 섬을 바라보며 멀어져 가는 장면은 비유가 적절할진 몰라도 흡사 여행과도 같다. 집을 떠나 섬으로 가서 목숨을 거는 경험을 하고 그 섬을 떠나면서 다시 집으로 향한다. 물론 집으로 못 돌아간 병사들도 있지만, 여행도 결국 집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경험을 체득하는 것이다. 호머의 율리시즈는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고향인 이타카로 가는데 십년이 넘게 걸렸지만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에 나오는 세 친구들은 더블린 시내를 돌다가 불과 하루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기간으로 보면 비교자체가 안되는 일이지만 <율리시즈>의 에피소드들은 하루넘어 벌어졌다기엔 에피소드가 꽤 많고 분량도 어마어마하다. 율리시즈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가 여러모로 과장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바로 이날 남도여행을 보내고 난 후에는...
애초에 율리시즈는 4월초에 남도에 가볍게 바람을 씌러 다녀올 예정이었다. 율리시즈는 여러 가지로 삶과 세계에 호기심이 많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 호기심을 즐기면서 보내는 존재이기도 했다. 특히 그는 야구를 좋아하기도 해서, 그런데 야구를 좋아하는데 홈에서 출발해서 1,2,3루를 돌아 홈으로 오는 그 규칙이 공교롭게도 그가 좋아하는 방식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올해 자신이 좋아하는 타이거즈의 광주 개막전을 보리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광주 쪽에 음악으로 알게 된 이들이 여럿 있었으므로 내려간 김에 이왕이면 야구도 보고 사람들도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야구를 좋아하는 서울의 친구들과 기차표와 야구표를 모두 예매를 끝내고 내려가기 며칠전 공교롭게도 광주 개막전인 그날 전국적으로 확실한 비(!)가 예고되어 있었다. 율리시즈는 혼자 내려가기로 했다면 광주의 음악지인들을 만나고 바람쐬는 것도 좋아서 내려갔을 테지만 여럿이 한꺼번에 예매했는 지라 혼자 가기에도 대략난감이었다. 그래서 광주분들에게 쑥스럽지만 4월초 모임을 취소하고 다시 날짜를 보기로 했다. 이번엔 야구와 관계없이 광주모임과 바람쐬는 것을 주제로 해서.
그리고 불현 듯, 말러모임의 운영진인 가라얀과 도리안에게 연락을 해서 같이 가려고 계획을 세웠다. 야구 일정을 생각했을 때 미처 챙기지 못한 생각이 일어난 것이었다. 율리시즈가 여행을 보통 갈때는 일정과 동선을 거의 잡아놓고 움직이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번만은 조금 달랐다. 크게는 광주모임을 가지고 진도에 가서 해안도 보고 국악도 듣고, 남도의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오리라는 것이 애초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예고없는 시나리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도리안과 합류후에 내려가면서 가라얀과 다시 합류한 후 광주로 가서 모임을 가지고 같이 진도 구경하고 올 계획이었지만 이번에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았다. 어디로 달려갈지 모르는 동선과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광주로 출발하기 이틀전에 집안 일로 인해 미안해 할 필요도 없는데 너무나 미안해 하면서 같이 가지 못하는 가라얀의 목소리를 듣고난 후 약간 아쉽기는 했다. 그보다 광주모임을 갖고 싶어했다는 가라얀이 빠졌으므로 누구보다 본인이 서운했을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율리시즈는 금요일에 쉬기로 하고 가라얀의 합류시간을 제한 후에 노원역에서 도리안을 애초 계획보다 늦게 잡아서 만나기로 했다. 서울에서 광주로 바로 가는 일정이었기에 시간은 충분하다고 봤던 것이다. 그리고 율리시즈는 고속도로에서 은근히 스피드를 즐기는 쪽이었기에 광주에 도착하면 아주 여유로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제2장 14:00 노원역, 구리IC, 중부고속도로 - 율리시즈,도리안
순수하지만 귀엽고 앳된 인상의 도리안을 노원역에서 태운 율리시즈는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이날은 금요일이었던 것이다. 서울의 교통상황이란 요일마다 다르고 시간마다 달라서 그때그때 잘 처신해서 움직이는 수 밖에 없다. 율리시즈는 예의 경부고속도로를 마다하고 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의정부 방향으로 움직였다. 아마 경부고속도로를 탔다면 수도권을 벗어나는 데만 1~2시간이 넘게 걸렸을 것이다. 의정부IC에서 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고 바로 중부고속도로를 향해 달렸다.
순환고속도로에 접어들면서 율리시즈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성악가인 바바라 보니의 음반을 틀었다. 율리시즈는 실은 장혜진도 좋아해서 틀어보고 싶었지만 도리안이 머라 할 것 같아서 그날은 참기로 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고전음악만 듣기에도 바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Radiant voice라는 음반제목을 봐서도 그렇지만 바바라 보니는 여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음색을 들려주었다. 노래의 첫 소절만 들어도 바로 반하게 되는 음색이 있는데 율리시즈에게는 바바라 보니가 딱 그런 목소리였다. 바바라 보니가 예술의 전당에서 앵콜곡으로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을 때 한국인만이 한국의 가곡을 잘 부르는 것만은 아니구나 라고 느끼게 된 것은 그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침 도리안도 율리시즈가 미처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바바라 보니와 플래시도 도밍고의 한국가곡의 음색과 실력에 대해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적지 않은 성악가들이 가곡을 구태의연하게 부르는 통에 가곡이 식상하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가 나왔다. 아무렴 한국의 성악가들이 실력이 없어서는 아니겠지만 그 자세와 열정을 유지한다는 것은 중요하고도 중요한 일이었다. 보니의 음반을 들은후 율리시즈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마르쿠스 슈텐츠의 말러 5번을 도리안이 갖고 왔다는 것을 기뻐하면서 바로 들어보자고 했다. 차에서 음악을 듣는 것은 집에서 듣는 것과는 또다른 맛이 있다. 차소리가 약간 들리긴 하지만 볼륨을 원없이 높여서 들을수 있으므로 어떻게 보면 음악을 듣기에 가장 자유로운 공간일지도 모른다.
마르쿠스 슈텐츠가 지휘한 퀼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는 대중들에겐 익숙지 않은 오케스트라일지 몰라도 실력은 상당한 악단이다. 일찍이 귄터 반트가 조련한 오케스트라였다는 도리안의 귀띔을 듣기도 했고, 율리시즈는 한국의 KBS심포니에서도 활동한 바 있는 드미트리 기타엔코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집을 SACD로 들은 바 있었으므로 무시할 악단이 전혀 아니었다. 이를 설명하자면 음악적 인프라와도 관련지을수 있을 것이다. 수년전 한국의 야구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경기를 할 때 일본이나 미국은 야구의 인프라가 잘되어 있어서 대표팀을 몇 개씩이나 만들 수 있지만 우리는 고작 한두개밖에 만들 수 없다는 얘기가 나왔었다. 물론 그 한 개의 대표팀은 일본과 미국과 나란히 할 정도의 일급 수준이다. 다만 그 숫자가 다를뿐. 음악계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서울시향도 그런 비슷한 예일 것이다. 서울시향이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성장해서 일급수준에 가까이 갈수도 있겠지만 그런 악단을 한국에서 여러개 거느리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만 보더라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만 10개를 가뿐히 넘는다. 율리시즈는 서울시향을 단기적인 사례의 하나로 볼뿐 누구나 따라야 할 모델로는 생각지 않았다. 한국의 음악교육에 대한 사교육의 폐해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심각한가도 절감하고 있고, 그런 점이 바이올리니스트인 김수연 양처럼 실력은 있지만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독일로 가서 무상교육을 받다시피 한 사례를 잘 알고 있기에 길게는 베네수엘라의 탁월한 음악교육 시스템인 엘 시스테마에서 많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만약 그런 시스템이 한국에 일부의 형식으로라도 도입된다면 타고난 한국인의 음악성을 볼 때 한국음악의 성장가능성은 매우 큰걸로 생각하고 있었다.
차에서 도리안이 말러 5번을 마르쿠스 슈텐츠가 지휘하는 퀼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의 SACD 음반으로 틀었을 때 상쾌하고 명징하면서도 힘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감성적인 번스타인과 철학적인 시노폴리를 좋아하는 율리시즈로서도 슈텐츠의 표현은 매력적이었으며 설득력있는 소리로 들렸다. 녹음이 좋아서 그랬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말러 5번을 좋아하거나 처음 듣는 이라도 슈텐츠의 이 음반은 추천할 이유가 분명해 보였다. 물론 그때까지 율리시즈가 이 음반을 다음날 다시 듣게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다른 갖고온 음반들이 많은데 또 들을 여유가 있을리가...
제3장 16:30 음성휴게소, 남이JC, 서대전JC, 용봉IC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중부지방을 얼마 가지 않아서 율리시즈는 아침을 일찍 먹고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음성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도리안은 배가 별로 고프지 않다고 해서 햄버거를 먹고 율리시즈는 우거지해장국을 시켜 먹었다. 예전만 하더라도 휴게소 음식은 피하고 싶은 메뉴였다. 그러나 요즘은 먹을만하다. 그러나 이런거 먹으려고 우리가 남도로 내려가는건 아니지 않느냐 라고 율리시즈는 생각하고 있었다. 남도에 내려가면 맛있는 거 다 먹어주마 라고 엄청 기대에 차 있던 율리시즈는 생각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다시 휴게소에서 우동을 먹을 일이 생기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남도의 성찬을 먹기도 바쁜데 귀경길이 아닌 다음에야 또 먹을리가...
차를 운전하면서 내려갈 때 도리안은 서울시향의 말러 2번 음반이 새로 나온걸 못 들었다고 해서 같이 듣기로 했다. 정식CD가 나오기 전에 음원으로 먼저 나왔으므로 급한 마음에 율리시즈는 음원을 CD로 만들어 갖고 왔다. 물론 음원이 좋았으므로 CD도 들을만 했다. 서울시향의 말러 2번은 하루의 공연이 아니라 이틀간의 라이브 공연을 취합해서 만든 것이다. 대부분의 음악팬들은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초반 부분의 잔실수를 음반에서 어떻게 처리할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일부 있었지만 이틀간의 공연을 편집하였으므로 음반은 상당히 깔끔한 형태로 나왔다. 적어도 드러나는 실수는 보이지 않았다. 초기의 서울시향은 기대반 우려반이 있었지만 계속해서 발전해 오고 있었다. 서울시향의 말러를 들을 때 율리시즈는 교과서적인 완벽한 소리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마에 정 특유의 밀고 당기는 루바토와 소리를 모으고 모아서 한 포인트에서 터트리는 매력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 점에서 말러 2번은 인상적인 음반이었다. 메조 소프라노 페트라 랑의 유연하기 보다는 강건한 듯한 소리가 아쉽긴 했지만 소프라노 이명주의 청아하고도 호소력짙은 소리는 매우 아름다웠다. 율리시즈는 특히 5악장의 6분쯤에 흐르는 주제를 평소에 좋아했는데 마에 정과 서울시향의 표현은 그것을 잘 살려주었으므로 매우 흡족해했다. 도리안은 서울시향의 말러 2번이 큰 실수 없이 특히 총주부분에서 큰 흐트러짐없이 잘 살려준 부분을 높이 평가하는 듯 했다.
서울시향의 실제공연을 자주 본 음악팬들은 서울시향의 모자람이 잘 보이겠지만 음반을 평가할때는 별도의 객관성이 요구된다고 율리시즈는 생각하고 있었다. 얀손스와 RCO가 자주 선보이는 라이브 음반 시리즈조차도 2~3일간의 연주를 편집해서 나오는 마당에 서울시향만 유독 현미경을 들이대며 못한 부분을 크게 끄집어 내거나 확대 평가하는 것은 다소 공평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단 하루의 공연을 그대로 연속적으로 뽑아내는 진짜 라이브 음반의 맛은 또다른 의미에서 필요하고 마땅히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율리시즈가 운전하던 차가 호남고속도로에 접어들어 광주로 향해 가고 있을 때 도리안은 불레즈의 다소 이색적인 해석으로 보는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를 틀었다. 클래식이 음악의 바다인 것처럼 음악을 연주하는 스타일과 듣는 취향도 다양하기 마련인데 주로 감성적인 것에 주안점을 두는 주정주의(Emotionalism)와 악보와 기술적인 면에 중점을 두는 주지주의(Intellectualism)의 그 어느 사이에 모두는 위치하기 마련이다. 율리시즈는 얼마전 있었던 경기필의 말러 3번을 둘러싼 감상과 평가의 논쟁을 바라보면서 말러카페에 잠시 간략한 의견을 표명하긴 했으나 이 부분에 대해서 본격적인 얘기를 말러카페에서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바쁘다는 일을 핑계로 그것을 계속 미루고 있었다. 율리시즈는 음악해석과 감상에서 생기는 오류와 오해는 대부분 이 두 테제로 인해 나오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아무튼 번스타인은 주정주의에 가까운 편이고 불레즈는 주지주의에 가까운 편이었다고 율리시즈는 생각하고 있었다. 도리안은 불레즈의 이 음반을 틀어주면서 예전과는 달라졌다고 혹시 죽을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고 다소 이색적인 걱정을 하고 있었다. 스트라빈스키는 불새나 봄의 제전 등 여러 혁신적인 작품을 낳기도 했지만 바흐로 돌아가자(Return to Bach)는 모토로 신고전주의 양식을 시도한 작품도 남긴 작곡가이다. 풀치넬라가 그런 한 예로 볼수 있는데 불레즈는 시카고심포니를 이끌고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을, 상당히 고전적이지만 어딘가 들어있는 현대성이 가미된 독특한 매력의 풀치넬라를 들려주고 있었다. 율리시즈는 작품 전체를 유심히 들어보진 못했지만 불레즈라면 이전 해석이든 말년의 해석이든 언제든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운전을 하며 광주가 얼마남지 않은 상태에서 아주 잘 빠지던 자동차는 동림IC에 이르러서 갑자기 서행하기 시작했다. 율리시즈는 내려오기 며칠전 카페게시판에서 동림IC에서 용봉IC의 정체가 걱정된다는 글을 얼핏 본적이 있는데 그 구절이 예언이라도 되듯이 너무나 정확하게도 동림IC에서 차들이 줄을 서 있었다. 동림IC에서 빠져 나갈까 생각하던 순간 차는 이미 분기점을 지나버린 상태였다. 광주모임의 약속시간은 아직 30분이상이나 여유가 있었지만 고속도로 위에서의 정체는 알수 없는 법이다. 1분안에 차들이 빠질 수도 있고 1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것이 자동차 전용도로의 변수임을 알고 있는 율리시즈는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서울이 아닌 광주도 차가 이렇게 막힌다는 말인가’
게으름이 천성에 가까운 율리시즈는 5시간 가까이 달렸는데 광주에서 약속시간을 넘긴다면 억울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든 변수를 고려해서 더 일찍 출발했어야 하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광주모임의 약속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고, 달리 빠질 길도 없는 상태에서 동림IC와 용봉IC사이의 차들은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겠다는 것처럼 끝을 알수 없는 상태로 줄을 서 있었다.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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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율리시즈님! 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좋아하는데...
윗글을 읽어보니 3일간 우리들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네요.
아뭏든 대단하십니다.
그나저나 이 글을 읽는다면 가라얀님이나 하늘나리님의 멘탈이 붕괴될 것 같은데, 참 걱정입니다.
제목 보는 순간 이미 멘붕됐습니다. 오늘 자는 건 틀린 듯 합니다. 오 신이시여...ㅠ.ㅠ
조금 길게 쓰는 이유중의 하나는 가라얀님이나 하늘나리님이 조금이라도 간접체험을 하시길 바라는 이유도 잇었는데 멘붕이라면, 제가 바라던 바와는 다른 길인데... ㅋㅋ.
저역시 가라얀님과 상태가 비슷합니다.
가지 못한길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 뿐일거예요.
이건 신포도예요. 우겨봅니다.
가라얀님~멘붕되시면 아니되어요~~르레이~~ㅎㅎ!!
오 신이시여. . . 이 달콤한 고통을 왜 주시나이까. 안읽을 수도 없고 . 안기다릴 수도 없고.
하늘나리님은 좀 더 기다려 보세요. 여러번 등장하실테니... ㅋㅋ.
이 고통으로 이자는 감해 주시죠. 월인당 봄들님을 봐서라도.
완전 재밌어요~!!ㅎㅎ하늘나리님,이건 전주곡에 불과함~^^
사랑내게님 말씀 잘하셨음. 아직 광주모임 챕터는 시작도 안한 전주곡임... ㅋㅋ.
우와~~완전 대박!!율리시즈님~제게 원고 넘기세요..제본해서 책자로 드릴게요..사인도 받고..인세도 받고...^^*
인세라 하니 갑자기 솔깃해지는 율리시즈는 제본 이후에 벌어질 여러가지 상상을 해 보는데.... ㅎㅎㅎ~
온라인 연재 후에 출판하는 것도 요즘 트렌드잖아요^^
아아... 상상을 초월하는 대작이 될 것 같습니다^^;;;
근데, 제가 본문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하나 있어서요... 정명훈-서울시향의 말러 2번 음반이 이틀간의 라이브 녹음인가요? 첫째날 녹음은 스튜디오 편집녹음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리고 리허설 중에도 녹음을 진행했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첫날에도 같은 곡으로 공연을 했었는지는 전혀 몰랐네요. 왜 저만 그걸 몰랐을까요??? ㅡ,ㅡ;; ㅎㅎㅎ
리허설때도 녹음을 했다고 합니다만, 음반에 수록된 거는 2010년 8월 25,26일 이틀간의 라이브 녹음만(!)을 가지고 수록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게 궁금해서 시향 관계자에게 재차 확인해 봤습니다^^
남도길의 대서사시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성진님, 그때 만나뵈서 반가웠습니다. 기회가 되면 다시 뵐때가 있을듯~
전 호흡이 짧아 한방에 다 읽기는 무리네요. 끊어서 읽어갑니다. 대하소설이라니...ㅎㅎ
ㅋㅋㅋ~
아직 우리 만남은 시작도 안했네요.
다음편 연제일은 언제인가요? 율리시즈님^^
손꼽아 기다릴께요~~
후기를 빙자한 소설(?)로 지금 흘러가고 있고 분량도 길어지고 있으니 천천히 기다려보셈. 2부는 바그너 갈라 끝나고 올라갈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