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철학자가 다스리는 나라를 꿈꾸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들이 사는 나라를 꿈꾼 걸까? 물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철학적 출발점부터 달리 잡은 만큼 그는 스승에 비해 훨씬 현실적이었다.
누구나 철학자가 될 수는 없다. 비록 성찰과 사색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탈출구일 뿐이다. 그렇다면 뭔가 집단에 적용할 수 있는 행복의 방정식이 필요해진다.
인간 개인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인간들이 모여서 이루는 국가의 목적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집단은 개인에 비해 장점이 있다.
"개개인으로 보면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집단 전체로 보면 소수의 선한 사람들보다 한데 뭉친 다수가 얼마든지 더 나을 수 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듯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국가는 국민들의 행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조직이었다.
국가의 목적은 행복의 추구다. 목적론의 원조답게 형이상학과 윤리학에 이어 정치학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론을 토대로 삼았다.
윤리학에서도 그렇듯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론은 플라톤과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결론은 정반대에 가깝다. 국가를 하나의 '커다란 개인'으로 본 플라톤처럼 아리스토텔레스도 국가는 단순한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라 일종의 유기체로 간주했다. 또한 국가에도 개인의 덕이 통용되고 정치에도 철학적 지혜가 중요하다고 본 것도 플라톤과 같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현인이 지배하는 '왕국'을 이상으로 삼았던 스승과는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공화정을 최고의 정치 체제로 보았다.
그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 따라서 철학자 왕국은 제외된다 - 국가 형태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한 사람이 정치를 담당하는 군주정이고, 둘째는 덕을 가진 소수 엘리트 집단이 다스리는 귀족정이며, 셋째는 시민들이 직접 국정을 운영하는 공화정이다.
뛰어난 정치적 역량과 덕을 갖춘 한 사람이 있다면 그를 군주로 하는 군주정도 괜찮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가능한 것이 아닐뿐더러 그 개인의 삶과 더불어 나라의 운명도 좌우되므로 아무래도 위험한 구석이 있다(군주정은 아니지만 페리클레스가 이끌던 아테네가 그런 경우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최선의 국가 형태는 가급적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공화정이다. 귀족정은 최선의 군주정과 공화정이 불가능할 때 취하는 차선의 형태다.
이 세 가지 체제는 모두 나름대로 장점이 있고 바람직한 것이지만 일이 잘못 풀리면 '못난이 삼형제'가 될 수도 있다. 군주정이 잘못되면 전제 정치가 된다. 말할 것도 없이 폭군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경우다. 귀족정이 왜곡되면 과두 정치를 낳는다. "재물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면서 품격은 결여된 자들"이 정치를 맡는 경우다. 또 공화정이 삐딱선을 타면 민주 정치로 변질될 수 있다. 오늘날 민주 정치의 관념과는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민주 정치는 대개 가난한 도시국가에서 다수의 지배가 들어선 결과로 성립된다. 시민들은 가난의 한을 풀기 위해 권력으로 부자들의 재산을 약탈하는데, 이것은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한다는 논리다. 가난하게 자란 사람이 공산주의에 물든다는 냉전시대의 천박한 반공주의를 연상케 하지만 공산주의와는 무관한 주장이다.
국가의 기능에 관해서는 플라톤의 경우처럼 아리스토텔레스도 교육을 중시했고 예술에 대한 관점도 비슷했다. 정치학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스승과 유사한 측면이 있으나 강조점은 사뭇 다르다.
적어도 지나친 도덕의식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간 탓에 음악으로 대표되는 예술 전체를 질식시키려 했던 플라톤보다는 한결 유연한 태도를 보인다.
"술에 취한 경우가 아니면 노래를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발언에서는 여전히 음악을 폄하하는 관점을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의 순기능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았다.
플라톤이 예술을 억압한 근거는 예술 역시 원본(이데아)의 조잡한 사본일 뿐 아니라 예술에 내포된 열정이 이성적 성찰을 저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엇을 모방하느냐에 따라 예술에도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심지어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진지하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플라톤에게서 단죄를 받았던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는 제자의 대에 이르러 사면을 받은 셈이다.
한마디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도 예술 나름이라는 입장이다. 위대한 예술은 무익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열정을 정화하는 기능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특히 공감한 것은 비극이었는데, 여기에는 아마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3대 비극 작가가 활약했던 아테네의 황금기에 대한 아쉬움도 작용했을 것이다.
남경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