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오물풍선, '오물'이 아니라 '풍선'이 문제다
: 아날로그 오물풍선에 뚫린 디지털 방공망 문제있다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다시 한번 '안전 안내 문자'가 울렸다. "북한이 대남 오물풍선을 다시 부양하고 있음", "적재물 낙하에 주의하시고 풍선을 발견하시면 접근하지 마시고 군부대나 경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람"이란 문자다. 질문하건대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그 첫번째 존재 이유이다. 무엇이 들어있을지 모르는 풍선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필자는 이 기사에서 북한의 오물 풍선이 수도권에 낙하하는 상황에도 대책이 없는 윤석열 정부의 안보 무능을 비판하려 한다.
K-방산강국 한국의 민낯 드러난 오물풍선 자유낙하
최근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K-방산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전투기와 전차, 이지스함과 잠수함까지 육해공 모든 분야에서 첨단장비를 탑재한 한국의 최첨단 무기들이 불안정한 국제정세 속에 수출되고 있다. 하지만 방산강국 한국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최근 며칠간 북한의 '오물풍선'이 우리 군의 방공망을 뚫고 수도권에 대량 낙하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 8일 밤부터 북한은 세 번째 오물풍선을 남으로 날려보냈다. 9일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오물풍선 330여 개를 날려보냈고 우리 지역에 낙하한 풍선은 80여 개라고 밝혔다. 여기에 9일 밤에도 추가적인 풍선 부양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 5월 말에 처음으로 260여 개 풍선을, 6월 초에 720여 개의 오물풍선을 살포한 바 있다.
북한은 계속되는 오물풍선 살포가 일부 반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응한 것으로, 만약 전달 살포가 계속될 경우 "발견되는 양과 건수에 따라 백배의 휴지와 오물량을 다시 집중 살포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결국 이번 3차 오물풍선 살포는 지난 6월 6일 반북단체가 대형 애드벌룬에 대북 전단 20만 장을 날려보낸데 따른 보복으로 보인다.
관련하여 대통령실은 지난 6월 9일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개최하고 북한의 오물풍선에 대응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북한의 오물풍선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인식이 매우 안일할 뿐만 아니라 우리 군의 대응 또한 국민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는 점이다.
'풍선'은 명백한 군사 무기다
대부분의 언론이 '오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필자는 '풍선'에 더 많은 주의와 우려를 보낸다. 일부 반북단체가 북으로 날려보낸 애드벌룬과 달리 북한이 남으로 날려 보낸 풍선은 북한 당국이 주도한 군사작전의 일환이다. 약 6~7m 크기의 풍선은 명백한 군사적 목적의 운송 수단이다.
문제는 이 군사적 목적의 운송수단이 될 수 있는 '풍선'에 대한 우리 군의 안일한 인식이다. 우리 군은 왜 위험물이 실려 있을지 모르는 풍선을 격추하지 않았을까? 안 한 것인가, 아니면 못한 것인가?
관련하여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5월 30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풍선을 격추하면 낙하하는 힘에 의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그 안에 위험물이 들어있을 수 있는데 확산하게 되면 더 회수가 어려워진다"고 밝혔다. 또한, "그걸 격추하기 위해 사격을 하게 되면 우리 탄이 MDL(군사분계선) 이북으로 월북할 수 있다"며 "그러면 그것(탄 월북)이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 문제는 우리 군이 북한의 '풍선'에 '위험물'이 실려 있을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사전에 차단하지 못하고 풍선이 우리 지역에 내려올 때까지 방치했다는 점이다. 북한의 풍선은 그렇게 수도권까지 내려와 자유낙하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문제는 북한의 풍선을 비무장지대와 접경지역 상공에서 격추하지 못한 것이 단순히 안전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격추 수단이 없었을 가능성이다. 우리 군이 사격을 통해 풍선을 격추할 때의 분쟁 확산을 우려했다는 점은 이해가 가나, 사격 이외에 다른 대응 방안이 없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정부는 2022년 말 북한 무인기가 수도권까지 침범한 이후, 이에 대응한 드론작전사령부를 창설한 바 있다. 하지만 드론작전사령부는 무용지물이었다. 디지털로 무장했다는 한국군이 풍선이라는 아날로그 운반수단에 영공을 내준 꼴이다. 북한 탓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왜 위험물일 가능성이 있는 북한의 투발수단(풍선)이 서울까지 유유히 날아올 수 있었는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즉·강·끝', 군사적 대응은 파국이다
윤석열 정부는 여전히 북한의 무력도발에 '즉·강·끝'(즉각, 강력히, 끝까지) 원칙하에 단호히 응징할 것이라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오물풍선이 서울 시내에 내려앉을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 정부의 '무대책', '무대포' 정신이 더 걱정스럽다.
그나마 정부가 내 놓은 대안이 가관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것이다. 반북단체들이 전단지와 USB에 담긴 가요들로 북한 정권을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한심하기 그지없는 대응이다. 도대체 언제적 방식인가? 1960~70년대에나 통했을법한 방식을 아직도 대북심리전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이번 오물풍선 사건으로 드러난 바와 같이 남북의 무책임한 상호 보복은 우리에게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대한민국의 수도가 휴전선에 인접한 이상 변치않는 군사적 위험 요소이다. 무턱대고 '즉·강·끝'을 외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천만 시민의 안전을 무능하고 대책 없는 정부에 맡겨야 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정부 스스로 9.19 남북군사합의를 무력화한 상황에서 '즉·강·끝'은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 먼저 우리 군은 북한의 오물풍선이 우리 수도에 자유낙하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윤 정부 또한 이성을 되찾고 남북의 갈등이 더 이상 증폭되지 않도록 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한반도 오디세이>, <한반도 스케치北>,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등 집필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