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1부
가즈오 이시구로
<느낀 점과 그 이유>
‘세상을 낯설게 보자’라는 말을 흔히 들어왔는데, 내가 새로 태어난 AI 로봇의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조각 맞추기를 해 나가는 글을 쓴다면 어떤 식의 이해의 과정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클라라의 시선은 과거의 SF 영화에서 흔히 보던 이방인의 존재(외계인이나 로봇 또는 원숭이 등)가 바라보던 묘사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웠다.
왠지 딥러닝을 하는 인공지능의 분석과 해석 방식은 인간의 시선과는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싶었다. (가령 모든 것을 확률로 해석한다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이중적인 감정의 언어들을 클라라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채 소통하고 있는 다양한 비언어적인 표현들은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낯선 존재들은 그것을 어떻게 오해하거나 해석할 수 있을지 계속 떠올리며 읽었다.
<가장 좋은 부분과 그 이유>
“아냐, 싸우는 척한 거야. 그냥 논 거야.’'
“로사, 그 사람들 싸웠어.’'
"그런 소리 하지 마, 클라라! 넌 정말 이상한 생각을 해. 그냥 논 거였어. 택시 운전사들도 즐거웠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랬잖아.‘'
결국 나는 그냥 이렇게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로사는 그 일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택시 운전사들을 쉽게 잊을 수가 없었다. 인도 위를 지나가는 사람을 눈으로 좇으면서 이 사람도 그 운전사들처럼 화를 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혹은 저 사람이 화가 나서 얼굴을 일그러뜨리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이런 나의 행동을 로사는 아마 절대 이해할 수 없을 텐데) 내 마음속에서 그 운전사들이 느꼈을 분노를 느껴 보려고 했다. 나와 로사가 서로 엄청나게 화가 나서. 운전사들처럼 싸우고 서로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상상을 해 보려 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택시 운전사들이 그러는 걸 봤기 때문에 내 마음에서도 그런 감정의 씨앗을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럴 때마다 매번 내 생각이 우스워서 웃고 말았다.
- 특정 감정이 없는 존재가 그 감정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대목이 재미있었다. 어쩌면 사이코패스가 가짜 동정심을 연기하는 것도 이런 과정이었을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감정이 있다면 인간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습득하려고 노력할까 공상해 보았다.
커피잔 아주머니는 여전히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남자가 눈을 꼭 감은 게 보였다. 행복한지 속상한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저 사람들 만나서 무척 기쁜가 보다.” 매니저의 말에 매니저도 나처럼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네, 아주 행복해 보여요. 그런데 이상하게 속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아, 클라라. 너는 놓치는 게 없구나.”
--- 중략 ---
그때 매니저가 몸을 돌려 우리를 지나쳐 가면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가끔, 이런 특별한 순간에 사람은 행복과 아픔을 동시에 느껴. 클라라, 이 모든 걸 주의 깊게 관찰하다니 장하다.”
매니저가 가고 난 다음에 로사가 말했다. “정말 이상하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별 얘기 아니야, 로사. 바깥세상 이야기를 한 거였어.”
로사는 곧 다른 이야기를 꺼냈지만 나는 커피잔 아주머니와 레인코트 아저씨, 그리고 매니저가 한 말을 계속 생각했다. 만약 로사와 내가, 지금으로부터 한참 뒤에, 우리가 각자 집을 찾고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우연히 길에서 만나면 어떤 감정일지 상상해 보려고 했다. 그때 나도, 매니저가 말 한 것처럼 행복과 아픔을 동시에 느낄까.
- 사실 우리는 한 순간도 한 가지 감정만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같다. 행복할 때 불안하기도 하고 외로우면서 홀가분하기도 하고 분노하면서 두렵기도 하다. 그런 다중의 감정들을 일상에서는 쉽게 단순화해왔는데 낯선 관찰자의 시선을 계기로 여러 감정의 복합적인 소통이나 미세한 변화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
복수의 여신
송미경
<분량과 단락장>
1 단락
복수의 여신이 된 배경
운동회 준비를 하다가 친구 세령이를 놀리는 남자애들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조윤혁과 백년 원수가 되면서 복수의 여신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됨.
그 이후부터 다른 놀이는 못하고 여자 아이들의 복수의 대상에 대신 복수를 해주는 놀이를 하게 됨
2 단락
비가 오는 날 조운혁의 우산을 따라가다가 다른 여자애와 가는 것을 보고 의기소침해지고 비를 쫄딱 맞은 주인공은 감기에 걸림
꿈에서 조운혁이 나타나서 커다란 우산을 씌워줌
이틀만에 학교에 가서 조운혁을 만나서 반가웠지만 다시 복수심을 불러 일으킴
조운혁과 우산을 쓰고 갔던 여자아이가 조운혁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기분이 좋아짐.
3 단락
복수 놀이 때문에 조운혁과 친해질 수 없어서 더 이상 복수를 하고 싶어지지 않은 주인공
친구들의 요청해도 복수를 하지 않다가 우연히 조운혁을 만남.
복수를 하지 않는 주인공에게 와서 더 복수해 달라고 하며 장난치고 도망가는 조운혁과 다시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주인공.
<느낌 점과 그 이유>
관심이 있지만 표현할 줄 몰라서, 놀리거나 장난을 치면서라도 친해지고 싶었던 초등학교 시절의 감정이 떠올랐다. 당시 정말 비슷한 형식의 놀이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만들고 그것을 어기면 큰일이라도 나는 양하면서. 특히 남학생과 여학생이 철천지원수처럼 한동안 지내던 시절도 있었고 다음 해에는 그들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하게 지내기도 했었다. 그런 통과의례 같은 감정을 잘 찾아내고 자연스럽게 풀어낸 점이 좋았다.
<가장 좋은 부분과 그 이유>
내가 조심스럽게 교실 뒷문을 여는데 교실 안에서도 누군가가 문을 함께 열었다. 문이 부드럽게 옆으로 밀리며 윤혁이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순간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이렇게 가까이서 윤혁이와 마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몇 초 동안 서로를 바라봤다. 하지만 곧 동시에 인상을 썼다.
“복수의 여신, 왜 아프고 그래? 결석이나 하고. 지각에다가…….”
“아우 진짜. 수업 시간에 화장실이나 가는 주제에. 너 오늘 딱 걸렸어. 점심시간에 복수할 거야.”
- 주인공이 이틀 만에 학교에 와서 조운혁과 마주친 순간, 반가웠지만 엉뚱하게 말하는 부분이 그 또래의 아이들이 관심있는 대상에게 하는 미숙한 표현 방식 같아서 재미있었다.
----
언덕 위 하얀 타일 집
한차연
<읽은 느낌과 그 이유>
언덕 위 하얀 타일 집을 보면서 어린 시절 아빠를 회상하는 글의 정서가 좋은 단편 영화를 본 것 같은 여운을 남겼다. 삶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지만 그래도 그 시절 ‘알콩달콩 살아내고 싶었을 삼십 대의 아빠’를 이해해 주는 작가의 시선이 따뜻하면서도 애틋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는 사물이 하나쯤은 있는 것 같다. 그 물건을 볼 때면 그 사람의 목소리나 상황이 떠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당시의 냄새가 생각나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서 정작 그 사람의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게 되어도 말이다. 그것을 다시 만지작거리고 싶게 하는 글이었다.
<가장 좋은 부분과 그 이유>
바램과 달리 그 집에 살던 동안 좋았던 일보다는 힘들고 지워내고 싶은 기억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집을 지을 당시 토끼 같은 자식들과 알콩달콩 살아내고 싶었을 삼십 대의 아빠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 나도 아빠라 그런지 ‘알콩달콩 살아내고 싶었을 삼십 대의 아빠 마음’이라는 표현이 어딘가에 울컥 와 닿았다.
나는 사람도 낡고 작아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꾸 사업을 벌이니 사람들은 아빠를 사장님, 사장님하고 불렀지만, 우리 집은 갈수록 티브이에 나오는 사장님들이 사는 집과는 멀어졌다.
아빠는 맨들한 하얀 타일을 붙여 겉보기에는 멀끔하지만, 툭하면 수도가 터지고, 얼고 비가 새어 바스라져 가는 그 집 같은 세월을 보냈다.
- 작고 초라해져 가는 아빠의 모습을 집으로 비유한 글이 신선하면서도 슬펐다. 우리 가족에게 나는 어떤 집으로 살고 있을까.
집도, 깜깜한 얼굴도 모두 사라지고 나니 작은 이야기들이 원래의 자리에서 가만히 떠오른다.
-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문장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원래의 자리에서 가만히 떠오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