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샬에서 나온 폐셀은 나무나 돌에 새겨서 만든 어떤 모양이다.그것은 "구약 고고학"에 기록된 가나안 종교들 참고하기를 바란다.
사사기 17장 3절에 여호와 하나님을 나타낸 형상이나,
열왕기하 21장 7절에 나타낸 것과같은 어떤 이방 신들의 모양이다.
다음에 투무낳는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진 형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하여 보여 준 형상이다(
민12:8,
신4:125,
욥 4:16,
시17:5).56) 그 쉬운 예로 로마 카톨릭의 형상은 그 일례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폐셀과 투무낳는 여호와의 상징적인 출현과 관계하므로 이해가 되어 진다.
"하늘에 있는 것"이란 천사들이나, 또
신명기 4장 19절에 따라서 별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류들인 것 같이 생각된다.
"땅에 있는 것"이란 가축, 파충류(Reptiles),작거나 큰 동물들이다. 그리고 "물속에 있는 것"이란 고기들과 수중 동물들이다. "땅 밑에 있는 것"이란 물에 붙여지고 있다.
신명기 4장 18절은 땅보다 낮은 곳에 살고 있는 것의 어떤 형상을 표시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 모든 형상들을 만들어 놓고 종교적인 예배나 신앙의 대상으로 삼음에 대한 경고이시다. 그 이유는 5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아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5절에 나오는 "절하며 섬긴다"는 것은 히쉬타카와라고 했는데 기도로 하나님 앞에 굽히는 것과 그의 이름으로 비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께 굽혀 예비하고 기도드릴 것을 헛된 형상들에게 굽혀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상숭배이다.
아발은 희생을 드려 종교 의식을 행하여 예배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 숭배는 희생 제물을 드리고 종교 예식을 행하여 예배드리는 것이다.
5-6절은 우상의 두가지 형상들을 금한다. 첫째는 우상 숭배(Idole-Latry) 와 둘째는 형상으로 영적 성질을 가지셨다. 그런데 그를 어떤 보이는 형상으로 생각하여 예배를 드렸다든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변화시키는 것이나, 하나님의 실재를 다른 신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금하셨다"57)고 하셨다.
포드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은 여기에 주의할 것이 있다."그것은 모든 조각과 그림을 금하는 것이 아니다.하나님께서는 조각과 그림을 위해서 특정인에게 재능을 부여하셨고, 이 재능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될 수가 있다." 그 예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게 한 것이다. 성막에 그룹을 수놓은 것은 그 좋은 예가 아닌가? "후에 솔로몬 왕은 성전을 건축했다. 그 성전 안에 있는 정교한 장식품들을 잘 주시해 보면 그것은 활짝 핀 꽃송이들,석류무늬,종려나무,숫소,사자들, 그리고 그룹들의 형상들로서 호화롭고 정교하게 꾸며져 있다.A)
우리가 명심하여야 할 것은 종교적 예배의 목적을 위해서 어떤 것 앞에서도 절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교회에서든지 아니면 집에서든지 간에 항상 절하는 것이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나는 나무로 된 십자가, 마리아상,예수의 상처난 옆구리, 성자나 천사의 형상을 쳐다보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의 면전을 믿음으로 바라본다. 나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우는 어떤 형상도 원치 않는 것이다.B)
그 이유는 형상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흐리게 하며, 형상 숭배는 곧 하나님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시편 115:4-8에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 하는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고 했다.C)
제 3 계명,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히 함.
어떤 성경 해석자는 제3계명을 해석하는 가운데 [주의 이름으로 사취하는 사기꾼들]을 가르쳐 말씀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본문의 일면적인 해석이요, 바른 해석이라고 보기 어렵다. 미드(Frank S.Mead)씨는 "이름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큰 뜻을 나타낸다. 그 이름들은 이름을 붙인 바 그 사람들의 특성을 기록하고 있다. 아론(Aron)은 "불확실'을 의미했으며, 엘리야는 "여호와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며, 스데반은 "면류관"을 의미한다. 이 이름들이 얼마나 기술적이였는가! 그와 같이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진실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여러가지 이름을 붙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엘로힘이라 했는데 그뜻은 "생명의 힘"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도나이","야외"라고 했는데 그 뜻은 "나는 지존자"다. 또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라는 뜻이다. 모든 이름들은 한 목적을 가졌다. 즉 하나님의 특성과 능력을 표현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또는 그의 입술로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그 하나님 자신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 무서운 생각에 압도 되어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사랑, 그 이름,또는 그 능력 사용에 대하여 주의하여야 했다.59)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인격과 능력과 하나님 자체를 대표하는 것임으로 어떤 필요없이 무의미 하게(가치 없게) 그리고 쓸데없이 거칠고, 무법하게 사용함을 금하고 있다. 가치없고 쓸데없는 목적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함을 전적으로 금하고 있다.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무법적 사용은
레위기 19장21절에 죄를 범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거짓 맹세뿐 아니라 평범한 생활의 교제에서 아무 보잘것 없는 맹세에 사용해서 안된다.
허위와 거짓 말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든지,저주,마법과 요술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이름을 참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은 기원,기도,찬양과 감사와 예배에만, 또 거룩한 믿는 마음에서 울어 나와 사용하여야 한다.60)
그렇지 않은 때나, 일과 목적에 사용할 때에 그것이 신성모독이 되고 범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개혁자인 죤 칼빈(John Calvin)은 제네바에서 그 시를 다스릴 때에 이 문제에 대하여 매우 엄격하게 취급했다 한다. 그것이 옳다. 오늘날 우리 신자들도 명심할 일들이다.
제 4계명 성수주일
제 4계명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 이 안식일의 기원은 하나님의 계시이다.
창세기 2장 3절에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와 그 만물을 창조하신 수에 제7일되는 날에 쉬었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사역을 마치신 후에 하나님께서 친히 쉬셨고, 이날들을 거룩하게 하셨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 날들을 특별하 구별하시고 거룩하게 지킬것을 사람에게 명령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친히 오신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영교의 날(
창3:8)에 찾아 오셨고 또 하나님이 에녹과 동행하셨고(
창5:22),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령하셨고(창 7;1),하나님께서 친히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고, 또 천사들도 나타내신 흔적이 되지 않다.
창세기 2장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킬 것을 직접 명령하지 않았으나 간접적으로 명령하신 것으로 생각이 된다. 이 당시에 악한 자들은 악행을 행하였으나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킬 뿐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한 거룩한 신앙생활의 흔적이 많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에 "안식을 지킬 것을 명령"한 것은 창세기에 나오는 신앙의 선조들의 모범적인 신앙 새활을 쫓고 또 하나님의 불변하신 뜻을 따라서 애굽에서 좇던 이방인의 생활에서 떠날 것을 명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어떤이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바벨론(Babylon)사람들의 샤바트(Shabbatu)에 근원을 둔 것이 아니다. 그 날은 바벨론 사람들이 분노한 자기의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것과 같은 그런 날이 아니다.61)
그것은
창세기 2장 2절과
출애굽기 20장 8-11절을 보면 알수 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만든 날이다. 또 살아계신 하나님과 영교의 날이나, 그 명령을 보면 예외없이 사람과 짐승들이 이 날에 어떤 일도 하지 말것을 말씀했다. 그날에 쉬어야 할 것들은 두가지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자유로운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자손이다(너와 네 자손).
둘째, 그들의 종들과(남종과 여종)가축고 그들의 객들이다.
이 객들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거주하는 이방인 노동자들인것 같다.
본문에 "네 문 안"라는 뜻은 "네 집안"이 아니고, 네 땅에 있는 도시나 마을이나 부락안(
신 5:1414:21)과 같은 뜻이다. 또 문(샤알)은 다만 마을을 들어가는 곳 또는 큰 마당과 궁전에 둘러 막는 담에 있는 대문에 적용된 것이지 결코 집이나 창고나 천막의 출입구에 적용이 되지 않는다.62) 그 좋은 예가
느헤미야 13장 15-22절에 나타나 있다. 안식일에 쉴 것이며(
레23:2831), 다른 날에는 일할 것이 명령되었다. 다른 날에 노동과 사업과 상업은 할것이다. 따라서 명령되었다. 다른 날에 노동과 사업과 상업은 할 것이다. 따라서 경작과 추수(34:21),술틀을 밟고 물건을 나르는 것(
느13:15),무역(
암8:5),식물을파는 것(
느13:15)을 안식일에 금했다. 또 만나를 주실 때도 안식일에는 주시지 않고 전날에 안식일것까지 거두어 들였다가 이날에 먹었다(
출16:26). 이 날에 나무 하는 자를 잡아 두었다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처형했다(
민15:32).이날에 불을 피우는 것을 금했다(
출35:2).
그러므로 안식일의 의미는 하나님의 축복을 찾게 되고, 또 창조한 일주일의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 창조의 역사가 일곱째 날에 그친 후에 하나님은 복을 주었고 창조한 세계를 신성하게 했다. 그 세계에 평화의 능력들로 채워 주셨고, 그 자신의 복된 안식으로 선한 세계를 만드셨다. 그의 거룩한 성질의 깨끗한 빛을 나누어 주어 일어나게 했다(
창2:3).그런 이유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켰고,하나님이 행하셨던 그것을 본 받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와같이 하므로 하나님 자신을 따라 가고 하나님의 축복을 즐기게 했고, 이 날에 그들이 그들의 일을 쉬고 모든 것을 그쳤다.63)
또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은 "앞으로 올 일의 그림자였다(골2;10,
히10:1). (1) 그리스도가 온 이후에 그리스도는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
마12:8)했고, 그의 사역 도중 안식일에 쉬었다. 그러나 영적인 일과 생명을 구원하는 일은 쉬었다고 생각이 되지 않는다.
그는 다시 안식후 첫날 즉 주의 날에 부활하였다. 그의 구속 사역의 열매르릴 세상에 심었다. 그는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이날을 '주의 날'(큐리아케 헤메라)로 세웠다. 구속의 주님이 돌아와서 그의 원수들을 심판하며 멸하시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때까지 지상에 있는 성도들을 지키는 날이다.64)
이날은 처음에 안식후 첫날로 명명이 되었다(
행20:7).그 날에 성도들은 모여 예배를 드렸따(
고전16:2).요한은 그날을 "주의 날"이라 칭했고, 주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다(
계1:10).또 천국의 영광을 보았다(
계1:).65)
(2) 성령이 강림한 것은 일주일의 첫째날에 신자들이 모여 있을 때이다.
(3) 주의 만찬은 언제나 일주일의 첫째 날에 신자들이 모여 있을 때 행했다.
(4) 바울은 일주일의 첫째 날에 우리의 헌금을 바치도록 하라고 말했다.
(5)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 되었다'고 말했다.
일주일의 첫째 날인 주의 날은 일반적으로 초대교회(제1세기) 신자들에 의해서 준수되었다.
2000년 동안 기독교 교회에 의해서 일주일의 첫째 날이 지켜져 왔다.일요일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들의 교회에서 복음을 전해듣고 구원을 받아왔다. 일요일에 수백만의 피곤하고 지친 영혼들이 하나님의 집을 찾아와서 거기서 평화와 안식을 얻어 왔다. 일요일에 수백만의 상한 심령들이 교회에 나아와 위로를 받아 왔다.4)
주일성수하는 방법
허쉘 포드박사의 이론에 따르면 (1) 안식일 취함으로서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이라고 했고, (2) 예배를 드림으로서다. 히브리 10장 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관습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며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라"고 했다.
하나님은 안식일에 자기의 창조사역에서 기쁨을 누렸다. 우리도 주의날은 역시 하나님의 하신 일들에서 기쁨을 누리는 데 사용해야 할 것이다.
(3)이웃에게 봉사함으로써 지킨다... "우리는 주일날 그의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며, 한편 이웃에 대해서 자비행위를 베풀 수가 있다. 홍펠로우는 말하기를 ,"주일은 그 일주간을 한 덩어리로 묶는 황금고리다"라고 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특별한 날을 구별하여 택정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인생은 의미가 없습니다"고 B) 했습니다.
제 5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우리는 이상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도리, 즉 신륜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럿은 모든 생활의 근본이요, 생의 근원과 원리와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그것은 근거로 해서 진행 할 인간의 상호생활에 필요한 인륜에 대하여 생각하겠다. 이하에서 사람이 사람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자.
미드(F.S.Mead)씨는 "다섯째 계명은 첫째 석판과 둘째 석판,즉 두 부분에 다리의 역활로서 봉사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이 계명을 지킨다면 그들은 모든 다른 계명들도 지키기 더욱 쉬운 것을 찾겠기 때문이다.66)고 했다.
유대인 사이에는 이 계명을 위한 두가지 요건이 있었다. 그 첫째가 국민적 요건이다. 국민은 가정을 가지고 있다. 가정의 토대에서 쉬게 되고 또 크게는 가정의 머리도 된다. 가정에서 불순종은 국민으로서 불순종이다. 둘째 요건은 종교적 요건이다. 부모는 종교적 교사들이었다. 자녀들을 통하여 부모들의 종교를 영속시켰다. 즉 부모들의 신앙과 그 신앙의 근본이 되는 진리를 유업으로 받아 계속하여 후손에게 전승케 했다.
부모를 위한 존경의 결여는 곧 국민의 미래를 좌우하는 관건이 되었다67) 그러나 그것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하제스(J.A.Hages)는 유대인의 생활의 일면을 보여 주나 반면에 비 국민적이고 비 종교적인 면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이 법은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주신 법이라고 할 수 있다. 고로 에베소 6장 1-4절은 유대적인 것보다는 이방적인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21장 15절,
잠언 30장 17절에 부모에게 대항하는 악한 자식은 죽여야 한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악한 부모에 대하여는 법이 다스리고, 또 자식은 선의적인 항거와 선으로의 정목을 의미하는 것이다(
엡6:1-4). 그리고 "부모에게 힘써 자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부모를 존경할 의무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68)
그 구체적인 행동을 하셀 포드박사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첫째는, 우리의 부모님을 순종하고..공경하자."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롬13:1).바울의 이 말씀은 가정이나,국가나,교회 등 모든 경우의 권세에 다 대항하는 말이다. 하나님만인 절대 주권자이시다. 그러나 그는 상호인간 관계에서 인간에게도 어느 정도의 주권을 부여하셨다. 이것은 특별히 부모님들의 경우에 해당된다. 하나님은 그들을 신적 권위로 덧입히셨다. 우리의 부모들은 하나님의 대리자들이신 것이다. 에베소 6:1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한다.4) 둘째는 필요할 때 부모님을 보살펴 드림으로 공경하자. 이것은 부모가 늙으신 때만이 아니라 부모가 병약하여 졌을 때이며, 그외에도 부모가 자녀의 육적,정신적, 물질적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고 붙들어 드리는 것이다.8) 이런 일은 오늘날과 같은 핵가족 시대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적인 시대에 더욱 필요한 교훈이요 진리인 줄 안다. 끝으로 부모들의 의무는 무엇인가? 허셀 포드박사는 이 문제에 대하여 (1) 부모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 (2) 부모들은 자녀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잘 인도해야 한다. 그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축복을 약속한다(
출20:12),
렘 35:19)고 했다.c)
제 6 계명 살인하지 말라
살인은 인류가 창조된 이후부터 있었다. 그 좋은 예가 아담의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이다. 그 살인은 범죄의 결과이다. 그 살인의 원인은 죄의 조작자인 마귀의 간악한 작용이다. 우리가 성경에서 찾아보는 그 살인 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크게 여기는 죄요,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도 적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전쟁으로 인한 살인다. 학자들 중에는 이 전쟁에서의 살인은 자체방어이다. 그러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자체 방어이든지 아니든지 살인은 살인이니 죄가 된다고 한다. 또 어떤 학자들은 전쟁은 하나님의 섭리와 허락 가운데서 되어지는 죄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이 심히 많다.
우리는 그것 보다 하나님의 영광과 정의에 근거하여 살인 문제와 죄 문제를 취급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제6계명이 보여 주는 진리도 살인이 있고 없음에 관한 문제 이전에 그 기본이 되는 진리인 인류의 생명을 존엄하게 여기느냐?아니하느냐?를 따지고 있다. 즉 인류의 생명에 손상과 파괴를 금하는 것 같다.69) 그러므로 인류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윤리의 근본이요. 하나님의 절대법이다. 그 이유는 생명의 창조와 관리자는 인간이 아니요,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만이 좌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허락의 한계 내에서 사람이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19:12-21:12-1722:17-20).그뿐 아니라 사탄도 인간의 생명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해할 수가 없다(
욥2:6)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소유요, 그에 의하여 좌우된다. 이 하나님의 주권에서 벗어나 그 생명을 좌우하고 손상 시킬 때에 그것은 죄가 되고, 거기에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이 가해지는 것이다. 이 살인에 관한 계명을 강론하는 허셀 포드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I. 이 계명에 포함되지 않은 경우들
(1) 하나님은 음식이나,의류,또는 다른 유용한 목적을 위한 동물의 살생을 금하지 않으신다. 그 이유는
창세기 9:3에 하나님은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도적을 죽이는 것을 금하지 않으신다. "도적이 뚫고 들어옴을 보고 그를 쳐 죽이면 피흘린 죄가 없으나"(
출22:2)라고 하였다. (3) 전쟁 중의 살인도 여기 포함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하여 포드박사는 첫째로, 우리는 한 국가의 시민으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권력에 예속되어 있다. 둘째로,전쟁은 행복을 불행으로 바꾸기 때문에 행복을 지키기 위하여 싸워야 한다. 세째는, 정당방위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다. 어느 한 백성이 평화롭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고 있을 때 불신 국가가 침략한다면 그 선한 백성들은 자기의 생명과 자유와 가정과 자녀들과 교회를 위하여 싸워야만 한다. 끝으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들과 싸우도록 명령을 받았다. (4) 사형제도는 여기 포함되지 않는다. 창세기 9;6절에서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고 A) 말씀하였다.
2. 살인의 성경적 개념
(1) 직접 살인 직접 살인의 뜻은 폭력에 의해서 고의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말한다. 자살도 또한 살인의 일종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망치고 있다. (2) 간접살인 우리가 어떤 사람을 고의적으로 살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간접적 행위에 의해서 다른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하여 간접적인 살인을 범할 수 있으며 또 오늘의 술주정뱅이는 간접적 살인자들이다. 또한 여러분의 생활 방식에 의해서 사람을 죽일 경우도 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마땅한 의무를 게을리 함으로 해서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는 자기의 잘못된 생활 습관에 의해서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3) 살인하는 마음 이 마음의 살인은 증오,분노,미움등 정신적인 것이다.B)
3. 영혼을 살인하는 경우
(1) 이것은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부모들은 자녀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지도 않고, 또 교회에도 데리고 가지 않았기 에 결국은 언젠가 지옥에서 서로 만나게 될 것이다. (2) 이것은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다. 많은 청소년들은 학교에 다니게 되는데 불신 선생님과 불경한 교육의 영향으로 인하여 영원히 하나님과 등지고 만 경우가 허다하다. (3) 이것은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다. 자유주의 목사는 성경을 무시하고,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며, 천국,지옥,심판 사상을 비웃는다. 그래서 그를 따르고 그의 설교를 듣고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올 수 없다. 결국 그들은 영원히 되고 말므로 그들의 영혼은 살해된 것이다.C)
제 7 계명 간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뜻은 "개인적 청백"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다. 즉 "지상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인류 관계의 근러라고 생각이 된다."70)는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남녀 관계가 옳바르고,개인이 청백하여 범법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간음"이란 남녀 관계에 적용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性과 성적 충동을 부정하지 않는다. 성경은 성을 죄악시하지 않으며 또 본래 부도덕한 것이 아니다. 올바른 성 관계에는 죄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좋은 목적을 위해서 성을 제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을 충만케 할 목적으로 성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던 것임으로 우리가 성을 올바로 사용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된다. 그러나 그릇되게 사용하면 그것은 모든 남녀를 지옥으로 가게하고마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성의 바른 사용을 위해서 결혼 제도를 제정하셨다 그렇다, 결혼은 인류에게 주어진 최초의 선물들 중의 하나이요. 그것은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있었다. 가족 제도를 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으로 하나님은 결혼제도를 정하실 때 성 생활에 어떤 규범을 두시고 올바로 사용하도록 하셨다.
창세기 2:24과 에베소 5:21은 내용면에서 같은구절들이다.A)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무슨 이유 때문일까? 가족을 이루기 위해서, 땅을 충만케하고, 성적 충동을 보호하고, 순결케 하기 위해서이다. 결혼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며, 결혼은 최고의 인간 관계요, 짝을 맺어 준다. 결혼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가운데서 되어진다.B) 이 결혼에 관한 귀한 길잡이는 월터 트로비쉬 목사의 저서인 "나는 너와 결혼 하였다"는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기 하며"(
잠 6:32),'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간음하는 자나,남색하는 자나,.... 하나님의 나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엡5:3)."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고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 자들과 모든 거짓 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니라"c)(
계21:8)고 했다.
이 "간음이란 히브리어는 나압인데
레위기 20장 10절에 보면 남자와 여자에게 적용이 되어 있다. 한 남편이 다른 남자의 아내와 성적인 교통을 한다든지,또는 한 사람의 아내가 다른 여자의 남편과 성교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 의마현 이것은 남자나 또는 여자에게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니고, 양자에게 다 적용이 된다. 이 죄를 범했을 때 사형이다(
레20:10)71) 또 미혼 남자가 유부녀와 성교했다든지, 또 미혼 여자가 아내가 있는 남자와의 성교에도 적용되는 죄이다. 그도 사형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그의 백성은 그 하나님에 의하여 거룩한 법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고, 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이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즉 청결을 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윤리적인 면만 아니라 또 종교적인 면에서 청결을 도모하고, 사랑의 결합과 통일을 도모하어야 한다. 또 하나님의 법질서를 잘 세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영광을 땅 위에 나타내어야 한다. 계명에 의하면 간음은 자기의 몸과 가정에 대하여 범죄함이며, 사람의 인격만 아니라 사회에 대하여 범죄함이다.
그리고 끝으로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외쳐 말하기를 "...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그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고 했다(
창39:8-9). 또다윗이 밧세바에게 범죄 했을 때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라고 했다(
시51:4).
제 8 계명 도적질 하지 말라
F.S. Mead씨는 이 계명은 "모든 일에 정직한 것을 말씀해 준다고 해석 했다. 그 해석은 옳은 해석인 줄 안다. 정직함이 없을 때, 도적질 하게 된다.72) 하나님은 인간에게 명령하시기를 제6계명에서 생명의 존엄과 보호자가 되기를, 제7계명에서 가정의 윤리를 지켜서 청결한 가정의 보호자가 되기를, 제8계명에서 재산의 보호자와 성실한자가 되기를 부탁하셨다.73) 성경은 우리에게 재물에 대한 두가지 자세를 보여 준다. 즉 모든 것은 창조자이신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주장한다. 심지어 사람의 생명까지도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다. 후쉴 포드박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말한다.
I.소유권 침해
(1) 재물의 절도 이것은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절도이다. 그러나 유일한 절도는 아니다. 재산을 모으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선물을 받는 것,노력에 의한 것, 그리고 절도에 의한 것 등이다. 이 중 처음 두 방법은 합법적이지만,세번째 방법은 위법이다. "A) 여기서 합법적인 것은 제외하고 위법적인 것을 생각하여 보자! 위법적인 것은 "직접적인 강탈에 의해서 도적질할 수가 있으며 다음은 '직접적인 절도 행위를 생각할'수가 있다. 세째가 사기를 예로 볼수가 있으며 하나님의 책인 성경은 저울추와 되에 대하여 몇번 언급하고 있다(신25;13-15).또 도박이나 정당한 빚을 갚지 않는 것도 하나의 절도이다.B)
(2) 인격의 절도 모든 사람은 자유할 권리가 있다. 자유를 빼앗는 모든 노예제도는 절도이다. 지난 수년 동안에,미국에는 많은 어린이 유괴 사건이 있었다. 이것은 가장 악한 종류의 절도라 할 수 있다. 그 어린애가 그 부모로부터 도난 당한 것일 뿐 아닐, 행복과 마음의 평화마저 도난 당한 것이기 때문이다.c)
(3) 순결의 절도 어떤 비열한 불한당은 순진한 소녀를 꾀어다가 정을 통해 버린다. 그 소녀는 그에게 흘린 나머지 그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게 되고 그는 그녀를 타락시켜 그녀의 모든 정조를 빼앗고, 그녀로 하여금 그늘진 인생을 살게 하여 흔히는 그녀의 일생을 망치게 하고 만다. 그것은 가장 비열한 종류의 절도가 아닐 수 없다.D)
(4) 평화와 행복의 절도 "우리는 게으름에 의해서 절도죄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가정의 행복을 도적질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남자나 여자가 어떤 행복한 가정에 침입하여 모든 애교를 다 부려서 어떤 남편이나 아내의 애정을 도적질하고 그 가정을 파괴하며 결국은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있다... 고용주는 흔히 피 고용인들에게서 도적질한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악5:4)...반대로 피 고용인들이 고용주에게 도적질할 수도 있다. 그들이 정당한 임금을 받고서도 그만큼 일을 해 주지 않을때 그들은 도적질을 하는 것이다.
(5) 명성의 절도 여러분은 어떤 사람의 명성을 해치는 말들을 들으실 것이다. 그때 여러분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 보지도 않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되풀이해 준다. 그렇게 해서 곧 그 얘기는 널리 퍼지게 되어 그의 명성은 도적질 당하고 만다.F)
(6) 성격의 절도 ... 세상은 많은 자녀들이 건전한 생활을 이룩해 가는 기회를 절도하고 있다. 우리 크리스챤 부모들은 자녀들의 성격을 세상이 도적질하지 못하도록 더 열심히 기도하며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G)
(7) 신앙의 절도 "무신론자인 흄은 그의 어머니에게 자기의 무신론적 신앙을 받아 들이게 했었다."H)
(8) 가난한 자들에 대한 절도 성경은 말씀한다. '너에게 부자가 될 수 있는 힘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덜 행복한 자들을 돕는데 우리의 재물을 사용해야 할 빚을 하나님께 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그러므로 돈을 벌어 가지고 자신만을 위하여 돈을 저축하거나 탕진하는 것은 죄된 것이다.I)
(9) 하나님께 대한 절도 말라기 선지자는 이렇게 물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할 수 있습니까?그때 하나님의 대답은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저주를 받았느니라"이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으가장 큰 절도죄이다."J) 그 이유는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사는 인간으로 생시에 그것을 사용하게 빌려 준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속한 것이 아닌 어떤 물건을 도적질했을 때, 사람에게만 범죄한 것이 아니라 그는 실지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 된다."74) 또한 아모스 선지자에 의하면 은을 위하여 의인을 팔고(
암2:6),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4:1) ,또 부당한 세를 취하는 것(5:17)도 도적이라고 하였다.75)
Keil(카일) 박사도 다른 사람의 소유를 은밀하게만이 아니라 들어 내어 놓고, 옮기는 것을 금지했다.76)고 했다. 또 Mead(미드)씨의 해석도 위의 해석과 대동소이하다.조세광박사는 그의 출애굽기 강해에서 "간사한 수단으로 남의 물건을 취하는 것도 도적이라"77)고 했다. 요는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서 재물에 대하여 정직성을 잃어 버리고 부정직하고 악하게 행하는 중에 빚어지는 죄악이다. 즉 마음과 행동에서 부정직하다.
제 9 계명, 거짓 증거하지 말라.
제 9 계명은 [말의 성실]을 강조한다. 즉 이 계명에 나오는 히브리어 (빼) 와 함께 있는 (아낳)는 한 사람을 대하여 그 무엇을 대답하고 증거를 하는것이다(
창33:33).그 반면에 (ㅇ)는 증거가 아니고 증언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ㅇ 쉐켈)은 거짓 증거가 아니고 거짓 증인이다. 이것은 의식적으로 고의적으로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증언만 가지고 되지 않고 그 증언에 대한 증며이 될만한 자료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증거이다. 하나님게서는 성경에서 거짓 말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거짓이나,찾을 수 없는 어떤 증거를 제시해서도 안된다. 재판장 앞에서 뿐만 아니라,생활, 결혼문제, 이웃 관계에 있어서 어떤 종류의 거짓 증거를 해서 해독을 끼쳐서 안된다(
출23:1,
민35:30,
신17:6-19:1523:13).78) 이런 문제는
레위기 19장 17-18절과
잠언 26장 19절에도 나타나 있는데 참고가 될줄 생각한다.
사람의 혀는 악하여 타인의 허물을 이야기 하기를 좋아한다. 누가 타인을 시비할 때 입으로 사실을 과장하여 말하기 쉽다. 또 인간은 가끔 자기의 잘못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단점만을 잡아내여 말하기 쉽다. 그 좋은 예가
창세기 38장 34절에 나오는 유다이다. 그는 자기의 며느리 다말의 죄는 보았으나 자기의 실행과 죄는 보지 못했었다. 다윗도 나단 선지자 앞에서 자기의 범죄를 깨닫지 못하고 타인의 허물을 보고 판단하게 되었다.
신약 성경에 와서 예수님 앞에 간음한 여자를 끌고 나온 사람들을 보자! 그들이 어떠하였는가?
그러므로 사람이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이 없고 자신의 허물과 죄를 알지 못하고 정직성을 상실한 때문이다. "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사단은 [거짓말장이]요 모든 [거짓의 아비]라고 되어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는,그리스도는 진리라고 했다. 그래서 역사를 통하여 계속되는 투쟁은 그리스도 대 사단, 즉 진리 대 거짓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의 말은 우리의 내면적 성품을 드러내 보입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완전히 의로우셨기 때문에,그가 하신 모든 말씀은 의로운 것이다. 사람들은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부인했을 때 그를 판단했던 것과 같이,우리의 말에 의하여 우리를 판단한다. 우리의 언어가 진실하고, 순수하고, 깨끗하면,세상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성품이 얼마간 있음을 알게 된다."A)
1. 이 계명에 대한 위반
(1) 법정에서의 위반 법원은 재판을 시행하기 위해서 세워졌다. 재판은 진리에 기초한다. 그러므로 법정에서의 모든 증거는 진실하여야 하고, 믿을만 해야 한다. 거짓 증거는 재판의 목적을 그릇치고 만다. 어떤 사람이 증인석에서 거짓을 말하게 될때 그는 다른 사람의 재산과 시간과 생명을 빼앗을 수가 있다."B)
(2) 직접적인 거짓말에 의한 위반 무엇이 거짓말인가 ? 사전에 보면 그것은 [모든 종류의 고의적인 기만]이라고 했다. 여러분이 명백한 진리에 반대되는 어떤 말을 지어낼 때 여러분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직접적인 거짓말을 범하고 있다. 여러분이 고의적으로 다른 사람을 기만코자 할 때 그것은 곧 거짓말이다."C)
(3) 험담과 비법에 의한 위반 "전갈은 그 꼬리에 독이 있고, 독사는 그 턱의 뒷부분에 독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비방하는 자와 험담하는 자는 그의 독을 혀에 가지고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권총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지만, 혀로는 사람을 파멸시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다 똑같이 악하게 보신다.d)
(4) 악하고 간사한 말에 의한 위반 아첨에 "의한 위반,침묵에 의한 위반,부당한 비난에 의한 위반, 위선에 의한 위반,그리고 끝으로 하나님께 거짓말하는 위반등이다. 하나님께 거짓말하는 위반은 과거에 교회 예배에 참석하여 그리스도에게 헌신을 다짐했었다. 여러분은 그때 교회에 충실하고,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실천하지 않았다. 여러분은 또 십일조를 바치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수입이 있게 되면 자신만을 위해서 써 버리고, 여러분의 약속을 잊었으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거짓말을 한 것이다.E)
제 10 계명,탐심을 물리쳐라
"이 계명은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계명이다. 그것은 행동 배후에 있는 행동을 조정하는 사상을 보여준다. 즉 성경은 마음을 취급하고 있다. 그 마음이 중요한 이유는 탐심은 기초적인 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은 그 특성이 자기를 본위로 하는 죄악된 인간이다.80) 우리는 그 예를 성경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는데,자기를 본 위로 하는 가운데 죄가 세상에 크게 창궐했다.
I. 탐심에 대한 성경구절
누가복음 12:15,"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마가복음 7:21-23,"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고린도 전서 6:9-10,'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은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탐심은 두가지 면을 가지고 한 말이다. 한면은 선한 것이며, 다른 한 면은 악한 면이다. 탐심은 어떤 것에 대한 욕구이다. 고로 그것이 선한 것일 수 있다.이와 반면에 그것은 비율적이 반 신적이고,또 비기독교적인 육욕의 갈망, 즉 이웃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갈망하는 것은 악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허락에서 떠난 탐심을 증오한다. 이웃에게나 그 어떤 누구에게 속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탐하는 것은 죄가 될 수 있다. 탐하는 것이 죄가 될때,그것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대항하여 범죄하는 원인이 될때,그것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대항하여 범죄하는 원인이 되게 하거나 자신이 범죄하는 원인이 될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계명에서 인간으로 자기 본위와 범죄의 요인이 되는 마음 속에 숨은 탐심을 축출하여야 하고 그것을 잘 다스려야 함을 원하신다.
II. 탐하는 자의 표시
1. 그의 생각이 온통 이 세상것 만으로 가득 차 있으면 그는 탐하는 것임. 2. 그의 대회가 이 세상에 대한 것만일 경우,그는 탐하는 자임. 3. 그의 영혼을 물질적인 것과 바꾸는 경우, 그는 탐하는 자임. 4. 그의 마음이 세상에 집착되어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경우, 그는 탐하는 자임.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