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孫子)
채 동 선
오늘은 우리 강아지 귀빠진 날, 그 손자를 만나러 수원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으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손자를 자주 볼 수가 없다. 물론 보고 싶을 때마다 찾아갈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핵가족시대이다 보니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도 서로의 생활을 지켜주는 것이 도리인 듯싶어 꾹 참고 지낸다. 허긴 요즘 세상에도 옛날처럼 자식 집을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갈 수 있는 간 큰 어른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디지털 시대에 살아가는 이 땅의 젊은 세대를 가장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나로서야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사전에 아들 내외의 승인이 떨어진 후에야 못이기는 척하고 다녀온다.
손자가 태어난 때는 정확하게 꼭 4년 전 오늘이다. 겨우내 앙상하던 나뭇가지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봄 햇살이 유난히도 정겹든 4월에 손자는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나에게는 첫 손자였다. 나와의 첫 대면은 병원에서였는데, 하얀 강보에 쌓인 채 참빗장수 아이처럼 새까맣고 반들반들한 머리카락, 실핏줄이 채 가시지도 않은 발그레한 얼굴을 하고 어미 옆에서 평화롭게 잠을 자고 있었다. 가끔씩 꼼지락거리는 앙증맞은 발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손자의 태명(胎名)이 '나무'다-
나무야
나무야
우리 나무야
이 좋은 계절에
우리 곁으로 찾아온 나무야
봄 햇살의 따스함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생명의 원천 이란다
반갑고 고맙다
튼튼하게 자라서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서
엄마 아빠께 기쁨을 주고
온 세상에 빛을 주는
태양이 되어주렴
사랑 한다
나무야
우리 나무야
손자는 유달리 몸이 단단하고 가벼웠다. 백일 때부터 몸을 뒤집으려고 용을 써대더니, 열한달도 채 되기 전에 벌써 걷기 시작했다. 제 애비를 닮았으면 돌때까지 걷지도 못하고, 통통하고 굼떴을 텐데, 엄마를 닮았나 보다. 처녀시절부터 과외선생으로 일을 해왔던 며느리는 손자가 기어 다니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혼자서 일을 할 수가 있었는데, 애가 커가면서 어려워 졌기 때문에 시간제로 도우미를 청해서 아이를 돌보아가며 일을 했다. 가까이에라도 산다면 애기를 돌봐 줄 수가 있고, 아니면 남들처럼 데려다가 좀 더 자랄 때까지 키워줄 수도 있었겠지만, 자식들도 원하지를 않았을 뿐더러 나 역시도 어린 손자손녀를 데려다가 고생하는 이웃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아내의 건강을 핑계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남의 손에서 지내는 손자가 더욱 측은하기만 했다. 그래도 며느리는 요즘 엄마들과 달리 애기에게 모유를 먹여가며 엄마노릇, 아내노릇 그리고 직업인으로서의 생활을 활달하게 해 주고 있어서 아주 대견스럽고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손자는 한 달에 한번쯤 제 어미애비와 같이 내려와 나에게 얼굴을 보여준다. 온다는 날 며칠 전부터 손자 생각에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손자와 함께했던 많은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첫돌에는 돌잡이 잘 하라고 청진기를 손자가 잡기 좋도록 손앞에다 받쳐놓고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내기도 하였고, 장난감 자동차를 내 머리위에 얹어놓고 "할아버지 머리에 덤프트럭 모자 썼어요." 하며 손뼉치고 좋아하던 손자,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나는 엄마를 볼 수가 없어서 슬프다"는 애비의 말에 "사다리타고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만나면 되잖아" 라고 천진난만하게 말하던 손자, 꽃에 물을 준다고 아파트 베란다를 물바다로 만들었던 손자. 그런데 손자와 같이 놀아준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몇 시간만 그렇게 하다보면 파김치가 되고, 해서 이젠 빨리 제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싶은 경우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손자가 올 때도 반갑지만 갈 때는 더욱 반갑다고, 그래서 가는 뒷모습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고들 하는 얘기가 빈말이 아님을 실감하게도 된다. 그래도 가고나면 바로 보고 싶어지는 게 손자다. 옛말에 자식 자랑하면 팔불출이란 말이 있는데, 팔불출이면 어떻고, 칠불출이면 또 어떤가, 좋으면 그만이지.
지금 손자의 나이가 우리 나이로 다섯 살이다. 어린이집에서 같은 반(5세 반)을 이년 째 다니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그 반에서는 터주 대감이고 왕초다. 어린이집 우유마시기 대회에서 우유대장으로도 등극을 하고, 집에서는 먹지도 않고 골라내기까지 하는 오이를 시합이라고 하여 친구들에게 지기 싫어 꾸역꾸역 먹어가며 3등까지 한 지독한 욕심꾸러기이다. 장난도 유별나게 심할 뿐만 아니라 선생님 말도 잘 듣지를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요즘은 공부에도 관심을 갖고 "형, 누나들만 가르치지 말고 나도 좀 가르쳐 주세요"하고 엄마를 조르기도 하고 그림도 잘 그린다니 여간 기특한 게 아니다.
손자가 나에게 전화를 해 오는 경우는 제 아빠와 싸울 때뿐이다. 손자의 장난감을 두고 "이건 할아버지가 나 줄려고 사 주신거야"하고 놀리면 "아니야 나한테 준거야"하고 다투다간 급기야 나에게 전화를 해서 확인까지 한다. 이제 손자는 할아버지의 존재를 제법 안다. 할아버지는 항상 제 편인 줄을 알고, 할아버지와 같이 있으면 야단도 안 맞고 먹고 싶은 것도 맘껏 먹을 수 있고 갖고 싶은 것은 무조건 가질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버스가 서서히 터미널에 도착하고 있다. 괜스레 마음이 급하고 부산해 진다. 그 사이 손자는 얼마큼 컸을까, 이놈이 할아버지를 알아보기는 할까. 오늘도 분명히 손자는 할애비의 손에 들린 선물꾸러미만 뚫어지게 쳐다보겠지.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맴돈다.
(1107)
첫댓글 어찌 할애비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리요. 나무가 튼튼하게 자라라 아름다운 사회의 재목이 되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닉 네임을 보고 종씨인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요.
뭣도 모르고 수필로 등단이란 걸 해놓고 요즘 수필이린 과연 무엇일까? 혼란스럽고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도무지 글이 써지지를 않아요. 차라리 아무런 형식이나 부담이 없이 누구에게 쓰는 가벼운 편지글이라면 쓸 것도 같은데..일관된 주제도 있어야 되고 주제를 살리는 글의 맛이나 삶과 자연에 대한 감성도 필요하고...그러다가 이번 갑천님의 감동적인 글을 대하면서 아, 좋은 글은 오직 아름다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란 걸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직 손자를 못 본 저로서는 손자 사랑에 끔직하게 푹 빠진 사람들을 주변에서 대할 때 잘 이해가 안 되었었는데, 갑천님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정직한 문장을 통해서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이고 토함 선생님, 너무 띄우시면 추락할 때엔 지하 수천 미터가 됩니다. 그 곳엔 시뻘건 불덩이만 있다던데.
역시 사랑은 내리사랑인가 봅니다. 이제는 자식보다 손자가 훨씬 좋습니다. 말로서는 표현이 않되니 토함님도 빨리 격어셔야 되는데... 건강하시고 문운을 빕니다.
내리사랑이라는데 얼마나 귀여울까요^^
저에게는 세딸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막내가 젤 이쁜것 같아요
실제로는 언니들보다 인물은 젤 떨어지는데두요 ㅎㅎ
할아버지의 손자사랑...따스하고 정겹습니다.
요즘은 세상이 바뀌어 부자 간에도 기브 앤 테이크 적인 사랑이 만연하다고 하는데 손자만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주고싶은 그런 사랑인데, 모르지요 손자가 내게 준 즐거움 자체가 더 큰 사랑일런지도...
서시인님 다복하고 건강한 가정생활 누리시길 빕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으시지요? 보고 또 보고 싶으시지요?
손자사랑이 새록새록 피어나는 글을 읽으며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나무가 건강하고 반듯하게 자라기를 기도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
나무가 요즘은 너무 까불어요. 이제는 스마트폰을 선물로 받고싶다나요, 참.
수정 작가님 고맙고요 항상 좋은 일만 생기시길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