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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향토문화와 전설 스크랩 제주신화 본풀이 연재자료
신전가인 추천 0 조회 74 11.05.04 12:1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제주 신화 연재를 시작하며

허남춘_교수



기록 신화로서 그리스․로마의 신화가 중심이라면, 구비 신화로서는 제주가 세계의 중심이다. 그만큼 제주에는 다양하고 풍부한 신화가 구전되고 있고, 이는 우리나라의 자랑이다.


언어에는 말과 글이 있다. 이제까지 세계 학자들은 기록문화만을 놓고 문화의 우열을 논했고, 기록을 토대로 역사의 실증을 논했다. 그러나 20세기부터 그런 편중된 사고는 청산되었다. 기록보다 오히려 구전이 과거의 삶과 문화를 온전하게 전하는 증거물로 삼게 되었다. 글로 된 것도 중요하지만, 말로 된 것이 더욱 중요한 실증자료로 부각되었다. 20세기까지는 유럽 중심의 세계관이 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유럽의 제국주의가 청산되고, 제3세계 즉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고, 제3세계의 구전 자료와 비기록적 표징 속에서 인류의 유산을 찾는 작업이 중시되고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구전자료들이 단편적인 전승을 보여주는 데 반해, 제주에는 무당들의 노랫가락 속에 풍부한 신화가 전승되고 있고, 이 신화 속에는 오래된 인류의 기억들이 온전하게 남겨져 있어 우리의 자랑이 된다. 이를 토대로 인류문화의 흔적을 재구할 수 있게 되니, 제주는 신화의 수도(首都)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신화는 건국신화 위주여서 세계 신화와 견주어 볼 때 빈약하다고 하겠다. ꡔ삼국유사ꡕ ꡔ삼국사기ꡕ의 기록을 토대로 단군신화, 고주몽(고구려)신화, 박혁거세(신라)신화, 김수로(가락국)신화가 신화 반열에서 논의될 뿐 창세신화, 인류창조신화, 만물창조신화, 인간 운명을 관장하는 신에 대한 신화가 미미하다고 평가된다. 결국 3국의 건국시기인 BC. 1C-AD. 1C 고대국가의 출현이나, 단군조선의 건국시기인 BC. 10C-BC. 7C(BC. 23C는 무시됨) 역사를 언급하는 수준이다. 5000년의 오랜 역사에 비추어 민족의 기원과 활약에 대한 정보는 보잘 것 없는 수준이고, 5000년 역사의 앞 부분에 대한 현실적 접근과 규명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의 기록에 의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침해당하고 종속되기도 한다. 기록이 부족하면 구비전승에서 보완하면 된다. 역사를 보완하는 신사고가 바로 구비(口碑)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제주에는 육지와 주변 국가가 지니지 못한 구비전승이 매우 풍부하다. 3만 년에서 만 년 사이의 중석기 시대의 사유와 이후 신석기 시대의 사유가 신화 속에 남아 있다. 말로 전하는 제주 서사무가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제주신화 속에 장구한 한민족의 삶과 역사가 담겨 있고, 고대사를 유추할 수 있는 근거 구술들이 가득하다. 창세신화, 운명신화, 만물창조신화도 풍부하고, 공동체문화를 담보한 당신화, 동일 직업집단(혹은 조상 집단)의 조상신화가 있고, 우주와 개인을 잇는 다양한 신화체계가 존재한다. 이를 활용하여 한국신화의 다양하고 풍부함을 주장할 수 있고, 한국 고대 사유체계에 대한 탐구를 깊이 있게 할 수 있다.

서사무가의 전승이 한반도 지역과 달리 제주에서 왕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우선 제주에 무속이 풍부하게 남아 있다는 조건을 해답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육지와 달리 무속이 계속 남아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에서 중세로의 시대적 전환 속에서 정치적 중심부와 정치적 입김이 미치는 지역은 불교․유교란 중세 보편주의 문화의 영향을 입게 된 데 반해, 제주는 섬이라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그 영향력이 미약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제주는 부족공동체의 고유성을 강하게 지키며 당신본풀이를 유지할 수 있었고, 중세사회로의 전환 속에서도 고대 자기중심주의의 전통을 오랜 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중세적 요소를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제주가 중세 국가의 직접적 통치를 받게 된 것은 고려 후반 혹은 조선 전반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세 이념의 강요와 침투가 미약했고, 이런 까닭에 무속이 배척당하기보다는 무속 안에 유교와 불교를 포용하는 변화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제주의 서사무가 속에는 오래된 과학의 기억이 담겨 있기도 하다. 천지왕본풀이에서 해와 달이 두 개인데 이를 조절하였다는 것은 자연현상의 기억이다. 해가 둘이어서 인간들이 더워 살 수 없었다는 것은 지구가 경험한 혹서기를 의미하고, 달이 두 개여서 인간들이 추워 살 수 없었다는 것은 혹한기의 기억이라 하겠다. 오래 전 인간들이 경험한 자연현상을 신화는 인문현상으로 그리고 있는데, 인간들이 지혜로 그 자연조건을 해결한 과학의 측면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

<제주의 신화> 연재는 이러한 제주 신화에 담긴 역사와 민속, 과학과 철학을 탐구함으로써 제주문화가 지닌 특성을 밝히고 더 나아가 그 사유의 원천을 이해함으로써 현대인이 가져야 할 가치와 덕목을 일깨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가주의에 의해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획일화된 현실에서, 지역학의 중요성과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제주의 삶과 사유와 지향이 담긴 제주 서사무가에 대한 고찰은 더없이 중요하다.



제주신화 ①

천지왕 본풀이


태초에 세상은 암흑과 혼돈의 상태였는데, 하늘과 땅이 서서히 떡징처럼 벌어지기 시작하고, 땅에는 산이 솟고 물이 흐르게 되었다. 하늘에서 청이슬이 내리고 땅에서 흑이슬이 솟아 만물이 만들어지는데, 먼저 견우성 직녀성 노인성 북두칠성과 같은 별이 생겨났다. 이어서 닭이 울어 세상이 밝아졌다고 한다.

아직 천지의 혼돈이 바로잡히지 않은 시절이었는데, 하늘의 천지왕이 지상에 내려와 총맹부인과 결합한 후 며칠이 지나서 증표만 남기고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 얼마 후 대별왕과 소별왕이 탄생하고, 이들이 자라나 아버지를 찾자 아버지가 남겨 둔 박씨를 내준다. 대별왕과 소별왕이 박씨를 심자 금세 넝쿨이 하늘나라로 뻗어 올랐고, 형제는 이 줄기를 타고 하늘나라에 가서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천지왕은 두 형제에게 이승과 저승을 나누어 다스리도록 했다. 수수께끼와 꽃피우기 내기에서 이긴 형 대별왕이 이승을 차지해야 했는데, 동생이 잠자기 내기를 하자고 유혹해 꽃을 바꿔치기하고 트릭으로 이승을 차지하게 된다.

소별왕이 이승에 와 보니 하늘에는 해도 둘, 달도 둘이 떠서, 낮에는 더워서 죽을 지경이고 밤에는 추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사람과 귀신이 뒤섞여 있었고, 초목과 새와 짐승이 말을 하여 혼란스러웠다. 동생은 형에게 부탁하여 해 하나와 달 하나를 없애 지금처럼 해와 달이 하나가 되고 살기가 편해졌다. 그리고 저울을 가져와 백 근이 차는 것은 인간, 백 근이 못 되는 것은 귀신으로 갈라놓고, 송피가루를 세상에 뿌려 초목과 새와 짐승이 말을 못하도록 만들어 자연의 질서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소별왕이 형과 세상을 속여 이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이 인간세상에는 역적과 살인과 도둑과 간음이 판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별왕이 차지한 저승세계는 맑고 공정한 법이 적용된다고 한다.


천지개벽

하늘과 땅이 갈라지고 산과 물이 생겨났으며, 하늘에서 내린 물과 땅에서 솟은 물이 합수하여 세상만물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물은 생명수이고, 정액이다. 음양의 태초 원리가 작동하고 있고, 그때 천지가 개벽한다. 닭의 울음으로 태초의 어둠과 혼돈이 사라졌다. 우리들의 아침은 닭의 울음소리로 시작되듯이, 태초의 아침도 천황닭의 울음소리로 밝아온다. 만물 중에 별이 제일 먼저 만들어졌다고 하니, 우주의 형성과정에 대한 선조들의 과학 지식이 놀랍다. 그 후 인간이 탄생한 이야기도 있을 법한데, 사라지고 말았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하늘에서 금벌레, 은벌레가 떨어져 금벌레는 남자가 되고, 은벌레는 여자가 되어 결합하였다고 한다.


천지왕과 총맹부인의 결합

하늘과 땅이 아득하게 멀어졌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천지왕과 땅의 총맹부인은 결합하여 두 아들을 낳는다. 두 아들은 아버지가 준 박씨를 심어 넝쿨을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가게 되는데, 이 넝쿨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통로역할을 한다. 옛날에는 하늘과 땅의 통로가 있었다. 후에 사악해진 인간 때문에 이 통로는 사라지고 만다. 하늘의 뜻을 모르고 사니 하늘의 재앙이 임박한 것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박씨 넝쿨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이야기는 서양 동화 ‘재크와 콩나무’에서 익히 들어왔다. 우리 것은 모르고 서양 것은 잘 아는 우리의 천박함을 반성해야 한다.


해와 달의 조절

태초에는 해와 달이 둘 떠 있어서, 낮에는 더워서 죽을 지경이고, 밤에는 추워서 죽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 더위는 인간이 경험한 혹서기의 기억이고, 추위는 인간이 경험한 혹한기의 경험이다. 지구가 한 때 무진장 더웠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증가로 점점 더워져 빙하가 녹기 시작하는데, 얼마 후면 겪게 될 그런 세상이 아닐까. 또 지구는 4-5회의 빙하기를 지내왔는데, 현생인류의 시조들은 뇌의 혁명, 지혜를 축적하여 그 추위를 무사히 견뎠다. 신화는 이렇게 지구의 경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초목과 새와 짐승이 말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인간 중심의 사회가 만들어진 상황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대별왕이 지배하는 세상은 신명(神明)세상이고, 소별왕이 지배하는 세상은 문명(文明)세상이라 말할 수 있다. 인간만 중시되는 문명세상에서 자연이 엄청나게 파괴될 수밖에 없고 급기야 지구 멸망은 어두운 그림자를 보게 된다. 인간과 자연과 온생명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신명세상은 저승에서나 가능한 것인가. 쓰는 것을 아끼고 나눌 줄 알면 이승에도 신명세상이 가능할 것이다.


제주신화 연재 ②

삼승할망본풀이


동해용왕과 서해용왕 따님 사이에 딸이 하나 태어났다. 이 아이는 한 살 적에 어머니 젖가슴을 쥐어뜯은 죄, 두 살 적에 아버지 수염을 뽑은 죄, 세 살 적에 곡식을 흩트린 죄, 이후 불효죄로 용궁에서 쫒겨나게 된다. 어머니는 쫒겨나는 딸 아기에게 인간세상에 가서 아이를 잉태시켜 낳게 해 주고 길러주는 ‘생불왕’으로 살도록 해 주었다. 동해용왕 따님아기는 어머니가 가르쳐 준 대로 인간세상에서 만난 임박사 부인에게 잉태를 주었고 열 달이 되어 해산을 시켜주어야 하는데, 어디로 해복시키는지 미처 알지 못하고 왔기 때문에 결국 산모와 아이가 모두 죽을 지경이 되었다. 남편 임박사가 옥황상제에게 사정을 호소하며 빌자, 옥황상제는 인간세상에 있는 명진국 따님아기를 불러올려 생불왕으로 임명하고, 생불을 주고 환생시키는 법을 일러준다. 명진국 따님아기는 생불왕으로 지상에 내려와 동해용왕 따님아기를 만나 누가 진정한 생불왕인지 가리기 위해 다시 옥황상제에게 올라간다. 둘은 꽃 피우기 경쟁을 하여 이긴 자가 생불왕으로 인정받기로 한다. 이 경쟁에서 명진국 따님아기가 이겨 생불왕(삼승할망)이 되어 인간세계의 탄생을 주재하게 되고, 동해용왕 따님아기는 저승할망이 되어 저승에서 죽어간 아이의 영혼을 차지하는 신이 되었다. 명진국 따님아기는 인간세상을 돌아다니며 생불꽃과 환생꽃을 가지고 아이의 잉태와 해산을 맡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은 붉은 이슬법으로, 딸은 흰 이슬법으로 탄생한다고 한다.


생불꽃

명진국 따님아기가 삼승할망이 되어 이 꽃을 가지고 다니며 아이를 잉태시킨다고 한다. 여기서 생불은 生佛(살아 계신 부처님)을 뜻한다고 하여 불교적인 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불은 ‘아기’ ‘인간’ ‘자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면 좋겠다. 그러니 생불꽃은 아기를 잉태시키는 꽃을 말한다. 동해용왕 따님아기와 명진국 따님아기는 둘 다 생불왕이다. 그런데 해산시키는 데 실패한 동해용왕 따님아기는 구삼승할망(구할망)이고, 아이를 잘 해산시켜주는 명진국 따님아기는 삼승할망(명진국할머님)이다. 둘의 경쟁은 꽃씨를 뿌려 누가 번성하는 꽃을 피우는가인데, 하나의 꽃씨를 피우는 능력이 아이의 잉태를 가능케 하는 능력으로 전이된다. 삼승할망은 아이의 탄생만이 아니라 양육까지 책임지는 신이다. 15세 어른이 되기 전까지 모두 할망의 덕으로 아이가 자란다. 그 할망은 천지자연이다.


탄생

아버지 몸에 흰 피 석 달 열흘, 어머니 몸에 검은 피 석 달 열흘, 살을 만들며 석 달, 뼈를 만들어 석 달, 아홉 달 열 달 준삭 채워 어머니의 자궁으로 해산이 이루어진다. 우리의 몸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피와 살과 뼈를 받아 이루어졌으니, 내 생명이 부모의 은공임을 알게 해 준다. 그러나 어찌 아버지와 어머니의 공이기만 하랴. 하늘이 도와 삼승할망을 냈으니 탄생의 공덕은 하늘에도 있고, 땅이 우리를 실어주고 땅이 키운 만물을 먹고 자라니 천지만물이 모두 우리의 부모인 셈이다. 결국 하나의 꽃씨가 곡식이 되고 풀이 되고, 인간을 키우는 근원이다. 우리는 하나의 꽃씨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천지부모의 덕으로 산다. 천지자연을 능멸하고 파괴만 일삼는 21세기의 인간은 스스로 생명의 씨앗을 죽이는 셈이다. 깊이 반성할 일이다.


마마신의 방해

아이의 잉태와 해산, 그리고 양육을 책임지는 삼승할망 이야기에는 마누라본풀이가 덧붙어 있다. 삼승할망이 급히 해산을 시켜야 할 자손이 있어 서천강 다리를 건너는데, 대별상 행차와 마주치고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대별상은 마마신으로 인간 자손에게 천연두를 내려 삼승할망의 양육을 방해하는 신이다. 할망은 공손히 꿇어앉아 자손에게 고운 얼굴로 마마를 시켜달라고 빈다. 후에 대별상의 마누라가 열두 달이 지나도 해산을 하지 못하게 되자, 지난 일을 용서하고 마누라의 해산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예전에 마마를 앓게 되면 치사율도 높았을 뿐만 아니라, 낫게 되더라도 얼굴이 얽어 곰보가 되었다. 마마(천연두)는 이제 지구상에서 사라진 질병이지만,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던 병마였다. 이 마마라는 병(악마)을 해결하는 또 다른 신이 처용이다. 처용가도 무속의 노래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에게 무서운 병마를 해결할 다른 방도가 존재하지 않았고, 다만 무당의 굿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니, 당대인에게 무당의 굿은 과학 이상이었을 것이다. 굿을 하면 그래도 70%의 사람들이 죽지 않았으니 굿의 효용성을 무시할 수 없다. 육지에서는 마마를 방지하기 위해 처용의 형상을 대문에 걸었고, 제주에서는 삼승할망의 공덕에 의지하였다. 세상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방도를 무속 굿과 삼승할망이란 신에게서 찾았다는 측면에서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


제주의 신화 연재 ③

초공본풀이


임정국 대감과 짐진국 부인 사이에 자식이 없더니 절에 빌어 늦게 여자아이를 얻었는데, 가을 단풍이 드는 철에 태어났다고 하여 그 이름을 ‘저 산 줄이 벋고 이 산 줄이 벋어 왕대월석 금하늘 노가단풍 지맹왕 아기씨’라 했다. 임정국 대감과 짐진국 부인이 옥황상제의 명으로 벼슬을 살러 떠나게 되자 아기씨는 집에 홀로 남겨지고, 살창을 만들어 자물쇠롤 단단히 잠그고 구멍으로 밥을 넣어주었다. 어느 날 시주를 받으러 온 주자 선생은 아기씨가 갖힌 살창의 자물쇠를 열고, 전대에 살을 붓는 아기씨의 머리를 세 번 쓰다듬고 떠났는데 그때부터 태기가 있게 되었다. 급한 전갈을 받고 온 부모는 아기씨를 집에서 내쫓고 아기씨는 방랑의 처지가 되었다. 용왕의 사자인 거북의 도움으로 바다를 건너 주자 선생을 만나고, 불도 땅에 내려가 세 형제를 낳았으니, 맞이는 본맹두, 둘째는 신맹두, 셋째는 삼맹두라 했다.

그들은 집이 가난하여 어렵게 서당에 다니고, 아궁이 재를 모아 글씨를 썼기 때문에 잿부기 삼형제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들 삼형제는 삼천선비와 함께 과거를 보러 가서 선비들의 갖은 방해와 모략을 극복하고 장원급제한다. 그러나 삼천선비의 위계로 어머니가 삼천천제석궁에 갖히게 되고, 세 아들은 벼슬을 버리고 온갖 시련을 견뎌 어머니를 구한다. 그리고 삼천선비를 복수하고 그 과정에서 무구(巫具)를 만들고 굿하는 법을 시작하게 되었다. 삼형제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팔자를 그르쳐 무당(심방)이 되었으며, 후에 무업을 유씨부인에게 전하였고, 오늘날도 그 굿법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1. 고구려 건국신화와 유사

<초공본풀이>는 육지의 <제석본풀이>와 유사하다.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홀로 남겨져 있던 당금애기가 스님에게 시주를 하다가 손을 접촉하고 임신하여 아들 셋을 낳고 온갖 시련을 극복하여 자신은 삼신(탄생을 주재하는 신)이 되었고 아들은 삼태성이 되었거나 삼산(三山)의 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고구려 건국영웅인 <주몽 신화>는 제석본풀이가 역사화 된 흔적을 보인다. 해모수와 사통하여 임신한 유화가 주몽을 낳았고, 아비 없이 자란 주몽은 잿부기 형제처럼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을 받고, 주변 금와왕의 아들에게 죽을 위협을 당하지만, 시련을 극복하고 왕위에 오른다는 영웅의 일생이다. 유화는 햇빛에 접촉하여 임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한데, 그 탄생의 신성함을 드러내기 위해 신비화시킨 흔적이다. 중이 머리를 쓰다듬었다거나 손을 잡아 여인(당금애기와 지명왕 아기씨)가 임신하였다는 것은 불교가 들어온 후에 변모한 내용이다. 애초에는 해모수와 같은 신성한 영웅과 결합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초공본풀이>는 신성한 인물과 접촉하여 낳은 삼형제가 시련을 극복하고 무당의 조상(巫祖)가 되었다는 신화다. 이런 신화가 생성될 때 무교 즉 샤머니즘은 지배층의 종교였고, 그 당시 지배자는 무당의 역할을 함께 하였다. 후에 불교가 들어와 무당이 민간 무당으로 전락되고 말았지만, 애초 무당은 국가 무당으로서 지배자의 권능을 함께 지닌 존재였다. 그러니 삼형제는 <삼성신화>의 고 ․ 양 ․ 부 삼신인(三神人)과 같은 국가의 지배자다.


2. 대장장이와 쇠를 다루는 능력

지명와 아기씨가 낳은 삼형제는 아버지를 만날 때 하늘과 땅과 문을 처음 보았다고 했고, 과거에 급제할 당시 천지혼합(天地混合)과 천지개벽(天地開闢)이란 글을 썼다고 하는데, 이는 삼형제가 천(天) ․ 지(地)와 통하는 문(門)을 관장하는 신격이고, 천지가 혼합되어 있던 것을 개벽시킨 능력과 연관되는 존재다. 삼형제는 동해바다의 쇠철이(대장장이) 아들을 불러와 여러 기구를 만들었다고 하니, 쇠를 다루는 철기문명의 주역이기도 하다. 신라의 탈해는 숯과 숫돌을 감추었다가 호공의 집을 빼앗고 나중에 왕이 되는데, 그도 대장장이 - 쇠를 다루는 능력을 지닌 자다.

삼형제가 중의 자식이어서 과거에 낙방했다는 내용은 후에 덧붙여진 것이니, 과거제도란 유교가 들어온 후의 것이고, 스님이란 불교가 들어온 후의 것임에서 잘 알 수 있다. 애초에는 삼형제보다 큰 권력을 지닌 방해꾼들에 의해 시련을 당하다가,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투쟁에서 승리한다는 영웅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초공본풀이>는 기이하게 탄생한 자가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기존의 세력을 제압하여 승리자가 되는 영웅의 일생이다.


3. 어머니 ‘지명왕 아기씨’의 능력

아기씨가 집에서 쫓겨나 방랑하다가 자기를 임신시킨 주자 선생을 만나게 되는 대목에서 우리는 즐거운 해후를 기대했다. 그러나 주자 선생은 아기씨에게 두 동이의 엄청난 벼를 손톱으로 까라는 시련을 준다. 아기씨가 손톱으로 껍질을 까다가 힘이 들어 잠깐 잠이 들었을 때 참새들이 날아와 모든 벼의 껍질을 까주고 간다. 이 모습을 본 주자선생이 아기씨를 인정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콩쥐팥쥐와 신데렐라 이야기를 만난다. 의붓어미는 콩쥐가 왕실의 파티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벼의 껍질을 까는 일을 부과하였는데 ,참새들이 날아와 모두 해결해주었다는 이야기다. 서양에서는 요정의 도움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선녀의 도움이 있다. 하늘의 은혜를 입는 주인공은 왕비가 되거나 신격이 된다. 하늘의 권능과 여주인공의 능력이 닿아 있다. <초공본풀이>의 아기씨는 곡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곡모신의 모습이 아닐까. 앞에서 살핀 주몽의 어머니 유화는 아들에게 오곡의 종자를 보내는 곡모로서의 능력을 갖는데, 삼형제의 어머니인 아기씨는 유화의 권능과 대비된다. <제석본풀이>에서 당금애기는 아이의 탄생을 주재하는 삼신이 되었듯이, <초공본풀이>의 아기씨는 곡식과 연관되는 생산신의 모습을 애초에 지녔는데, 후에 어머니의 역할은 축소되고 삼형제 무조신의 능력만이 남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에는 아이의 탄생을 주재하는 <삼승할망>이 이미 있기 때문에 <초공본풀이>의 아기씨는 직업을 잃어버린 것 같다.


제주신화 ④

<이공본풀이>


옛날 김진국과 임진국이 한 마을에 살았는데 늦도록 자식이 없자 불공을 드려, 김진국은 아들을 얻고 임진국은 딸을 얻었다. 김진국의 아들 사라도령과 임진국의 딸 원강암이는 어린 아이 시절에 이미 배필을 맺어, 15세가 된 후에 부부가 되었다. 이때 사라도령이 옥황의 명령으로 서천꽃밭에 꽃감관 살러가게 되었는데, 원강암이는 임신을 한 처지인데도 사라도령을 따라가겠다고 나선다.

길을 가다가 배가 너무 무거운 원강암이는 제인장자의 집에 종으로 팔아두고, 사라도령만 서천꽃밭으로 향하게 된다. 제인장자 집에 남은 원강암이는 아들을 낳고, 아들이면 ‘신산만산할락궁이’로, 딸을 낳으면 ‘할락댁이’로 지으라는 사라도령의 청에 따라 할락궁이로 부르게 된다. 끊임없이 잠자리를 요구하는 제인장자의 탐욕을 기지로 넘기다 보니 원강암이와 할락궁이에 부과되는 노역은 힘겨운 지경이었고, 드디어 할락궁이의 나이가 15세가 되어 더는 제인장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때 할락궁이는 사태가 위급함을 깨닫고 아버지가 있는 소재를 알아 낸 후, 신표로 남겨진 얼레 빗 반쪽과 메밀범벅 세 덩이를 어머니에게 얻어 집을 떠나게 된다.

제인장자집의 개 천리둥이와 만리둥이가 쫓아오는 것을 메밀범벅을 던져 모면하고, 여러 차례 물을 건너 서천꽃밭에 다다른다. 할락궁이가 사라도령을 만나 함께 피를 내니 합하여져 부자간을 확인하고, 얼레빗을 맞춰보니 역시 하나로 합하여져 자식임을 인정받았다. 사라도령은 원강암이가 제인장자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알고 아들을 시켜 살려오게 한다. 할락궁이는 ‘웃음웃을꽃’과 ‘싸움싸울꽃’을 뿌려 제인장자의 일가친척을 정신 없게 만들고, 그 틈을 타 ‘수레멜망악심꽃’을 뿌려 셋째딸을 제외하고 모두 죽여버린다. 그리고 셋째딸이 일러준 곳에서 어머니 시신을 수습하여 ‘환생꽃’을 뿌리니 어머니가 되살아나게 된다. 할락궁이는 어머니를 모셔 서천꽃밭으로 들어가고, 후에 꽃감관 자리를 물려받게 된다.


1. 서천꽃밭

서천꽃밭은 원래 <삼승할망본풀이>에서 아이를 점지하는 ‘생불꽃’을 가져오는 곳이다. 명진국따님애기가 이 서천꽃밭을 관리하는데, 부엉이가 나타나 꽃밭을 망치자 명진국따님애기가 옥황상제께 꽃감관을 보내달라고 기원하여 사라도령이 서천꽃밭에 꽃감관을 살러 간 것이다. 이 생명꽃을 매개로 <삼승할망본풀이와>와 <이공본풀이>는 연관되어 있다.

서천꽃밭은 다른 본풀이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 탄생을 주재하는 꽃도 있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꽃도 있고, 죽은 이를 살리는 꽃도 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악한 이를 죽일 수도 있는 꽃은 자연의 생명력으로 인간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이고, 우주와 자연과 인간의 운명이 결합되어 있다는 사유의 반영이다. 천상과 지상의 중간 쯤(석해산 같은 곳)에, 혹은 강을 몇 번 건넌 수평적 공간에 서천꽃밭이 있다. 하늘에서 정한 운명과 염왕이 정한 운명에 순종하지 않고, 죽은 이를 살릴 수 있도 악인을 징벌하여 죽일 수도 있는 도구가 서천꽃밭의 환생꽃과 멸망꽃이다. 제주 신화의 서천꽃밭은 생사의 운명을 극복하려는 소박한 운명 창조 의지라 하겠다.

서천꽃밭은 죽음에 대한 극복의지이고,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그것을 넘어선 세상에 대한 이미지의 투영이다. 그곳은 지상의 생명원리와 관련되는 장소로서, 지상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강을 건너면 되기도 하고, 거기를 지키는 황새곤간의 허락을 받으면 환생꽃을 가져와 죽은 어머니를 살리고, 죽은 남편을 살릴 수 있다. 수평적 ‘저기’일 수도 있고, 하늘과 땅의 중간일 수도 있다.


2. 할락궁이와 고구려 유리왕

할락궁이는 아버지 없이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고, 의붓아버지의 핍박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 집을 떠나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아버지가 남겨 준 신표(얼레빗 반쪽)를 가지고 가서 맞춰보거나, 피를 내서 합하는 것으로 부자간을 확인한다. 그리고 아들임을 인정받은 후 아버지의 대를 이어 서천꽃밭의 꽃감관이 된다.

고구려 주몽의 아들 유리왕의 일대기도 매우 유사하다. 유리는 아버지 주몽이 부여로부터 남하하여 고구려를 건국하러 떠난 상황에서, 홀어머니 예씨부인에게서 태어난다. (주몽도 그랬다. 하늘에서 내려온 해모수가 유화부인을 잉태시키고 떠난 상황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고 의붓아버지인 금와왕의 핍박 속에서 살해의 위협을 느끼고 집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게 된다.) 유리는 아버지가 남겨 준 신표(단검 반쪽)를 가지고 가서 맞춰보고, 피를 내서 합하는 것으로 부자간을 확인한다. 그리고 아버지 주몽의 대를 이어 고구려의 왕이 된다. 할락궁이의 일대기는 고구려 유리왕의 성장기와 거의 흡사하다. 할락궁이 이야기 유형이 떠돌다가 유리왕 신화를 낳았고, <안락국태자전>과 같은 고전소설로 바뀌기도 하였다. 이야기의 원형이 제주에 남겨 있다는 의의를 살피면, 본풀이가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인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3. 꽃과 사랑

말 한마디에 천량 빚을 갚는다고 했는데, 꽃 한송이에 무량의 미움과 반목을 씻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생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꽃 한송이에 실어 보내는 겸허함과 염치와 용서, 그리고 사랑이 있다면 인생은 아름다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꽃 한송이로 큰 사랑을 성취한 일이 동서양에 두루 흔한 일 아니던가.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도 꽃은 무한한 생명의 에너지다. 제인장자처럼 원강암이의 인생을 억압하고 남의 인생을 손아귀에 쥐려 한다면, 역으로 꽃 한송이의 힘에 의해 멸망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살리는 힘은 죽이는 힘이 될 수도 있다. 권력의 힘도 또한 그렇지 아니한가. 겸허한 꽃이 되어야 한다.




제주신화 ⑤

삼공본풀이



강이영성 이서불은 윗마을에 살았고, 홍은소천궁에 궁전궁납은 아랫마을에 살던 거지였는데 부부가 되어 함께 구걸과 품팔이로 연명하였다. 얼마 후 태기가 있어 첫째 딸아이를 낳았다. 마을 사람들이 은그릇에 죽을 쑤어 먹였는데, 이로 인해 ‘은장아기’라 부르게 되었다. 둘째 딸아이가 태어나자 지난번처럼 동네 사람들이 놋그릇에 밥을 해 먹이니, 이로 인해 ‘놋장아기’라 불렀다. 셋째 딸이 태어나 전과 같이 나무바가지에 밥을 해다 먹이니, 이로 인해 ‘가믄장아기’라 부르게 되었다.

세 딸이 태어나고 이상하게 운이 틔어 거지 부부는 부자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딸들도 열다섯 살이 넘을 즈음, 부부는 심심하여 딸들을 불러 누구 덕에 먹고 사는지 물었다. 큰 딸과 둘째 딸은 하늘과 땅의 덕, 부모의 덕으로 산다고 대답했는데, 셋째는 하늘과 땅의 덕, 부모의 덕도 있지만 ‘내 배꼽 아래 음부’ 덕으로 먹고 산다고 대답한다. 부모는 화가 나 셋째 딸을 내쫓고, 얼마 후 걱정이 되어 나가보려다 눈이 벽에 부딪혀 둘 다 봉사가 되었다.

한편 집을 나간 가믄장아기는 밤이 되어 한 초가에 기숙하게 되었는데, 마를 캐서 들어온 마퉁이 삼형제를 만나게 된다. 첫째와 둘째는 마를 삶아 대가리와 꼬리를 부모에게 드리지만, 셋째는 살이 많은 잔등을 부모와 가믄장아기에게 주자, 셋째가 쓸만한 사람임을 깨닫고 그와 연분을 맺게 된다. 가믄장아기와 셋째 마퉁이는 마를 파던 곳에 가서 주위에 널려 있는 금덩이를 발견하고 부자가 되었다.

살림이 좋아지면서 가믄장아기는 부모 생각을 간절히 하게 되는데, 부모가 거지가 되어 방랑하고 있을 것이라 여겨 거지 잔치를 열어, 결국 백 일이 되는 날에 부모를 만나게 된다. 가믄장아기가 자신이 쫓겨났던 딸임을 밝히자 부모는 깜짝 놀라 받아들고 있던 술잔을 떨어뜨리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고, 딸의 배려로 여생을 편안히 살게 되었다고 한다.


1. 전상(前生)신


삼공본풀이는 삼공맞이(전상놀이)에서도 불린다. 전상이란 전생(前生)에서 왔을 것 같은데, 그 의미는 다르게 쓰인다. 전상은 술을 많이 먹거나 도박과 도둑질을 하여 가산을 탕진하는 행위와 마음가짐을 뜻하고, 한편으로는 이런 행위나 마음가짐을 나쁜 전상이라고도 한다. 삼공신은 이런 ‘전상’을 차지한 신이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볼 때 ‘전상’은 전생인연의 뜻인 듯하고, 따라서 ‘삼공’은 전생인연을 차지하고 있는 신인 듯하다고 현용준 선생은 추정한다.

전상놀이에서는 거지 잔치 장면과 눈 뜨는 장면이 주가 된다. 그 다음 가믄장아기 부모는 동네 사람들을 막대기로 때리며 인정(돈)을 받으며 다닌 후 비를 들고 다니며 ‘사록’(나쁜 기운)을 풀어낸다. 악한 사록을 내몰고 좋은 사록을 불러들이는데 ‘사록’은 나쁜 기운이란 의미에 머무르지 않고, 인연과 운명을 지칭하는 ‘전상’과 같은 면이 있다. 좋은 사록이 집안으로 들어오도록 하고, 모질고 악한 사록을 쫓아버리면 천하 거부가 된단다. 삼공신은 나쁜 인연을 털어내고 좋은 인연을 만들어주는 신, 행운의 신이다.


2. 백제의 <서동설화>


삼공본풀이의 앞부분은 가믄장아기의 부모가 거지였다가 세 딸을 얻은 후 부자가 되었지만, 가믄장아기를 쫓아낸 후 다시 거지가 되고 봉사가 되는 이야기다. 중간 부분은 가믄장아기가 마퉁이(마를 캐는 아이)를 만나 금을 발견하고 부자가 되는 이야기인데, 선화공주가 마퉁이(서동)를 만나 금을 발견하고 부자가 되는 <서동설화>와 매우 비슷하다. 삼공본풀이에서는 가믄장아기(여자)가 적극적으로 마퉁이를 자기 남편으로 만드는데, 서동설화에서는 마퉁이(남자)가 적극적으로(혹은 트릭으로) 선화공주를 자기 아내로 만든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사랑하고 서동을 밤에 안고 가다”라는 노래로 선화공주를 얻게 된다.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주고 헛소문을 퍼트려 공주를 아내로 삼는 서동설화의 마퉁이는 똑똑하고 기지가 넘쳐난다. 삼공본풀이의 마퉁이는 부모를 잘 섬기는 착한 아이고 기회를 잘 포착하는 영리한 아이다. 허나 바보처럼 금인지 똥인지 모르는 점은 두 이야기에서 같다. 마퉁이는 영리한 바보이고 똑똑한 바보다. 서동설화에서 마퉁이는 금을 진평왕에게 보내 사위로 인정받고 나중에 백제의 무왕이 된다. 남성 중심의 이야기다. 그러나 삼공본풀이는 여성 중심 이야기다. 제주에는 여성이 소외되지 않고 운명의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제주는 남녀가 평등한 섬이다.


3. <심청전>


삼공본풀이의 후반부는 거지 잔치 혹은 맹인 잔치로 부모를 다시 만나고 부모가 눈 뜨는 이야기인데, 우리가 잘 아는 <심청전>과 흡사하다. 왜 이렇게 소설 속 이야기가 제주에서는 인연을 관장하는 신의 이야기(신화)로 전할까. 제주의 삼공본풀이는 무가(무당의 노래)이고 고대로부터 오래도록 전해져 온 신들의 이야기니, 이것이 육지에 올라가 소설을 만드는 구실을 한 것일까. 아니면 육지의 소설이 제주에 전해지고, 여기에 신성한 힘이 덧보태져 신화가 된 것일까. 잘 모르겠다. 애초 ‘눈을 뜨게 하는 신비한 이야기’가 효성 깊은 심청의 정성으로 맹인 부모가 눈을 뜨는 이야기가 되기도 했고, 그 신비한 이야기에 신성한 힘이 덧보태져 인연을 관장하는 신의 이야기(신화)로 재탄생하였다고 보면 좋겠다. 앞이 보이지 않던 상황에서 눈을 떠 개명천지(開明天地)가 되었다는 것은 이전에 살던 답답한 인생을 청산하고 밝고 명랑한 삶이 새로 시작되었다는 의미다. 새로운 운명이 펼쳐지는 내력은 신비하고 신성한 힘의 신인 가믄장아기에서 비롯된다. 제주에는 답답한 인생을 떨쳐내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만드는 신이 있어 행복하다.

우리 인생은 전생의 인연에 지배되기도 하지만, 과거 인연의 사슬을 끊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도 있는 셈이다. ‘시절 인연’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국화 씨앗에서 나팔꽃이 피게 할 수는 없지만, 가을에 피는 꽃을 봄에 피게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힘이다. 나쁜 전상을 버리고 좋은 전상을 만나 보자. 스스로 노력하면 얻어진다. 전상신이 있다는 것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증거다.


제주신화 ⑥

차사본풀이


동경국 버무왕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위로 네 형제는 사주팔자가 좋아 장가들어 잘 살았고, 밑으로 세 형제는 사주팔자가 기구하여 열다섯(15세)이 정해진 운명이었다. 동개남절 대사가 일러준 대로 소사가 버무왕 집에 찾아가, 3년 법당 공양을 하면 명과 복을 이을 수 있다고 전하여, 아들 삼형제는 절에 올라가 3년을 지내게 된다. 정해진 3년이 지나자 부모님 생각에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스님이 가는 길에 과양 땅을 조심하지 않으면 3년 공부가 허사가 될 것이라고 주의를 주지만, 배가 고픈 탓에 말을 어기고 과양생이의 집에 들렀다가 죽게 된다. 삼형제가 지닌 비단에 욕심을 품은 과양생이의 처는 그들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한 후 참기름을 끓여 귓속에 부어 죽이고 재물을 차지한다.

주천강 연못에 버려진 삼형제의 시체는 꽃송이로 환생하였고, 과양생이 처의 눈에 띄어 그 집으로 옮겨졌지만 화롯불에 버려진다. 꽃은 다시 삼색 구슬이 되고, 과양생이 처가 그 구슬을 입에 넣고 놀다가 삼켜 임신이 되고 세 아들을 낳는다. 그들은 자라나면서 학문이 뛰어나 과거에 급제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남의 집 자제가 과거에 급제하여 금의환향하는 줄 알고 저주를 퍼부은 어머니 때문에 다시 죽게 된다.

과양생이 처는 대성통곡하다가 억울함을 풀기 위해 고을의 김치 원님을 찾아가 하소연하고 급기야 횡포를 부리자, 원님은 이 청원을 해결하기 위해 강림을 불러들이고, 염라대왕을 잡아와 대왕으로 하여금 이 사건을 판결하게 하자는 방안을 냈다. 하는 수 없이 강림이는 식구를 하직하고 저승으로 향한다. 험한 길에 조왕신과 문전신의 도움으로 길을 찾고, 저승의 이원사자의 도움으로 행기못을 지나 저승 초군문에 당도하여 그곳을 지나던 염라대왕을 포박하고 호통을 치니 염왕은 고분고분하게 강림의 말을 따르게 되었다. 강림이 먼저 이승으로 돌아오고 약속한 대로 염왕이 이승에 오게 된다. 염왕은 과양생이 부부의 그간의 죄상을 알고 사지를 찢어 빻아서 바람에 날리니 각다귀와 모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버무왕 삼형제의 뼈를 연못에서 꺼내 금부채로 치니 모두 살아났다.

똑똑한 강림에 의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염왕은 이처럼 영리한 강림을 데려가 저승사자의 일을 맡기게 되었고, 그로부터 강림은 사람을 잡아가는 인간차사가 되었다고 한다.


1. 염라대왕 혼줄내기

인간은 정해진 운명대로 죽어 염라대왕 앞에 불려간다. 저승으로 데려가는 사자도 무섭지만 염라대왕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 강림이는 저승에 찾아가 염라대왕을 혼내 주고 무릎을 꿇린다. 그 장면은 장쾌하기 이를 데 없다. 눈을 부릅뜨고 팔뚝을 걷어붙이고 우뢰같은 소리를 지르며 염왕 행렬을 공격하니 삼만관속과 육방하인이 도망간다. 이어 가마채를 잡아 문을 열어젖히니 “염라대왕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앉아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어 강림이 호통을 치자 염왕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고 발엔 차꼬가 끼워지고 몸에는 밧줄이 감겼다. 염왕이 밧줄을 늦추어달라고 사정을 하는 장면까지 연출된다.

강림도령은 인간의 죽음을 관장하는 염라대왕을 하수인 다루듯이 하고 좀처럼 주눅들지 않는 모습이다. 그렇게 해서 인간을 죽게 만드는 저승신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고 죽음조차 거부한다. 운명의 굴레를 씌우는 신과 신앙을 거부하고 비판한다. 열세에 놓인 인간이 신을 거부하고 저승세계를 관장하는 왕을 조롱하고 있다. 삼만관속과 육방하인을 데리고 다니는 지하의 왕뿐만 아니라 지상의 왕까지도 조롱을 하고 무릎을 꿇리는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더 이상 운명을 거부하지는 못한다. 강림은 염라대왕을 따라가 그 밑에서 저승사자의 일을 하게 된다. 중세의 굴레는 쉽게 풀어버릴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왕이 다스리는 세상을 극복하지는 못하고 만다. 아직 신의 세계와 왕이 다스리는 세계를 뒤집을 전망이 부재한 시대였으리라.


2. 장례의 법도, 인간의 법도

<차사본풀이>에는 인간이 죽을 때 장례지내는 법이 다양하게 제시된다. 붉은 종이에 흰 글자를 쓰는 명정법(銘旌法), 수의를 준비하는 법, 삼혼(三魂)을 부르는 법, 밧줄로 결박하여 행상 가는 법, 성복․일포․삼우제․삭망제․소기․대기․기일의 제사법 등이다. 이 본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장례의 절차와 법도를 익히게 하는 교훈적인 의도도 있다. 그런데 우리를 깨닫게 하는 중요한 법이 들어 있다. ‘남의 음식 공으로 먹으면 목 걸리는 법’이 그것이다. 버무왕 삼형제가 과양생이 처에게 찬밥을 얻어먹고 비단으로 보답할 때 이 말을 한다. 저승의 이원차사가 강림에게 떡을 얻어먹고 저승 가는 길과 염라대왕을 만나는 방법을 일러주는 대목에서도 이 말을 한다. 그럴 만한 연유가 있으면 정당하게 보답하여야 한다. 떡을 뇌물로 주고 저승 가는 길을 알아낸 강림에게는 참으로 이원사자가 고맙다. 하지만 저승의 차사인 이원사자는 연유 없이 떡을 얻어먹고는 자신의 상관인 염라대왕을 팔아넘기고 만다.

준다고 그냥 받아먹으면 이렇게 코가 꿴다. 선의이건 호의이건 주는 것을 가려서 받아야 한다. 주는 자는 늘 기대하는 바가 있는 법이다. 떡값은 그때나 지금이나 문제다. 이렇게 본풀이는 신의 세계를 이야기하지만, 문맥 깊숙이 인간의 세계에서 지녀야 할 삶의 법도를 일러주기도 한다. 그래서 신화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3. 과양생이 처의 극성스러움

과양생이의 처는 재물에 눈이 어두워 버무왕의 아들 삼형제를 죽였다. 그리고 자기 자식이 과거급제하여 오는 줄도 모르고 저주를 퍼붓다가 제 자식을 죽였다. 그리고는 억울하다고 관가에 가서 살려내라고 악을 쓴다. 재물에 목숨 걸고,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질투하고, 자식의 일에 지나치게 집요한 과양생이 처를 보면 서울 강남의 아줌마들이 생각난다. 자식을 일류 대학에 입학시켜 상류층의 일원으로 살게 하려고, 초등학교부터 극성스럽게 과외를 시키고 아이들을 속박하여 초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 강남 아줌마들을 과양생이 처의 패망을 알고 있을까.



제주의 신화 ⑦

맹감본풀이


옛날 사만이가 살고 있었는데, 세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고아가 되어 거지생활을 하였다. 사만이는 행실이 착하여 동네 어른들의 도움으로 장가도 가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 자식도 늘어나건만 살림살이는 어려웠다. 사만이의 아내는 머리카락을 잘라내 이것으로 자식들을 먹일 쌀이나 사오라고 남편에게 권한다. 사만이는 장에 가서 쌀 대신 조총(鳥銃)을 사서 ‘먹고 살아갈 도리’를 구한다. 사만이는 총을 메고 사냥에 나섰지만 늘 빈손으로 집에 돌아와 아내의 핀잔을 듣곤 했다.    어느 날 산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데, 여러 번 해골이 발에 채여 인연 있는 것이라고 여기고 이것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고방(庫房)의 독 속에 모셔 조상님이라고 위했다. 그로부터 사냥을 나가기만 하면 노루와 사슴과 멧돼지를 수십 마리씩 잡아와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다.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해골의 정령이 꿈에 나타나 사만이의 정해진 운명이 서른셋이어서 저승사자가 곧 잡으러 올 것이니, 음식을 차려 차사를 잘 대접하고 부인에게는 시왕맞이 준비를 하여 액을 막도록 방도를 일러준다. 사만이는 해골 조상의 분부대로 준비를 하여 차사를 잘 대접하게 되니, 차사들은 사만이가 차려준 음식을 먹은 터라 사만이를 살려주기로 마음먹고 저승으로 돌아가 저승 장부를 고치게 된다. 사만이의 정명(定命)이 삼십(三十)이었는데 거기에 한 획을 그어 삼천(三千)으로 바꾸어 사만이를 오래 살게 해주었다. 사만이는 해골 조상의 덕에 액을 막고 삼천 년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1. 명감(命監) 또는 명관(冥官), 그리고 산신(山神)멩감

<맹감본풀이>는 신과세제(新過歲祭)와 큰 굿의 시왕맞이 때 불리는데,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와 죽을 액운을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다. 30세로 정해진 운명을 타고난 사만이는 차사(저승사자)에게 잡혀갈 처지였는데 차사를 잘 대접해서 죽을 운명을 벗어났다. 여기서 맹감은 ‘목숨을 살피는’ 직위의 명감(命監)일 수도 있고 저승세계에서 인간을 잡으러 온 관리인 명관(冥官)일 수도 있다.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할 운명을 잘 극복한 이 본풀이는, 운명을 관장하는 신을 잘 위해서 액을 막았다는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위의 이야기에서 집안에 사람이 죽어갈 액(厄)을 막는 데 <시왕맞이>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또한 ‘멩감코’와 결부시킬 수도 있다. 맹감고사는 생업의 풍요를 비는 신년제로, 농신인 세경이나 수렵신인 산신을 청해 농사와 수렵이 잘 되도록 기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경본풀이>와 함께 <맹감본풀이>가 불린다. 특히 산신을 청해 사냥이 잘 되기를 비는 의례를 ‘산신멩감고사’라고 하는데, 이때의 맹감은 수렵의 풍요신이다. 위의 이야기에서 해골 조상이 사냥이 잘 되도록 도와주었다고 하니 그가 바로 ‘산신멩감’이다.


2. 백골(白骨)을 조상신으로

사만이는 산길을 걷다가 왼 발에 백골이 여러 번 채이자 이는 재수가 좋은 징조라 여기고, 이 해골이 자기 집안을 지켜 줄 조상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으로 가져와 고방에 모시고 조상님이라 위했으며 그 결과 큰 부자가 되었다. 길위에 구르는 해골을 잘 위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여타의 이야기에서도 해골을 잘 장사지내 주었다가 발복했다는 경우도 있다. 무덤을 쓸 수 없던 주인 없는 해골을 위해 정성을 들였다면 복을 받을 만하다. 조상신을 잘 모셔서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많다. 여기 사만이는 남의 해골을 조상처럼 잘 위해서 복을 받았다. 장독대 위에 정안수를 떠 놓고 자식의 건강과 행운을 위해 비는 어머니의 손길마냥 따듯하다. 길 위에 구르는 돌 하나, 집 뒤의 나무 하나에도 정성을 쏟으면 복을 받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정성으로 비는 일도 또한 그러하리라.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사만이로서는 딱히 모실 조상이 없었을 것이고 기댈 곳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백골을 조상신으로 모시고 부자가 되었다. 헌데 <맹감본풀이> 이본에서는 부모 조상을 공경하지 않고 백골 조상만 위해서, 부모 조상이 화가 나고 친조상의 청에 의해 저승사자가 사만이를 잡으러 오게 되었다고도 한다. 조상신도 화가 나면 자손에게 해꼬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논리적으로 따질 일은 아니지만 어떤 부모가 그런 독한 마음을 먹겠는가. 우선 조상부터 잘 모시라는 충고로 들으면 족하리라. 조상신 숭배란 우선 혈연조상을 모시는 것이고, 모실만한 존재가 없으면 밖에서 모셔 들이는 것이 이곳의 법도다. 제주의 <조상신본풀이>에서는 혈연조상이건 아니건 함께 조상신으로 모셔진다. 조상신은 집안 수호신이고 직업 수호신이기도 하다.


3. 먹고 살아갈 도리

사만이는 가난에 찌들어 자식들을 먹여 살릴 도리가 막막했다. 아내는 머리카락을 잘라 자식을 먹일 양식이라도 사 가지고 오라고 남편에게 당부하였는데, 양식 대신에 총을 구해온다. 잠시 먹어치우면 사라질 양식 대신 ‘먹고 살아갈 도리’를 선택을 한 것이다. 눈앞의 이익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선택이 중요함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머리카락을 판 석 냥으로 집을 사거나 밭을 살 수 없으니 사냥에 나선 것이다. 농경은 안정적인 삶이긴 하지만 밑천 없는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막노동 같은 힘든 일에 뛰어드는 것은 우리 시대의 서민이나 사만이나 마찬가지다. 사만이는 서민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백골을 모시는 한바탕 굿으로 부자가 되었으니, 그는 샤먼(shaman)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만이의 처는 저승사자를 달래기 위해 시왕맞이를 하는데, 황소 사만삼 필을 대령하여 액을 막았다. 사만이(40,002)보다 큰 정성으로 사만삼(40,003) 필의 소를 제물로 바친 것이다. 사만이의 이름 속에는 큰 정성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큰 정성으로 살면 부자도 되고, 사람이 죽어갈 액을 막기도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제주신화 ⑧

세경본풀이


옛날 김정국 대감 부부가 오십이 가까워가도 자식이 없어 탄식하는 날을 보내다가 동개남사에 시주를 하고 100일 불공을 드리면 자식이 있을 것이라는 말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러나 시주가 100근에서 한 근이 모자라 딸을 얻게 되고 ‘자청비’라 이름 지었다.

자청비의 나이 15세에 거무선생에게 글공부 하러 가는 천상계의 문도령에게 반하여 남장을 하고 함께 글공부하러 떠나게 된다. 둘이 한 방에서 보냈지만 문도령은 자청비가 여자인 줄 모른 채 3년을 보낸다. 서당을 나오면서 비로소 자신이 여자임을 고백하고 문도령과 남녀의 정을 나눈 뒤 재회를 약속하고 헤어진다.

약속한 기한 내에 소식이 없자 초조해진 자청비는, 인근 굴미산에 문도령이 내려와 놀이를 벌인다는 정수남의 말에 유혹되어 산에 올랐다가 봉변을 당하고 결국 그를 죽인다. 집에 돌아와 부모에게 종을 죽였다는 질책을 듣고 서천꽃밭에 가서 환생꽃을 얻어 정수남을 살리지만,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한다고 꾸중을 듣고 쫓겨나게 된다. 길을 가다 주모 할머니를 만나 수양딸이 되어 베짜는 일을 돕는다. 그들이 만드는 비단옷이 하늘 문도령이 서수왕 따님에게 장가드는 데에 쓸 폐백이란 말을 듣고 주모 할머니에게 문도령을 만나게 해달라고 졸라, 문도령이 인간세계에 오게 되는데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는 바람에 문도령은 떠나고, 방정맞은 짓을 했다고 하여 자청비는 다시 주모 할머니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유리걸식하다가 하늘 옥황 궁녀를 만나 그들과 하늘에 올라가 꿈에 그리던 문도령을 만나 회포를 푼다. 그리고 자청비는 문도령과의 혼사를 인정받기 위해 문도령의 부모가 내건 ‘칼 선 다리 건너기’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여 며느리로 인정받는다. 세월이 흘러 하늘 옥황의 나쁜 무리가 문도령을 죽이자 서천꽃밭의 도환생꽃으로 남편을 살리고, 하늘 옥황에 큰 변란이 일어나자 서천꽃밭의 멸망꽃으로 난을 일으킨 무리들을 징치하고 난을 수습한다. 천자께서 상을 내리려 하자, 오곡시앗을 달라고 하여 문도령과 함께 칠월 보름 인간세상에 내려와 문도령은 상세경, 자청비는 중세경이 되었고, 정수남은 축산의 신인 하세경으로 좌정하게 된다.


1. 세경신이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분명 자청비다. 그녀야말로 곡식의 신이고 풍요의 신이다. 서천꽃밭을 수시로 드나들며 환생꽃으로 죽은 자를 살리고, 하늘나라의 무질서를 멸망꽃으로 해결하는 생명의 신이고 조화의 신이다. 문도령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는데 왜 상세경신으로 좌정하는가. 농사가 하늘의 자연적 기후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문도령은 하늘의 존재로 자연운행의 상위질서를 상징하고, 자청비는 땅의 존재로 하늘의 조화에 따라 적절히 대응하는 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것 같다. 정수남은 말썽꾸러기다. 그러나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죽임을 당하는 정수남은 온갖 액운을 지고 버려지는(祓除) 제웅과 닮아 있다. 정수남은 소도 아홉 마리 말도 아홉 마리를 먹는 대식가다. 그의 식성은 궤네깃도와 같은 거인영웅을 상징한다. 그리고 소와 말을 키우는 일은 단순히 목축만을 의미하지만 않고 농사와 직결된다. 제주의 뜬 땅은 파종 후 밟아주어야 하는데 이때 마소의 힘이 필요하고, 마소는 농업에 반드시 필요한 도구다. 그래서 마소를 관장하는 정수남이 하세경이 된다.


2. 오곡종자와 메밀

자청비는 오곡씨를 뿌리다가 씨앗 한 가지를 잊어버린 것을 알고 다시 하늘에 올라가 받아온 것이 메밀씨다. 이것은 늦게 가져와 늦게 파종하더라도 다른 곡식과 같이 가을에 거둘 수 있다고 했으니, 다른 농사가 망치면 대신 심어 흉년을 면할 수 있는 구황식품이다. 보통 농사가 망칠 것을 대비해 구원 투수를 준비해 놓은 것을 보면 자청비는 가난한 민초의 편에 서 있는 신이다. 정수남이 큰 농사를 짓는 이에게 먹을 것을 부탁하지만 거절당하자 대흉년이 들게 하고, 작은 농사를 짓는 가난한 이에게 먹을 것을 구하자 선뜻 내주는 모습을 보고 그들에게는 대풍년이 들게 해주었다. 큰 농사는 망하게, 작은 농사는 흥하게 하는 세경신은 민초들을 위한 신이다. 자청비가 오곡과 꽃으로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식물의 성장을 주재하는 지모신의 성격이다. 서천꽃밭의 꽃으로 인간의 생명을 주재하는 삼승할망과 비교해 볼 때 자청비는 자연의 생명을 주재하는 신격이다. 아울러 가난한 백성을 살리는 생명의 신이다.


3. 고전소설의 여성영웅

옛소설을 보면 늦도록 자식이 없는 부모가 부처에 지극정성으로 빌어 여성 주인공이 태어나는데, 뭔가 정성이 하나 부족하여 딸로 태어난다. 그리고 훌륭한 신랑감과 혼사가 약속되었지만 쉽게 성사되지 않는다. 숱한 장애를 극복하고 난 뒤에야 행복한 결혼이 이루어진다. 이를 혼사장애 모티프라 한다. 제주의 자청비를 보면 고전소설의 여성 주인공과 흡사하다. 조선 후기를 보면 여성 영웅소설이 대유행한다. <여장군전>에서는 부모가 기도를 드려 낳은 만득의 무남독녀 정수정이 남장을 하고 도술을 배워 전쟁에 대원수로 출장하고 큰 공을 세운다. <홍계월전>에서는 여주인공이 전란을 만나 위기에 빠진 남주인공을 구하고 천자 앞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인 후 남장을 벗고 여자의 위치로 돌아가 당당한 승리를 취한다. 여장군이 국난을 극복하고 남편을 구하는 이야기 또한 하늘나라의 국난을 구하고 남편을 살려낸 자청비의 활약담과 비슷하다. 자청비 이야기는 조선후기 고전소설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그래서 고대적 신의 모습만이 아니라, 중세의 여성영웅의 모습이 담겨 있고, 자유분방한 결혼을 하는 모습에는 근대적 로망스의 주인공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이 농경기원신이며 여성 영웅인 자청비가 술 이름이 되었다. 잘나가는 양조회사가 제주의 자랑인 여신을 술 이름으로 전락시킨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오늘도 제주의 신이 자본의 힘에 팔려가고 있다. 계속 제주의 신들을 방치하고 말 것인가.


제주의 신화 ⑨

문전본풀이


남선비와 여산부인 부부는 집안이 어려운데도 일곱 형제를 두었는데, 남선비는 아이들을 위해 장사를 하기로 하고 배 한 척을 마련해 오동고을에 가게 되었다. 오동고을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남선비를 유혹해 장사 밑천을 모조리 빼앗았다. 남선비는 박대를 받으면서도 노일제대귀일의 딸을 첩으로 삼아 그곳에서 떠날 수 없었다.

여산부인은 3년을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자, 7형제의 도움으로 배 한 척을 다시 마련해 오동고을을 찾아가 어렵게 남편을 만나게 된다. 남선비와 함께 사는 귀일의 딸이 유인하는 대로 목욕하러 갔다가 여산부인은 주천강 연못에 수장되고 말았다. 귀일의 딸은 여산부인의 옷을 벗겨 입고 여산부인 행세를 하며 남선비와 함께 남선고을로 돌아온다.

일곱 형제가 자기 어머니가 아니라는 낌새를 차리고 의심하게 되니, 귀일의 딸도 눈치를 채고 일곱 아들을 없앨 흉계를 꾸몄다. 꾀병을 가장하고 남선비로 하여금 병이 나을 방도를 구해오게 하고, 자신이 변복하여 “아들 일곱의 간을 먹어야 치유된다.”는 헛말을 전하니 남선비는 아들 일곱을 죽이려고 작정한다. 막내아들 녹디생이가 기지를 발휘해 형 여섯의 간 대신에 산돼지 여섯 마리의 간을 내어 귀일의 딸에게 가져다드리자 먹은 체하고 다시 녹디생이의 간까지 요구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때 녹디생이가 귀일의 딸의 음모와 비리를 온 동네 사람들에게 고하자, 아버지 남선비는 달아나다 정낭에 부딪혀 죽어 정낭신이 되고, 귀일의 딸은 변소로 도망쳐 목을 매어 죽었다. 아들 일곱은 서천꽃밭에 가서 도환생꽃을 구해와 죽은 어머니를 되살려내고 후에 조왕신으로 좌정하도록 도왔고, 일곱 형제는 각각 집안을 관장하는 신이 되었다. 특히 녹디생이는 문전신이 되어 문전제를 받는 주신(主神)으로 좌정하였다.


1. 시체화생(屍體化生)

여산부인의 일곱 형제가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들마저 죽이려 한 노일제대귀일의 딸에게 복수하는 장면은 우리나라 이야기에 흔치 않은 일이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두 다리를 찢어 드딜팡(디딤돌)으로, 대가리를 끊어 돼지먹이통으로 만들고, 머리털은 끊어 던지니 해조류가 되고, 입을 끊어 던지니 솔치가 되고, 손톱과 발톱은 굼벗으로, 배꼽은 굼벵이로, 음부는 전복으로, 육신을 빻아 날려 보내니 각다귀와 모기가 되었다’고 한다. 후련한 분풀이 속에는 악인에 대한 응징의 교훈이 있고, 고대인의 지략과 지혜가 담겨 있다. 해조류나 해산물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사람의 시체에서 왔다는 사유다. 인간세계의 것과 자연세계의 것 중 닮은 것을 짝지어, 인간과 자연이 순환하는 관계임을 은연중에 밝힌다. 여성의 음부와 전복을 관계 짓는 흥미담 속에 옛 사람들의 유머가 묻어난다.

시체화생신화의 대표격은 중국의 반고신화다. 반고가 죽은 후 그의 몸에서 해와 달, 산과 강, 흙과 초목, 그리고 인간이 탄생하였다는 이야기로 창세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문전본풀이>에는 그런 창세적인 화소는 없다. 창세 이야기가 화석화되어 해초와 해산물 기원 신화적 흔적을 남기고 있다.


2. 정낭과 도둑

제주의 독특한 대문 형식인 정낭은 집안에 사람이 있는지, 가까운 곳에 출타했는지, 먼 곳에 가서 한참 뒤에 돌아올 것인지를 알려주는 신호등과 같은 체계다. 이런 표식은 도둑에게 집이 비어 있으니 털어가라는 신호가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걱정 없다. 정낭을 지키는 정낭신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 함부로 집안을 드나들 수 없고, 그것을 어기면 동티가 나거나 벌을 받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정낭뿐 아니라 집안을 수호하는 신들이 도처에 좌정하고 있으니 도둑과 병마가 얼씬거리지 못한다. 그래서 제주의 가옥은 신성한 구조이고, 그곳에 머무는 인간도 허튼 짓을 하지 못하고 경건하게 살아간다. 제주 가옥에서 중심은 상방의 앞문이고, 대표적 신은 역시 ‘문전신’이다. 육지에서는 ‘성주신’을 중히 여기는데, 제주에서는 대부분의 제사와 명절에 문전신을 위한 제상을 차리고 문신을 중하게 여기고 있다.

육지에는 보이지 않는 이 정낭은 필리핀, 라오스, 스리랑카에까지 분포되어 있다. 제주와 해양문화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다. 막내아들을 중시하는 사유는 유목문화의 잔재다. 제주에는 해양, 유목문화 복합의 흔적이 산재한다.


3. 과학과 믿음

부엌신인 조왕과 변소의 신인 측도부인은 처첩관계였기 때문에, 부엌과 변소는 마주보면 좋지 않고 멀어야 좋다고 한다. 변소의 것은 돌 하나, 나무 하나라도 부엌으로 가져오면 좋지 않다고 한다. 옛 사람들의 과학정신이라 하겠다. 부엌과 변소를 가급적 멀리 두려는 옛 사람들의 상식과 믿음이 한 덩어리가 되어 나타난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고기를 먹이고도 별 문제가 없다고 여기거나, 유전자조작 GMO식품이 인간에 해가 없을 것이라고 하는 현대과학의 맹신과는 분명 다르다. 현대인들은 과연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할까. 노일제대귀일의 딸 같이 못된 짓 하면 죄 받는다고 믿고, 못된 짓 하는 사람을 귀일의 딸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악행을 경계하던 과거의 일상이 훨씬 인간적이다.



제주신화 ⑩

칠성본풀이


장설룡 송설룡 부부가 천하 거부로 살지만 늦도록 자식이 없어 절에 가 자식을 빌었다. 백일치성을 드렸으나 보시가 100근에서 하나가 부족하여 딸을 낳았다. 이 아기씨는 일곱 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천하공사, 어머니는 지하공사 벼슬살이를 가게 되어, 아기씨를 방안에 감금하고 하녀로 하여금 구멍으로 밥을 주도록 조치하고 떠났다.

이레째 되는 날 하녀가 방안으로 가 보니 아기씨가 사라졌는데, 이 아기씨는 부모가 그리워 살창을 빠져나가 산길을 헤메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이때 스님이 구해 데리고 다니며 희롱하다가 아기씨 집에 데려다 준다. 그러나 아기씨는 임신한 상태였고, 부모의 진노를 사서 무쇠석갑에 담겨 동해바다에 버려진다.

이 무쇠석갑은 제주로 떠내려와 성안으로 밀려오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화북, 삼양, 신촌, 조천, 신흥, 함덕, 북촌, 동복, 김녕, 세화로 들어가려 하지만 각 마을의 당신들이 이미 좌정하고 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서쪽으로 되돌아오다가 함덕 ‘썩은개’로 다행히 올라오게 되었다. 일곱 명의 잠수와 송영감이 무쇠석갑을 여니 아기씨가 아이 일곱을 낳고 모두가 뱀으로 환생해 있었다. 송영감과 일곱 해녀가 처음에는 재수 없다고 박대했다가 몸이 아파 사경을 헤매는데, 점을 쳤더니 신을 박대했기 때문이라고 해서, 큰굿을 하고 이 칠성신을 잘 위해 큰 부자가 되었다.

칠성은 함덕 대신 제주성안으로 들고 싶어, 제주성 동문을 거쳐 산지 금산물에 이르러, 마침 송대정 부인이 벗어놓은 치맛자락에 들어가 누웠고, 부인은 칠성을 조상님으로 모시고 집으로 가서 고방에 두었더니 큰 부자가 되었다. 칠성이 처음 머문 송대정 집 골목을 칠성골이라 했다.

칠성은 이곳저곳 얻어먹으며 지내다, 어머니의 제안으로 각기 갈 곳을 정해 제주목 안팎으로 좌정하고, 막내 일곱째는 집 뒤 억대부군 칠성(밧칠성)으로, 어머니는 집안 고팡의 곡식을 지키는 안칠성으로 좌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1. 풍요와 뱀(蛇)

서양에서 뱀은 사악한 존재라고 한다. 우리에게도 뱀은 재수 없는 동물이란 인식이 넓다. 그러나 상반된 인식도 함께 존재한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카두세우스는 두 마리의 뱀이 엉켜 있는 형상인데 이는 정신과 물질의 통일, 몸과 영혼의 통일을 나타낸다. 뱀은 허물을 벗으면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탄생과 죽음의 영원한 반복이라는 근원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차사본풀이>에서 까마귀가 떨어Em린 적패지를 뱀이 삼켰기 때문에 아홉 번 죽어도 열 번 되살아난다는 이야기도 뱀의 재생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뱀의 가장 두드러진 상징성은 풍요와 다산을 주재하는 여성성이다. 뱀은 지하세계와 지상세계를 오가면서 지하세계의 힘과 이미지를 실어 나르기에, 어두움과 동굴의 이미지가 여성적 속성과 관계가 깊다. 그런 어려운 측면 말고도 뱀은 용과 동일 범주로 취급되어 용사(龍蛇)신앙의 풍요 상징과 관련된다. 용은 비를 부르는 신격으로 농경과 밀접한데, 그 아류인 구렁이와 뱀도 같은 상징성을 획득하고 있다.

<칠성본풀이>의 칠성신도 뱀이고, 오곡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다. 그래서 칠성신에게 고방(庫房)에 머무르며 독과 뒤주의 곡식이 가득 차길 기원한다. 또한 칠성신은 마을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제를 지내면 부자로 만들어주는 부신(富神)이다. 예전 농경사회에서야 고방에 곡식이 그득하면 부자로 사는 것이니 풍농신이 곧 부신인 셈이다.


2. 칠성신과 도교

이 본풀이에는 ‘7’이란 숫자가 여러 번 겹쳐 나온다. 아기씨가 ‘일곱 살’ 되던 때, ‘이레’ 되던 날, ‘일곱’ 명의 잠수, 뱀 자식 ‘일곱’ 등은 ‘7’과 연관된 반복이다. 이런 이유로 북두칠성의 ‘7’을 연관시켜 칠성신이라고 한 듯하다. 북두칠성을 신격화하여 북두성군이라 하는데, 도교에서 인간의 수명을 주재하는 신이다. <문전본풀이>에서도 이본에 따라서는 일곱 아들이 북두칠성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일곱’이란 숫자와 연관된다. <풍속무음> 책에서 칠성단을 만들어 칠성에게 祈子하여 딸을 얻고 ‘칠성아기’라 이름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칠성신과의 관계가 명료한 편이다.

그러나 도교적인 칠성부군과 제주도의 칠성신은 그 성격이 서로 다르다. 도교에서는 수명을 관장하는 신이고, 무속에서는 풍요와 자손의 번성을 관장하는 신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제주도 무속의 오곡풍요신인 뱀신(蛇神)을 칠성신이라 했을까. 도교에서도 뱀신, 그중에서도 흰 뱀을 숭상하는 관습이 있고 그 신앙이 칠성신과 연관되어 후대에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3. 일반신, 당신, 조상신

뱀신을 신으로 모시게 된 내력은 제주에 풍부하다. <칠성본풀이> 이외에 <토산여드렛당>의 당신 본풀이가 있고, <나주 기민창> 조상신 본풀이도 있다. 한 집안의 조상신 혹은 마을의 신으로 모셔지던 외래신인 뱀신이 전도적인 숭앙을 받는 일반신이 되었다. 집안의 창고에 곡식이 그득하길 비는 풍요기원 관념이 작용하여, 개인과 마을을 뛰어넘어 또 다른 풍요신인 세경신과 함께 보편신이 되었던 셈이다. 허나 세경신처럼 풍요신으로서의 위의(威儀)가 없다. 함덕 당신과 경쟁하고, 남들이 위하지 않으면 토라져서 병과 불행을 주기도 하는 통 좁은 신이다. 자기 마음에 들면 한없이 복을 주는 도깨비신과 같은 반열이라고나 할까.


제주신화 ⑪

지장본풀이


옛날 남산과 여산이 자식이 없어서 탄복을 하다가 절에 불공을 드려 지장의 아기씨가 태어났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에 부모가 모두 죽는다. 그러자 외삼촌 집으로 수양을 가게 되고 가난한 생활을 하다가 집을 나오게 된다. 하늘과 땅, 새들의 도움을 받아 살다가 15세가 되니 착하다는 소문이 나서 서수왕에서 청혼이 와 혼인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18세 되던 해부터 시부모와 가족들이 모두 죽었다. 신세를 한탄한 지장의 아기씨는 시누이의 핍박을 견디던 생활을 하던 가운데, 지나가던 중(僧)에게 자신의 사주팔자를 묻는다. 중은 전새남굿·후새남굿을 하라고 하였고, 지장의 아기씨는 그 말에 따라 굿을 하게 되었다. 신에게 바칠 ‘다리’와 시루떡 등 갖가지 제물을 준비하고 정성스레 굿을 하였다. 지장의 아기씨는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에 이후에 서천꽃밭에 통부체 몸으로 환생을 하였다.

1. 죽음과 죽임, 연민과 증오

다섯 살에 어머니가, 여섯 살에 아버지가, 일곱 살에 할머니가, 여덟 살에 할아버지가 죽는 비극을 경험한 지장 아기씨는 외삼촌 밑에서 성장하여 시집을 가게 된다. 허나 열여덟 살에 시아버지가 죽고, 열아홉 살에 시어머니가 죽고, 스무 살에 남편과 자식이 연달아 죽는다. 우연히 그들이 죽게 되었다면 지장아기씨는 연민의 대상이 될 것이요, 재수 없는 여인에 의해 필연적으로 일어난 일이라면 지장아기씨는 증오의 대상이 될 것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할 정도로 가족이 씨몰살한다. 이런 비극 앞에서 지장아기씨는 쫓아낼 대상이다. 그런데 왜 지장아기씨가 신으로 숭앙되는가.


2. 새림

지장아기씨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벌어진 운명에 난감해한다. 그러다가 전새남굿과 후새남굿을 하며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는 굿을 한다. 정성스럽게 옷을 준비하고 떡을 준비하여 제를 올린다. 명주로 신 길을 마련하여 신맞이를 하고, 음식을 올려 신맞이를 한다. 오죽하면 이 지장본풀이를 시루떡을 찌는 과정의 노래라고 할 정도로 떡 찌는 과정이 상세하고 그만큼 정성이 내비친다. 그래서 새(邪氣)를 쫓아낼 수 있게 된다. 쫓겨날 대상이 쫓아낼 주체가 되는 것이 고대 신화의 보편적 특성이다.

어느 시기인가 이 이야기에 불교가 덧칠된다. 기구한 팔자의 지장아기씨는 머리를 깍고 송낙을 쓰고 장삼을 입고 목탁을 들고 쌀 시주를 받는 승려가 된다. 그리고 시주를 받아 정성스런 제를 드리고 억울하게 죽은 혼령을 달래게 된다. 그리고 죽음의 공간, 지하의 공간을 주재하는 지장보살이 되어 죽은 혼령들을 저승으로 잘 천도하는 역할을 한다. 애초에는 식구를 죽음에 몰아넣는 팔자로 태어났지만, 불교적 정화를 거쳐 죽은 영혼을 구제하는 신격으로 승화되었다.


3. 죽음을 직시함

지장아기씨는 백정들의 수호조상신으로 모셔진다. 백정의 삶 주변에는 무수한 동물의 죽음이 있고 그 죽음을 달래는 일도 만만치 않으리라. 큰굿 시왕맞이에서 강림차사, 멩감, 지장본 이후에 삼천군병지자범이 행해지는데, 삼천 군병은 전란에 죽은 군병이다. 죽은 영혼을 달래는 이 제차가 저승사자본과 지장본과 함께 있다는 것을 보더라도 지장본의 성격이 가늠된다.

죽음은 어디에서나 있는 것이고, 운명의 반전은 어디에건 있는 것이다. 지장아기씨는 죽음의 원인이면서 치유의 주체이기도 하다. 전후의 반전이 극심하여 그 본풀이의 핵심이 무엇인지 아직도 혼동되는 게 사실이다. 지장본풀이는 죽음을 직시하게 만든다.


『제주 신화에 담긴 역사와 민속, 과학과 철학을 탐구함으로써 제주문화가 지닌 특성을 밝히고 더 나아가 그 사유의 원천을 이해함으로써 현대인이 가져야 할 가치와 덕목을 일깨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가주의에 의해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획일화된 현실에서, 지역학의 중요성과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제주의 삶과 사유와 지향이 담긴 제주 서사무가에 대한 고찰은 더없이 중요하다.』이러한 중요성을 토대로 지난 2008년 ‘열린 제주시’ 4월호부터 제주신화의 큰 줄기라 할 수 있는 본풀이를 중심으로 ‘제주신화’를 연재해 왔다. 열두번째 ‘지장 본풀이’를 끝으로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그간 원고를 집필해 주신 교수님께 고마운 말씀을 드리며, 이번 연재를 통해 제주신화가 널리 알려지고 제주문화의 원형과 정체성을 찾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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