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북진(北進) 1 보글보글! 연못에서 물이 끓어올랐다. 중수로 이루어진 연못, 천하에 이런 곳은 오직 단 한 군데, 이곳 무저뇌의 지하에만 존재했다. "흐흐~! 이젠 제법 중수에도 버티는구나." "그가 이곳에서 완전히 적응을 마치면 다시 태어나게 될 겁니다." "그래! 십자성은 자신들이 버린 이곳 무저뇌에서 괴물이 태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철부쌍괴는 중수로 이루어진 연못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호흡을 하고 있는 철홍을 보며 뿌듯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이 철홍에게 알려준 심법은 오직 단 하나다. 철혼무적심법(鐵魂無適心法). 이곳에 들어왔던 거마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만들어 낸 심법 이었다. 내공이 금제당해 전혀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어 떻게 하든 철저하게 망가진 단전을 복구하려 애를 썼다. 그러나 십자 성에서 그들에게 펼친 폐정대법은 인위적인 힘으로 풀 수 있는 성질 의 것이 아니었다. 만약 조금의 내공이라도 있었다면 내부에서 어떻게든 풀 수 있었 겠지만 문제는 폐정대법이 몸 안의 내력을 완벽하게 고갈시켜 버린 다는 것에 있었다. 단 한 줌의 내력이 아쉬운 상황에서 그들은 선천 지기를 내력으로 바꾸는 역천의 시도를 했다. 만약 십자성에 대한 원한이 없었다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거 마들의 원한은 컸고, 그들은 이제까지 무림 역사상 그 누구도 시도하 지 않았던 역천의 심공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철혼무적심법 이 만들어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백 년이었다. 그러나 이제까 지 철혼무적심법은 그 누구도 익히지 못했다. 철혼무적심법을 익히는 데 필요한 단 한 줌의 내력이 이제까지 이곳에 들어온 거마 그 누구 에게도 없었기 때문이다. 단 한 줌의 내력만 있다면 이 저주받을 곳을 벗어날 수 있었는데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철홍은 하늘의 뜻인지 설삼을 복 용한 상태였다. 때문에 그 누구보다 철혼무적심법을 익힐 가능성이 높았다. 더구나 그가 들어온 때에 맞춰 중수의 연못이 발견되었다. 철혼무적심법을 운용한 채 중수 연못에 들어가면 신체의 내외가 골고루 자극을 받기 때문에 더욱 빠른 성취를 기대할 수 있었다. 또 한 중수의 연못에서 나오면 철부쌍괴의 구타가 이어진다. 그들의 구 타는 철홍의 전신 혈을 자극하여 무공을 익히기 위한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철홍을 구타하는 만큼 철부쌍괴의 몸은 약해 져 갔다. 그러나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자신들의 목숨 따위는 이미 내놓은 지 오래였다. 이 저주받을 십자성만 없애 버릴 수 있다면 언 제 죽어도 상관없었다. 그것이 그들의 각오였다. 그렇게 철홍은 두 사람의 희생 속에서 철혼무적심법을 익혀 가고 있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금제를 푸는 데 두 달...... 그 이후엔 저 녀석의 노력 여하에 달 려 있다." "두 달이라...... 이제까지 기다려 온 수십 년보다 두 달이 훨씬 길게 느껴지겠군요." "아마도 그럴 것이다." 두 사람의 이마에 주름의 골이 더욱 깊게 보였다. 철홍이 조금씩 껍질을 깨 나가는 만큼 그들은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들은 서글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철홍이 비상하기 위해선 누군가 의 희생이 필요했고, 자신들은 기꺼이 그가 비상하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다. 그것이 자신들의 역할이었다. 부르르! 중수로 이루어진 연못에서는 철홍의 호흡에 따라 공기 방울이 올 라오고 있었다. 마영백은 인상을 찡그리며 전면에 걸린 지도를 바라보았다. 지도 옆에는 문수영이 조심스러운 자세로 서 있었다. "천하삼분지계라..... 재밌군." 마영백의 입가에 조용한 웃음이 어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문수 영의 몸에는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아 올라왔다. 단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긴장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천하에 이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문수영의 주군은 조용히 분노하고 있었다. "그간 자네를 믿고 맡겼는데 실망스럽군." "죄송합니다." "당분간 자네는 일선에서 물러나 있게." "성주님?" 문수영이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마영백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말을 이었다. "자네의 지략을 모르는 바는 아니야. 하지만 가끔 천하에는 머리 보다 힘이 우선인 상황이 있어. 바로 지금처러 말이야." 부르르! 문수영의 조그만 주먹이 떨렸다. 굴욕적인 상황이었다. 문상이란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녀가 겪은 고초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이제 그 정점의 자리에 올랐는데 이 런 수모라니. 그야말로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마영백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입을 열었다. "도마란 자가 십자성을 벗어나기 전에 처리할 기회가 있었다. 자 네와 동천의 힘이라면 미리 그의 정체를 파악해서 미연의 사태를 방 지해야 했다. 그런 일을 위해 이제까지 자네에게 무상의 힘을 준 것 이지. 그러나 자네는 격무 탓인지 연거푸 나를 실망시켰다. 잠시 쉬 어라. 지금부터는 힘의 논리가 지배할 터이니 조금은 쉬어도 될 것 이다." "성주님!" 문수영이 마영백을 불렀으나 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손 짓을 했다. 더 이상 대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모습이었다. 그에 문 수영은 뭐라 말을 할 듯 입술을 달싹거렸으나 이내 포기하고 뒤돌아 서 나갔다. 마영백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녀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창가 를 향해 걸어갔다. "역시 계집에게 천하 경영을 맡기는 것은 무리였는가?" 당분간 일선에서 물러나 있으려 했건만 천하는 그를 가만히 두질 않았다.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상, 자네 있는가?" "여기 있습니다." 순간 그의 등 뒤로 소리도 없이 은색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중년인 이 나타났다. 그는 은발(銀髮), 은미(銀眉)에 눈동자마저 은색으로 빛나는 은안(銀眼)이었다. 마영백의 입가에 웃음이 어렸다. "아무래도 자네가 움직여 줘야겠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후후! 사천으로 가게나. 아무래도 모양이 우습게 됐어. 우리를 농락한 도마는 천왕성을 가로막아 천하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 는데, 정작 우리 십자성은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치고 있으니 말이 야." "알겠습니다. 사천을 먼저 정리하지요.' "그 후에는......" 마영백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그러자 무상이 그와 비슷한 미소 를 지었다. 그가 말했다. "..... 그 후에는 정도련을 정리하지요. 이 사무독의 이름을 걸고 말입니다." "기대하지." 마영백의 입에 어린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사무독은 그에게 고개 를 숙여 보인 후 조용히 사라졌다. 와장창! "꺄아아악!" 문수영이 자신의 방 안에서 괴성을 질렀다. 그녀는 손에 잡히는 대로 집기를 모두 내던졌다. 화병과 면경이 산산조각 나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녀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씩씩거렸다. 그러나 현 실은 냉혹했다. 그녀는 십자성의 전권에서 잠시 동안 물러나 있어야 했다. "이게 모두 그놈 때문이야. 적무강!" 그녀의 눈에 원독의 기운이 떠올랐다. 죽어도 자신의 능력 부족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 다. 이 모든 게 전혀 의외의 장소에서 튀어나온 적무강이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 자신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 했다. "적무강! 적...무강! 네놈이 무엇이기에 내 앞길에 이리도 걸림돌 이 된단 말이냐? 으드득!" 문수영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만약 눈앞에 적무강이 존재한다 면 뼈를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터였다. 그녀의 실패에는 항상 적무강이 존재했다. 하가철방의 일도, 서문 아와 웅풍대의 일에도, 그리고 마정옥의 실패에도 항상 그가 존재했 다. 결국 그가 문수영을 권좌에서 밀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드시 가만두지 않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녀가 적무강을 향한 증오를 불태웠다. 그녀의 꽉 쥔 주먹 사이 로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적무강은 북으로 올라갔다. 이미 낭혈문의 무인들은 좌천기의 시신을 가지고 자신들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적무강은 바로 그들이 후퇴한 길을 추적해 가고 있 는 것이다. '청해에서 중원으로 들어오기로 작정했다면 결코 낭혈문 하나만 보내지는 않았을 터, 그들의 흔적을 쫓아가다 보면 그들의 본진과 부딪치게 되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청해성에 도착하게 될 테니 결코 나에게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적무강은 말을 타고 북진하면서 생각을 했다. 그는 홀로 외로운 길을 가고 있었지만 천하의 정세만큼은 그 누구 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만형통과 곽부종이 휘하의 수하들을 통해서 천 하의 정세를 계속해서 보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정보 상인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고, 그런 정보는 서문 아와 적무강 양쪽 모두에게 보고되고 있었다. 따라서 적무강은 홀로 북진을 하면서도 천왕성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고독한 길을 가고 있었지만 그는 결코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두 명의 정보 상인이 그에게 고급 정보를 주고 있었고, 구대문파가 그의 뒤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서문아의 존재가 그에게 힘을 주고 있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적무강은 이 험한 길을 얼마든지 인내할 수 있었다. '돌아갈게요. 반드시......' 적무강은 나직이 중얼거리며 말을 몰았다. 대동관으로 향하는 동안 적무강은 많은 참상을 두 눈으로 목도했 다. 수많은 문파들이 낭혈문에 의해서 괴멸당해 검은 잿더미로 변해 있었고, 인근의 상인들이나 백성들까지 그 영향을 받아 피폐해져 있 었다. 상권 자체가 죽자 산서성에서 이탈하는 백성들까지 생겨나고 있었다. 민심은 흉흉해져 있었고, 사람들의 눈에서는 생기가 사라져 있었다. 낭혈문이 지나온 자리는 변함없이 모든 것이 황폐화되어 있었다. 그것이 적무강의 눈으로 본 산서성의 현재였다. 적무강이 대동관에 도착한 것은 낭혈문의 무인들과 격돌한 지 사 일 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그는 산서성의 실상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어느 시대건 전란이 일어나면 죽어나는 것은 민초들이었다. 아무 런 힘도 없는 사람들은 그저 하루 빨리 평화가 오길 기대하는 것 이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전란이 일어나 면 제일 많이 죽는 것도 민초들이었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은 결 코 쉽게 죽지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들이 빠져나갈 구 멍은 마련해 놓으니까. 대동관에 도착하자 국경 근처의 삼엄한 분위기를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는 병사들이 사나운 눈을 번뜩였고, 상인들 또한 적무강을 수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얼마 전 낭혈문의 산서성 혈겁으 로 인해 이곳 대동관은 더욱더 민심이 흉흉해졌다. '오늘 하루는 이곳에서 머물러야겠군.' 비록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장성 밖으로 나가면 더 이상 객잔이나 이런 마을들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모두 이곳에서 구해야 했다. 적무강은 눈에 보이는 객잔으로 들어갔다. 웅성웅성! 안에 들어서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고막을 어지럽게 울렸다. 수 많은 남자들과 병사들이 한데 어울려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기 때문 이다. 적무강이 들어서자 잠시 말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 선이 일제히 적무강에게 향했다. 그러나 적무강은 그런 사람들의 시 선을 무시한 채 험악한 인상을 가진 주인에게 말했다. "방 하나 주십시오." "혼자 쓰시려고?" "그렇습니다." "넉 냥만 내시오." 적무강은 품속의 주머니에서 넉 냥을 꺼내 주인에게 건네주었다. 순간 주인의 눈이 탐욕으로 빛났다. 적무강은 그의 눈빛을 알아차렸 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점소이가 안내한 곳은 삼층이었다. 이곳은 일이층 모두를 주루로 쓰기에 잠을 잘 만한 곳은 삼층뿐이었다. 다행히 외지에서 온 손님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삼층은 조용했다. "이곳을 쓰세요. 그리고 밤에는 절대 나오지 마세요. 여기 사람들 은 무척 거칠고 위험해요." 아직 어린 점소이는 적무강의 방을 알려주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봤다. 적무강은 점소이를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사느냐?' "아저씨가 좀 전에 보신 주인이 저희 아버지예요." "그래!" 적무강이 입가에 빙그레 웃음을 떠올렸다. 도저히 주인의 아들이 라고 보기에는 힘들 정도로 귀여운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두 눈에 걱정의 빛이 담긴 점소이의 얼굴을 보며 적무강은 품에서 은 두 냥을 꺼내 건네주었다. "흑의 한 벌에다 죽립, 그리고 육포와 내가 말하는 몇 가지 물건 좀 사다 주지 않겠느냐? 남는 것은 너 가져도 된다." "네! 사 올게요. 뭐든지 말씀만 하세요." 아이가 좋아하며 대답했다. 적무강은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만져 주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리고 내가 조금 시장하니 먹을 만한 음식 좀 몇 가지 차려 두어라. 곧 내려갈 테니." "알겠습니다. 잠시 후에 내려오세요." 아이는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바람처럼 달려 내려갔다. 적무강 은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첫댓글 즐감 하고 갑니다
고향설 시인님의 좋은글 "천인혈(天刃血) 제5권 16"과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은 희망차고 향기로운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즐독!
즐감하고 갑니다.
다녀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