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3134
관음경 중송분-68
동봉
제15수 관음의 힘11
살무사와 왕도마뱀 지네와전갈
불꽃처럼 독한기운 뿜는다해도
관세음을 생각하는 거룩한힘이
소리찾아 제갈곳을 가게하여라
완사급복갈蚖蛇及蝮蠍
기독연화연氣毒煙火燃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
심성자회거尋聲自廻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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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15일 '부처님오신날'이다
어느새 18년 하고도 석달 전 얘기다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 머물 적에
주로 머무는 곳이 코로그웨였고
그 동네 이름이 크와숭가였다
하남의 민석기 선생이 나가
40에이커 너른 대지를 매입한 뒤
탄자니아 양식의 힐하우스를 지었다
오직 나무와 풀잎으로만 엮었는데
그다지 호화롭지는 않았으나
나름대로 살만한 그런 건축물이었다
나는 거기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했다
민선생은 한 살 위로 천주교 신자였다
한 주 전 그가 내게 마음을 열었다
"스님, 여기 아프리카까지 오셨는데
석탄절'이 한 주로 다가왔네요
불전에 연등 하나 켜시는 게....."
나는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불자도 아닌 천주교 신자인데
나를 배려하여 초파일을 챙긴다니
마냥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마웠다
사실 나는 초파일을 건너뛰려 하였다
주머니에 넣을 정도의 작은 불상을
어딜 가나 늘 모시고 다니지만
그는 내 개인의 신앙 문제고
그가 여기까지 마음을 쓴다는 것이
참말이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코르그웨에 나갔다
우리 행정구역으로 치면 군 단위다
"여기도 연꽃이 더러 있기는 한데
등 대신에 조화 연꽃이면 어떨까요?"
그의 생각대로 조화 연꽃을 준비했다
나와 함께 민선생은 콧노래를 부르며
털털거리는 트럭을 몰고 돌아왔다
이웃의 현지인들이 모여들었다
이미 진작 만들어 놓은 연못에
연꽃이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하얀 연꽃, 파란 연꽃, 노란 연꽃
빨간 연꽃, 보랏빛 연꽃들이
예닐곱 평 크기 연못에 가득하다
준비한 조화는 큰 건물에 걸었다
200여 평 넓은 건물 천장 서까래가
조화를 달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연꽃 장엄이 그야말로 하이라이트다
당연히 우리나라 <우리절>에서는
보나마나 연등을 켰을 것이다
그해 5월 15일 '부처님오신날'은
생전에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민석기 선생과 나, 힐하우스 직원들과
그리고 모여온 이웃 동네 사람들이
자그마치 350여 명을 훌쩍 넘겼다
이를 기억하는 것은 사람 수를 세며
"열다섯 명만 더 있으면 365명
한 해 날짜 수와 맞먹을 텐데"하며
모두들 한바탕 크게 웃었기 때문이다
교회, 성당, 모스크에서 열린 축제라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겠지만
사원도 아닌 호텔에서의 축제에
350명이 모였다는 게 실로 대단하다
사실 나는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다들 집으로 돌아간 뒤 남은 사람은
나와 민석기 선생 단 둘뿐이고
힐하우스 경호원들이 있었다
우리말이 통하는 나와 민선생은
호텔 잔디밭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한참 이야기에 깊이 빠져 있다 보니까
어느새 자정子正을 넘긴 것이다
그때 민석기 선생이 나를 향해
짧게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잠깐잠깐만 스님, 쉿!"
외마디에 머리가 쭈볏 섰다
그가 언제 준비했는지는 모르나
긴 막대기로 자리 한 켠을 눌렀다
막대기 끝에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다시 보니 잿빛 살무사가 꿈틀거렸다
민석기 선생이 웃음을 던지며 말했다
"스님, 오늘 큰 액땜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큰 행운이 있으실 거고
'석탄절'에 꽃을 올리셨으니
그 공덕이 어딜 가겠습니까?
여기 현지인들은 살무사를 보면
길사吉蛇라 하여 귀하게 여깁니다."
내가 깔고 앉아 있던 파아란 잔디밭에
살무사가 그때까지 함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냥 아찔하다
만약에 내가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면
나는 아마 살무사를 죽였을 것이다
청소년기 나는 깊은 두메에 살며
독사와 살무사를 자주 만났고
그때마다 나는 보이는 대로 죽였다
업을 지어도 좀 많이 지은 게 아니다
생각하면 1953년 계사생 뱀띠가
뱀이란 뱀은 다 저승으로 보냈다
한데 민선생은 뱀을 놓아주었다
종교가 다른 민선생이야말로
살생을 방생으로 되바꾼 것이다
탄자니아에서 체류하는 쉰두 달 동안
어쩌면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일까
자주 맞닥뜨리나 죽이지 않았다
탄자니에서 살며 가장 무서웠던 게
내게는 뱀이 아닌 전갈이었다
뱀에게는 물리지 않아 잘 모르지만
전갈은 여러 번 쏘였기에 잘 안다
전갈보다 많은 것들이 도마뱀인데
모기장을 치지 않은 채 누워있으면
얼굴에 후두둑후두둑 떨어지곤 한다
더운 나라에 전갈도 한둘이 아니다
킬리만자로 산 기슭 2,000m 고지에서
전갈에게 쏘이고 보건소를 드나든 게
손가락으로 다 셀 수가 없을 정도다
맹독의 살무사를 깔고 앉았으면서도
내가 물리지 않은 게 다행이지만
내 몸무게를 견뎌내면서도
내게 해코지를 하지 않은 뱀이
아무리 되짚어보고 톺아보아도
정말이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맹독의 사나운 미물微物 짐승들에게
언젠가 연꽃 한송이 꼭 건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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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뒤 나타난 벌레인데 어떤?/우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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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6/2023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