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밤송이의 기지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석곤
“여보, 이제 수필가나 문인이라고 불러줘요!”
요사이 농담 삼아 가끔 한 말이다. 아내는 그때마다 픽 웃으며 말이 없다. 왜 그럴까? 여러 생각을 해 보았다.
지난주 토요일 오후였다. 대한민국 대한문학제가 서울 성북구 어느 산기슭의 동방대학원대학교에서 열렸다. 한국문단을 빛내는 기성작가들에게 주는 대한문학상, 연암문학상, 대한작가상과 문학에 입문한 신인들에게 주는 신인상을 수여하는 축하의 자리다. 수상자들, 가족들, 대한문학작가회 회원들, 저명한 문학가를 비롯한 내빈들이 식장을 꽉 메웠다. 아이들도 좋아서 뛰어다녔다. 바쁜 주말 오후인데도 찾아 온 축하객들이 얼마나 고마운가? 서울에 사는 막둥이가 꽃다발을 들고 왔다. 평택에 사는 둘째도 헐레벌떡 달려왔다. 손자 슬우가 신종풀루를 앓는 바람에 큰아들이 보이지 않아 서운했다.
내 나이 서른 살은 전주대학교 야간부에 편입학한 해다. 그때 글 쓰는 소질이 조금만 있었더라도 갈림길이 달라져서 지금쯤 나는 어디에 있을까 상상을 해 본다. 오래전부터 글을 써보고 싶었다. 글을 쓰려 뜻을 세운 것은 2004년 새해를 설계할 때쯤이라고 할까? 구호를 ‘글 쓰는 해’로 정했었다. 이듬해부터는 거기다 ‘글 모음집 제작’을 더 추가했다. 그러나 설계로만 끝났다.
해가 바뀔수록 욕심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쓴 글을 신문사와 기관지에 투고하며, 신문사 신춘문예에도 응모하기로 했다. 신문사와 기관지에 내 글이 실려 축하전화를 받기도 했다. 작년부터는 구호를 한 단계 더 올렸다. ‘글 쓰는 해, 문단 등단의 해’로.
꿈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이제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 되었다. 꿈이 씨앗이 되어 열매를 맺은 것이다. 이렇게 빨리 문단에 등단한다는 것은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작년 가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등록으로 수필공부에 발을 내딛은 지가 겨우 한 돌이 조금 넘었다. ‘십년법칙(十年法則)에 따라 적어도 서너 해는 글을 써야 할 거라고 나를 달래곤 했다. 등단의 기회가 너무 빨리 온 것 같다. 대한문학 신인문학상 당선소감에서 이야기했듯이 당선소식을 듣고도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아직은 쓴 수필이 풋밤송이 같아서 그렇다.
수필을 공부하는 바른 자세의 첫째가 ‘등단을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다. 등단의 길은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되거나, 종합문예지의 작품 응모로 신인상을 받으면 된다. 또 수필집을 발간하여도 된다. 나를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다. 다작(多作)으로 정년퇴직 기념수필집을 발간하고, 등단의 영광도 안아야겠다는 무지갯빛 그림을 그린 것이다. 지혜와 소질이 못 미친 일은 몸으로 때워 뜻을 이룬 적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상식에 앞서 대한문학작가회 정기총회에 참석했다. 제주도에서도 온 회원도 있었다. 대한문학 신인상 수상자는 정회원이 된다는 것이었다. 관문을 통과했지만 ‘작가’라는 말을 듣는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첫나들이를 나온 것 같았다. 그러나 활동무대가 더 넓어진 것 같아 어깨가 무거워진다.
식전행사가 이미 시작되었다. 전주에서 함께 간 등단작가인 두 여자 분의 흥보가 판소리는 우리를 웃고 또 웃게 했다. 산에서 내려와 옷깃을 파고드는 찬바람으로 움츠러든 몸을 녹여 문화제의 분위기가 살아났다. 거기다 한 남자 신인작가의 트럼펫 연주는 더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어서 시상식이 있었다. 맨 마지막이 내 차례였다. 식장 정면 자막에는 내 사진과 등단작품 제목을 띄웠다. 상패를 받고 메달을 목에 걸었다. 학생 문예지도로 두 번이나 상패를 받았지만 메달은 처음이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막둥이는 꽃다발을 안겨주고 둘째는 사진을 찍었다. 나 혼자 문화제의 주인공인 양 가슴 찡한 행복을 느꼈다.
대한문학 발행인 정주환 박사의 환영사 순서였다. 작가들은 마음에 품은 문향(文香)을 발휘한 자들이다. 추위가 가을을 밀어내듯 하루하루를 밀어내다 종점에 이르게 되는데 종점 전의 활동이 곧 문학 활동이라고 하였다. 30대에 문학에 뜻을 두고 40대에 문학 동지들과 문학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분의 화려한 공적은 선망의 대상이다. 내빈 축사도 있었다. 나는 이순(耳順)에 걸음마를 시작했지만 이생을 마칠 때까지 문학 활동을 하고 싶다. 우리의 삶을 향기롭게 해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수상자들의 소감은 내 가슴에 와 닿았다. 대한문학상 대상 수상자 반숙자 수필가는 난청자인데도 마음이 아주 맑았다. 수필의 길과 삶의 갈은 같다면서 끝이 없는 수필의 길을 가겠다고 강한 의지를 표현했다. 연암문학 대상 수상자 김홍은 수필가는 진보상을 받은 기분이라며, 초라한 삶을 뉘우치고 앞으로 노력할 것을 마음에 새긴다고 했다. 그리고 산사에서 열 시간 넘게 기도를 해 영혼이 아주 맑은 본상 수상자 청정심 씨는 자연을 글로 남기겠다고 했다. 모두 자랑할 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모두가 고개 숙인 벼이삭처럼 겸손하였다. 상을 받은 것을 새 삶의 불씨로 삼겠다는 집념뿐이었다.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면허증이 있어야 한 것처럼 글을 쓰려면 문단에 등단을 해야 한다. 그래서 등단은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경사다. 이제 글을 쓸 수 있는 면허증을 받은 셈이다. 나는 풋밤송이로 기지개를 켜고 처음처럼 불광불급(不狂不及)과 십년법칙(十年法則)을 앞세우며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불그스름하게 영근 세 톨의 알밤을 내밀며 뽐내는 밤송이마냥 훗날 영근 수필을 자랑하고 싶다.
어깨를 으쓱이며 한 번 크게 외쳐 보고 싶다.
“나는 이제 수필가요, 문인이요, 작가다!”
첫댓글 김홍은 교수님의 삶은 3박의 삶 아니실까 소박, 순박, 해박, 아니 더 있지 않을까 관광지 가시면 호텔 숙박 보다는 민박도 하실 것 같은데... ㅋㅋ 재롱 죄송합니다.
ㅋㅋㅋ 멋진 표현입니다. 민박요? 혹...조롱박은 아니 실테죠! 그냥 웃어보려고요, ㅎㅎ
교수님 상 받을 때 신인상을 받은 분의 소감문인 것 같습니다. 진솔한 마음이 묻어나는 글이군요. 잘 읽고 갑니다.
늦었지만 교수님 수상 축하드립니다. 작가님 등단도, 축하드립니다.^^ 기쁨이 전해지는 듯 싶습니다.
'연암문학 대상' 아주 큰 상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교수님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신인상 받으신 분도 축하 드립니다.
'연암문학 대상 수상자 김홍은 수필가는 진보상을 받은 기분이라며,
초라한 삶을 뉘우치고 앞으로 노력할 것을 마음에 새긴다고 했다...'
제가 등단하던 날을 떠올리면서...다시 한번 깊은 울림으로 배우고갑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