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보호 후기
첫 만남
2012년 3월 29일 인천 지방법원 형사 합의과 소년담당 실무관님이 전해주신 결정문에는 별이 네 개였습니다. 특수절도 두 번, 폭력행위 및 공갈(이상은 2011년), 유해화학물질관리법위반(환각물질흡입) 별이 네 개라 “말 안 듣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4월2일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 소년의 키는 중키(170cm)에 마른체격으로 상양하고 웃음 띤 얼굴로 저에게 닥아 왔습니다. 빨간 머리에 가죽점퍼 외모와는 다르게 내성적 이라고 느꼈습니다. 저렇게 선하게 보이는데 왜 그렇게 사고를 많이 쳤을까? 의아해 했습니다. 예의도 바르고 성격도 밝아 보이는 소년이 왜 반복해서 사고를 쳐야만 했을까? 빨리 가족들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가족 및 성장과정
아빠(2011년 사망) 엄마(33세, 재혼) 누나(20세, 직장인) 소년(18세, 계양중학교 3년 중퇴) 실제 가족은 누나와 소년(김○○)뿐입니다. 생활은 하류로 인천광역시 계양구 임학동 ○○빌라에 살고 있습니다. 아빠와 엄마는 아빠(14세) 엄마(12세)때 만나 그 이듬해 누나를 낳았고, 2년 후 소년이 태여 났습니다. 물론 부모님은 학교는 그만 두었습니다. 이 어린 부부는 알바라는 것은 거의 다 하면서 그래도 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생활고에 시달려 소년이 첫돌이 되기 전에 엄마가 단봇짐을 싸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근거리에 외할머니와 외삼촌(20대)이 계셨지만 경제적 도움은 없었습니다. 누나와 소년의 생활은 기초수급자로 열악했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아슬아슬한 삶속에서 사고를 치게 됐습니다.
꿈에서나 볼 수 있고 먼발치로 보고 눈물을 흠쳤 던 그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분신과 같은 잊지 못 할 아들의 소식을 듣고 앞뒤 생각할 것 없이 한 걸음에 법원으로 달려온 엄마, 그 곳에서 만나서는 안 될 전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13살에 첫아이 낳고 15살에 둘째를 낳았는데, 앞이 안 보이는 삶, 희망이 없는 삶,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삶은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됐습니다. 현재의 시간 속에서 과거와 미래란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작은 보따리 하나 옆에 끼고 대구에 모 섬유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둘째 남편을 만나 결혼해서 첫째가 인천 신흥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소년의 아빠는 십오년이 넘게 부인을 학수고대 기다리며 술 담배 끊고 성실하게 궂은일 마다 않고 남매를 키워왔습니다.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났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남의 부인(중구 신흥동 ○○아파트)이 되어 만나게 될 줄이야! 그렇게 사랑했던 여인인데 그렇게 기다렸던 여인인데, 자신이 무능해서 못해준 미안함 보다는 남의 사람이 되어 그의 앞에 나타난 부인을 보니 가슴속 저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는 자생력 잃은 숨죽인 배춧잎처럼 되여 살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택을 했습니다. 소주에 세코날(수면제) 다량을 타마시고 영원히 올 수 없는 나라로 갔습니다.
폭발한 감정의 불씨는 대개 판단력의 부족에서 만들어 진다고합니다. 어째든 아빠는 그렇게 2011년 이른 여름에 아이들 곁을 떠났습니다.
소년 자신의 불미스러운 행동에 꿈에서도 그리던 엄마, 초등학교 3학년 봄에 “내가 너의 엄마다”라고 학교에서 엄마의 존재를 알려준 엄마를 만난 것은 좋지만 아빠를 잃었습니다. 아빠는 소년의 근육질의 날개 역할을 하셨는데... 맹인이 지팡이를 잃은 격이었습니다. 희비가 엇 갈렸습니다. 엄마를 만났지만 함께 살수 없는 현실은 더욱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그래도 같은 하늘아래서 같은 도시에서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 전화해서 짧은 시간 안에 만날 수 있는 것만도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생활상
3월 29일 1시40분경에 결정문을 읽고 난 후 소년의 모친께 전화를 해서 ○○이가 중학교 편입할 수 있으면 보낼 의향이 있는지를 물으니 2년간 학교에 안 갔는데 편입이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힘 좀 써주세요. 그 말에 힘을 얻어 벌써 새 학기가 한 달이 지났기에 서둘러 알아보니 학교에서도 동행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소년 본인이 자존심(2년 후배와 동급) 때문에 못 가겠노라며 끝내 복학을 안했습니다. 학교 복학도 서둘러야 했고 학원등록도 서둘러야했습니다. 검정고시가 4월에는 시험을 못 보지만 8월에는 시험을 치러야하기 때문입니다. 4월6일 점심시간에 만나 함께 식사 후에 학원등록을 했습니다. 몇 차례 만나면서 “너는 할 수 있어, 포기만 하지 마!” “이번에 포기하는 것은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다. 포기하지 마! 그렇게 그리워하던 엄마를 만났는데, 좋은 모습 보여 드려야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너는 할 수 있어! 다른 사람이 한 일은 누구나 언제든지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거야!” 수없이 어르고 달랬습니다.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할 유년기에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공부보다는 엄마를 만나기를 원하고, 함께 살기를 원하는 일편단심 오직 엄마의 사랑에 목말라 하고 사랑에 굶주려 공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화해 보면 빈방에 우두커니 혼자 천정만 바라보고 누워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얼마 후 전화를 받지 않기에 문자로 답장 달라고 했지요. 바빠서 통화 할 수가 없습니다. 학원 다니며 알바하고 있습니다. 검정고시 학원만 다니면 안 되느냐고 했으나 생활고 때문에 안 된다고 했습니다. 물질로 도울 수 없으니 안타까웠습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돈 벌면서 실습한다고 했습니다. 장소는 엄마가 신포시장에서 장사하시는데 오가며 먼발치에서라도 엄마 얼굴 보기위해 신포동으로 옮겼다고 해,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었으면 저럴까, 코끝이 시큰했습니다.
조카의 결혼식에 초대해 뷔페음식 마음껏 먹였습니다.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는데 자신감 있고 활기차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7월3일 오후 경인전철 하행선 내에서 만났습니다. 알바 하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요즘 평화스럽게 지내며 학원과 알바, 가족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열심히 살고 있다고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얼마나 대견하고 고마운지 코끝이 찡하고 눈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어떤 생각이든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삶에 끌려 다니기보다 자신의 의지로 원하는 삶을 끌어낸다고 했지요. 이 소년은 벌써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고마웠습니다. 다른 친구보다 일찍 철이 든 것 같았습니다. 개과천선 한듯하여 더 고마웠습니다.
8월7일 전화 통화가 돼 시험이 어려웠는지 쉬웠는지 묻고 잘 본 것 같으냐고 하니 “잘 봤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처음부터 좁히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8월 24일 밤10시30분 전화해서 검정고시 합격자 발표 했느냐. 합격했느냐.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검정고시도 합격했고 바리스타도 합격했다고 해 기쁨이 두 배가 되었습니다. 장하다. 포기만 안 하면 할 수 있다고 했지. 맛있는 것 뭐 사줄까? 물으니 아빠가 살아계실 때 이만 때면 보신탕을 잘 사주셨는데, 보신탕 사 주셔요. 그래 낼 만나자. 작은 책 한 권 선물하며 보신탕과 삼계탕을 함께 먹었는데 그런 맛은 또 처음 이였습니다.
생모는 3월에 만나보고 아직 만나보지 못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전화하는 것 보다 만나서 자랑도하고 싶은데 못 만나 서운해 했습니다. “이제 너도 컸으니 엄마를 이해해 주렴. 무슨 사정이 있을 거야. 엄마는 너희들이 얼마나 보고 싶겠니.” 다독여 줬습니다.
9월8일 위탁보호기간이 끝이 났어도 궁금해서 직장의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전화를 했습니다.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했는지를 물으니 안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과정은 더 어렵다. 그리고 공부는 쉬지 말아야 한다고 등록을 재촉했습니다. 다음 달에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랍니다.
얼마 후 전화통화해 전과같이 일하며 학원에서 공부한다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래 지금처럼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야 된다. 열심히 하라고 격려 했습니다. 갑자기 아빠가 보고 싶다고 아빠 애기를 했습니다. 아마 고등학교 과정 검정고시를 패스하면 아빠가 계시면 대학도 갈수 있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 아빠가 보고 싶어요.” “돌아가셨는데 어쩌겠니. 아빠가 보고 싶으면 선생님한테 전화해.”“전화해도 돼요.”“그래. 해!”어느 날 문자가 왔습니다. “아빠가 보고 싶어요.” “참아야지 어쩌겠니?”라고 답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 그게 아닌데, 나를 만나자는 이야긴데, 내가 실수했구나. 내가 눈치가 없어, 혼자 자책하며 전화를 했습니다. 받지를 안습니다. 보고픔을 마음속으로 삭히고 삭혀 아빠와의 추억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위로를 받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2013년 4월 말경 전화하니 받지 않았습니다. 문자로 검정고시 합격했는지를 물으니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또 도전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2013년 9월 초 “선생님 검정고시 합격했습니다.” 메시지가 왔습니다.
“장하다. 축하한다. 한번 만나자. 너는 해낼 줄 알았어! 세상은 너를 위해 있는 거야!” 행운은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오래 머문다고 했습니다. 노력을 쏟을 가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 소년에게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여명이 밝아옵니다. 샛별이 빛을 발합니다. 하늘이 열리기 시작 했습니다. 모진 바람에도 꺾기지 않는 대나무처럼 열악한 환경에도 포기하지 않고 환경 탓하지 않고 도전하여 청소년의 힘겨운 사춘기를 잘 넘기고 있어서 소년이 참 고맙고 대견스러웠습니다. 한 순간의 일탈의 충동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겨낼 수 없지만, 그 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담당검사님, 판사님, 실무관님, 그리고 많은 위탁보호 위원님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를 기원해 봅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탁보호위원 박 윤 찬.
2015년 3월 18일 이른 봄.
첫댓글 맘이 따뜻해 지네요~~^^
정말 멋지십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정말 자랑스럽네요^^
감사합니다. 그 소년에게 박수가 아깝지 않죠?
선생님들의 사랑이 느껴지네요 검정고시 합격 축하드립니다..따듯한 세상입니다.. 청소년 여러분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그아이에게는 선생님이 큰 지지자이면서 큰 산이 되어주신것 입니다
눈물 나는 사연이네요~~
삭막한 세상이지만 이렇게 따뜻한 정으로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모습 감동이 전해져 옵니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감격스럽습니다.
세상의 빛된 감동적인 사연이네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위 모든 선생님들 격려해 주샤서 감사합니다.
이대로 쭉~ 잘되기를 바랍니다.
잘 사는 게 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해낸 소년도, 옆에서 마음으로부터 사랑을 보내는 위탁보호자도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