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창덕궁 후원구역 |
가 | 주합루권역 |
① 2008년 창덕궁 부용지 주변 관람로 정비공사를 위해 동궐도에서 보이는 부용지 북서쪽의 우물자리를 발굴조사(국립문화재연구소)한 결과 조선시대 우물 2기를 발견했다. 발굴기관에서는 궁궐지(1834~1849년)의 문헌 기록을 통해 앞선 시기 우물은 세조 때 판 4우물 중 하나로 생각되며, 늦은 시기 우물은 숙종 16년(1690)에 보수한 두 우물 중 하나로 판단되었다. ② 시기가 늦은 우물(지름 85cm, 길이 244cm)은 바닥 시설 없이 화강암을 7단 쌓아 만들었다. 우물 주변에는 박석을 깔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울타리 구실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나무 판재가 박혀 있어, 동궐도 완성 이후 일부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 조사내용을 바탕으로 우물 2기를 복원 정비하였다. ③ 궁궐지에 의하면 세조 때 종신(宗臣)들에게 命하여 터를 잡아 우물을 파괴하니 첫 번째 우물을 마니(摩尼)라 하고, 두 번째 우물을 파려(玻瓈)라 했으며, 세 번째 우물은 유리(流璃), 네 번째 우물은 옥정(玉井)이라 했다고 한다. 이후 전쟁과 화재로 2개만 남아, 숙종이 이를 애석히 여겨 비각를 세우고 비를 보호하는 사정기비각(四井記碑閣)을 세웠다. ④ 주합루 앞 취병은 동궐도 등 고증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동궐도의 그림으로는 식재한 수종을 정확히 판별할 수 없고, 관련 연구 논문에서도 수종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주합루 취병은 자문회의 등을 통해 조릿대를 식재하여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재현해 놓았다. 그러나 식재한 수종에 대해서는 새롭게 고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수문 좌・우에 오래된 향나무가 2000년대 까지도 있었는데 취병을 만들면서 제거하였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취병의 수종이 향나무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⑤ 주합루 앞 화계는 단풍나무 등 교목류가 크게 자라 주합루에서 부용지를 조망하는 경관이 차폐되었고, 뒤편 화계도 실생으로 자란 참나무 등으로 인해 화계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화계의 기능과 조망권, 건물의 습해 피해 예방 등을 위해 교목류(향나무, 주목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등)를 제거하고 화목류(산철쭉, 앵두나무 등)를 식재하여 정비하였다. | |
나 | 존덕지 반도지권역 |
① 창덕궁 존덕지와 반도지는 수원(水源)이 부족하고, 폭우 시 토사 및 낙엽이 지속적으로 쌓여 부영양화 되었다. 이를 준설하기 위해 2000년 문화재청(궁능관리과) 조경사업단을 투입하여 연못에서 물을 빼자 호안의 사고석이 붕괴되었다. ② 따라서 현재 반도지의 사고석 호안은 일제강점기에 변형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 기회에 발굴조사를 통해 동궐도에 나타나는 장대석 방지의 유구가 발굴되면 동궐도의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하였다. ③ 조경사업단에서 호안지역을 시굴조사해본 결과 사고석 석열과 일부 장대석 유구를 확인했다. 그러나 확인된 유구만으로 복원에 한계가 있었다. ④ 좀 더 학술적인 조사를 위해 발굴 전문기관(중앙문화재연구원)에 시굴을 의뢰하여 조사를 실시하였으나 발굴된 유구만으로는 동궐도나 동궐도형의 유구로 판단할 수 없었다. 보수과정에서 전면 발굴을 실시했으나 시굴조사와 같이 유의미한 유구는 발견되지 않아 시굴, 발굴, 보수정비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현재의 반도지 모습으로 보수 정비하였다. | |
⇨ 일제강점기 엽서사진과 동궐도형을 분석해보면 반도지 중앙에 아치형 목교가 설치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경복궁 향원지의 아치형 목교 형태와 비슷하다. 일부 전문가는 아치형 목교로 복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일본인들에 의해 변형된 연못에 조선시대 다리 형태와 다른 목교를 설치하는 것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 |
다 | 옥류천권역 |
① 옥류천은 후원 북쪽 가장 깊은 골짜기에 흐른다. 인조 14년(1636)에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내고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여 작은 폭포를 만들었으며, 곡선형의 수로를 따라서 흐르는 물위에 술전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벌이기도 하였다. ②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 세 글자는 인조의 친필이고, 오언절구 시는 이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작품이다.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농산정(籠山亭), 취한정(翠寒亭), 청의정(淸漪亭) 등 작은 규모의 정자를 곳곳에 세워, 어느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는 정원을 이루었다. 작은 논을 끼고 있는 청의정은 볏집으로 지붕을 덮은 초가이다. ③ 소요암 유상곡수연에 흐르는 물은 북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계곡수와 소요암 뒤편 암반에서 솟아나오는 어정수가 합수하여 흐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어정수의 주변을 시멘트콘크리트로 포장하고 정비하여 일반인들이 쉽게 어정수의 물을 받아 먹고 떠먹을 수 있도록 변형시켰다. ④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정밀한 시공을 위해 설계는 자체 설계(궁능관리과 조경계), 시공은 직접 운영하고 있는 조경 사업단으로 하여금 시행토록 하였다. 어정과 주변의 콘크리트는 전부 철거하고, 소요암의 암질과 동질의 큰 자연암석을 구해 옥류천의 경관에 맞도록 정비하였다. | |
⑤ 옥류천으로 진입하는 관람 동선이 반도지(관람정)→존덕지(존덕정)을 지나 옥류천에 진입하는 능선까지 약 2m의 관람 동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차량의 출입과 많은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해 창덕궁 순환도로를 만들면서 능선에서 옥류천으로 내려가는 급경사지를 절개하여 좌・우 경사면에는 장대석을 높게 쌓고(3~4단) 넓은 포장 도로(약 7m)를 만들어 놓았다. 이로 인해 존덕지에서 올라오는 관람로와 직선의 넓은 차도가 만나면서 옥류천이 바로 들여다 보여 창덕궁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의 느낌이 사라져 버렸다. ⑥ 옥류천 진입로를 정비하기 위해서는 조선시대 이용했던 원래의 진입 동선을 찾는 것이 중요하였다. 성균관과 연결되는 담장변 동선은 문헌과 현장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균관과 연결되는 동선은 현재 이용이 불가능하고, 담장 변을 따라 민가주택, 아파트, 성균관대학교 등이 조망되어 복원의 실효성이 없었다. ⑦ 문헌에서 확인되는 존덕정-옥류천 연결동선은 현장조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고, 경사가 심해 화재예방과 관리를 위한 차량(소방차 등)의 출입이 불가능한 지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존덕정 오솔길에서 능선에 올라 서쪽으로 10m정도 위치한 정상부에 취규정(聚奎亭)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연경당-빙천으로 연결되었던 동선과 연결되는 위치에 있고 옥류천을 내려가기 전 또는 올라온 후 취규정에서 잠시 쉼표를 찍고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관람객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한 정자이다. 또한 취규정에서 옥류천으로 내려가는 지역은 경사도 완만하고 진입 공간에서 옥류천이 들여다 보이지 않으니 자연 지형에 따라 절・성토를 가급적 하지 않고 오솔길(2m정도)로 조성하여 옥류천의 깊은 골짜기의 느낌을 되살릴 수 있었다. 능선을 절개하여 만든 기존 관람로는 철거하고, 지형을 복구한 후 수목(소나무 등)을 식재하여 복구했다. ⑧ 아직도 옥류천지역은 복원 정비하여야 할 변형된 훼손 지역이 존재한다. 특히 청의정 연지에 현재는 벼를 식재하여 경농장 용도로 사용하고 있으나 원형과 맞지 않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조선시대 동궐의 경농장은 춘당대 앞 11필지의 내농포(內農圃)가 존재했다. 또한 사면의 장대석과 청의정을 출입하는 다리 등에 대한 고증과 유구을 볼 때 연지로 복원 정비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고증(문헌, 사진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는 물막이 점경물, 담장, 취병 등은 복원해 나가야 할 것이다. | |
라 | 가정당 권역 |
① 가정당은 고종실록 등 고증자료에 따르면 1897년에 경운궁(현 덕수궁)에 건립되었던 건물로 고종의 장례 때도 활용되었으나, 1928년 경성부에서 발간한 경성부도시계획조사서에 실린 덕수궁 항공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1925년 6월 17일자 시대일보 기사에 “순종과 왕비가 즐길 수 있도록 가정당을 창덕궁 후원에 세웠다”는 기사 등으로 볼 때 일제강점기에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긴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② 가정당을 창덕궁 대조전 뒤편 후원의 높은 정상부 능선에 옮겨 짓고 후원과 분리된 연회공간을 만들기 위해 담장을 둘러 별도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가정당의 서편에 자연석으로 일본식의 회유임천(廻遊林泉)식 계류를 조성하고, 노무라 단풍(홍단풍) 등 외래수목을 식재하고 마당은 넓게 잔디밭을 조성했다. ③ 자연석으로 만들어 놓은 일본식 계류는 철거한 후 자연지형으로 복구하고, 관목류 등을 식재하여 식생을 회복시켰다. ④ 노무라단풍 등 외래수목은 제거하였고, 넓은 면적의 잔디밭은 축소한 후 소나무를 식재하여 대조전 뒤편 후원의 송림을 일부 복원했다. ⑤ 대조전 뒤편의 경관을 구성하는 가정당 지역은 좀 더 과감하게 활엽수(참나무 등)를 제거하고 송림을 조성하되, 가정당앞 조망을 고려하지 않고 식재한 일부 소나무 등은 정비(이식, 제거 등)한다. | |
마 | 후원 송림경관 |
① 창덕궁 후원은 고증(동궐도, 고적도보 사진 등)에 따르면 송림이 주요수종이었고, 특히 건물의 배후 숲은 울창한 송림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벌채되고 고사되어 사라지고 현재는 활엽수(참나무 등)가 주종을 형성하게 되었다. ② 후원의 송림은 복원이 필요하나 처음부터 인정전 뒤편 배후림 등 현재의 주경관을 이루고 있는 크게 자란 활엽수(참나무 등)를 벌채하고 작은 소나무를 식재하는 것은 사회적인 논란 등이 발생할 우려가 높다. ③ 따라서 창덕궁 후원의 송림경관 복원은 외래수목 식재지역, 능허정 정상부 능선지역, 서쪽담장 주변 불량환경지역, 지하벙커설치지역 등을 우선적으로 실시하였다. ㉠ 외래수목 식재 지역으로는 보물로 지정된 선원전 뒤편 후원의 4곳도 단풍을 전면 제거하고, 소나무를 식재하여 송림으로 경관을 회복했다. ㉡ 능허정 정상부는 후원 지역에서 가장 높은 능허정 정상부에 소방시설용 물탱크를 만들면서 주변의 활엽수(참나무 등)를 제거하고 송림으로 일부지역을 복원하였다. ㉢ 담장 불량 환경 지역은 동정문에서 신선원전 까지의 서쪽담장 외곽은 민가주택이 조망되고 있어 활엽수 등을 제거하고 소나무를 식재하여 경관을 차폐시켰다(신선원전 경내 소나무 보완식재). ㉣ 지하 벙커 지역은 창덕궁 후원 입구에서 부용지로 넘어가는 우측(동쪽, 창경궁 경계담장지역) 능선부의 활엽수를 제거하고 소나무를 식재하였다. |
4 | 앞으로의 과제 |
① 2020년 궁능유적본부에서 연구용역을 실시하여 마련한 ‘동궐(창덕궁)의 전통경관 고증 및 조경복원정비 종합계획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단기, 중기, 장기 계획을 마련하여 추진해 나가야 한다. ② 1975년 후원에 국빈행사 경호와 많은 관람객 유치 등의 목적으로 능선을 절개하여 만든 순환도로(노폭 7~8m)를 화재 등 비상상황 시 소방차 등이 출입할 수 있는 노폭으로 축소(3~4m)하고, 연경당에서 존덕지, 존덕지에서 취규정 관람로 변에 놓은 자연석의 철거와 조선시대 후원의 원형 동선을 찾아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③ 창덕궁 부용지 우물을 발굴하여 복원한 것과 같이 동궐도에는 있으나 현재는 없는 돈화문에서 금천교에 이르는 어도, 지당(불로문 앞 등), 우물 등을 발굴 조사후 복원할 지역은 문헌과 현장조사를 면밀히 조사한 후 별도 발굴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한다. ④ 양화당권역은 과거 시험 등의 장소로 사용한 공간에 맞도록 정비(이식 제거 등) 하도록 한다. ⑤ 덕수궁 월대를 재현한 것과 같이 옥류천 농산정 옆의 취병 재현, 동궐도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 등에 설치해 놓았던 판장을 일부 구간 재현, 궁궐내 왕실의 생활의 모습이기도 한 장독 재현, 해시계(앙부일구, 앙부일영)와 측우기, 간의 등 과학기기 재현, 조명을 위한 석등, 석지, 돈화문 월대 앞 하마석 등의 재현이 필요하다. ⑥ 화계에 크게 자란 반송(다행송), 소나무 등을 뽑아내고 화목류 등으로 복원정비 후 지속적인 유지 관리를 시행하고, 창덕궁 후원의 우점하고 있는 활엽수림 일부를 제거하고, 건물주변, 능산부 등에 송림을 회복시캬야 할 것이다. ⑦ 금천교 어구, 연경당 어구 등에 수원(水源)을 확보하여 물이 흐르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⑧ 신선원전에서 의풍각까지의 담장밖 민가를 철거 한후 어구복원과 함께 빨래터 정비, 금호문 인접 2층 단독주택(개인공방) 등을 서울시와의 협의를 통해 정비해야 할 것이다. |
창덕궁 전통조경 관련 주요 연구용역 (문화재청)
년 도 | 제 목 | 비 고 |
1990 년 | 창덕궁 원유 생태조사보고서(수목 및 식생중심) | |
1993 년 | 창덕궁 후원 종묘 창경궁 선정릉의 식생 조사 토양 분석 및 식생 복구 방안에 관한 연구 | |
2001 년 | 창덕궁 반도지 시굴 조사 보고서 | |
2002 년 | 조선시대 궁궐의 전통조경 구조물 복원에 관한 연구 (창덕궁을 중심으로) | |
창덕궁, 종묘 원유 | ||
2005 년 | 창덕궁 경내 편의시설 정비 기본계획 연구 | |
2016 년 | 동궐(창덕궁, 창경궁)의 주요 식생 분석 및 가림시설 원형고증 연구 | |
2018 년 | 창덕궁 후원 생태 경관 보존 지역 관찰 연구 | |
2020 년 | 동궐(창덕궁)의 전통경관 고증 및 조경 복원 정비 종합계획 연구 |
창덕궁 전통조경 주요 공사 내용
년 도 | 제 목 | 비 고 |
1976 년 | 비원조경 | |
1978 년 | 반도지 조경공사 | |
1988 년 | 조경사업 | |
1990 년 | 창경궁 및 창덕궁 화계 수목 보식 | |
조경 정비 공사 | ||
1991 년 | 후원 소나무 심기 식목 행사 | |
인정전 주변 기존 수목조치 | ||
인정전 주변 조경정비 | ||
1992 년 | 인정전앞 향나무 이식 정비공사 | |
원유복구 조경정비 공사 | ||
1993 년 | 애련지 정비공사 | |
돈화문 주변 조경정비공사 | ||
1994 년 | 원유 복구 조경 정비공사 | |
1996 년 | 화훼단지 주변 조경 | |
낙선제 주변 조경 | ||
1997 년 | 직영보수단 철거지역 조경 정비 공사 | |
1998 년 | 후원조경 | |
1997~8 년 | 복원 정비 지역 조경(설계, 공사) | |
1999 년 | 규장각 복원예정지역 수목이식공사 | |
인정전 화계 수목 정비 | ||
대조전 화계 조경 | ||
2000 년 | 창덕궁・종묘 주변 조경 정비 요청(돈화문~종묘 서쪽 순락길 민가 지역) | |
창덕궁 복원정비지역 조경(설계, 공사) | ||
2001 년 | 규장각 복원지역 수목 정비공사 | |
2004 년 | 규장각권역 및 주합루 주변 조경정비(설계, 공사) | |
옥류천 지역 조경정비 공사 | ||
2005 년 | 경내 편의시설 정비(설계, 시공) | |
2006 년 | 낙선재권역 조경정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