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금요칼럼 - ‘학생선수’에서 ‘선수’빼기 : 외현과 내현 |
| |
| 임용석 (충북대교수) | |
‘낯설다.’ 25살. 아주 오랜만에 학생으로 참여한 수업에서 책상과 의자에 대한 나의 느낌이다. 11년을 운동장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일까? 학생선수가 아닌 학생으로 참여한 수업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농구선수 임용석은 꽤 잘나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첫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고, 명문대에 입학했다. 대학 4학년 때는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었다. 각종 대회에서 우승, 준우승을 했다. 우수선수상도 수상했다. ‘훌륭한 농구선수’ 11년간 학생선수로 살아오며 믿어왔던 나의 미래에 대한 확신은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에 산산조각 났다. 왼쪽 무릎인대가 대부분 끊어지며 운동을 할 수 없는 몸이 됐기 때문이다.
대학 선수시절 운동과 학업을 병행해보고 싶어 지원해놓은 교육대학원에 입학했다. 운동을 그만둔 나의 신분은 자연스레 학생이 됐다. ‘힘든 운동도 했는데 뭘 못하겠어?’란 생각과 함께 당차게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 포부와는 달리 대학원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모르는 것, 못하겠는 것, 못하는 것 천지였다.
● ‘모르는 것 : 무(無)경험’
학생선수가 아닌 학생으로 처음 의자에 앉았던 첫 수업시간을 잊지 못한다. 교수, 교재, 교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일반학생에겐 너무나 ‘익숙’한 의자와 책상은 내게 ‘어색’함 자체였다. 16년간 ‘학생’선수 신분으로 학교를 다녔지만 강의실 의자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 것은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과 같았다. 영화 볼 때를 제외하고 1시간 이상 의자에 앉아있어 본적이 없는 내게 수업내용 이해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 ‘못하겠는 것 : 공부, 관계 그리고 소통’
교육대학원의 설립 목적은 현직교사 재교육 및 예비교사교육이다. 집단구성원의 특성상 서로를 대부분 “선생님”이라 칭했다. 체격이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필자 역시 다른 이들에겐 선생님이었다. 문제는 타인에 의해 드러나는 외면(外面)이 아닌 선수로만 살아온 내면(內面)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힘든 나. 한국말로 하는 수업을 알아들을 수 없는 나. 무늬만 학생인 나의 실체를 남들이 알아볼까봐 겁이 났다. 편하게 앉아 있는 척, 수업내용을 알아듣는 척, 남들이 칭하는 선생님인 척 하는 가식(假飾)은 내 삶의 일상이 됐다. 난 서서히 수업내용, 타인, 그리고 내 자신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있었다.
● ‘못하는 것 : 기초 아닌 기초’
대학원생활 중 영어 원서로 진행하는 수업은 내게 ‘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과 같았다. 원서 한쪽에 실린 영어단어 수백 개를 다 찾아 봤지만 내겐 해석 불가능한 것이었다. 운동을 하며 쌓아온 체력과 끈기도 문장구조를 모르는 내겐 무용지물(無用之物)이었다. 기초를 다지기 위해 찾아간 영어 학원. 기초 문법, 회화 반에 등록했다. 하지만... 일반인들과 나의 기초는 달랐다. 막막(漠漠) 막연(漠然) 망막(茫漠)의 연속이었다.
‘선수’라는 단어가 필자를 대변해 주는 수식어가 아니게 된 순간부터. 나의 자존(自存)은 한길 낭떠러지 끝에 걸린 마지막 꽃잎과 같았다. 운동을 그만두고 학생이 되고자 했던 나는 양쪽 모두 녹아들지 못하는 중간인 이었다. ‘학생선수’에서 ‘선수’란 단어만 뺐을 뿐인데... 무엇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했을까?
● “운동을 그만두면 학생이 되는 줄 알았어요.”
운동을 그만 둔 한 후배의 말이 생각났다. 운동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하며 스쳐 지난, 연구를 수행하며 함께한, 수업을 진행하며 소통한 학생선수, 중도탈락 학생선수, 은퇴선수. 그들의 일상은 16년 전 나의 학생선수시절과 유사했다. 대학원 생활에서 경험한 나의 어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생선수는 ‘학생’+‘선수’의 합성어다. 두 가지 업(業)에 따른 공부와 운동이란 역할을 수행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학생이란 업과 공부란 역할보단 선수란 업과 운동이란 역할에 집중한다. 최선의 경기력, 최고의 운동성적, 최고의 명성만을 위해 뛰고 뛰고 또 뛴다. 포스트 김연아, 박태환, 류현진을 꿈꾸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것. 선수생활 이후의 삶이다.
언제부터일까? 대부분의 학생선수들의 일상, 목표, 꿈이 유사해진 것이. 왜 일까? 학생선수들이 운동을 그만두면서 남들과 공유할 수 없는 학업, 관계, 문화적 어려움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학생선수가 선수의 업과 역할만 하는 것을 당연하게 만든 것이.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무소유를 실천하며 버리고 또 버리며 수행자의 삶을 산 수필작가이자 스님 고(故)법정(法頂)의 말이다. 삶은 순간순간 살아가는 존재의 쌓임이다. 자신의 꿈, 목표, 미래를 위해 대부분의 사람은 찰나(刹那)를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짧은 시간을 최선을 다해 최대한 살아간다. 필자의 삶도, 나와 유사한 경험을 한 학생선수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역시 동일하다. 대한민국의 운동선수는 ‘최선을 다한 최대한’의 순간을 살고 있는가?’ 초보 교육학자이자, 연구자인 필자는 자문해본다. 그들의 찰나를 한 가지 업과 역할로 한정짓지 않기를 바라며...
|
|
| |
| 동아일보, 2017,5,1. [“샤이 보이는 안돼”… 빙판 반란 이끈 백지선의 ‘3P 리더십’] | |
짐 팩(한국명 백지선·50)이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 먼저 한 일은 라커룸에 태극기를 다는 일이었습니다.
2014년 4월. 남자 대표팀은 국제대회에서 잇달아 부진하며 3부 리그로 강등됐습니다. 투지가 떨어진 대표팀에 대해 “한마디로 도련님들만 모여 있다”는 푸념이 들려왔습니다. 1∼6부 리그로 나뉘어 있는 세계 아이스하키에서 한국은 3부 리그 주변을 맴돌며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습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전력 강화가 시급했던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해외 지도자를 영입하기로 했습니다. 협회의 손을 잡아준 건 동양인 최초로 아이스하키 세계 최고 무대인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우승컵인 스탠리컵을 들어 올렸던 백지선이었습니다. 그는 미국의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수비수로 뛰던 1990∼1991, 1991∼1992시즌 두 번 우승의 감격을 맛봤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 살 때 캐나다로 이민 간 그는 언젠가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겠다는 ‘오랜 꿈’을 좇아 한국에 왔습니다.
백 감독이 선수들에게 꺼낸 첫마디는 “당신은 한국 국가대표 선수입니다. 매일 국가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하세요”였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이 이동할 때는 반드시 정장을 갖춰 입으라고 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품위도 함께 지키라는 뜻이었습니다.
국가대표로서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일부터 시작한 백 감독은 이어 강렬한 투지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힘썼습니다. 훈련 때마다 “샤이 보이(shy boy·수줍은 소년)는 안 돼!”라고 외쳤습니다. 투지를 뒷받침할 체력을 기르기 위해 여름에는 스틱을 잡지 않게 했습니다. 5월부터 두 달 이상은 지독한 체력훈련을 했다. 또한 공포의 20m 왕복달리기로 선수들의 체력을 측정했습니다.
체력과 정신력으로 무장한 ‘백지선호’가 마침내 기적을 이뤘습니다. 대표팀은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끝난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2부 리그) 최종 5차전에서 승부치기 끝에 우크라이나를 2-1로 꺾었습니다. 2위를 기록한 한국은 1위 오스트리아와 함께 1부 리그로 승격했습니다. 성인 남자 등록 선수가 233명에 불과한 세계랭킹 23위 한국이 사상 최초로 세계 최고 수준의 16개 팀이 배정된 최상위 리그에 진입한 것입니다. 한국은 1부 리그 국가인 세계 1위 캐나다(남자 등록 선수 9만7000명), 2위 러시아(1만2485명) 등과 당당히 같은 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국가 간 격차가 큰 아이스하키에서 1부 리그 진입은 그 자체가 쾌거로 평가받습니다.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되자 선수들은 서로의 볼을 꼬집었고 백 감독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나이가 있다 보니 아기들을 보면 눈물이 날 때가 있는데 같은 느낌이었다. 기뻐하는 선수들을 보니 눈물이 났다”고 말했습니다. 백 감독은 “라커룸에서 ‘믿자, 우리를 믿자’고 했었다”고 떠올렸습니다.
백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맹활약한 캐나다 출신 골리 맷 달튼(31)을 비롯한 귀화 선수 7명과 국내 선수들이 한 팀으로 녹아들도록 각별히 애를 썼습니다. 협회 관계자는 “언론이 귀화 선수만 별도로 인터뷰를 진행하자 백 감독이 ‘(토종 선수들도) 같이 해’라고 화를 냈다”고 말했습니다.
백 감독은 평소 자신의 하키 철학을 ‘3P’로 요약해 왔습니다. 열정(Passion)과 연습(Practice), 그리고 인내(Perseverance)입니다. 그는 “뚜렷한 목표와 꿈이 있다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아버지께 그렇게 배웠고 NHL에서도 이것들을 지키면서 최선을 다해 선수 생활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백 감독은 “3P에 또 하나의 ‘P’가 추가됐는데 그것은 바로 평창(Pyeongchang)”이라고 말했습니다. 4P로 무장한 백 감독은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올림픽 첫 승의 새 역사에 도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습니다. 30일 귀국한 그는 “꿈은 항상 크게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http://news.donga.com/3/all/20170501/84151511/1
|
|
| |
| 중앙일보, 2017,5,3. [달리기 대신 실내서 공굴리기 … 미세먼지가 바꾼 운동회] | |
봄철 초등학교 운동회 풍경이 바뀌고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실내 체육관으로 장소가 바뀌고 청백팀의 계주 경기 대신 사방치기 같은 실내 놀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 탓입니다. 교육 당국이 최근 미세먼지 발생 때 야외수업 자제 기준을 강화한 것도 봄철 운동회를 어렵게 하는 요인입니다.
지난 1일 오전 9시 봄 운동회가 열리는 서울 우솔초등학교. 운동장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학교 관계자는 “운동회 장소가 운동장에서 실내체육관으로 바뀌었다”고 안내했습니다. 체육관에선 파란색(청군)과 흰색(백군) 티셔츠를 맞춰 입은 2학년 학생들이 판 뒤집기, 큰 공 굴리기, 장애물달리기를 하며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간 1학년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습니다. 당초 2학년이 체육관에서 운동회를 하는 동안 1학년은 운동장에서 달리기 등 13가지 종목으로 운동회를 진행할 예정이었습니다.
이 학교 최미연 교감은 “아침에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으로 나와서 운동장 사용이 불가하다고 판단해 계획을 바꿨다”고 말했습니다. 1학년은 2학년 운동회가 끝난 3~4교시에 체육관에 모여 체육대회를 치렀습니다.
예년의 경우 우솔초는 1~6학년을 이틀 정도로 나눠 운동장에서 운동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 기간이 3일로 더 늘어났습니다. 미세먼지 때문에 운동장 대신 주로 체육관에서만 운동회를 진행해야 해서입니다. 1학년 학부모 이승은(44)씨는 “학창 시절 가장 큰 추억이 소풍과 운동회인데 넓은 운동장을 두고 실내체육관에서 작은 규모로 진행하니 참관하러 갈 수도 없어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세먼지가 아이들 건강에 해로우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가 초등학교의 봄 운동회 풍경을 바꾸고 있습니다. 상당수 학교에서는 운동장과 체육관용 프로그램을 각각 준비했다가 당일 미세먼지 예보에 따라 최종 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운동장에서 왁자지껄하게 펼쳐지던 운동회는 대폭 줄고 체육관에서 치르는 소규모 행사가 늘고 있습니다. 규모를 축소하거나 아예 연기·취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2일 운동회를 치른 서울 영등포구의 신대림초는 지난해와 달리 ‘청백 계주’를 없앴습니다. 청팀·백팀으로 나뉜 학년 대표들의 이어달리기는 운동회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하지만 “미세먼지가 심할 경우 달리기를 하면 아이들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라며 학부모들이 우려를 제기했다. 학교 관계자는 “대신 사방치기, 국궁, 고리 던지기 등 실내에서도 가능한 민속놀이를 프로그램에 넣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양천구의 A초교는 운동회 당일인 1일 아침에 급하게 ‘체육대회를 15일로 연기한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학부모들에게 발송했습니다. 당일 오전 7시에 측정된 미세먼지 농도가 ‘아주 나쁨’이었기 때문입니다. 학부모 박모(45)씨는 “들뜬 마음으로 운동복을 입던 아이가 실망해 펑펑 우는 탓에 달래느라 혼났다”고 말했습니다.
이 학교 교감은 “체육관은 있지만 병설 유치원과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라 운동회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학교는 행사 전 학부모 대의원회를 통해 미세먼지 농도에 따라 체육대회를 취소·연기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미리 학부모들의 동의까지 구해놨습니다. 같은 날 운동회가 열릴 예정이었던 인천 계양구의 B초교도 행사를 연기했고, 경기도 파주의 C초교는 강당에서 연극 관람과 전통놀이로 대신했습니다.
그나마 체육관이 있는 학교는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지난달 28일 체육관이 없는 서울 용마초교에선 교사와 직원들이 운동장에 소금 30포대를 뿌렸습니다. 사흘 뒤 열릴 운동회에서 먼지가 조금이라도 덜 일게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이상봉 용마초 교장은 “운동회를 하루 앞두고는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으로 예보돼 담당 교사, 학부모 대표들과 2시간 동안 회의를 거쳤다”며 “우리처럼 체육관이 없는 학교는 미세먼지가 심한 봄철에 체육행사를 여는 게 힘들다. 내년부터는 아예 가을로 바꿀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이 미세먼지 농도에 따른 야외수업 자제 기준을 강화한 것도 운동회 개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육부는 지난달 야외수업 자제 기준을 기존 ‘예비주의보’에서 전 단계인 ‘나쁨’ 단계로 강화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도 미세먼지 ‘보통’ 단계부터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지침을 일선학교에 보냈습니다. 학생의 건강권을 위한 조치이지만 체육관·강당 등 실내 시설이 부족한 학교들은 마땅한 운동회 장소를 구하기 힘듭니다.
또 미세먼지 농도가 시시각각 변하는 것도 학교 측을 곤란하게 합니다. 서울 강북의 한 초교 교장은 “미세먼지 농도는 예보와 실제 측정치가 다른 경우가 잦아 대응하기 쉽지 않다”며 “매뉴얼은 실외 수업 여부의 최종 판단을 학교장에게 맡기는데, 학교와 학부모의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조율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김재철 대변인은 “실내 체육시설 보유 여부에 대한 고려 없이 교육당국이 미세먼지 지침만 강화해 학교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시설 확충에도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21537379
|
|
| |
| SBS뉴스, 2017,5,3. [히잡 쓴 '소녀 복서'의 위대한 도전] | |
지난해 11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슈가 버트 복싱선수권’에서 16살 소녀 복서 아마이야 자파르는 링에 오르지도 못하고 실격당했습니다.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인 자파르는 히잡을 쓰고 긴 팔과 긴 레깅스를 입고 있었는데, 링에 오르기 직전 대회 관계자가 급히 다가와 “유니폼 규정을 어겼다.”며 실격 판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국제복싱연맹은 “소매 없는 상의와 무릎을 덮지 않는 하의를 입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미국복싱연맹은 “유니폼 규정은 선수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며 자파르를 실격 처리한 겁니다.
복싱에 입문한 지 3년 만에 데뷔전을 앞두고 꿈에 부풀어 있던 자파르는 눈물을 흘리며 쫓겨나듯 경기장을 떠나야 했고, 자파르와 맞붙기로 돼 있던 알리야 샤르보니어라는 선수가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 벨트까지 거머쥐었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뒤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우승자인 샤르보니어가 “자파르에게 기회를 빼앗은 것은 불공평하다. 이 벨트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자파르”라며 자파르에게 벨트를 선물한 겁니다.
자파르에게 벨트 선물하는 샤르보니어의 훈훈한 미담이 미국 언론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알려지면서, 종교 차별 논란에 불을 붙였습니다. 때마침 지난해 리우올림픽에서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히잡을 쓴 펜싱선수 이브티하즈 무하마드가 편견을 딛고 동메달을 따내면서 감동을 전하던 때여서 파장은 더 컸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는 자파르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그녀의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습니다. 많은 지지자들이 자파르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고, 자파르의 사연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미국 복싱연맹을 압박했습니다. 미국 복싱연맹은 결국 지난 달 유니폼 제한을 철폐했습니다.
▲ 미국 최초의 히잡 복서 자파르 데뷔전, 4월 29일
그리고 ‘헤비급 복싱의 새로운 제왕‘ 앤서니 조슈아와 클리츠코의 빅매치로 후끈 달아올랐던 지난 주말 (29일) 자파르는 미국 복싱 역사상 처음으로 히잡을 쓰고 데뷔전을 치르게 됩니다. 미니애폴리스의 작은 체육관에는 많은 지지자들과 외신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였습니다. 헤드기어 안에 히잡을 쓰고, 검은색 긴팔과 레깅스를 입은 자파르가 링 위에 올라서자 환호성이 터졌고, 상대선수인 이사벨라 핸드릭슨은 자파르를 안아주며 격려했습니다.
자파르는 경기가 펼쳐지는 10분 동안 링 위를 맘껏 누비며 주먹을 뻗었습니다. 키 큰 상대를 맞아 때리는 횟수보다 맞는 횟수가 더 많았지만, 행복했습니다. 최선을 다한 자파르는 핸드릭슨에게 결국 패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자파르는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어떤 강제 규정도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내가 오늘 그걸 보여줬다. 모든 소녀들이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자파르도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펜싱을 하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합니다. 유니폼으로 온몸을 가릴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자파르는 칼로 찌르는 것 보다 주먹으로 얼굴을 맞는 게 더 낫다며 복싱을 고집했고, 마침내 모두의 관심 속에 감격적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미국 복싱연맹의 배려로 국내에서는 복싱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 국제복싱연맹은 아직도 ‘유니폼 규정’을 유지하면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자파르가 목표로 하는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위해서는 국제연맹의 규정이 개정돼야 가능합니다.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자파르의 ‘위대한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176649&plink=ORI&cooper=NAVER
|
|
| |
| | 체육시민연대, 서울시 서초구 효령로230 (서초동) 승정빌딩 407호 Tel : 02-2279-8999, E-mail : sports-cm@hanmail.net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