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5월 18일에 카롤 유제프 보이티와(Karol Jozef Wojtyla)는 폴란드 크라카우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도시 바도비체(Wadowice)에서 태어났다. 고등교육과정을 우수하게 마친 그는 1938년에 크라카우로 아버지와 함께 이주하여 그 도시에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1940년에는 크라카우 인근 탄광촌과 화학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사제직으로 부름받았음을 느낀 후 1942년부터 크라카우의 대주교였던 아담 스테판 사피아 추기경의 지도 아래 있었지만, 당시 공식적으로는 '불법'이었던 대신학교의 양성과정을 다녔다.
1946년 11월 1일에 사제로 수품되었고, 며칠 후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로마로 떠났다. 야지엘로니카(Jagiellonica, 크라카우) 대학교의 교수진은 1942년부터 1946년까지 그가 크라카우에서 이미 이수한 학점들과 그후 로마 안젤리쿰에서 수학한 과목을 인정하며 최고 점수로 박사학위를 수여하였다.
1964년에 크라카우의 대주교에 임명된 후 바벨(Wawel)의 주교좌 성당에서 착좌식을 가졌다. 1962년과 1964년 사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네번째 회기에 참석했다. 1967년 6월 28일에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1978년 8월 6일 바오로 6세가 선종하자, 1978년 8월 26일에 장례식에 참석한 뒤 이어 요한 바오로 1세(알비노 루치아니)를 뽑은 추기경 회의에 참석하였다. 요한 바오로 1세가 갑작스럽게 선종하자, 새롭게 시작된 1978년 10월 16일 추기경회의에서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에 선출되었다. 그는 베드로의 263번째 계승자이자 16세기 이래 첫 비 이탈리아 출신 교황이다. 사실 1523년 선종한 네델란드 출신 아드리아노 6세가 마지막 비이탈리아 출신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재임은 '사도좌 여행'이라는 특별한 양식으로 기억될 수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임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탈리아 안에서 사목방문을 141차례 하였고, 로마의 주교로서 총 334개의 로마교구 본당 중 301곳을 방문했다. 모든 교회를 위한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끊임없는 사목적 독려의 표현인 세계 각국의 사도좌 방문은 95차례에 이른다.
20세기의 손색없는 주인공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길고 긴 재임기간은 삼천년기를 향한 교회의 전환기와 이 세기에 잊혀지지 않을 흔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