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은 전체적인 룩에 생각보다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캐리 시저슨은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가슴을 앞으로 밀어주고 엉덩이를 약간 밖으로 튀어나오게 해주며, 종아리를 늘려주고 다리를 더 길어 보이게 해주고 일반적으로 당신을 더 빛나고 멋지게 만들어줍니다. 중간 높이의 힐은 절대 그런 마법을 부리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플랫 슈즈나 하이힐 이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
결국, 답은 하나다.
practical choice
바바라 플랫슈즈와 레페토슈즈가 압구정을 휩쓸었던 때에도 나는 꿋꿋이 킬힐을 고집했던 사람 중 하나이다.
중학교 1학년 때 5cm 높이의 학생 컴포트화로 시작한 나의 하이힐 인생은 현재, 언제든지 루부탱을 신고 보도블럭을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노하우를 쌓게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남자친구 기준에 키 180cm 이상만을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국남자들 중 180이상의 신장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란 동대문시장에서 진짜 루이비통 가방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결정적으로 이 겨울을 혼자 보낼 수 없다.
결국, 나는 실용적인 선택인 플랫슈즈를 택했고 새로운 세계로 인도되었다.
카를라 브루니 사르코지 여사가 영국을 처음으로 공식방문했을 때 신었던 검정 스웨이드 펌프스는 5cm가 채 안되었다.
모델 출신인 그녀가 하이힐의 맛을 모르는 것은 아닐터, 게다가 이 날은 그녀가 프랑스 영부인 자리에 오른 후 처음 있었던 해외 공식 방문이었다. 그런 중요한 날, 플랫 슈즈를 신었던 이유는?
바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키가 170cm가 채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 날 그녀의 스타일은 촌스럽지도 심심하지도 않았다.
시크했고 우아했으며 심지어 품격있어 보였다. 힐은 바닥에 붙어있는데 말이다.
하이힐의 높이가 여자의 콧대와 비례하던 시대는 이제 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사실 플랫슈즈는 모델들의 리얼 스타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키가 크고 팔 다리가 길고 가는 환상적인 프로포션을 가진 그녀들에게는 힐의 높이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런웨이에서 살인적인 높이의 힐을 신은 그녀들은 무대에서 내려오면 어김없이 캔버스나 플랫슈즈로 갈아 신었다. 모델들에게도 플랫슈즈는 발의 피로감을 덜어주는 실용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Signature Style
하지만 키도 크지 않은데다가 모델같은 프로포션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면 또한 모델들 특유의 시크함과는 거리가 멀다면 여기 두 패셔니스타를 주목하자. 로맨틱하게 플랫슈즈를 매치하는 미샤와 키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스타일링을 선보이는 키얼스틴 던스트를 말이다.
174cm 키를 자랑하는 미샤바튼은 플랫슈즈를 즐겨 신으면서도 다양한 스타일링을 선보인다.
같은 슈즈도 드레스와 프린트에 따라 다르게 연출하며 미니드레스부터 쇼츠, 스키니진까지 다양한 아이템과 믹스매치하는 센스 또한 탁월하다. 러브리한 그녀의 외모와 어울리는 로맨틱한 스타일의 룩을 선호하는데 주목할 것은 계절을 가리지 않은 플랫슈즈의 매치이다.
샌들부터 플랫부츠까지 다양한 아이템을 고루 섭렵한 그녀는 마크 제이콥스와 랑방의 플랫슈즈를 길거리에 깔리게 만든 저력까지 갖추었다. 그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아이템, 그것이 바로 플랫슈즈이다.
나는 키얼스틴의 아담한 체격과 알맞는 신장을 좋아한다.
165cm 라는 키는 작지는 않지만 힐을 신으면 얼마든지 길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얇고 긴 다리를 가진 그녀는 탁월한 비율을 타고난 덕분에 플랫슈즈를 잘 소화한다.
특유의 무심한 듯 편안하게 스타일링하는 룩에 편안한 플랫슈즈는 더할나위없이 잘 매치되고 키얼스틴의 포멀하고 베이직한 스타일을 완성시켜주는 아이템이다.
Regardless of age
샤넬 백 만큼이나 나이를 타지않는 아이템이 바로 플랫슈즈다. 높지 않은 높이에서 오는 안정감과 편안함 덕분에 나이를 먹어서도 신을 수 있으며 클래식한 디자인부터 트렌디한 부츠까지 두루두루 있어 그 스타일 또한 다양하다.
The Renaissance
이번 F/W 시즌 플랫슈즈는 가히 르네상스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다양한 아이덴티티와 스타일을 가지고 런웨이를 거닐었다. 주얼리가 장식된 것부터 긴 슬리퍼나 발레리나 슈즈 스타일의 스탠다드한 스타일, 공주풍의 로맨틱한 디자인부터 매니시한 레이스업 디자인의 슈즈까지 등장해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했다.
09 S/S PRADA 컬렉션.
미우치아 여사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킬 힐에다 덧버선까지 신겨 모델들을 런웨이로 내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두 명의 모델이 넘어졌고 다음날 <헤럴드 트리뷴>의 수지멘키스는 프라다 컬렉션에 대해 "콘크리트 바닥으로 넘어질 때, 담배 파이프 청소도구처럼 구겨지던 모델의 몸처럼 분명한 흔들림이었다. 그 모습은 가장 잘 단련된 패셔니스타의 얼굴도 찡그리게 했다. " 라고 말했으며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힐러리 알렉산더는 "모델들에게 그런 힐을 신겨놓고 디자이너는 편안한 스커트에 플랫 슈즈를 신고 있었다. " 라는 기사를 내보냄으로써 이번 시즌 프라다 하이힐에 대해 맹공격을 퍼부었다.
사실 하이힐에 대한 말들은 패션사가 시작된 이래로 계속 있어왔던 것이고 플랫슈즈의 붐 또한 지금 막 피어나는 신선한 것이라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플랫슈즈는 천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해서 지금은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만한 아이템이 되었다.
그것은 트렌드보다 실용성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 런웨이에서만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길에서도 입을 수 있는 것을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괴할 정도로 요란스럽거나 당최 "신을" 수 없는 힐들이 넘쳐나 우리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에나멜 처리된 힐의 디테일이나 금색 용이 장식되거나 자하드의 건축물을 보는 것 같은 구조적 실루엣의 미(美)는 분명 아름답다. 하지만 소더비 경매에 세상 무엇보다 높아보이는 디올 플랫폼을 다프네 기네스가 내놓았을 때 하이힐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여기에 기네스 펠트로가 에나멜 레이스업 앵클 부츠를 신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모습이 파파라치에 포착되었을 때 "걷지도 못하게 만드는 신발은 도대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F/W 슈즈는 편안하면서도 절제된 디자인의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로 태어났다.
패션 화보에 플랫슈즈가 등장하지 않는다해도 우리는 얼어붙은 보도블럭을 뛰어다닐 수 있는 신발이 필요하다.
She''s a princess.
Alexander McQueen
플랫슈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디자인, 그것은 바로 발레리나 슈즈이다.
지극히 로맨틱한 컬러와 공주풍의 리본이 고즈넉히 달려있는 발레리나슈즈는 이쁘긴해도 스타일을 살려주기에는 무언가 버거워보인다. 하지만 로맨틱하면서도 스타일의 정점이 될 수 있는 플랫슈즈가 알렉산더 맥퀸의 쇼에 등장했다. 숨 막힐 듯한 자수 실크와 튤 가운들 사이에 피어난 작은 진주들과 골드, 실버로 장식된 플랫슈즈는 쥬얼리 장식의 슈즈가 차지할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Valentino
알릭산드라 파치네티의 첫 발렌티노 컬렉션에서 찬사를 받았던 블랙코트와 핑크 튤 드레스만큼이나 눈에 띄었던 것이 바로 플랫슈즈다. 낮은 무대와 함께 낮은 슈즈가 매치되었다고해서 그 컬렉션의 평가가 낮아지지 않는 것처럼 리본과 작은 크리스털 장식이 꽃처럼 피어난 플랫 슈즈는 그 어떤 쥬얼리 슈즈보다도 화려하고 드라마틱했다.
I''am a career woman
Giorgio Armani
플랫 슈즈에 대한 찬가를 꾸준히 불러온 이가 있었으니 바로 조르지오 아르마니다.
섹시한 테일러링 수트와 레드카펫용 화려한 드레스로 유명한 아르마니에 플랫슈즈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수트에도 롱 드레스에도 심지어 팬츠에도 어울린다. 하지만 플랫 슈즈를 신을 때는 좀 더 옷에 신경써야 한다.
힐에 의지했던 길고 가는 실루엣이 사라진 나의 몸은 리얼 그 자체이니 옷으로 결점을 가려주고 라인을 살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좀 더 안이 비치거나 몸매가 확실히 드러나는 의상이 좋으며 팬츠를 매치할 생각이면 발목이 드러나는 것이 좋다.
Karl Lagerfeld
플랫슈즈를 만드는 것이 힐 보다 쉬울 것이라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제대로" 그리고 "특별하게" 만들려면 플랫은 오히려 힐보다 더 많은 정성과 손길이 들어간다.
고전적이고 고급스러우면서도 매니시한 레이스업 슈즈를 선보인 칼 라거펠트 컬렉션의 슈즈는 가죽 구두의 느낌을 날카롭고 가녀린 실루엣으로 뽑아냄으로써 활동적이면서도 엘리건트한 느낌을 만들어냈다.
Immense Variety
Comme des Garcons
아기네스 딘의 스타일이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녀만의 개성과 색이 너무나 확실히 드러나는데 그것이 멋지기 때문일 것이다. 아기네스는 남이 했던 스타일을 결코 따라하는 법이 없다. 영국식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펑키함을 지닌 그녀가 좋아할만한 슈즈들이 등장했던 꼼 데 가르송 컬렉션.
언뜻보면 평범하고 러브리한 디자인의 플랫슈즈이지만 뭉툭하게 마무리된 실루엣이나 골드 체인의 디테일은 펑키한 무드를 자아내고 가죽의 부드러운 느낌과 섬세한 장식은 고급스러움을 만들어낸다.
Marc Jacobs
고전주의 화가같은 엄격한 테일러링으로 가득했던 마크 제이콥스의 컬렉션에 등장한 날렵한 커팅의 팬츠는 플랫슈즈와 매치되어 더욱 파워풀해졌다.
구조적이고 견고한 성이 답답하게 느껴질즈음... 그 긴장감을 톡 터트려 줄 수 있는 플랫슈즈의 매력. 낯 간지러워서 클래식한 페라가모 플랫이나 레페토 슈즈를 신지 못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재미있는 디자인과 실루엣을 가진 플랫슈즈가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분명, 겨울이 지나고 기분이 한결 가벼워지면 노란색 에나멜 펌프스를 꺼내 신고 가로수길로 나들이를 가게 될 것이다.
힐을 신고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을 걷느라 가죽바닥이 절단이 날 지언정, 중심잡기가 힘들어 뒤뚱뒤뚱 보폭을 좁게 해서 걸어야 할 지언정, 하이힐이 주는 그 아찔한 긴장감을 포기하는 것은 여자로써 누려야할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 조각상 같은 디올의 펌프스나 랑방의 플랫폼을 볼 때의 느껴지는 감정들과 똑같은 느낌을 샤넬의 투톤 플랫슈즈나 마크 제이콥스의 플랫슈즈를 볼 때 받게 될 것이고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플랫 부츠나 스니커즈를 번갈아 신을 수도 있을 것이며 적어도 전처럼 하이힐이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은 버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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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름이 멋진 인생을 꿈꾸는 평범한 보통 소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