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흥 김씨 내간(內簡)
아들에게ㅡ
ㅡ 아들에게ㅡ
어머니는 산지기네 외딴집에 힘겹게 당도해서 곧 몸을 푸셨습니다.
아들에게
그해 피난 가서 내가 너를 낳았구나
먹을 것이 없어 날감자나 깎아먹고
산후구완을 못해 부황이 들었단다
산지기집 봉당에 멍석 깔고
너는 내 옆에 누워 죽어라 울었다
그해 여름 삼복의 산골
너희 형들은 난리의 뜻도 모르고
밤나무 그늘에 모여 공깃돌을 만지다가
공중을 날아가는 포성에 놀라
움막으로 쫓겨 와서 나를 부를 때
우리 출이 어린 너의 두 귀를 부여안고
숨죽이며 울던 일이 생각난다
어느 날 네 아비는 빈 마을로 내려가서
인민군이 쏘아죽인 누렁이를 메고 왔다
언제나 사립문에서 꼬릴 내젓던
이제는 피에 젖어 늘어진 누렁이
우리 식구는 눈물로 그것을 끓여먹고
끝까지 살아서 좋은 세상 보고 가자며
말끝을 흐리던 늙은 네 아비
일본 구주로 돈벌러 가서
남의 땅 부두에서 등짐지고 모은 품삯
돌아와 한밭 보에 논마지기 장만하고
하루 종일 축대 쌓기를 낙으로 삼던 네 아비
아직도 근력 좋게 잘 계시느냐
우리가 살던 지동댁 그 빈 집터에
앵두꽃은 피어서 흐드러지고
네가 태어난 산골에 봄이 왔구나
아이구 피난 피난 말은 말아라
대포소리 기관포소리 말도 말아라
우리 모자가 함께 흘린 그해의 땀방울들이
지금 이 나라의 산수유 꽃으로 피어나서
그 향내 바람에 실려와 잠든 나를 깨우니
출아 출아 내 늬가 보고접어 못 견디겠다
행여나 자란 너를 만난다 한들
네가 이 어미를 몰라보면 어떻게 할꼬
무덤 속에서 어미 쓰노라
-시 ‘서흥 김씨 내간(內簡)’ 전문
1950년 여름, 당시의 광경을 시작품으로 재현한 것입니다. 무덤 속의 어머니가 이승의 아들에게 보내는 내간(內簡), 즉 편지글 형식을 사용해서 영남지역 내방가사의 4.4조 율격형식으로 풀어 쓴 서사적(敍事的) 형태의 작품입니다. 이 시를 쓸 때 나는 어머니의 웅얼거리는 목소리를 어렴풋이 들었고 그것을 그대로 옮겨 적었을 뿐입니다.
|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계명문화대 특임교수 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 |
정호승 시가 있는 에세이
이동순은 내친구다
아니 문학적 죽마고우라고 하는 편이 더 낳겠다.
1973년도같은 해에 서로 다른 신춘문예로 문단에 얼굴을 내민 뒤, 우리는 늘 푸른 소나무와 같은 문학적 우정을 나누고 있다. 나는 이동순이 쓴 수백편의 시들 중에사<서흥 김씨 내간>을 읽었을때의 감동을 아직 잊지 못한다. 이시는 이동순의 첫시집 <개밥풀>에 실려있는 시로 그의 초기시를 대표하는 시다. 그의 시는 일상의 쉬운 로 화려한 장식없이 우리의 삶의 뿌리를 흔들며 사람을 한 없이 울리고 마는데, 이 시또한 그렇다.
이 시는 한 마디로 말하면 세상 떠난 어머니가 어린 아들이 하도 보고싶어 그만 쓰고 만 편지다.
그러니까 이시 제목이 된 瑞興金氏는 이동순 시인의 선비(先妣) 돌아가신 어머니 김기봉 어른을 일컫는 걷이며 '池洞宅'지동댁은 그 어른의 택호(宅號)이다.
동순형은 6.25 전쟁아 나던 봄에 태어나 그 이듬해에 어머니를 잃었다. 두살 때 어머니를 잃었으니 어릴 때는 잘 몰랐겠지만 차차 크면서 그 얼마나 엄마가 그리웠을까. 엄마 얼굴 한번 못 보고 모르로 지끔껏 살아왔으니 그 그리움의 눈물이 어찌 동해를 이루지 않았겠는가.
동순형의 어머니 또한 어린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면서 그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제대로 눈이라도 감으셨겠는가. 생각하면 한 없이 가슴이 아프다.
또 이 시에는 식구들을 먹이기 위해 ㅇ린민군이 쏘아 죽인 누렁이를 메고 돌아온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인민군한테 총맞아 죽은 강아지를 가족들에게 먹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배고프게 하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마음이 깊이 전달돼 마음에 잔잔히 눈물의 파문이 인다.
특히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은 눈물 없이 읽기가 힘들다. 너무 이찍 세상을 떠나 아들이 행여 어미를 못 알아보면 어떻게 할까 하고 걱정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너무 아파 옷깃을 여미게 한다.
언젠가 동순형은 "어릴 때 아버지의 목울대를 엄마 젖꼭지인양 늘 손으로 매만졌다" 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새삼 그 이야기가 떠올라 눈물이 핑돈다.
내 시에도 어머니의 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온다. 곰곰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내 시의 시작이자 끝이다. 내 어머니는 일찍이 시를 스신 분이다. 지금도 나는 가난한 부뚜막에 놓여있던 어머니의 낡은 시작 노트를 잊지 못한다. 시작 노트라고 해봐야 가계부용 조그만 수첩같은 것이었지만, 어머니는 그 노트에 연필러 소월류의 시를 수십편씩 어린아이 글씨처럼 꼬박꼬박 박아쓰셨다.
그 때 어머니는 왜 시를 쓰셨을까. 사는 게 힘들고 고달플 때 시를 쓰면서 위안과 안정을 얻으려고 하지 않으셨을까. 지금으이 나도 시를 쓸 때가 가장 마음이 평화롭고 고요하다. 아마 어머니도 가난의 고통과 한 여인으로서의 고통을 시를 통해 극복하시려고 했으리라. ㅈ디금은 그 시작 노트를 찿아볼 수가 없어 아쉽다. 그러나 내가 쓰는 시가 바로 어머니의 시가 아닐까
*정호승 어머니가 쓴시 에세이 전문* 동아일보사간 P26~30
나도 이시와 에세이를 필사하는 동안 몹시 슬퍼 멈 칫 걸이리기를 수 차례 자판을 두드리기를 그만 두고 싶었으나 나의 어머니를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이글 올림니다.
옮겨쓴이 芝山 이영욱
첫댓글 인민군이
우리의 진짜 적임을
자꾸 잊네요 지금 우린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투사라고 추켜 세웠던 김원봉이 밀정이었다는게 사실인가요?ㅎ
@유재근 독립투사 ㅋㅋ
우리 거실에 김씨 일가 사진 안걸리길 바랄뿐입니다
어머니를 그리랬더니 무슨 인민군이고 김씨
이념이 나옵니까
시를 쓰는이의 감정을
해아려 시의 참 뜻을 이해하려 하는것이 시읽는 기본입니다
이시가 이념을 노래하는 시라고는 어느 한곳도 저는 찿아 볼 수없습니다
저도 200여 편의 시를 써보았지만 시 작품은 독자의 공감 능력에 따라 달리 읽힐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독자가 작가의 창작 의도를 따라오지 못 했다고 너무 나무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독자는 삶의 경험이 다르고 느낌도 다양한 층이 존재합니다. 부디 너무 노여워 하지 마시고 해량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