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뇌의 해부학
뇌에 대한 중요한 시작은 (현재 하버드대학교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철도 노동자 게이지Phineas Gage의 머리에서 비롯되었다. 1848년 9월 13일 새로운 선로를 깔기 위한 폭파 작업 도중에 사고가 발생해 쇠막대기가 날아와 그의 머리의 박혔고 4센티미터나 되는 큰 구멍을 냈다. 그는 우마차에 앉은 채 근처 식당으로 옮겨져 동료들의 부축을 받아 베란다로 걸어갔으며, 의사가 도착했을 때는 "의사 선생님, 이곳에 당신이 하실 일이 많군요" 라는 농담까지 했다고 한다. 그는 살아났으며 말도 할 수 있었고 기억력도 예전과 다름없었다. 또 신체에 어떤 마비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던 그가 이제는 마구 욕설을 해대는 사람으로 변했다. 게이지의 사례는 뇌의 손상이 아주 특수한 정신 질환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뇌 손상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1861년 브로카는 말을 하지 못하는 한 남성을 연구해 그의 뇌 좌반구 앞부분에 손상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이후 다른 연구자들은 브로카가 연구했던 부분을 브로카 영역 Broca-Area이라 불렀다. 또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베르니케 Carl Wernicke(1848-1905)는 뇌의 다른 부분에서 또 하나의 언어 중추를 발견했다. 그의 환자는 말을 할 수는 있었으나 그 내용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이로써 뇌의 특정 영역은 특정의 정신적 능력을 담당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물론 언어에 대해서는 특정한 하나의 영역이 아니라 뇌의 여러 곳에 분포된 다수의 영역이 공동으로 관할한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그 다음 100년 동안 뇌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1909년 신경생리학자 브로드먼Koebinian Brodman은 유명한 뇌 지도를 출간함으로써 이후 오랫동안 뇌 연구에 사용될 도구를 제공했다. 그는 대뇌 피질의 뉴런이 속하는 특징적 영역을 도해로 나타냈다. 마침 양차 세계 대전 중에는 뇌에 손상을 입은 환자의 수효가 현저히 증가했는데, 연구자들은 이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뇌의 손상된 영역이 사고, 언어, 태도 등과 어떤 상관성을 갖는지 탐지할 수 있었다.
2절 뇌의 생리학 오늘날의 관점에서 우리 뇌는 대략 다음과 같이 기술된다. 그 무게는 2.5 ~ 3 파운드이다. 물론 서로 다른 두 사람 간에 수백 그램에 달하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차이가 지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말할 수는 없다. 뇌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것은 뇌 줄기, 시상을 에워싸고 있는 대뇌 피질, 기저 신경절(신경 세포나 신경 섬유가 모여 혹처럼 된 것), 해마 Hippocampus, 소뇌이다. 대뇌 피질과 시상은 시상-대뇌 피질 시스템을 이룬다. 이것은 감각적 자극과 기타 입력 내용을 수용한 시상이 그것을 대뇌 피질의 각 부위로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이 두 가지는 세세히 기술할 수 없을 정도의 여러 영역으로 세분화된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감각적 자극을 처리하는 것은 머리 뒤쪽에 있는 뇌이며, 생각하는 사람의 이마 뒤에는 무엇인가를 기획하는 부위가 숨겨져 있다. 또 센서 영역내부에는 시각과 청각 등을 담당하는 분화된 작은 영역이 있으며, 이 영역이 다른 세분화되어 특정 형태, 색체, 운동을 담당한다. 이 모든 영역은 우리 머릿속에 세계에 대한 유용한 상이 형성되는 데 기여한다. 인간은 모든 영장류와 마찬가지로 눈을 가진 동물이므로 특히 시각에 대해서는 아주 전문화된 많은 모듈(표본으로 삼을 수 있는 기준)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이를테면 타인의 얼굴을 인식하는 일과 같이 사회적 존재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것들이다. 여기서 어떤 개별적 성취가 완수되는지에 대해서는 특정 모듈이 사고로 인해 탈락하는 경우 파생되는 특이한 결과를 관찰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를 보게 되면 당연히 그분이 자신이 어머니라는 것을 안다. 또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더라도 그를 대번에 알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옛 친구뿐만 아니라 어제 보았던 자신의 어머니조차도 몰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얼굴 망각증Prospagnesie에 시달리는 사람들로서(그리스어로 prospon은 얼굴을, agnosia는 무지를 의미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얼굴을 보고 있긴 하지만 그 얼굴이 어디에 속하는 것인지 분간해 내는 능력은 없다. 그들에게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보이며, 또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낯설게 여겨진다. 이런 종류의 뇌 질환은 뇌에 손상을 입음으로써 발생할 수도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선천적으로 이런 질병을 얻은 사람은 후천적으로 그렇게 된 사람보다는 생활에 지장을 더 받는다. 왜냐하면 그는 주위 사람들을 알아보기 위해 애초부터 정상인과는 다름 변별적 특징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즉 목소리, 냄새, 몸매, 특별한 몸동작 따위를 통해 사람들을 구분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그들에겐 ‘얼굴’ 이란 것이 특별한 표식이 되질 않는다. 어떤 얼굴이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얼굴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뇌 속의 모듈은 지금 보이는 타인의 얼굴을 기억 속에 저장된 다수의 얼굴과 비교하는 과제를 갖는다. 만약 합치하는 얼굴이 발견된다면 그 사람의 이름이나 기타 특성이 의식 속으로 호출되지만.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 새로운 얼굴은 몇 가지 정보와 함께 새로 저장된다. 이와 같은 기능을 하는 모듈은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일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나머지 불필요한 모든 특징은 가려진 채로 의식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몇 년이 지난 후 몰라보게 변한 어떤 친구를 만나더라도 그를 알아볼 수가 있는 것이며, 지난주까지 수염이 덥수룩하던 친구가 갑자기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나타나더라도 경우에 따라 그런 변화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다. 일치 여부를 인식하는 기능은 그런 식으로 쉽게 변할 수 있는 부차적인 특징에 대해 서는 평소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뇌 속에 있는 특정 뉴런 그룹은 타인의 얼굴을 관찰할 때 일치를 확인하는 일 외에 또 다른 특수 능력도 확보 하고 있다. 상대방의 나이, 얼굴 표정(행복한 상태인지 화가 나 있는 상태인지 등등), 혹은 그 사람의 관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사춘기 전후부터는 특정 모듈이 상대방의 매력적인 모습을 파악해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모든 해석은 우리가 어떤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자동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진행 된다. 이런 능력의 상실로 인해 발생하는 얼굴 망각증 외에도 우리 뇌에 각종 모듈이 존재함을 증명해 주는 특수 질환은 많다. 이를테면 대상을 재인식하는 능력 부재, 거리 감각 상실, 대상을 만져 보고 알아내는 촉감 상실, 청각성 실어증Worttaubheit (언어를 지각하는 능력이 떨어져 말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말을 더듬는 등 말을 할 때의 일관성이 상실되는 증세), 감정을 인지하는 능력 상실Alexithymie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처럼 뇌에는 한편으로는 전문화와 분화가 존재하며, 다름 한편으로는 그 개별 뉴런 그룹 간의 집중적 교류가 존재한다. 그것은 동시에 등장하는 여러 자극 내지는 유사한 방식의 자극에 개별 뉴런 그룹이 반응함으로써 각종 모델을 조합해 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연결된 그룹들이 서로 이웃하여 존재할 필요는 없다. 각기 뇌의 여러 장소에 산재할 수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시상-대뇌 피질 시스템은 수백 개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긴밀한 상호 작용을 하는 뉴런 그룹들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뇌의 그 두 가지 측면, 즉 전문화와 상호 교류 측면을 두고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뇌는 모듈과 전체성, 특수화의 총체화의 종합이다." 신경학자 색스Oliver Sacks는 이 종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각을 담당하는 지국은 대략 50개가 있으며 이것들 모두 완전히 독립적인 작업을 한다. 그 지국들은 서로 다른 측면의 시각적 세계, 즉 색채, 운동, 공간, 구석, 형태, 대조 등에 대한 인상을 처리하는 각각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최종적으로 그 모든 인상을 투사하는 스크린이 존재하지 않는다. ... 그러나 이 50개의 지국 간에는 지속적인 대화가 존재한다. ... 결국 우리는 수천 개의 그런 지국의 존재를 상상해 보아야만 한다. 역시 수천가지의 목소리가 존재할 것이며, 그 많은 목소리가 모여 마치 천 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처럼 ‘현실’의 음악을 연주한다. 아니 어쩌면 작곡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뇌, 기저 신경절, 해마에서는 이런 네트워크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들 장소는 관례적으로 대뇌 피질을 위해 마련된 정신적 서비스를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곳인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이 세 곳에서 하는 일은 대뇌 피질의 각 부분에서 온 입력 내용을 수신하여 여러 단계의 가공 과정을 거친 후에 다시 원래의 장소로 돌려보내는 일인 것이다. 소뇌는 운동의 조율 및 사고, 언어의 특정 측면을 처리하는 임무를 부여받는 듯하며, 기저 신경절은 복합적인 동적. 인지적 과제의 계획과 실천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해마는 무엇보다도 장기간 보존되어야 하는 정보의 축적을 위해 예비 작업을 하는 장소다. 뇌 줄기와 시상 하부에는 일련의 작은 핵들이 존재하는데, 이 핵들은 뇌 전체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으며 필요시에 (예컨대 기관총이 발사되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생명의 위험을 느끼게 되는 순간) 뇌 전체의 활성화에 영향을 미친다. 일종이 고차원적인 측면에서 전체를 통괄하며 평가를 내리는 일을 하기에 ‘평가 시스템’ 이라 불리기도 하는 뇌 줄기와 사상 하부는 특히 분위기와 감정을 관할하는 곳이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각각 개별적으로는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직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의학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대부분의 의약품이 이 평가 시스템의 세포에 작용하여 간접적이지만 전체적으로 뇌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3절 기억과 상상력 기억도 '퇴화' 한다. 그것은 기술적 데이터 저장 장치(DVD, 사진 ,메모 용지 등)와는 거의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가 과거의 기억을 상기하는 것은 저장되어 있는 명백한 데이터를 정확한 형태로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뇌 속에 남겨진 흔적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즉 최초로 생각했을 때와 대동소이한 과정이 반복되는 것일 뿐이다. 이 때 뇌는 제어 서클 집단으로 부터 하나의 모델을 활성화화며, 그 구성원들은 개략적으로 말해 그 모두가 이미 생각했던 것. 이미 보았던 이미지, 이미 체험했던 장면 따위에 주목한다. 여기서 사용된 ‘이미지’ 라는 용어는 은유적으로 사용될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 머릿속에 결코 사진과 같은 의미의 이미지가 주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무엇을 바라보는 직접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뇌에는 사진이 가진 작은 점들의 정확한 질서가 없으며, 다만 시각 뉴런의 여러 가지 활동과 세계에 대한 지식에 의존해 만들어내는 표상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표상은 뇌 활동의 한 모델에 상응하며, 이런 뇌 활동은 (또는 현재와 그 당시 사이에 발생한 사건에 의해 위조된 뇌 활동은) 과거의 사건을 회상할 때마다 반복된다. 어린 소년이 할머니를 만나 인사할 때 손을 내밀어 악수하는 것을 배워 다음에 할머니를 만났을 때에도 그렇게 하는 경우, 그 소년은 처음에 했던 그 동작을 정확하게 재현하기 위해 당시의 일을 상기해 내는 것은 아니다. 물론 겉으로 볼 때는 지난번과 똑같은 동작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다시 악수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동작일 뿐인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게 무심코 손을 내미는 것이 더 낫다. 만약 그가 과거의 동작을 정확히 재현하려 한다면 그는 허공과 악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할머니가 지난번과 정확히 동일하게 그를 향해 허리를 굽히거나 손을 내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어쩌면 그 소년의 키가 그동안 한 뼘 정도 더 자라났을 수도 있고, 혹은 지난번과 달리 오른손 대신 왼손을 내밀게 될 수도 있다. 소년이 50살이 되어 돌아가신 지 이미 오래된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해 내고 싶어진다면, 그는 할머니를 만나 악수를 할 때의 그 ‘기념적인 동작’을 반복해 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를 본 지 너무 오래되었으므로 그와 같은 반복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할머니의 이미지는 이제 오히려 그의 어머니의 모습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오늘의 어머니는 25년 전이 할머니와 어느 정도 닮았을 테니까. 기술적 의미에서 뇌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법을 모르며, 저장소를 따로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즉 우리의 기억력은 뇌의 수많은 각종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는 탈중심적인 것이다. 약 200년 전 독일 소설가 파울Jean Paul은 "유물론자들은 분명 720여 년 동안 죽처럼 질척한 뇌 속에 수백 만 장의 사진을 화석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억력이라는 것은 화석화된 것이라 보기에는 아주 유동적인 상태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러한 유동성은 기억 행동과 인식 행동이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해준다. 인식은 결코 수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창조적인 행동이며, 직접적인 감각에 대한 인상과 기억이라는 두 가지 관점이 함께 개입해 표상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이다. 그리고 기억은 과거의 것을 다시 생각하는, 혹은 다르게도 생각할 수 있는 상상의 행위다.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데 상상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어린이들이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할 때 잘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