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숑 칸쏘네, 세 번째 이야기 - 에디트 피아프 2.
피아프 말년의 걸작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Non, je ne regrette rien’는 당시 거의 무명이었던 샹숑가수 샤를 뒤몽 (Charles Dumont, 1929-, 대표곡 Mon Dieu, Les Amants, 내 생애의 마지막 여인 -Femme De Ma Vie)이 작곡한 바, ’60년 올랭피아극장에서 공연 준비 중이던 피아프에게 보여, 그녀가 바로 레퍼토리를 바꾼 명곡입니다. 제2의 ‘사랑의 찬가’인 이 노래는 피아프가 만신창이 상태에서 혼신의 힘을 발휘하여 초연한 노래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아니요,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절대로
좋았거나 나빴거나 마찬가지로
아니요, 절대로, 나는 후회 없어요
빚을 갚았고, 지난 일이고, 잊힌 과거이니까요
......
Non Je Ne Regrette Rien Non, Rien De Rien,
Ni Le Bien Qu'on M'a Fait, Ni Le Mal
Tout Ca M'est Bien Egal
Non, Rien De Rien, Non, Je Ne Regrette Rien
C'est Paye, Balaye, Oublie, Je Me Fous Du Passe
......
우리는 죽는 순간,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 첨언 1.
“노래를 못하면 살 수 없고, 죽음보다 외로움이 더 무섭다” -에디트 피아프의 말.
2012년 파트리샤 카스 (Patricia Kaas, 1966- )가 에디트 피아프 사후 50주년 기념 헌정 공연을 위해 한국에 다녀갔는데, 피아프에 대한 오마쥬를 온전히 바치고 갔다고 합니다. 저는 ’94년 카스의 첫 내한공연 때 세종문화회관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카스는 ‘Mon Mec a Moi(내 남자)’, ‘Kennedy Rose’ 등 히트곡이 제법 있는데, 프랑스 광부의 딸이지만 독일인 어머니를 두어서인지, 목소리가 지나치게 굵고 ‘보이시’할 뿐, 피아프처럼 영혼을 울리지는 못합니다, 섹시하다고 하면 할 말 없지만.
- 첨언 2.
에디트 피아프는 너무도 유명하여, 그의 일생은 숱한 전기와 함께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가장 최근의 영화가 2007년의 ‘라 비앙 로즈’입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들만 해도 연극 ‘피아프’, 뮤지컬 ‘빠담 빠담 빠담’, 발레 뮤지컬 ‘사랑의 찬가’ 등이 있습니다. 그녀의 열정과 사랑, 영화(榮華)와 불행이 담긴 파란만장한 일생이 아직도 우리에게 치유와 위안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 첨언 3.
피아프가 ABC 뮤직홀 데뷔 공연 시 참석한 장 콕토는 ‘르 피가로’에, “피아프 이전에 피아프는 없었고, 피아프 이후에도 피아프는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답니다.
피아프와 콕토는 평생을 소통한 친구였으며, 콕토는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녀는 위대했다. 피아프와 같은 이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고, 네 시간 후 심장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이, 우리가 밤새워 쓰는 시(詩)가, 자신의 고별사(告別辭)가 될 수도 있습니다. 듣고 있는 이, 들어줄 이, 그 누구일까요.
- 첨언 4.
영화 라 비앙 로즈의 엔딩곡이 바로 ‘아니요,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 Non, je ne regrette rien’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인셉션’에도 나오고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 The Dreamers, 2003’에서도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가깝게는 아카데미 5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의 ‘라이언일병 구하기’에서도 피아프의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마지막 전투 씬이 있기 전, 폐허가 된 마을을 배경으로 폭풍전야의 적막 속에서 ‘당신은 어디에나 있어요 Tu Es Partout’가 울려 퍼집니다.
- 첨언 5.
그녀가 진실로 사랑했던 사람은 마르셀 세르당 뿐이었다고 합니다.
둘의 사랑은 짧았고 비극이었지만 두 사람의 편지는 책으로 만들어져 아직도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보고 싶어요. 빨리 와줘요. 배는 너무 느리니 비행기로 오세요.” 피아프의 재촉이 세르당을 죽음으로 이끈 원인(遠因)이었고, 피아프는 자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아프가 죽도록 사랑했던 세르당을 보내고 직접 작사했다는 ‘사랑의 찬가 Hymne à L'amour’입니다.
푸른 하늘이 우리들 위로 무너진다 해도
모든 대지가 허물어진다 해도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사랑이 아침마다 넘쳐흐르고
내 몸이 당신의 손아래 떨고 있는 한
나에게 문제될 것은 없어요,
내 사랑, 당신이 날 사랑하니까요
세상 끝까지 가겠어요
금발로 머리를 물들이기라도 하겠어요
만약 당신이 그렇게 원하신다면
하늘의 달이라도 따러 갈 거예요
운명이라도 훔치러 갈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원하신다면
조국도 버리고 친구도 버리겠어요
사람들이 날 비웃는다 해도
나는 무엇이든 해낼 거예요
당신이 원하신다면
어느 날 인생이 내게서 당신을 빼앗아 가더라도
만약 당신이 죽어서 나로부터 멀어진대도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그런 건 문제 없어요
왜냐하면 나도 죽을 테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끝없는 푸름 속에서
둘만을 위한 영원함을 가질 거예요
이제 아무 문제도 없는 하늘에서......
내 사랑, 우리가 사랑한다는 걸 믿나요?
신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어준대요
- 첨언 6.
걸프전 전후의 이십대 후반, 생애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갔었습니다.
파리의 어느 지하철역에서 비행기 표를 잃어버려 난감해하다 소르본느 대학생이던 ‘오드리’라는 여자에게 도움을 받았었죠. 그녀는 나를 어느 다락방으로 이끌었습니다. 촛불 아래에서 싸구려 와인을 마시며 서툰 영어로 밤새 샹숑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피아프의 ‘빠담 빠담’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오드리가 열심히 설명해주었는데, 잘 알아듣지 못했었습니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정도이겠지요.
늦게까지 이야기 나누다 슬리핑백을 내주어 춥지 않게 잤었는데, 커피머신에 타이머가 있었던 듯 원두커피 향과 함께 눈을 떴었습니다. 후각의 기억은 오감 중에서 가장 센 듯합니다. 아직까지 괜찮은 커피 향을 맡으면 그 새벽이 떠오르니까요... ‘별일’은 없었습니다.
- 첨언 7.
개인적으로 ‘아시아의 가희(歌姬)’, 등려군 (鄧麗君, 1953-1995)이 피아프와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출생지인 타이완뿐만 아니라, 홍콩, 중국, 일본까지 동아시아를 석권하며, 숱한 히트곡을 남긴 그녀의 일생도 짧았습니다.
타이 치앙마이의 어느 호텔에서 천식 발작으로 죽었다고 하는데, 14세 연하 프랑스인 동거남이 최후를 지켰다고 합니다.
한국사람, 중국의 KTV(노래방)에 가면 거의 두 가지 노래 밖에 안 합니다. 인도네시아 민요를 번안한 첨밀밀(甛蜜蜜)과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 첨언 8.
현대 샹숑의 태동은 1차 대전 이후부터라고 봐야 하겠습니다만, 본격적인 샹숑의 전성기는 에디트 피아프가 활동한 1940년대부터 여러 샹소니에와 아티스트들이 활약한 80년대 정도 까지라고 해야 하겠지요? 세계화, Globalization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미국식 팝에 순수 혈통이 파괴되어 버린 샹숑.... 음유시인(吟遊詩人)들의 시대는 다시 오지 못하겠지요?...... 어찌 보면 피아프라는 큰 별도 그 시대의 산물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에디트 피아프 편 끝.
-정형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