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인다.
손수아
나는 오늘도 대본 연습을 한다. 아직도 변한 것은 없다.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고,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고, 가을이의 앞에서 대본을 읽고, 연습하고, 연기한다는 것이 아직은 눈치 보이고, 두렵다. 가을이가 아닌 다른 누구여도 그랬을 것이다. 난 생각보다 용기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아직은 소심하고, 꿈만 크고, 그냥 어른이 되고 싶은 꼬맹이, 눈치를 자주 보는 꼬맹이인 것 같다. 내가 가장 창피하게 느끼는 곳은, 마지막 대사, ‘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라는 대사이다. 말 그대로 난 이 부분에서 내 꿈을 드러낸다. 그게 무섭다. 다른 아이들이 이 문장 하나를 계속 말하고 다닐까 봐, 비웃을까 봐, 이런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난 너무 무섭고 두려워진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있다. 1인극이 끝나면 바로 이 이야기를 넣는 것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창피해하는지, 왜 창피해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해서 무대 위까지 올라가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것이다. 그럼, 사람들은 내가 창피해한 부분을 알게 되고, 내가 얼마나 많은 용기를 갖고 그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알게 되니까, 그러면 내 꿈도 말할 수 있고, 마음도 편하고, 사람들도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친구들은 전산실에서 뭔가를 적고 있는데 나는 혼자 대본 연습하고 있고, 뭔가 놓친 게 있는 건가 싶고, 불안하다. 그리고 내 결과물이 얼마만큼 나와야 하는지, 1인극 한 개, 5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괜찮은지 싶다. 지금 불안함이 몰려와서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한별이와 노래 연습도 하고, 교실로 내려와 대본을 읽어보고, 연기 연습도 했다.
한별이와 함께 한 노래 연습은 Jekyll & Hyde의 ‘지금 이 순간’이라는 노래 악보까지 인쇄해서 연습했다. 여휴에서 연습을 했는데 우리의 목청이 너무 컸나? 게다가 방음까지 안 돼서 2층의 모든 곳에 우리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처음엔 엄청 많이 창피했다. 그래서 한별이랑 난리도 치곤 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3학년 교실로 내려와서 가을이의 대본을 구경하고, 나 혼자 노래도 부르고, 대본을 읽으며, 연기 연습도 했다. 어제보다는 조금 덜 창피한 것 같다. 가을이가 이미 다 듣고, 봐서 그런가? 어제만큼 많이 창피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난 내 갈 길을 갔다. 그랬더니 조금은 편해진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용기를 얻어가는 건가? 이렇게 하다 보면 난 어느샌가 내 꿈을 친구들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가을이 한 명이 아닌 다른 아이들, 다른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의 의문과 불안함도 몰려왔다. 이 논문의 끝은 알 수가 없다. 내가 어떻게 될지, 용기를 얻고 잘할지, 아니면 창피함에 못 이겨 평생 흑역사로 남을지, 걱정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노래 연습, 대본 읽기를 많이 하면 할수록 입이 심심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데트로 나가서, 가지고 있는 과자를 가지고 먹고는 했다. 그러면 어느새 한별이가 다가와 같이 과자를 나눠 먹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함께 노래 연습을 한다. 이번에 부른 노래는 모아나의 유명한 OST How Far I’ll Go(언젠가 떠날 거야) 이다. 노래가 좋아서 그런지 부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노래 부를 때마다 속이 시원하고, 고음 올라갈 때는 더더욱 시원하다. 노래를 오랜만에 제대로 부르니까 기분이 더 좋아진다. 그렇게 노래 연습이 끝이 났다.
저녁 시간이 돼서 저녁을 먹는데 식당에서 먹다가 어떤 친구가 “우리 밖에 나가서 먹자.”라고 해서 다들 좋다고 데크에서 먹었다. 바깥 풍경을 보면서, 바람과 햇빛을 받으며 밥을 먹으니 느낌이 또 새로웠다. 밥을 다 먹고 나서 나는 4기 논문집에 1인극을 한 언니가 있다고 하길래 그걸 찾아서 보고 있었고, 친구들은 다 같이 과자를 먹고 있었다. 난 왜인지 평소보다 과자가 끌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방금 밥을 먹었던 것과 동시에 논문집에 집중해서 그런 건가 보다. 내가 과자에 끌리지 않다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이렇게 난 또 글을 끄적인다. 이번에는 어제보단 더욱 형식적이고, 잘 써진 것 같다. 이제 점점 감을 잡아가는 것인가? 어쨌든 어제보다는 더 잘 써진 것 같아 기분 좋다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 써지기를….
파일이 안들어가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