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유럽 3개국(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탐방 보고서3-노르웨이
‘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
“대화로 하자, 때리지 마라, 고맙다.”
Song학교의 중재프로그램- 중재는 하나의 진행 과정이 있고, ‘중재’는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중재는 ‘화낸 것을 진정 시키고 대화하게 하는 과정’이다.
김현진(시민연대 회원, 현 중학교 교사
Ⅲ. 노르웨이 교육 탐방을 가다
(1) Sogn videregaende skole (UPPER SECONDARY SCHOOL)
skole는(이하 송 고등학교)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직업학교이며, 1960년에 개교했다. 직업학교로서 8개의 과정을 가지고 있으며, 1200여명의 학생과 300여명의 교직원 그리고 70여 개국에서 온 유학생이 있다고 한다(실제로 히잡을 쓴 이슬람계 여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16세부터 입학을 하며, 성인을 위한 교육 과정도 운영한다(북유럽의 직업 학교들의 공통점이 학생과 성인 교육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이다).
① Circle system – 송 고등학교의 의사소통 진행 방법
‘중재 프로그램’
프로그램에 방문자를 투입하여, 프로그램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첫 시간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method대로 보여주겠다고 했다. 써클 시스템을 가질 때마다,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이야기 한다고 시범을 보였다. 이 때 규칙이 있는데,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앉고, 자신에게 ‘말하는 공’이 주어져야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한꺼번에 동시에 말하면 대화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 여기서 ‘중재’란 ? 가이드가 중재라고 통역을 했는데, 문맥적 의미로 봤을 때 어떤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혹은 일상적으로 운영하는 대화 시스템에서), 양자를 모아서 대화(써클 타임)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이해됨(학교 중재와 거리 중재가 있음).
구닐 선생님은 ‘학생들끼리의 중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고 중재를 위해선 의사소통의 ‘도구’가 필요하다. 또한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의 좋은 관계를 위해 중재가 필요하다. 그래서 늘 학생과 교사가 함께하며 서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황 1. ‘태양이 빛난다’ 게임(서로 친해지는 게임)
한 사람이 일어나서 ‘태양이 나를 비추고 있고, 머리 긴 사람 일어나세요’등으로 자리를 바꾸고,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은 원 가운데 들어가서 ‘태양이 나를 비추고 있고, 000 한 사람 ****하세요’라고 지시하는 것을 반복하는 게임이다. 최대한 먼 자리 이동이 규칙이며, 지시하는 행동은 물리적인 것과, 정서적인 부분 모두 가능하다. 게임의 목적은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우리는 모두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며, 모든 사람이 말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상황 2. 둘씩 짝지어 대화하기
1분간 자신이 잘 하는 것 두 가지를 말하고, 상대방이 잘 하는 것 두 가지를 듣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발표, 이 게임은 정확히 말하고 전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목표이다.
상황 3. 3명이 한 그룹을 만들어서 큰 종이를 작게 접어가면서 함께 올라가는 게임.
② 학교에 대한 브리핑 내용
구닐 선생님은 “분쟁은 하나의 에너지이다. 에너지는 위험할 수도 있고, 새로운 도전에 이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분쟁에는 ‘위험 혹은 새로운 것’이란 의미가 있다. 분쟁 안에는 에너지가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예를 들어, 학생 1이 학생 2의 숙제를 훔쳐서 제출하고, 제일 좋은 성적을 받아 학생 2가 매우 화가 난 상황이 발생했다고 가정할 때, 중재의 절차를 다음과 같이 재연해 주었다.
교사가 우선 학생 1과 2를 분리함 → 상황을 확인함(양쪽 모두에게) → 다음 날 두 학생을 불러서 학생의 자유 의사를 확인하고,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중재할 수 있음.
중재는 다음의 단계별 질문에 의해서 실행한다.
1. 무슨 일이 있었느냐?(얼굴 대 얼굴을 보며 하는 단계)
2. 공격을 당할 때 어떤 느낌이었느냐?(양쪽 모두에게)
3.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4.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5. 지금까지의 대화 내용을 정리하여, 중재위원과 학생 1과 2가 모두 확인하는 서명을 한 후 중재위원이 큰 소리로 대화 내용을 읽음.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나서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과정을 거침(또 다른 문제가 없었는지).
대부분, 위의 단계를 거치면 더 이상 큰 문제가 생기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노르웨이인들은 약속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라는 답으로 돌아왔다..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 : 학생 1이 잘못했는데 이런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한가?
답변 : 보통 잘못을 저지른 학생을 벌을 주기는 함. 성적을 감점하는 방법으로 벌을 준다
그러나 중재의 역할은 ‘쌍방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임. 그래서 벌을 주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
고, 쌍방의 관계를 좋게 만드는 것에 목표를 둠. 즉, 중재는 더 큰 문제가 발생 하기 전에 미
리 방지하는 것이다.
질문 : ‘중재’를 담당하는 교사는 ‘중재’ 업무만 하는가?
답변 : 노르웨이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동시에 중재 업무를 한다. 학생 1은 친구 관계도 어기고, 교칙
도 어겼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학생 1의 잘못된 행동을 따질것이다. 그러나 학교의 법만으로
는 두 사람의 분쟁을 해결할 수 없고. 특히 관계의 회복이 매우 어렵다.
송 고등학교의 모든 학생은 중재를 위해서 4시간의 교육(필수)을 받으며, 전문가 과정을 원하는 학생은 별도의 교육을 받는다. 각 전공별로 교사와 학생들이 중재위원회를 조직하여 수시로 대화하고 있다. 특히 학생 중재위원들은 다른 학교 중재위원들과 워크샵도 정기적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는 국가의 지원을 받는다고 한다.(즉, 다른 학교의 분쟁 중재도 시행).
‘중재위원 제도’는 노르웨이의 모든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송 고등학교가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학교이며, 송 고등학교 학생 중에는 중학생 때부터 중재위원으로 활동한 학생도 매우 많다고 한다. 오슬로의 모든 초․중(바네스콜레, 통합 과정)학교는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중재 제도’ 사회의 여러 가지 분야에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구닐 선생님은 “모든 인간관계는 그 자체가 관계고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이러한 중재는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구닐 선생님은 “리더는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아니면 집에 가든지, 안정과 편안함이 없다면, 대화는 다 깨지기 마련이다.”라고 말한다.
③ 학교 ‘중재’를 위해 중요한 요소
학생중재위원회에서는 또래들과의 관계 맺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매년 12월에 노벨 평화상을 수여되는 12월 마다 청소년 중재위원 워크샵을 가지는데, 학생 중재위원 워크샵 모토는
‘대화로 하자, 때리지 마라, 고맙다.’
마지막으로 구닐 선생님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학교 중재는 하나의 진행 과정이 있고, ‘중재’는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중재는 ‘화낸 것을 → 진정 시키고 → 대화하게 하는 과정’이다. 분쟁을 조정할 때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고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재자는 두 사람을 언어로 소통하게 해야 하는데, 둘 중 한 사람은 화가 난 상태이고, 한 사람은 두려움에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송 고등학교는 학생 중재 위원들이 그 역할을 매우 잘 해서 자랑스럽다.
학급 분쟁은 ‘써클 타임’을 활용하여 잘 풀어나가고 있다. 학급 분쟁의 경우, 주로 게임과 대화를 통해 풀어간 후, 마지막에 중재위원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할까?’를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마지막에는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할까?’를 질문한다(학생중재위원 벤자민도 실제로 자신이 학급 중재를 하고 있으며, 큰 도움이 된다고 함).
2011년 한 해, 송 고등학교에서는 70여건의 중재 요청이 있었는데, 그 중, 3건은 개인적인 문제였다(주로 남녀 관계 문제). 어른들에겐 이성 문제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으나, 청소년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학생 중재위원들이 오히려 또래들의 그런 분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나’같은 할머니는 그런 상황(남녀 관계 문제)을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으나, 세대에 따라 상황을 받아들이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학생 중재 위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브리핑을 마쳤다.
(2) 한국 사회를 보는 또 다른 한국인 – 오슬로 대학 박노자 교수를 만나다.
-인터뷰 내용이 너무 길어 일부만 싣습니다. 전문은 시민연대 카페에 올립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의 모든 것을 매우 깊이 알고 있다고 평가받는 박노자 교수와의 대담은 인터뷰 내용 싣는다.
(연 : 연수팀 질문, 박 : 박노자 교수 답변)
박 : 송 고등학교는 왕따 프로그램 모범 학교입니다. 제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담임 교사가 학부모를 불러 ‘아동 계발 상담’을 실시하고요. 아동이 계발(성장)되는 과정을 부모와 심층적으로 면담하죠. 제 아이가 그 학교 유일한 이민자라서, 그 상담을 받는데, ‘당신한테 누가 당신의 외모로 이상한 말을 하지 않느냐?’라는 내용 등으로 상담합니다. 부모를 다 부르는 이유는 학생, 부모, 교사 사이에 신뢰를 형성하여 아이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의 속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 위해서 이고요. 제 생각에 왕따 문제가 그 프로그램으로 매우 많이 예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노르웨이인끼리 왕따를 시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이민자를 왕따시킬 경우 그것은 ‘인종주의’와 연결되요. 이 사회는 이민자와 소수자가 더욱 보호받는 사회이기 때문이죠. 혹시 대한민국은 다문화 아이가 괴롭힘을 당할 경우 예방 프로그램이 있는가?
연 : 아직까지 그 정도는 없습니다. 한국에서 요즘 청소년들이 자살하는 소식을 들으셨나요?
박 : 아, 못 보겠습니다.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한국은 토박이 한국 아이들한테도 그러는데, 다문화 아이들에게는…….
연 : 저희가 핀란드, 덴마크 그리고 노르웨이에 학교 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배우러 왔는데, 잘못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이 없더라구요. 저희가 놀랐던 것이 핀란드의 한 학교에서 이 학교에 ‘학교폭력’이 있냐고 질문했더니, ‘학교 폭력’이라는 말의 의미 자체를 이해하지 못 하시더군요. 그게 아마, 그런 일이 없으니까, 예를 들어 ‘존재가 없으니 의미가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잘못 왔나?’하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박 : 아니, 잘못 오셨다기 보다는 여기선 물리적인 학교 폭력이 극히 적어요.
연; 그럼 왜 그렇게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극히 적을까요?
박 : 여기에선 왕따 피해율이 20% 정도 됩니다. 그런데 그 ‘피해’ 라고 함은 같이 안 놀아준다거나 안 끼워준다, 모욕준다, 아주 심한 왕따는, 예를 들어 어떤 것이냐면 얼굴에 침 뱉고, 가방을 가지고 그 가방을 더럽힌다 정도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서 ‘때린다’는 것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왕따 피해사례를 봐도……. 그러니까 왕따 피해율은 대한민국과 비슷하죠. 한 20%정도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정도가 달라요. 그게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까 기본적으로 ‘때린다’는 행위의 사회 및 문화적 의미가 다르다는 거죠. 여기에선 79년 이후엔 가정에서의 체벌이 금지돼 있어요.
연 : 법으로요?
박 : 네, 국가가 법으로 금지하고 있어요, 아동 권리 보호 차원에서. 예를 들어서 아이를 체벌했다가 남이 그것을 본다면 신고가 들어가고……. 그러니까 여기 아이들은 가정에서 거의 폭력을 당하지 않아요. 3-4% 정도밖에 안 돼요. 아이를 통해 제가 관찰한 것으로는, 조금 딱딱하게 대하는 경우는 있어요. 그러나 가정에선 절대 아이를 때릴 수 없어요. 제 아내가 한 때 아이를 조금 때렸는데, 저는 사실 겁이 났어요. 친권 박탈 당할까봐(웃음). 그래서 제가 설득을 했죠. 그렇지만 이웃이 한 번 보면 끝이에요. 정말 끝이에요. 그 다음엔 국가 기관이 개입을 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가정에서부터는 때리는 게 별로 없어요. 그리고 정치와 사회에서도 ‘폭력’을 행사한다는 건, 엄청난 일이죠. 폭력이 생기면 나중에 법적 절차를 따르게 됩니다.
연 : 우리 나라 사람들이, 여기에 학교 탐방을 많이 오죠?
박 : 네, 많이 옵니다.
연 : 교수님,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사람들을 어떻게 보세요? (일동 웃음) 저는 한심하게 보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드리는 거에요. 저도 한심하고요. (웃음)
박 : 우리(한국 교육)가 여기처럼 되려면, 진보 교육감이 아니고 혁명이 필요합니다.
연 : 제가 봤을 땐, 이게 교육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 시스템의 문제고 국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밑의 어떤 것들이 바뀌어야 하는 거지, 저 앞의 수구꼴통들이 앉아서 시스템 자체가 바뀌지 않는데, 과연 대한민국 사람들이 제가 알기로도 얼마 전에도 30명 왔다 가고, 40명 왔다가고, 과연 그렇게 많은 외화를 가져다 여기에 투자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그 ‘핀란드 교육혁명’이라는 책 쓴 사람들, 책임져야 하지 않는가? 국가의 시스템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내일 연수를 마무리 할 시점에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박 : 한국에서 이런 교육 시스템 만들려면 혁명이 필요합니다. (웃음) 한국은 기본적으로는 철저하게 경쟁과 순응위주의 체제잖아요? 일제 강점기부터, 일제 때도 그거 있지 않았습니까? 그 뭡니까? 지금 고시하고 똑같은……. 그 때도 학교에서는 성적 경쟁도 있었고, 체벌도 있었고, 지금 있는 거 거의 다 있었죠.
연 : 네, 학교 생긴 모양까지도 똑같고요.
박 : 그러니까 그런 거 무시해서 단순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고요. 여기에선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경쟁이 없어요. 순응할 관계도 없고(웃음). 그러니까 한국을 바꾸자면 말씀하신 데로 근본부터 바꿔야 하는 것이지요. 여기에 사람을 보낸다는 것이 잘 모르는 형상을 소개한다, 뭐 자극이 되기는 하겠죠? 예를 들어, 아이가 담임한테 대드는 것도 가능하다(웃음).
나오며
이렇게 우리의 북유럽 교육 탐방은 마무리 되었다. 지금도, 들려오는 학교 폭력 사건들. 부랴부랴 교육부에선 ‘복수 담임제’니 ‘담임 교사가 학교 폭력 사건을 소홀히 처리했다는 상황이 파악되면 형사조치를 취하겠다’는 둥, ‘일진회’가 있는 것이 감지되면 지역 경철서장 권한으로 수사를 하겠다는 둥‘ 모두가 학생들을 겁박하는 내용 뿐, 그 어디를 가도 근본적인 제도를 손 보려는 것이 아니라 벌어진 결과에만 급급해 하고 ‘눈 앞의 불 끄기 식’ 처리로 일관하고 있다. 현장의 교사인 우리가 보기엔 마치 ‘지나가는 비를 지금 피하기만 하면 된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폭력’은 한 가지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사회의 폭력이 아이들을 폭력으로 몰아넣고, 그 폭력에 노출된 교사들은 또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어느 순간부터 교사의 주된 업무가 ‘감정 다스리기’가 되어 가고 있다. ‘학교 폭력’에 대하여, 혹자는 학교의 잘못이라 하고, 혹자는 교사의 잘못이라 하고, 혹자는 가정 교육이 무너져서 그렇다 한다. ‘학교 폭력 사건’이라는 결과는 한 가지로 發顯(발현)되는데, 모두가 짚어내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학교 폭력’은, 아니 ‘우리 사회의 폭력’은 이 사회 전체가 바뀌지 않는 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북유럽 교육 탐방을 다니면서 들었던 확신이다. 왜냐하면, ‘학교의 폭력’은 ‘사회의 폭력’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사회의 폭력’을 해결하지 못 한다면 그 일부분인 ‘학교의 폭력’도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더구나, 기본적인 생활의 안정이 보장되는 북유럽의 모습들 예를 들어
1.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의 무상교육과 양육 보조금 지원,
2. ‘입시’라는 개념이 약하고, ‘경쟁’ 시스템을 배척하는 사회 제도
3. 개인의 능력에 맞추어 느리고 처지는 아이를 오히려 기다려 주는 교육 시스템
4. 공부를 하고 싶을 때 언제든 학교로 올 수 있는 열린 교육 제도
5. 그 어떤 직업이라도 귀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
6. 일한 만큼의 삶의 질을 보장받는 사회 제도
7. 학교의 운영에 지역과 기업, 그리고 심지어는 노조 임원까지도 참여하고 학생의 참여가 보장되는 열린 사고
8. 교육 제도가 ‘정치’와 결탁되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 구성원들의 보이지 않는 약속
등등이 이번에 가서 우리와 많이 다르다고 여겼던 북유럽의 교육 제도들이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풍선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풍선 안에서 풍선 밖으로 나오는 방법은 둘 중 하나이다. 풍선을 그냥 터뜨리거나, 아니면 풍선이 터지지 않고 그 안의 사람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부와 정부에서 내놓고 있는 학교 폭력에 대한 대책은 전자의 것이다. 눈 앞의 풍선을 그냥 펑 터뜨려서 벌어진 결과만을 수습하려는 형국인 것이다.
‘폭력, 그것은 사소한 말부터이다.’ - 마하트마 간디
가 말했다고 한다. 이 명언을 적용해 본다면, 사회와 학교는 모두 폭력의 도가니 아닌가? 하물며 요즘은 예능 프로그램도 모두 출연자들의 ‘경쟁’을 부추기는 프로그램 뿐이니, 우리 주변엔 ‘경쟁’이 너무 많다. 아이들은 학교에 와도 경쟁, TV를 틀어도 경쟁, 부모에게 듣는 대부분의 말도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에 노출되어 있다.
북유럽의 교육 제도를 그 ‘제도’만 들여와서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북유럽 학교 탐방을 다니면서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은 ‘좌절’과 ‘부러움’, 그리고 ‘의무감’이다. 그들이 30년부터 길게는 100년에 걸쳐 이룩한 것을 무 뽑듯 뽑아와서 우리에게 적용하려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음 아닌가? 아니, 무모함 아닌가? 많은 이들(특히, 교육 관료들)이 북유럽 교육 탐방을 다녀오고 있지만, 현장이 변화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럼 그들은 가서 무엇을 하고 왔다는 의미일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왔는가?
교사 개인의 노력으로 사회가, 그리고 학교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정책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直視(직시)하고,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현장의 교사들과 소통하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더 이상 인생을 즐기지도 못한 아이들이 자기 목숨을 끊는 모진 일을 멈출 수 있게 말이다.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정책을 내려 보내고, 전달하고, 심지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징계하겠다’는 식의 겁박을 주지 말고, 무엇이 근본 원인인지부터 짚어 올라가며 풀어보자는 것은 절대 깰 수 없는 꿈일까?
난폭한 자를 정벌하기 위해 같은 폭력을 쓰면서도 그것이 잘못인 줄을 깨닫지 못한다 - 십팔사략
한 가지 답을 구해온 것에 만족하며, 연수 보고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 답은 바로, ‘나’부터 ‘비폭력’적 교사가 되자는 것. 미미할 수 있으나, ‘나비효과’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