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산행기 3＞~율곡 이이 선생의 글도 소개함.

[성경신]

멋진 여명을 감상하고 나서 철제 계단을 타고 희운각까지 내려왔다.

주변에 인기척이 없다.

천불상에 햇빛이 비치기 시작할 무렵

공룡능선을 타기 위해 무너미 고개로 향했다.

공룡능선. 이름만으로도 주눅이 든다.

공룡은 지상에 존재했다가 사라진 종이다.

존재(화석)는 있지만 실재하지 않으니

나름대로 상상하여 새로운 용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용(龍)은 십이간지(子쥐.丑소.寅범.卯토끼.辰용.巳뱀.午말.未양.申원숭이.酉닭.戌개.亥돼지.)에 들어가 있다.

설악산에 ‘용아장성’의 용아(龍牙)는 용의 이빨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졌다.

봉정암 근처에서 보면 마치 송곳니처럼 솟아있다.

능선은 용의 등을 닮았다.

용의 지느러미를 탈 때 부상의 위험이 있으니 조심해야겠다.

홀로 등산하는 상황인데 다치면 대책이 없다.

등산 안내판을 보니 희운각 대피소에서

공룡능선이 끝나는 마등령 삼거리까지 거리가 5.7km 이다.

암릉에 설치된 손잡이 쇠봉과 밧줄을 더위잡는데 한 분이 쉬고 있었다.

인사를 건네고 마등령에서 오시는 분이냐 물었더니

중청대피소에서 자고 아침 일찍 신선봉까지 갔고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부지런도 하셔라! 나보다 먼저 오른 사람이 있었군.’

산마루에 서서 능선을 바라보니 참으로 장관이었다.

뒤로는 대청 중청 소청이 대장군처럼 버티고

앞으로는 군사들이 영을 받들고 있는 듯하다.

틈나는 대로 쓰는 글이라 더 꼼꼼해질 수 없어

한주 내내 읽은 이율곡 선생의 금강산 기행문을 여기에 소개해본다.

설악산 공룡능선과 천불동 계곡을 지났던 사람이

아래 글을 읽어본다면

참으로 멋진 표현에 졸도할 지경이고 왜 율곡 선생이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별표는 글을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찾아 기록했다.

 “하루낮 하룻밤을 꼬박 걸은 뒤에야

비로소 산 중턱에 이를 수 있었노라.

피곤해서 반석 위에 누워 있노라니

위아래로 보이는 게 모두 아득하여라.

마음이 안정되어 머리를 치켜드니

뭇 봉우리들 죄다 나에게로 향하네.

높고 낮고 멀고 가까운 봉우리들이

하나같이 모두 깎아서 세운 듯하다.

이곳에선 먼 거리도 가깝게 보여

크건 작건 모두 숨김없이 드러난다.

홀연히 흰 안개 뭉게뭉게 피어올라

시야가 흐려져서 멀리 볼 수 없어라.

처음에는 한 골짜기에서 피어나더니

점점 이 산 저 산을 덮으며 내달린다.

끝내는 산들을 아스라하게 만들고

다시 바다까지 아득하게 만들도다.

넓디 넓은 동일한 기운이건만

아득하여 측량하기 어려워라.

듣건대 천지가 개벽되기 이전에는

모든 조화가 개장되지 않았다네.

그런데 산신령은 무슨 뜻을 가지고

나에게 만물의 시초를 보여 주는지

바람은 없는데 안개가 점차 흩어져

반쯤은 걷히고 반쯤은 자욱하구나.

두어 점 빼어난 봉우리 비로소 드러나

천상의 산처럼 외롭게만 보이는구나.

짙푸른 색으로 긴 눈썹을 그려 놓은 듯

바다에서 목욕하던 붕새 부리를 쳐든 듯

조금 후에 세찬 바람이 일어나는데

빠르기가 마치 달리는 천리마와 같았다.

잠시 동안에 한 점도 없이 안개가 걷히니

시야가 사방으로 시원스레 툭 트이는구나.

어떤 봉우리는 칼끝처럼 뾰족하고

어떤 봉우리는 제기처럼 둥그스름하다.

어떤 봉우리는 달아나는 뱀처럼 길고

어떤 봉우리는 누워 있는 짐승같이 짧다.

어떤 봉우리는 만승천자(萬乘天子)가

대궐 문을 활짝 열고 조회를 받을 때

만조백관들이 엄숙하게 모시고 선 듯

구름처럼 모여 있는 거마와 같기도

어떤 봉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중생을 거느리고 영취산에 계실 때

오랑캐 군주나 귀신 우두머리들이

앞을 다투어 나오는 머리들 같기도

어떤 봉우리는 *오기(吳起)나 손빈(孫臏)이

*오기는 위나라 사람으로 초나라에서 공훈을 세운 장수

*손빈은 손자병법을 쓴 손무의 후손으로

의형제를 맺은 방연이 배반하자 꾀를 내어

퇴각전법을 사용하여 방연을 계곡으로 유인하여 죽게 하였다.

북을 울려 삼군을 벌여 세운 다음

철마로 창과 칼을 휘두르면서

장사들이 앞을 다투어 추격하는 듯

어떤 봉우리는 짐승의 왕인 사자가

위엄으로 온갖 짐승 떼를 제압하는 듯

어떤 봉우리는 비를 내리는 용이

갈기를 날리며 검은 구름을 뿜는 듯

어떤 봉우리는 바위에 기댄 호랑이가

돌아보면서 길 복판에 쭈그려 앉은 듯

어떤 봉우리는 첩첩이 쌓아 놓은

*업후의 삼만 권 책과도 같고

*한퇴지의 시에 당나라 때 업후가 시렁에 책 삼만권을 꽂아두었다는 내용이 있다.

어떤 봉우리는 층층이 쌓아 올린

소량의 구층 탑과도 같다.

어떤 봉우리는 다닥다닥 연이은 무덤

 *정령위(丁令威)가 고국을 찾을 때처럼

*정령위는 신선술을 익혀 우화등선(羽化登仙)하였다.

선계에 올라간 후 다시 천년 이상 수련하여

선학(仙鶴)되어 고향에 돌아왔으나

고향사람들은 다 무덤속에 있었다고 한다.

어떤 봉우리는 서로 향해 읍양을 하는 듯도

어떤 봉우리는 등을 돌려 독기를 품은 듯도

어떤 봉우리는 서먹서먹 서로 피하는 듯도

어떤 봉우리는 오손도손 서로 친밀한 듯도

어떤 봉우리는 얌전한 새아씨가

깊은 규방에서 정숙을 지키는 듯도

어떤 봉우리는 글 읽는 선비가

머리를 숙이고 책을 펼치는 듯도

어떤 봉우리는 분육 무리가

용기를 뽐내며 호통을 치는 듯도

어떤 봉우리는 좌선하는 승려가

명아주 평상에 무릎을 꿇은 듯도

어떤 봉우리는 토끼를 잡는 새매와도 같고

어떤 봉우리는 새끼를 안은 사슴과도 같다.

어떤 봉우리는 놀란 오리가 나는 듯도

어떤 봉우리는 우뚝 서 있는 고니와 같기도

어떤 봉우리는 거만스러운 자세를 하고 있고

어떤 봉우리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어떤 산은 뿔뿔이 흩어져 합쳐지지 않았고

어떤 산은 죽 연이어져 끊어지지 않았다.

만상이 각각 다른 자태를 드러내고 있으니

실컷 구경하느라 발걸음 옮길 줄을 잊었네.

도저히 중도에서 폐지할 수가 없어서

나는 결국 높은 절정에까지 오르려 한다.”

 

세존봉

마등령 근처 너덜지대

참고로 율곡 선생은 반 년 동안 금강산에 기거했다.

[대장]

오랜만에 보는 설악의 절경과 요소요소도 반갑지만 좋은 글 소개해주느라 애쓰는 수고에 감사할 따름이네~

[성경신]

대장/ 한시를 익혀봐..삶의 모든 것이 녹아져 있네.
여러 조건들이 필요해. 한자 장벽을 깨면 말야. 문리도 금방 트이는 것도 아니고
또 서체도 익혀야 하고... 단숨에 될 수 없지. 방법은 꾸준히~나도 배우는 중이야..늙어가며 소일거리로 최고일 듯.ㅎ

[대장]

진지하게 생각해볼께.
몇해전 교보에서 만화를 곁들인 당.송시대의 한시집을 서너권 사서 보긴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