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의 매창, 석정, 고마제, 동진강을 만나는 서해랑길(#49-50)
2023. 11. 26 (일) 날씨 : 흐림 기온 : 섭씨 5~9도
거리 : 5.7+12=17.7km 5시간 동행 : 14명
신월경로당-행안초등학교-매창공원-예술회관-부안중학교-향교-부안군청
-동문 안 당산-문화의 전당-신석정 문학관-신흥경로당-쌍구제-고마제-농촌테마공원
-동진대교-동진강 석천휴게소-알콩쌀콩 들녘체험관
침묵(沈默)은 山의 얼굴이니라.
숭고(崇高)는 山의 마음이니라.
나 또한 山을 닮아보리라.
-신석정(辛夕汀, 1907~1974)-
만추
신석정은 산을 침묵과 숭고 그리고 얼굴과 마음에 비유해 시를 썼다.
무릇 산과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덕망과 겸허 그리고 유려한 삶을 산다.
전쟁과 갈등 그리고 치열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경쟁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구를 주름잡는 오너들이 장렬하다.
이젠 누가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 전쟁과 패권 다툼은 이기는 자만이 갖는다는 승자독식의 게임이다.
스마트 폰이나 AI, 로봇은 기술의 발전을 어떤 단계도 없애며 변화하고 있다.
울굿불긋 물드는 단풍의 계절 가을은 언제 왔는지 조차 감지하지 못한 채 지나친다.
산다는 거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되풀이 된다고 하는데 인생의 뒤안길로 멀어져 가는 나그네의 모습처럼 안타깝다.
부안과 김제로 향하는 들판은 어느 새 보리들이 자라 녹색 지평선을 그리고 있다.
김장 하는 집들이 점점 사라진다고 하는데 전라도 지역의 가족 동반 김장 담그기는 예나 지금이나 고속도로를 막히게 한다.
우리 조상들이 심어준 끊을 수 없는 김치의 중독은 새로운 세대들은 어떤 존재의 가치로 이을까?
은행 잎의 가을 풍경
신월경로당 출발 전 기념촬영
겨우 14명이 참석한 서해랑길 여정은 자리가 많이 비어 웬지 휑한 느낌이 든다. 참석 인원이 많아 여유가 있었던 해파랑길이 생각난다.
친숙했던 얼굴들이 점점 사라지고 새로 동행이 된 열성 참석자들로 그나마 명맥을 이어주어 고맙다.
오랜 전통이 배어 있어도 참석자가 없으면 산악회는 어느 순간 바람에 휘뿌리는 먼지처럼 사라질지 모른다.
기대와 기쁨이 전달되고 뿌듯한 만족감으로 활력을 얻는 여정이 되도록 기획하고 진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안은 넓은 땅과 풍부한 생산물로 주민들 생활이 풍족하다. 간척지와 황토 흙 그리고 잘 정리된 토지에서 작물들의 수확량이 많다.
이젠 기계화도 잘 이루어져 편리하게 농사짓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행안초등학교
부안생활문화센터
매창공원
부안 기생 이 매창(梅窓, 1573~1610)을 기념하는 공원이다. 그녀의 시가 돌에 새겨져서 공원 안에 많이 있다.
본명은 이향금(李香今), 자는 천향(天香), 매창(梅窓)은 호이다. 계랑(癸娘 또는 桂娘)으로도 불렸다.
38살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아버지는 아전 이탕종(李湯從).
시와 거문고에 뛰어나 당대의 문사인 유희경(劉希慶)·허균(許筠)·이귀(李貴) 등과 깊은 교분을 나누었다.
그녀의 시집 ‘매창집’에 시 58수가 전하고 개암사에서 중들이 목판에 새겨서 발간했다고 한다.
개성의 황진이(黃眞伊)와 조선의 쌍벽을 이루는 명기였다.
허균이 쓴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도 매창과 주고 받은 시 이야기가 나온다.
허균과는 '어지러운 관계'는 아니었으나 깊은 교분을 나누었고
유희경과는 사랑을 나누었다는 설도 있다.
여기 공원에 유희경의 시를 보면 시를 잘 짓는다고 하여 시기(詩妓)라고 불렸다.
1590년경 부안에 내려왔다가 매창을 처음 만난 유희경은 그러나 2년 뒤 다시 한양으로 올라가면서 매창과 이별하게 되었다.
그때 매창의 나이는 방년 21세. 유희경은 매창의 가슴에 깊은 정을 남겼다. 그 정은 매창의 시심으로 피어났다.
매창공원 만추
매창의 시로 상징탑을 세운 공원 모습
매창문화원
건물의 이름이 "梅窓花雨相憶齊(매창화우상억제)"으로, "매화꽃 핀 창가에 꽃비가 내릴 때 서로 그리워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부안예술회관
부안 향교
1414년(태종 14)에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0년(선조 33)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1607년에 만화루(萬化樓)를 신축하고 1848년에 양사재(養士齋) 신축 등 대대적인 확장을 하였다.
1894년에 현감 조연명(趙然明)이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신축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 각각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명륜당과 만화루, 양사재, 동재, 서재 등과 홍살문·하마비(下馬碑)가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다.
그러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부안 동문 안 당산
국가민속문화재 제19호 ‘부안 동문 안 당산’의 석주 꼭대기에 있었던 돌오리상을 되찾았다.
왜구 등을 막으려고 부안읍성을 만들면서 동문(東門) 안쪽에 이 짐대가 세워져 330년간 그 자리를 지켜왔으나 돌기둥 위 '오리'가 2003년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부안 동문안 당산’은 돌기둥(당산)과 돌장승 한 쌍(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당산)으로 이루어진 당산이다.
마을 밖으로부터 부정한 것의 침입을 막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미로 세운 돌기둥을 중심으로 동쪽 50여m 지점에 당산나무가 있고, 그 사잇길 양쪽에 한 쌍의 돌장승이 마주보고 서있다.
돌기둥은 화강암을 깎아만든 것으로 그 꼭대기에 돌로 조각한 오리가 올려져 있다.
이는 부안읍성이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모습이어서 동문 안 짐대는 돛대 역할을 하기 위해 세워졌다.
'당산 하나씨', '짐대하나씨'라고도 부르는 솟대당산엔 머리를 바다 쪽을 향하고 있는 오리가 앉아 있다. 마을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부 사진들은 쪽빛 님 사진을 편집해서 사용했습니다>
부안의 가을
부안 군청(부안군 의회)
부안의 북동부는 평야 지대이고 남서부는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남서부의 서해에 돌출한 변산반도는 군 면적의 2/3를 차지하며, 대부분이 산지로 서해의 인접 지역을 포함하여 변산반도국립공원을 이룬다.
내변산에는 의상봉(椅上峰, 509m)·낙조대(落照臺, 492m)·옥녀봉(玉女峰, 433m)·갑남산(甲南山, 409m)·쌍선봉(雙仙峰, 459m) 등 해발고도 400m 내외의 산들이 솟아 있고 수목도 울창하여 우리나라 팔승지의 하나로 꼽혀 왔다.
낮은 산으로는 계화산·시루봉·백산(白山, 47m)·상소산(上蘇山, 115m)이 있다.
고부천이 동진강으로, 해창천이 서해로 흘러든다. 변산반도의 산지 주위에 약간의 구릉지가 발달해 있으며, 그 밖에 나머지는 평야 지대이다.
충적평야는 주로 동진강 하류와 고부천 연변에 넓게 발달했고, 해안에서는 간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계화 간척지의 관개를 위해 섬진강댐을 축조하고 유역 변경을 통한 관개 수리시설을 건설하였다.
서해안에는 위도(蝟島)·하섬(蝦島) 등 7개의 유인도와 28개의 무인도 등 35개의 도서가 있다.
서해랑길 50 코스
부안 역사 문화관
석정 문학관
신석정 고택
신석정 고택은 한국 현대 시의 큰 맥을 이은 신석정이 살던 곳이다. 1930년대 김영랑 등과 함께 순수문학을 이끌던 손석정은 부안 동중리에서 태어나 1952년 전주로 이사할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청구원으로 불리는 이 집의 정원은 측백나무로 울타리가 둘려쳐 있고 그 안에 은행나무, 벽오동, 목련, 산수유, 철쭉, 시누대, 등나무 등이 심겨져 있다.
신석정의 목가적인 전원 시집인 '촛불', 슬픈목가 등은 바로 이곳에서 쓰여진 것들이다.
내기 신흥마을
신석정 문학관에서 전시된 각종 자료들을 보며 일제강점기 어두운 시기에도 문학에 열정을 바친 시인들의 두려움 없는 시작 활동에 감탄했다.
읍내를 벗어나 봉황 교차로를 돌아 신흥 마을로 들어설 때 멋진 기와집과 대나무 숲 그리고 하늘과 어울린 소나무가 좋은 구도를 보여준다.
저수지인지 모르고 습지인가했더니 쌍구제는 갈대와 수상식물 그리고 연이 자라고 있다.
동네의 젊은 커플이 고마제를 향해 걸으며 추월한다. 대화 나누며 저수지를 한바퀴 도는 모습이 보기 좋다.
신흥마을 뷰 포인트
배개재 부근
신흥경로당(근처에 쌍구제가 있다)
고마제
고마 저수지(동고 저수지)는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내기리에 있는 대규모 저수지로서 고마제, 고마지, 동고지라고도 한다.
농업용 저수지로 1955년 1월에 착공하여 1958년 12월 30일에 완공하였으며, 한국 농촌공사 부안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고마제 말 조형물
고마제 저수지의 찰랑거리는 물결은 먼 길을 떠나가는 나그네와 장터로 봇짐을 나르는 말에게 삶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고 목을 축이고 쉬어 가라고 쉼 없이 속삭인다.
말이 쉬어가는 쉼터가 된 고마제에 자연의 속삭임이 친구가 되어줄 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자연이 건네는 언어를 느끼게 한다.
말 조각상과 정자에서 개미님과 총무 감나무와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너무 천천히 걸었던 탓에 두 분과 합류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맛있는 먹거리를 많이 준비해 와 풍족하게 식사했다. 뜨거운 열정과 동료 의식 그리고 봉사하는 자세가 일품인 두분께 진심으로 고맙다.
편하게 식사를 마치니 한 두 분씩 후미에서 일행들이 도착해 한 팀이 되었다.
고마제에는 저수지에 데크가 설치되어 걷기 좋았다.
못줄다리가 어디에 쓰이는지 몰랐던 일행들은 누에도 등장시키고 뜨개질도 상상에 가담시켰지만, 이내 모내기 할 때 쓰이는 못줄이라는 안내판 설명에 어이없어 폭소를 터뜨렸다.
못줄다리와 전망 쉼터
고마제 주변 모내기 철에 볼 수 있었던 농경문화의 상징인 못줄을 표현한 '못줄다리'는 못줄을 당기고 끄는 정다운 농부들의 여름 노랫가락을 못줄 위에 한 줄 한 줄 표현한다.
이 다리 위에 서 있는 '너'와 '나'는 우리가되어 못줄다리 조형 시설물에 예술의 작업을 완성해 나가는 흥겨운 퍼포먼스 몸짓을 연출한다.
이 몸짓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에 감사함을 담아 낼 때 서로의 온정만이 초록의 그리움으로 따스한 사랑이 넘치는 핫 플레이스가 된다.(부안군)
여린 초록의 노래를 담은 못줄다리
물고기 솟대
서해랑길 50코스
고마제 오솔길
고마제 카페 쉼터
고마제를 돈 후 전망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껏 여유있는 휴식을 가졌다. 인적이 별로였던 고마제에서 매우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카페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궁궐마을
추수가 끝난 논에는 내년 봄에 수확할 보리가 새 싹을 튀워 초록바다를 만들었다. 김제와 부안에는 지평선이 보이는 들판에 보리를 경작하는데 곡식과 사료로 사용한다.
장등마을
장등마을은 망기산의 줄기가 내려와 장기마을과 청운 마을을 거쳐 장등마을에서 끝을 맺었다고 하여 긴 장( 長 )오를 등(登)자를 써서 장등(長登)이라 하였다.
조선 철종 때 부안 민란이 일어났던 곳으로 김제, 전주, 서울 등지에서 부안으로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하던 동진 나루가 있었으며, 동쪽으로 고부천이 흐르고, 남서쪽으로 고마 저수지의 일부가 걸쳐 있고 중앙에 내기 평야가 분포하여 논농사가 주를 이루는 마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동진강 문포를 통해 부안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모든 양곡이 군산, 인천 등지로 수송되었다.
동진 나룻터는 김제와 부안을 이어 모든 사람과 생산물 등을 운송하던 곳으로 보부상 선길장사들의 막거리로 유명했다.
마을 중앙에는 큰 우물이 있는데 장등리 주민은 물론 이웃 4개 마을(장신, 간척, 신척, 농원) 주민이 사용하고도 남았다고 한다.
보리 재배
동진대교(길이 450.7m)
동진강
동진강은 전라북도 정읍시 산외면 종산리 묵방산 여우치 마을의 빈시암에서 발원하여 전라북도 남부를 북서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유로연장 51.03km, 유역면적 1,136㎢이다.
동진강(東津江)이라는 이름은 강 하구에 있는 부안군 동진면의 동진(동쪽 나루터)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기록상 동진강의 발원지 후보는 4곳으로 나타났었다.
정읍 산외면 종산리 묵방산 남쪽 계곡 여우치 마을의 빈시암, 두 번째는 정읍 내장산 까치봉 북동쪽 계곡의 까치샘, 세 번째는 정읍 산외면 상두산, 네 번째는 정읍 산외면 목욕리 촛대봉 남동쪽 계곡이었다.
보통 발원지는 하구에서 가장 먼 곳을 발원지로 본다.
이렇게 되면 내장산 까치샘이 발원지가 될 것으로 보았으며, 실제로 조선시대 기록에는 내장산에서 발원하여 정읍천을 따라 흘러간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동안 국가기관에서도 이곳을 발원지로 보았었다.
그러던 중 발원지가 확정되었는데 가장 유력한 장소로 꼽혔던 내장산 까치샘이 아닌 묵방산 여우치 마을의 빈시암(여우치 샘)으로 정해졌다.
동진강의 최장 발원지는 이곳 정읍에서 가까운 호남정맥 내장산의 까치봉 북쪽에서 발원하여 정읍시로 흐르는 정읍천이며, 동진강의 원(源) 발원지를 정읍시 산외면 상두리 국사봉 남쪽 계곡이 발원지로 표기해 두었다
그리고 이곳보다 조금 더 긴 물줄기는 호남정맥 묵방산 남쪽의 빈시암 여우치 샘인데 최장 발원지와 원(源) 발원지로 판단하면 될 것 같다.
서해랑길 51코스 안내도
부안을 지난 발걸음이 동진강을 건넜다. 멀리 정읍에서 50km를 달려 이곳 김제평야를 거쳐 서해로 빠지는 동진강은 평야 지대에 옥토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먹을 식량을 공급한다.
지평선 저 멀리 부안의 의상봉부터 축령산, 백양산, 내장산 산줄기가 죄우 180도 가득 이어져 장관이다.
평지에서 저렇게 산자락이 길게 이어지는 모습을 보기는 이곳 부안이 처음이다.
동진대교를 지나며 보았던 지평선 길게 늘어선 산줄기의 멋스러움은 두고 두고 기억될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다.
숭어회를 맛있게 먹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하루종일 충만했던 부안 걷기가 행복했다.
더 많은 회원들이 서해랑길 장도에 합류해 대자연이 주는 후덕한 절경과 주민들 인심을 같이 만끽하기를 기대한다.
동진강 석양
알콩쌀콩 들녘 체험장
첫댓글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볼거리들이 많이 있었네요. 부안이 들도 넓고 인심도 후하고 걷기 좋은 길이었습니다. 청산님의 좋은 글로 지식도 풍부해지고 여기에 무얼 더 바라랴. 감사합니다.
청산님의 후기글 만나게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문장 하나로도 뜻을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을 잠시나마 부러워도 해보고 무심한듯 펼쳐진 들녁과 넓디 넓은 저수지에 놓여진 못줄다리란 이름과 조형물로 인하여 아주 오래된 유년의 기억을 소환해 서로 공감할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속에서 함께걷는 묘미를 다시한번 새겨보는 여정이었습니다.오늘도 글과 사진으로 역사공부와 아울러 걸었던 길을 다시한번 복기할 수 있는 기록을 남겨주신 청산님의 노고에 즐감으로 감사함을 대신합니다.
많이 조사하시고 꼼꼼하게 사진도 찍고 문학적인 아름다움까지 더하셔서 훌륭하게 글을 쓰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