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6년 8월 26일~27일(무박산행)
☞ 산행날씨: 바람에 흐렸다..맑았다 변화무쌍한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9km / 9시간 10분소요
☞ 참석인원: 알파3050 산악회 26명과 함께
☞ 산행코스: 성삼재-코재 갈림길-노고단 대피소-노고단-전망대-노고봉-노고단(왕복)-헬기장-돼지령
생태복원지구-피아재 갈림길-임걸령-1,420봉-노루목-갈림길-반야봉-헬기장-중봉
묘향대 갈림길(왕복)-묘향대-이끼폭포-함박골-철다리-제승교-제승대-대웅교-옥류교
명선교-병풍소-병풍교-병소-금표교-탁용소-와운마을 갈림길-와운교-뱀사골신선길
요룡대-반선교-반선마을
☞ 소 재 지: 전남 구례군 광의면, 토지면 / 전북 남원시 산내면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올 여름 지독하게도 무더웠던 날씨도 어제부터 누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朝夕으로 寒氣를 느낄 정도이다
지난 주 주왕지맥길에 지긋지긋한 잡목과의 전쟁을 치른 심신을 추스리기 위해 지리산으로 베낭을 메고 나선다
올해로 벌써 지리산으로 길을 나선지 대엿번이지만 목적산행이 아닌 힐링산행은 처음이다
지난해 백두산을 같이갔던 산우들과 지리산 산행을 나서기 위해 사당역으로 가서 산우들과 오랫만에
해후를 한 다음에 버스에 올라 평소의 습관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가 차가 덩컹거리는 바람에 잠에서 깬다
버스는 가쁜 숨을 내쉬면서 구례에서 성삼재로 향하는 길에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새벽 3시가 조금 시간에 성삼재에 도착하니 강한 바람에 비가 내리고 주위는 연무가 가득하다
대장이 결단을 내린다... 버스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에 4시 30분부터 산행을 시작하겠단다
내가 오늘 산행 대장인 신난다 대장과 산행을 같이 한 건 대엿번 밖에 안되지만 갈때마다 날씨 하나는
그야말로 죽여줄 정도로 좋았는데...오늘은 조금 불안하기에... 대장님에게 ‘이제 氣가 다한 것 같습니다.
돗자리를 걷고 하산해야 할듯 싶습니다’라고 하니까 조금 있으면 날씨가 좋아 진다고 장담을 한다
난 대장의 신통력을 믿으면서 버스에서 내려 성삼재 휴게소로 향하는데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성삼재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04:50)
강하게 부는 바람에다 짙은 안개가 자욱하지만 다행히 비는 개인다
올해에 이곳 성삼재만 3번째다... 어둠속에 습기가 가득하여 카메라 꺼내기도 귀찮아 꺼내지도
않고 그냥 넓은 도로를 따라서 어둠속에 동료 산우의 등산화 뒷굽만 바라보며 걷다보니
코재 갈림길을 지나 노고단 할매 대피소에 다다른다
노고할매 탐방 안내소(05:30)
탐방 안내소에 도착하니 서서히 주변의 사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대피소 안에서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낸 산꾼들이 꿇이는 구수한 라면 냄새가 코를 자극하니
갑자기 알싸한 라면 국물에 소주 한잔이 생각나지만... 현재 상황은 그져 꿈일 뿐이다
노고할매가 산꾼 범여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곳에서 동료들과 선 채로 휴식을 취한 후 물 한모금 마시고 노고단으로 향한다
노고단(老姑壇:1,440m:05:45)
노고단이란 늙은 시어머니를 위한 제사터를 말하며 우리말로는 할미단이라고 한다.
노(老)는 존칭의 의미이며, 고(姑)는 마고를 뜻하기도 해서 마고할매를 위한 제사터라고한다
마고는 인류 최초의 인간을 탄생시킨 여신으로 그가 사는곳은 마고성이라고 한다.
원래 마고는 젊은여성이었으나 오랜 전설속의 여신이므로 마고할매라고 불린다
지난 6월 6월 5일 백무동에서 세석산장을 거쳐 성삼재가는 길에 이곳에서 국공파와
대판으로 언쟁을 벌였는데 그 영향 탓인지 개방 시간이 상당히 늘어났구나
그 당시에는 노고봉 개방 시간이 10:00~16:00였고 내가 이곳에 도착한 시간이
16시 15분인가 되었는데 조금 늦었으나 빨리 갔다올테니 가자고 했더니만 법 조항을
들이대면서 통제를 하기에 대판 싸웠던 안 좋은 추억이 있었는데 그게 반영됐는지
05:00~16:30분으로 대폭이나 늘어났구나... 범여 꼬라질 부릴만했나...ㅋㅋㅋ
노고단에서 노고봉으로 향하는데 날씨는 좋아진다
노고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반야봉의 모습
오늘은 마고할매의 엉덩이처럼 보이는 반야봉이 구름바다 사이의 섬처럼 보인다
참으로 오랫만에 노고봉으로 향한다
산오이풀
앙증맞은 구상나무 한 그루도 만나고...
군부대 너머에 있는 종석대(차일봉)는 남원에서 구례로 마실가는 운해에 갇혀 버렸다
노고봉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모습
노고봉 전망대
전망대에서 신난다 대장님
이 양반 산행 날짜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잡는다
아마 퇴직후에 밥벌이 걱정은 없겠다
탑골공원 앞에 돗자리를 펴던지... 미아리에서 점집을 하나 차려도 먹고 사는덴 지장이 없을듯
그땐 동업합시다... 손님을 끌어오는 삐끼는 내가 책임 지겠소...
자매이신가?... 정다운 모습 부럽소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화엄사와 섬진강의 모습
남명 조식 선생은 지리산 유람록에서 " 은빛 물결이 잘 닦은 거울처럼 빛난다'고
감탄한 섬진강을 끼고 도는 400리길이 구비구비 흐른다
지리 십경중에 제2경에 속하는 노고운해는 노고단 아래로 펼쳐지는 구름바다를
말하는 것으로 신선들이 살 것 같은 모습으로 신비한 절경을 이뤄내는 곳이다
이른 아침에 맞이하는 노고운해 역시 환상적이다
노고봉에서 바라본 구례읍내와 섬진강
다음주(9월 4일)에 걸어야 할 견두지맥의 끝지맥인 저 곳... 보면 볼수록 가슴이 벅차오른다
전북 남원군 산내면과 전남 구레군 토지면의 경계에 위치한 봉우리로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과 더불어 지리산 3대 봉우리의 하나이다
지리산 신령인 산신할머니(老姑)를 모시는 곳(壇)이라 하여 노고단이라 이름 붙였다 한다.
신라시대에는 박혁거세의 어머니를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 봄.가을에 이 곳에서
제사를 올렸고, 신라 화랑들이 이 곳을 수련장으로 삼기도 했다.
이 제사터는 원래 천왕봉에 있었으나 고려시대에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노고단이란 명칭이
처음 사용되었다고 하며 일제 강점기에서 서양에서 온 기독교 선교사들의 별장터였던
노고단은 6.25 당시에 빨치산 소탕 작전때에 불타버려 지금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이곳 노고단은 지리 10경중 제2경인 노고운해(老姑雲海)가 단연 유명한 곳이다.
노고단의 구름바다는 지리산 남쪽 자락을 휘감고 도는 섬진강의 습한 기온 때문에
다른 곳보다 빈도가 높다고 하며 노고단 주변이 고요한 구름바다에 잠길때면 봉두산과
조계산 등 남녁의 산들은 마치 섬처럼 솟아다도해 같은 선경을 연출한다고 한다
화엄사 계곡의 끝머리 바위턱에 앉아 파도처럼 밀려갔다 밀려오며 계곡을 덮고, 능선을
휘감아 돌다 저 들녁까지 이르러 온통 하얀 솜이불을 깔아놓은듯 펼쳐지는 운무를 바라
보고 있노라면, 잠시 인간의 세계를 벗어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신비롭기 그지없다.
노고단은 지리산 종주코스의 출발점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 임걸령 - 반야봉 - 토끼
봉 - 벽소령 - 세석평전을 거쳐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 능선길은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밟아보고 싶어하는 영원한 동경의 코스다
정상석 뒤에 새겨진 글씨는 뭔 뜻인지?
노고봉 삼각점(△운봉12 / 1991 재설)
반야봉 너머로 일출은 시작되고...
노고단의 다른 이름은 길상봉으로 노고(老姑)는 문자대로 하면 할미를 뜻하지만 도교에서
국모신인 서술성모를 일컫는 말이며 노고단은 신라시대부터 서술성모의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었다.
노고봉에서 바라본 왕시루봉(1,243m)과 문수골의 모습
피아골과 문수골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노고단에서 섬진강으로 뻗어내린 산줄기가
장장 10km에 이르고 해발 1,000m 이상 되는 봉우리가 8개나 되는데 지명의 유래는
정상부가 펑퍼짐하고 두루뭉실하게 생겨 마치 큰 시루를 엎어놓은 것처럼 보여 붙혀진 지명이다
구례, 하동, 악양, 화계가 한 눈에 보이며 동쪽 능선은 연곡사가 있는 피아골이고, 지금 보이는
저 골짜기는 문수사와 운조루가 있는 문수골이다
하늘정원으로 명명된 지리산 노고단
노고단은 신라시대 화랑의 무예수련장이었다고 하는데 노고단의 옛말인 할미단은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의 어머니인 서술성모를 국모로 모시고 제사를 지낸 곳이었다.
고리봉과 만복대는 운해의 심술(?)로 볼 수 없다는게 아쉽기만 하다
노고봉에서 노고단으로 내려서는 길은 아고산 생태계 지역이다
지리산의 수직 산림대인 이곳은 소백산 비로봉 아래와 같다
저산대와 고산대 사이에 있는 해발 1,500~2,500m 지역을 아고산(亞高山)지대라
하는데 이곳은 바람과 비가 많고 기온이 낮으며 안개가 끼는 날씨가 많아 가문비나무,
분비나무 등 침엽수가 많은 것이 특징으로 노고산과 세석평전과 같은 아고산대 상안
부근에서는 수고가 낮아져서 키작은 나무와 철쭉, 진달래, 원추리 등 초본류가 자라고 있다
아곳 아고산 지대에는 갖가지 야생초, 서늘한 기후, 뛰어난 조망 등 자연과 균형을 이룬
지상의 낙원과 같은 생태적 가치가 높은 지대이나 훼손될 경우에 복원이 쉽지 않은 곳이다
간간히 보이는 참취꽃도 빗물을 머금고 얼굴을 내민다
지난주 주왕지맥길(경원도 평창)에서 원없이 보았던 둥근이질풀
이곳은 내년을 기약하며 이별을 준비하는데 식물들의 삶도 인생사와 똑같다
모든게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 是生滅法)인데... 그걸 부정하는 무리는 어리석은 인간들이다
요즘 세태를 보라... 흔히들 금수저라 불리는 정치권을 비롯한 지도층들의 꼴볼견...역겨울 정도이다
매주 산에 오르지만큼 산만큼 훌륭한 스승은 없는 듯 싶다... 늘 겸손하고 배려하는 마음...
산비장이도 가끔씩 보인다
카메라 렌즈에 성애가 낀 모양이다...초점이 흐리다... 술취해 비틀거리는 쥔장(범여)처럼...
노고봉에서 노고단으로 내려서는 산우들... 발걸음이 가볍다
노고단하면 빼놓을 수 없는게 층층잔대이다... 층층으로 겹쳐지는 초롱이 앙증스럽다
다시 노고단으로 되돌아와서 물한모금 마시고 쉼호흡을 하면서 길떠날 채비를 한다
이른 새벽의 비바람은 온데간데 없고 날씨 한번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정말 쥑인다
노고단 돌탑
반야봉의 모습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데... 그야말로 변화무쌍하다
마고할미의 꼬라질 부리시나...
화가 풀리셨나?
노고봉을 바라보며 반야봉으로 발걸음으로 옮긴다(06:30)
투구꽃(꽃말: 밤의 열림)
꽃 모양이 병사가 쓰는 투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몸에 강한 독성이 있다.
어렸을 때 잎 모양이 취같은 산나물처럼 생겨 봄이면 사람들이 잘못 뜯어먹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피아골 가는길
오랫만에 고속도로같은 호젓한 길을 산우들과 걷는다
뒤돌아 본 노고봉
왕시루봉 너머로 보이는 구례땅과 섬진강의 모습
헬기장(07:10)
가을은 성큼 우리들 곁으로 다가오는구나...가야할 산길은 너무 많은데 세월은 왜이리 빠른지...
돼지령(1.390m:07:20)
원추리 등... 뿌리식물들이 많았던 탓에 멧돼지들이 많이 출몰하여 돼지령이라 붙혀진 이름... 조금은 생퉁맞다
민초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피아골
산오이풀(꽃말:애교)
요즘 지리산 등로에는 산오이풀이 대세이다...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이 산꾼에게 애교를 부리는듯 하다
생태복원지구(07:25)
피아골 삼거리(07:30)
지리산의 단풍 산행코스로 유명한 피아골은 6.25전쟁때 국군과 빨치산의 전투로 피로물들은
계곡이라해서 피아골로 불린다고 알려져있으나 피아골이란 지명은 이곳에 피밭(직전,稷田)이
많아 붙은 이름으로 오곡중 하나인 피를 많이심었던 골짜기라, 즉 피밭골에서 유래되었다 하는데 피는
보이지않고, 빨치산과 토벌대가 흘린 수많은 피가 먼저 생각나는건 아마도 어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피아골이란 유래는 옛날 속세를 버리고 이곳의 한적한 仙景을 찾은 仙客들이 이곳에서 오곡중의 하나인
피를 많이 가꾸었던 연고로 자연히 피밭골이라 부르게 된 것을 그 후 변음이 되어 피아골로 불렀단다
청순하기만 한 참나물꽃
며느리 밥풀의 전설(꽃말:원망)
옛날에 아주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고된 시집살이하던 며느리가 있었는데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먹는 밥이 아까워 밥도 실컷 못먹게 하여 며느리는 항상 배가 고팠다
어느날 며느리는 너무 배가고파 밥을 퍼다가 몰래 주걱에 붙은 밥풀을 떼어 먹다가
시어머니에게 발각되어 심한 욕설과 함께 매를 맞았다...며느리는 매를 맞으면서
‘음식이 아니라 요거예요’라고 하면서 밥풀을 혀끝에 내밀면서 죽었다고 한다
이를 안 아들이 가엽게 죽은 며느리를 밭둑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는데, 그 며느리 혼이
매년 봄만되면 밥풀처럼 작고 흰 밥풀나물이 되었다
낮은 산에는 부끄러워 피지 못하고 깊은 산에서만 피어 난다고 한다
오랜만에 산우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오다보니 임걸령에 도착한다
임걸령(林傑嶺:1320m:07:40)
조선 선조때의 좀도둑인 임걸년(林傑年)은 지금의 산청군 시천에서 태어난
인물로 그의 활동무대는 반야봉 일대였다고 한다.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임걸년은 팔도행상의 물건을 일부만 털었고, 또한 그것을 모아
빈민을 구제한 의적이라고 하는데 실제 임진왜란 당시 어떤 행적을 보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조선 선조때 남원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조경남이 지은 “난중잡록(亂中雜錄”에
의하면 ‘1594년 6월 영남사람 임걸년이 도당을 모아 지리산 반야봉에 출몰하여
도적질을 하였다’ 적혀 있는데 임걸년이 와전되어 임걸령으로 된듯 싶다
그는 화계장터에서 넘어오는 보부상을 털거나 인근 사찰을 털었는데 '연려실기술'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한참 강성했을때의 임걸년은 지리산의 모든 사찰을 털었다고 한다.
이 고개는 그가 활동한장소라해서 임걸령(林傑嶺)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숲이 울창해서
고갯마루라고는 여겨지지 않으며 이곳에 있는 샘물은 물맛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임걸년 약수물
산꾼들에겐 지리산이 가장 매력적인 것은 식수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물 한바가지 들이 마시고 아침 식사를 하기위해 동료들한테로 간다
오늘 범여는 도시락은 없고 숟가락만 가지고 왔다
백두산을 비롯해 여러번 같이 산행을 한 페비께서 내 도시락을 가지고 왔다
이 머나먼 길에 가련한 여인이 내 도시락까지... 宮에 내처져 私家에서
영어(囹
반야봉가는 길에 다시 짙은 안개가 지리산을 뒤덮는다..마고할매의 심기가 불편하신가...
흰진범(꽃말:용사의 모자)
미나리아재비과의 다년초인 흰진범은 한국 특산 식물로 산지의 다소 응달지고
습기찬 곳에서 볼 수 있으며 줄기는 비스듬히 올라가다가 상부에서 덩굴이 지고
위쪽에 잔털이 있으며, 높이는 약 1m 정도로 잎은 잎자루가 길고 경엽은 위로 갈수록
짧아지며 작은 잎은 손바닥 모양으로 3-5개로 갈라지고 열편에 결각 또는 치아모양 톱니가 있다.
꽃은 연한 황백색으로 8-9월에 줄기 끝과 위쪽 잎 부위에서 총상꽃차례로 피며
꽃 하나의 모양이 오리처럼도 보이는데 꽃이 모여 핀 모습은 오리들이 서로 올라가려고
모여드는 모습이다.
1,420봉 오르는 길에 신비스러운 빛내림은 시작되고...
비에 젖은 裸木
노루목 직전에 만난 암두(巖頭)
노루목이란 명칭은 이곳의 암두(巖頭)의 모양새가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든 모습처럼
보인다고 해서 불려졌다는 설과 노루가 지나 다니는 길목이라 해서 붙혀졌다는 설이 있다.
또한 문순태의 장편소설 “철쭉제”에서는 ‘산에서의 세갈래 길’을 흔히 노루목이라 한다고 적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는 길목인 노루목에서는 흔히 세갈래 길을 만나게 되는 것으로
보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또한 땅의 모양이 넓거나 늘어졌다는 뜻으로 ‘널’자에 지점이라는
뜻의 ‘목’자가 합쳐져 널목→놀목→날목→너르목→노루목으로 변했을 가능성도 있다.
노루목 (1498m:08:40)
노루목이란 이곳의 지형이 노루의 목을 닮았다해서 붙은 지명인데 항간에는
노루가 다니던 길이라는 뜻에서 붙었다한다. 또 다른 일설은 노루목 앞에 있는
바위의 모양새가 노루가 목을 치켜들고 있는 형상이라 노루목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반야봉가는 갈림길이다 반야봉은 지리산 주능선에서 1km정도 떨어져
있는 관계로 일부러 가기에는 그리 쉽지않는 봉우리이다.
폐비마마의 破顔大笑
사가에서 살만한 모양입니다...그나저나 아침 도시락 잘 먹었습니다
노루목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백두대간같은 목적산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유로운 산행으로 지리산을 맘껏 즐긴다... 뒤돌아 본 노고봉은 환상적이다
반야봉 갈림길(08:55)
반야봉 갈림길에서 올라서니 마치 천상의 화원에 온듯한 야생화 천국이다
지리산은 가는 곳마다 산오이풀이 대세이다
수리취
꽃인지 열매인지... 구분이 잘 안간다
참취꽃도 아름답고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전사의 모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 투구꽃 꽃말은 쌩퉁맞게 “밤의 열림”이란다
이 넘은 몸에 강한 독성이 있어서 어렸을 때 잎 모양이 취같은 산나물처럼 생겨 봄이면
사람들이 잘못 뜯어먹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고추나물꽃(꽃말:친절)
습진, 생리불순, 코피 등에 효능이 좋다고 하는데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다
형이 사냥을 나갔다가 자기의 매가 상처를 입자 그 산에 있는 약초를 캐서 매의 상처를
깨끗하게 치료하였는데 신통하게도 매의 상처가 깨끗하게 나았다.
이 일로 동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자 동네 사람들은 그에게 ‘무슨 풀로 치료했어요?’라고
물었으나 형은 가르쳐주지 않았다...얼마후 마음씨 좋은 동생은 동네사람들에게 풀 이름을
가르쳐 주었는데 화가 난 형은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
동네사람들은 착한 동생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는데 그곳에 핀 꽃이 고추나물이었다고 한다반야봉을 가기 위해서는 의식처럼 지나야하는 곳이 철계단이다
반야봉가는 길에서 바라본 불무장등(不無長嶝)
불무장등(1,446m)은 지리산에서 유독 장등이란 명칭을 쓰고있는 봉우리다
그런데 불무장등(不無長嶝) 봉우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한문으로 풀이하면 ‘없지 아니한 긴 산등성이’처럼 그저 밋밋한 고갯마루같은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또 산세가 대장간의 화로인 풀무와 같은 형상에서
비롯되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모두 잘못된 해석이라는 것이다
경상남도 문화관광국 관광행정담당은 “올바른 표기는 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뜻하는
반야(般若) 또는 불모(佛母)를 용어를 사용하는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며 불모장등은
반야봉에서 시작한 반야장등에 있는 가장 높은 산이다
“반야”라는 중복된 같은 글자를 피하고 같은 의미인 불모장등(佛母長嶝)이란 표기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불모” 또는 “불무”로 읽어 현재의 불무장등이란 표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불무장등 능선은 반야봉에서 시작되어 하동군 화개면 탑리까지 능선으로 이어지면 날나리봉이라고도 한다
둥근이질풀
산구절초
수리취
초가을 비 맞으며 산에 오르는 사람은 그 까닭을 안다
몸이 젖어서 안으로 불붙는 외로움을 만드는 사람은 그 까닭을 안다
후두두둑 나무기둥 스쳐 빗물 쏟아지거나 풀이파리들 더 꼿꼿하게
자라나거나 달아나기를 잊은 다람쥐 한 마리 나를 빼꼼히 쳐다보거나 하는
일들이 모두 그 좋은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이런 외로움이야말로
자유라는 것을 그 좋은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 이성부의《지리산》중에서 -
반야봉에서 바라본 智異 10景중 제2경인 老姑雲海의 모습
지리산은 1967년 12월 국내최초의국립공원으로지정 전북과 전남, 경남 등의
5개 시,군, 15개읍. 면에,속하는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지리산의 총면적은 약472㎢이고 이는 계룡산 국립공원의 7배,
제주도 면적의4/1이자 서울시 면적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이다
지리산(智異山)의 명칭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라는 뜻에서 유래된것으로 이는 수많은 隱者들이 이 산에 숨어 도를 닦으며 정진 해왔음을 말해준다.
지리산은 옛날에 지리 또는 두류산이라고도 하였고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으로 불리었으며, 신라시대에는 토함산, 계룡산, 지리산, 태백산, 팔공산을
오악이라 하였는 데 그 오악 중 지리산은 남악이라 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이자(1967년), 최대면적의 육상공원(14억 5천 6백만평)으로서
우리나라 산악의 대표성과 상징성 그리고 역사성을 고루 갖춰 흔히 민족의 영산으로
불릴만큼 우리의 정서속에 깊이 새겨진 자연유산인 지리산(智異山)은 산이 넓은 만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두류(頭流), 방장(方丈), 지리(地理또는地利), 불복(不伏),
반역(反逆), 적구산(赤拘山)으로 불려온 산 이름에서 벌써 지리산의 속내와 아픔을 알 수 있을 정도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백두산에서 흘러나온 산맥이 지리산에서 멈추었다 해서
두류(頭流)로 한다 라고 썼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산세가 멀리 넓게 둘러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순 우리말 '둘러' '두루' '두리' 에서 음을 따와 한문으로 쓰다보니 '두류'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야봉(般若峰:1,734m:09:20)
반야봉은 지리산 10경중 제3경인 반야낙조(般若落照)로 유명한 산이다
지리산 어느곳에서나 이 산은 아기엉덩이 처럼 보이기때문에 "아기궁뎅이처 럼보이는
산이 반야봉이야"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산의 곡선미가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봉우리이지만
반야봉은 사실 남성을 상징하는 산이다
반야는 산스크리트어의 프라냐(prajna)를 음역한것으로 불교경전의 반야경(般若經)에 의해
알려진 명칭이며 반야의 뜻은 '절대변하지않는 완전한 지혜'를 의미하므로
지리산에서 지혜를얻는다"라는 말은 반야봉에서 유래된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지리산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가 있는지를 끝없이 되뇌여도 반야봉의 낙조는 모자람이 없다.
반야봉은 운해와 함께 우리에게 인식된다. 늘 발아래 운해를 거느리고 우뚝 솟아 있는 반야봉의
장관은 비경 그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천왕봉의 마고할매가 반야도사를 만나 혼례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반야는 훗날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며 서쪽으로 떠난 뒤 영영 돌아오지 않고 불도를 닦았다.
그 후 그가 도를 닦았던 산은 반야봉이라 불리면서 남성미를 상징하는 산이 되었지만,
생김새가 한없이 부드러워 여성성도 가지고 있는 산으로 알려졌다.
지리산에는 불교와 관련된 지명이 제석봉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불교와 관련된
지명만으로 나열하면 반야봉을 제일 꼭대기에 있는 봉우리라 해석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천완봉이지만 불교적인 관점에서는 반야봉을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 말하는데 반야봉보다 높은 제석봉, 중봉, 하봉을 제쳐두고 반야봉을
천왕봉 다음의 제2봉으로 치는 것도 반야봉에는 불교적인 관점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야봉에서 동료들과 함께
동쪽으로 바라보니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도 운해에 싸여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지리학자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지리산 천왕봉은 백두대간이 멈추는 천하의
대명당이라고 설명했다. ...‘古語曰 天下名山 僧占多(고어왈 천하명산 승점다)천하의 명산을
승려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했고, 이 지역이 고향인 남명 조식 선생은
‘하늘은 울어도 천왕봉은 울지 않는다’는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서산대사는 금강산, 구월산, 묘향산과 더불어 지리산을 평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장엄한 산이라 했다
그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지리 8경’ 중의 으뜸인 ‘천왕일출’이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광경이다.
올때마다 느끼는 감정... 울 엄니 젖가슴만큼이나 포그한 지리산!
올해에만 7번이나 지리산 능선을 걸었지만 그래도 또 오고싶은 지리산
골짜기마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지만 슬픈 내색 한번 하지않는 아버지의 가슴만큼이 넉넉한 곳
보이는 저 곳 지리산 남부 능선은 한국 현대사의 이념갈등과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이다
1951년 12월 2천여명에 이르는 이영회 부대 빨치산들이 군.경 토벌대의 막강한 화력에
밀려 숨어든 이 골짜기에 그 이듬해 1월 마지막 화력을 퍼부어 엄청난 사상자를 낸 곳이
이곳 좌측의 대성골과 우측의 거림골이다
좌.우의 이념 대결에 아무것도 모르고 죽어간 저 민초들의 원한은 누가 달래줄 것인가
어제 비가 온 탓인지 가시거리가 엄청나게 멀리 보인다
서남쪽으로는 광양의 백운산과 광양제철소 굴뚝이 보이고 가운데 여인의 젖꼭지처럼
불록 튀어나온 저 산은 지난 4월에 걸었던 백두대간 우듬지구간의 하동 금오산인듯하다
좌측으로는 남해바다가 보이고 살짝 옆으로 눈을 돌리니 사천 와룡산이 보이건만
성능이 안 좋은 범여의 어리버리한 카메라는 환상적인 저 그림을 인식하지 못하는구나...
반야봉에서 동료 산꾼
반야봉에서 심마니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로는 출입을 금지라는 禁線이 처져있다
禁線을 넘다
동료 산꾼들은 이곳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 삼도봉, 화개재를 거쳐서 뱀사골로 되돌아 가고
난 홀로 주위의 동정을 살핀 다음에 금선을 넘어 중봉과 묘향대로 이어지는 등로로 향한다
사실 난 오늘 산에 온 목적이 이곳을 꼭 타고 싶어서 왔는데... 이곳은 단속구간이라 몇번을
이곳 반야봉에서 저 곳을 째려보다 못갔는데... 오늘 드디어 거사(擧事)를 도모하였다
禁線을 넘어 등로에 접어드니 생각보다 등로는 뚜렸하다... 가슴 조이며 국공파가 있는지 없는지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걷는다... 얼마전 이곳에서 국공파에 걸려 거금 10만원짜리 스티커를 발부받은
산꾼을 만난적이 있기에...훔쳐먹는 사과가 맛있다고 했던가...그래도 스릴은 있다
헬기장(09:35)
개쑥부쟁이
헬기장을 가로질러 출입금지 팻말 뒷쪽으로 접어드는데 이곳 역시 야생화 천국이다
둥근이질풀, 고추나물, 간산꼬리풀, 흰진범, 투구꽃, 흰여로 등이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다
다시 약간의 능선을 오르는데 갑자기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몸을 숨기고 주위의 동태를 살피니 단속요원인 국공파는 아니고 중봉 정상에 있는
묘지 위에서 아침상을 펼쳐놓고 느긋하게 아침만찬을 즐기고 있는게 아닌가
저 분들로 나만큼 간이 큰지 모르고 들어온 지... 인사를 나누고 이곳이 단속인데
국공파한테 걸리며 어쩌려고 하니... 단속구간인지 몰랐다고 하면서 서둘러 짐을 챙긴다
중봉(1,732m:09:40)
지리산에는 중봉이 2군데가 있다... 하나는 이곳이고 또 하나는 천왕봉에서 밤머리재로
향하는 웅석지맥 능선에 중봉과 하봉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2군데 다 출입금지 구역이다
이곳 중봉의 높이는 반야봉과 똑같고 정상에는 문패없는 묘지 한기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데
지금 이곳은 중봉 아래에 있는 묘지이다
중봉의 남.북으로 2개의 헬기장이 있는데 2번째 헬기장에서 좌측으로 가면 심마니 능선과
달궁계곡으로 내려서는 광산골인데 이곳 역시 휴식년제에 있는 비법정탐방로이라 걸리면 벌금...
헬기장에서 묘지앞 우측으로 내려서니 묘향대로 향하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어르신!... 후손들이 성묘를 오려면 고생스럽겠소이다
모 산악회에서 겁없이(?) 띠지를 달아놨다... 산악회 기금이 많으신가봐
원시림처럼 숲은 우거져 있으나 묘항대로 향하는 등로는 뚜렸하다
비에 젖은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뒤돌아 본 중봉의 모습
급경사의 산죽길을 내려서니...
묘항대(1,485m:10:10)
산죽길을 내려서니 염불소리가 들리면서 우측으로 양철지붕의 묘향암이 보인다
묘향암으로 접어들면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경내로 들어선다
묘향암(妙香庵)
화엄사의 말사에 속한 암자로 해발 1500고지에 있는 오지중에 오지에 있는 암자이다
천왕봉 아래에 있는 법계사(1,450m)나 설악산 봉정암(1,200여m) 보다도 높은 곳에 있다
예부터 선승들은 북에는 묘향산 법왕대, 남에는 지리산 묘향대를 꼽았다고 한다
묘향(妙香)이란 단어는 불교의 초기 경전인 아함경에 나오는 불교 용어로 “기이한 향기(奇香)”를
말하는데 묘향에는 다문향(多聞香), 계향(戒香), 시향(施香)이 있다
이 향은 바람을 거슬러 냄새를 풍기다고 하며 자신을 불태워 세상을 정화하는
보살의 정신, 세상의 논리를 거슬러 부처님의 바른 향기(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절 마당으로 들어서니 마침 사시예불을 시작하려는지 주지 소임을 맡고 계시는
호림스님께서 타종을 끝내시고 법당 안으로 들어 가셔서 오분향례를 시작하신다
나도 등산화를 벗어놓고 사시예불에 참석했다가 시주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베낭에 있는 오렌지 쥬스 2개가 있기에 부처님전에 공양물을 올리고 갈 길이 멀기에
중간에 고두삼배의 예를 올린 후 법당을 나오니... 사시에불에 동참한 보살님이 따라
나오시더니 차 한잔을 마시고 가란다( 공양주 보살인듯...)
어제가 관음제일이라 요사채에서 주무시고 예불에 참석하는듯한 신도들이
대엿명이 열심히 기도중이라 상당히 미안하다... 보살님이 주시는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고... 가지고 온 돈이 얼마 없어서 기와불사(50,000원)를 하고 법당 주변을 둘러본다
법당에서 사시불공을 올리는 호림스님
법당 좌측으로 가니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石間水)가 그야말로 甘露水다
한바가지 퍼서 시원하게 들이키고 수통에 가득 채운다
석간수가 생각보다 많이 흘러내린다
묘향암 빨래대... 어제 기도온 보살님들의 옷인가보다...
묘향암 공양간... 모든게 정겹기만 하다
묘향암을 배경으로 인증샷
묘향암 끄트머리에 있는 코끼리상
묘향암 마당에서 바라본 명선봉과 토끼봉의 모습
용담(龍膽:꽃말:哀愁)
용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산지의 풀밭에서 자라며,한국 ·일본·만주 및
시베리아 동부 등지에 분포하며 높이는 약 30-100cm이고 꽃은 종 모양의
자주색 또는 노란색이며 8~10월에 피며 잎은 바소 모양(원형)이다.
굵은 수염뿌리를 말린 것을 용담이라 하며 매우 쓴 맛이 난다
묘향암의 사시예불에 참석했다가 갈길이 멀어 중간에 묘향암을 빠져 나온다(10:35)
묘향암의 텃밭을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가을이 오는 소리인가
암벽(10:50)
암벽을 내려오니 손가락만한 로프가 산꾼을 맞이하는데 그저 고맙기만 하다
대부분의 비법정 탐방로의 국립공원내에는 산꾼들이 설치한 로프를 짤라
버리는데 그래도 지리산의 국공파들은 대인배인 모양이다... 편하게 내려온다
로프를 타고 암벽을 내려와 비에젖은 촉촉한 등로를 호젓하게 걷는다
로프옆 암벽에는 앙증맞은 참바위취가 피어있다
계속되는 암릉 등로
이곳 근처 어디쯤이 박영발 비트가 있을 법한데 찾을길이 없다
묘향대와 뱀사골 사이의 폭포수골과 함박골 일대는 빨치산의 활동장소로 험지중에
험지였는데 전남도당위원장 박영발과 전북도당위원장 방준표가 이곳을 근거지로
군경과 대치했던 곳이며 박영발은 폭포수골 아래 비트에 은거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등로는 뚜렸하나 등로는 참으로 험하다... 거기다가 비에젖은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갑자기 등로는 없어지고 갈 길은 막막한데 가끔씩 보이는 시그널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암릉길(11:20)
폭포(11:25)
폭포수 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조그만 폭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계곡을 내려오다 다시 길은 없어지고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선다
앙증맞은 또다른 폭포를 만나고...
이끼 폭포가 가까워지나 보다...
다시 험한 길을 내려오니... 환상적인 이끼폭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끼폭포(11:35)
지리산의 이끼폭포는 처음 본 범여로선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한가지 흠이라면 올 여름의 가뭄탓인지 水量이 적어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
한국의 3대 이끼폭포는 영월의 상동 이끼계곡, 평창의 장전 이끼계곡, 삼척의 무건리 이끼계곡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은 이끼계곡이 지리산 폭포수에 있는 이끼계곡이 아닐까
이끼폭포에서 인증샷
원래의 등로는 이끼폭포 윗쪽으로 등로가 나있으나 국공파들이 막아놨다
그리고 최근에 다닌 등산객들의 등로는 우측 절개지로 나있는데 그 길을 따라서 간다
비에젖은 암릉길을 개고생하면서 걷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함박골 계곡(11:50)
넘어지고 자빠지고 넘 미끄러워... 엄청난 체력이 소진된다
악천고투끝에 산죽길을 지나니 뱀사골로 내려서는 길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철조망이 쳐져있는 곳에 도착하여 평소의 습관처럼 몸을 숨긴채 국공파의 동정을 살핀다
주위를 살펴보니 국공파의 흔적은 보이질 않아 재빨리 철조망을 통과하여 길로 내려선다
철계단(12:20)
함박골 끝자락에 내려서면서 드디어 제도권 등로에 접어들어 국공파의 공포에서 벗어나니
갑자기 긴장이 풀리며 허기가 지기에 등로옆에 퍼질러 앉아 떡 한조각과 물한모금으로
허기를 달래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길을 나선다
제승교(12:30)
제승교를 지나 뱀사골 내려가는 길은 참으로 편하다
날머리인 반선까지 아직 5.5km나 남았는데 이곳에서 화개재로 내려오는 후미 그룹과 조우를 한다
제승대(祭僧臺:720m:12:37)
1,300여년 전 송림사 고승인 정진스님이 불자들의 애환과 시름을 대신하여
제(祭)를 올렸던 장소로 소원의 영험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제승대라 불린다고 한다
대웅교(大熊橋:12:40)
등로옆에는 예전의 집터같은 흔적도 보인다
옥류교(玉流橋:12:47)
화계재에서 반선마을로 향하는 길에는 왜 이리 다리가 많은지?...
반선교에서 화개재 아래 막차까지... 무려 14개의 다리가 있단다
명선교(明善橋:12:50)
지난해 10월 23~24일 무박으로 뱀사골에서 피아재 구간을 걸었을 때 반선에서 간장소까지
어둠속에 걸었던 기억에 참으로 아쉬웠는데... 오늘은 그때의 아쉬움을 보상받는 느낌이다
게으름뱅이 산수국은 이제사 꽃을 튀우기 시작하고...
병풍소(屛風沼:718m:12:52)
뱀사골 계곡에는 여울과 소(沼)가 교대로 분포하여 수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소(沼)는 게곡물이 흘러가다 균열이 많이 생긴 약한 바위를 만나면 집중적으로 바위를 깎아
형성되게 되는데 뱀사골 계곡에는 간장소, 병풍소, 병소, 등 다양한 소가 존재하며 그 중에
병풍소(屛風沼)는 계곡물에 의해 깎인 모양이 병풍(屛風)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병풍교(屛風橋:12:58)
병소(甁沼:13:00)
뱀사골 계곡에는 많은 명소들이 있는데 요룡대(搖龍臺), 탁용소(濯龍沼), 뱀소 등은 용이나
뱀에 관련된 병소(甁沼)는 소(沼)의 모양이 마치 호리병처럼 생겼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소리없이 우리 곁으로 가을이 오나보다... 때이른 단풍인가?
날머리인 반선마을 점점 가까워지고...
금표교(13:15)
탁용소(濯龍沼:13:25)
큰 뱀이 목욕을 한 후 허물을 벗고 용이되어 하늘로 승천을 하나 이곳 암반위에 떨어져
100여m나 되는 자국이 생겨나고, 그 자국위로 흐르는 물줄기가 용이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
탁용소 주위가 뱀사골 계곡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라고 한다
와운(臥雲)마을 갈림길(13:32)
와운마을 갈림길에 내려서니 바로앞에 와운교가 나오고 건너편에는 오늘 산행대장겸
총무를 겸하고 있는 신난다 대장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난 이곳에서 우측으로
0.8km 정도 떨어져 있는 와운마을 찬년송을 보기 위해 가려는데 가봐야 볼 것도
없다면서 무조건 내려오란다... 동료들은 순순히 말을 듣고 가는데 나만 갈 수도 없고...
안 그래도 혼자서 이끼폭포를 갔다 왔는데... 아쉽지만 대장을 따라서 반선마을로 향한다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와운마을은 지리산의 첩첩산중에 있는 마을로 1595년 임진왜란을
피하여 鄭씨 일가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고, 일제시대와 6.25동란때는 수난을 겪기도 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목기를 제작하여 생계를 유지했고, 1980년대는 한봉(韓蜂)으로 생게를 이었다
와운마을은 이곳에 도로를 따라서 30분 걸리는 거리에 있다고 하며 10여가구가
민박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데 과거에는 산골마을로 영화촬영 장소로도
유명했고 수령이 500~800년된 천년송(千年松:천년기념물 제423호)이 이 마을의
자랑거리라고 하는데 지금은 도로가 잘 나있어 옛 정취는 많이 훼손됐다고 한다
아쉬운 맘으로 대장을 따라서 반선마을 향하는 山友들...
데크목으로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등로가 뱀사골 신선길이란다
양 넘 지갑줏듯이 편한 길을 따라서 반선마을로 향한다
요룡대(搖龍臺:13:38)
와운골과 뱀사골의 원류가 합수되는 곳에 30m가 큰 바위가 계곡 상하를 굽어보고 있는데
이 모습이 마치 용이 승천하려고 머리를 흔들며 몸부림치고 있는 모양이라 하여 요룡대라
부르며 일명 ‘흔들바위’라 한다
뱀사골
뱀사골하면 한국의 명수(名水)로 통하는데 지리산의 깊고 깊은 산록에서 맑고 깨끗한
물줄기가 빚어져 즐비한 징담을 거쳐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뱀사골의 청정계류는
가히 손색없는 우리나라의 으뜸 물줄기라 부를 만하다.
반야봉, 삼도봉, 토끼봉, 명선봉 사이의 울창한 원시림 지대에서 발원된 물줄기가
기암괴석을 감돌아 흐르면서 절경을 일구어 놓아 뱀사골의 계곡미 또한 장관이다.
우리나라 계곡의 대명사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인데 그만큼 잘 알려져 찾는 이도 많지만
그 품이 너무도 넓고 깊어 쉽게 오염되지 않는다.
남원시 산내면 반선리 집단시설지구에서 토끼봉과 삼도봉 사이의 화개재까지 12km,
장장 39여리의 물줄기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화려한 소(沼)와 담이 뱀사골의 가장 큰 자랑이다.
대표적인 것만 하더라도 선인대,오룡대, 뱀소, 병소, 병풍소, 제승대, 간장소가 그림같이 전개돼
절경을 연출하고 있으며 그리고 뱀사골의 완만하고 고른 경사도를 들 수 있다.
이 때문에 뱀사골에는 연중 등산객뿐만 아니라 가족단위의 행락객들이 많이 찾아든다
데크목으로 만든 둘레길을 따라 걷는 기분으로 참으로 편하게 산행을 시작한다
뱀사골의 유래
지금으로 부터 1,300여년 전 이곳에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지금의 실상사 보다 100여년이
앞선 대찰로 1년에 한 번씩 스님 한 분을 뽑아 칠월 백중날 신선바위에서 기도드리게 하면 신선이
되어 승천한다 하여 이 행사를 해마다 계속하였는데, 이를 기이하게 여긴 고승이 독약이 묻은
옷을 스님에게 입히고 신선바위에 올라 기도드리게 했다한다. 그 날 새벽 괴성과 함께 기도드린
스님은 간곳 없고 계곡내 용소에는 용이 못된 이무기가 죽어 있었다. 그 후 이 계곡을 뱀이 죽은
골짜기라 하여 뱀사골이라 부르게 되었고, 억울하게 죽은 스님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절반의 신선'의
준말로 마을을 반선(伴仙)이라 부르게 되었다.
반선교(伴仙橋:14:00)
반선교를 지나면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오랫만에 지맥 산행이 아닌 편안하고 여유롭게 산행의 묘미를 맛본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하여 산악회에서 제공한 닭백숙에다
소+맥으로 거하게 한잔을 하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첫댓글 풍류객님 세세한 지리산함께한 후기글 즐감합니다
함께 해서 큰힘이됩니다 독립군으로 다니지마시구 종종 함께해요 추석명절 지내구 얼굴한번뵈요~~~
내년에나 얼굴 볼듯 싶어요...12월까지 산행 스케줄이 꽉 짜여 있어서...
독립군이라 바쁘요... 오늘밤 남원으로 가서 노고봉에서 바라본 구례읍내 앞으로
떨어지는 견두지맥 마무리 하고 올라요...지리산 언저리라 경치는 멋을것 같고
다만 거리가 28km 정도라 새벽 4시부터 산행을 시작해야 할듯 싶소...인연되면 만나겠죠?
해박하신 풍류객님
또다시 백두산 후기 못지 않은 지리산 이야기로 오늘 아침이 상큼합니다.
생각없이 다녔던 지리산에 숱한 이야기들이 이렇게 숨어 있을 줄이야..
야생초 하나하나에도 애정을 기울이시고
능선 하나하나에도 소상한 이야기를 전해 주시니
갑자기 으쓱해지네요...
이렇게 섬세한 후기를 쓰시느라고 얼마나 애쓰셨을지...
산행보다 몇일밤 더 힘드셨을 것 같네요..
책으로 꼭 엮어주셔요.
또 함께 할 수 있는 날 기다려집니다.
오랫만에 뵙는 건강하신 모습...보기 좋았습니다...늘 健安하시길
감사합니다. 가슴찡한 그리움 폭염속에서도 살아숨쉬는 역사기행
인문학이 대세인 요즘 이보다도 더한 살아 숨쉬는 책이 있나 싶습니다. 역사와 풍경, 감성, 이미지 완전 멋지다, 완전, 고맙습니다.
拙記를 읽어 주셔서 감사...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인연이 되면 만나겠죠... 늘 안산 하시길 바랍니다
지리산의 감동이 되살아 납니다.
아니 어쩜 실제 산행의 바쁜 와중에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천천히 반추하면서 섬섬옥수 같은 글과 사진을 찬찬히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후기를 읽고나니 한 주간의 피곤이 말끔하게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 집니다.
와운마을 입구에서 어렵게 담아오신 석간수 잘 받아 마셨구요.
담번 산행이 벌써 기대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풍류객님 ``어찌이리 글을 잘쓰시는지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산행 후기글이 아닌 역사에 한페이지를 읽는거 같습니다 지명에 골짜기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산에서 가끔 보이는![꽃](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7.gif)
이쁘게만 봤지`이름도 몰랐던 산비장이라는 야생화도 알았고 지리산 10경중![꽃](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7.gif)
에 전설두 ![꽃](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7.gif)
말이 원망이라는것두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묘향암과 이끼폭포 꼭 한번 가보고 싶었거든요![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될께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
내려오는 가슴아픈
2경에 속한다는 노고단 운해는 가히 환상이였습니다 며느리 밥풀
풍류객님 후기글을 읽다보면 감동 그자체 입니다 따라나설껄 그랬어요
몃번을 가도 그리운 지리산 담 산행을 기약하며 지혜로운 사람
폐비마마! 거하게 아침에 칙사 대접을 받았는데... 늘 고맙습니다
물흐르듯 배경사진과 함께 써내려가신 순간들의 표현이
섬세하고 감미롭습니다.
무심히 스쳐지나가듯 산길을 의미없이 걷는
사람은 없겠으나
풍류객님의 발길은 그 누구보다 더
의미가 깊으시겠습니다.
덕분에 함께 걷던 그 길이
더욱 큰 추억으로 남겠습니다.
긴 글 남기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용담과 물매화를 놓치셨군요. ㅎㅎ
@데이지![ㅋ](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5.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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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객님의 글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 언제쯤 산행 실력을
쌓아 이리 멋진 곳 같이가게될지요~
욜씸히 노력하셔서 멋진 산행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