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ator.는 영한사전에는 '라디에이터', 방열기,냉각장치 라고 나오고, 국어 사전에는, 1.증기나 온수의 열을 발산하여 공기를 따뜻하게 하는 난방장치 2. 내연기관 따위에서 발생한 열을 발산하는 냉각장치로 나온다. 뭉뚱그려서 일종의 열교환기라고 하면 되겠다.
오늘 아침에 서울에 있는 둘째 딸아이가 부산에서 무슨 학회 포럼을 준비하려고KTX를 타고 내려 온다고 해서 비가 조금 부슬부슬 오는데도 차를 끌고 나갔다. 딸아이는 부산역에서 택시를 타면 된다고 나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나 모처럼 내려오는 아이를 그냥 고생스럽게 택시를 타라고 할 수 없었다. 해운대에서 광안대교를 타고 대연동으로 빠지는데 출근차들로 정체가 되었다. 한참 달리다 계기판을 보니 냉각수 온도가 보통때보다 훨씬 올라가 있었다. 지난달 정기검사때 검사소에서 냉각계통에 이상이 있으니 정비소에 한번 가보라고 권유하는 것을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횡단보도 앞 신호등에 걸렸을 때에는 앞유리창 보네트 틈새로 수증기가 무럭무럭 올라왔다. 뭐가 이상하긴 한데 고장난 데가 확실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명색이 기관장 출신인데 말이다.
부산역에서 딸애를 만나 픽업하여 다시 집으로 왔다. 오는 도중에도 계기판의 온도계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였다. 9시부터 강의를 해야 된다는 데 도중에 차가 퍼지면 큰일이다 싶어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출근시간이라 택시도 잘 잡히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집에는 9시 10분전에 도착하여 비대면 줌으로 강의를 할 수가 있었다. 오후에는 포럼 준비를 위해서 학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총무이사를 맡고 있는 딸애가 해양대학에서 만나기로 했다기에 차 수리도 할 겸 해대까지 태워다 주고 단골수리하던 형제 카 인테리어로 끌고 가서 첵크해보니 라디에이터에서 냉각수가 샌다는 것이었다. 수리를 하려면 한 이틀 걸린다고 차를 맡겨두고 가라는 것이었다.
내연기관을 탑재하는 자동차나 선박은 냉각이 필요하므로 자동차에서는 주로 라디에이터가 붙어 있고 선박에서는 자케트 쿨러라고 하여 냉각 청수를 열교환기를 통해서 해수로 다시 냉각시킨다. 주기나 발전기도 마찬가지다. 라디에이터는 팬을 돌려서 공기로 냉각하는 데 아무래도 물로 하는 것보다 효율이 떨어진다. 배는 물 위에 떠 있으므로 해수로 냉각하면 되지만 육상에서 다니는 자동차는 냉각수를 물로 쓸 수가 없기 때문에 부득이 공기로 하는 것이다. 배에서도 특수한 경우에는 라디에이터가 쓰였다. 스팀터빈선에서는 주발전기와 보조 발전기가 모두 스팀으로 구동되고 비상발전기는 내연기관으로 구동되어 라디에이터가 따로 붙어 있다.
내가 배를 탈때 한번은 16만톤짜리 오아.오일(ore & oil) 겸용선을 탔다. 당시만 해도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대형 디젤기관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VLCC는 전부 스팀터빈선이었다. 말하자면 보일러에서 물을 끓여 수증기가 만들어지면 이것을 수퍼히터를 통해서 과열증기로 만들어 터빈을 구동하고 폐기는 콘덴서로 보내 해수로 냉각하여 복수로 만들어서 보일러 급수로 재사용하는 시스템이었다. 다라서 주기도 스팀 터빈이고 발전기도 스팀터빈이었다. 블랙아웃트(전원(동력)상실)시를 대비하여 내연기관인 비상발전기가 설치돼 있었다. 비상발전기는 보일러 불이 꺼졌을 때 그야말로 최소전력으로 레이더, 자이로콤파스,타기, 선내비상등에만 전력을 공급한다. 터빈 발전기의 전압이 통상전압의 70%이하로 떨어지면 곧바로 비상발전기가 자동으로 구동되어 메인 전원이 차단되고 비상배전반에서 비상전원이 공급되는 시스템이다.
내가 탔던 겸용선은 골든 클로버였는데 동종의 골든 튜립인가 하는 배가 PG에서 원유를 만재하고 동지나해(East China Sea) 바시 찬넬을 지나 오끼나와 동해안을 통과하던 중 저녁에 갑자기 블랙아웃 사고가 발생하였다. 스팀터빈선에서는 블랙아웃 사고를 대비하여 매주 복구훈련을 하므로 기관부 선원들은 군에서 눈감고 M1소충 분해조립 하듯이 캄캄한 밤중에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있다. 515도C, 60Kg/cm2의 고온고압 과열증기를 사용하므로 일단 블랙아웃 사고가 발생하면 빨리 복구한다해도 2시간은 걸린다. 블랙아웃이 발생하게 되면 비상발전기가 자동으로 기동하여 비상전력이 곧바로 투입되어야 하는 데 이상하게도 비상발전기가 기동되었다가는 갑자기 실패가 되고 다시 몇번 기동했다간 꺼져버렸다. 알고보니 보드데크에 있는 비상발전기실에 파도가 쳐서 천정에 뚫여있는 에어벤트로 파도가 쳐서 해수가 튀어 바람에 날려와 들어왔던 것이다. 바닥에는 드레인 구멍이 있었는데 3기사가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로 막혀버려 천정으로 조금씩 들어온 해수가 점차 쌓여올라와 비상배전반까지 차올라 해수로 인해 쇼트가 났던 것이다.
비상발전기는 납축전지로 기동하게 돼 있었는데 몇번인가 반복 기동하면서 베테리가 모두 방전돼 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박전체가 동력상실이 돼서 모든 기기는 무용지물이 된다. 당시에는 통신국장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본사에 긴급SOS를 쳤다. 통신용 비상 바테리가 통신실에 따로 비치돼 있었다. 나중에는 통신실바테리마저 방전돼서 본선과는 아무런 연락도 되지 않았다.
동경에 있는 본사 선대담당자는 야간에 퇴근해서 친구들과 기분좋게 술 한잔 하고 있던중에 긴급연락을 받고 비상연락망을 통해 상부에 보고하여 회사가 발칵 뒤집어진 것이었다. 일본 해상보안청에 연락하여 오끼나와 있는 모든 터그보트를 동원해서 표류중인 선박이 육지로 밀려와 좌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당시 파도가 육지쪽으로 치고 있었으므로 원유를 실은 유조선이 좌초되어 기름이 바다로 유출되면 동남아 일대는 바다가 초토화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해상보안청에서는 오끼나와에 있는 6척의 터그보트를 출동시켜 배가 육지로 밀려오는 것을 막고 있었다.일본의 모든 방송사는 속보로 유조선 사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한편 산꼬본사에서는 사고 수습을 위해서 그 배를 만든 나가사끼 조선소 전기담당기술자 한 사람과 공무감독이 비상바테리기동용 납축전지를 준비하여 한밤중 헬리콥터로 사고가 난 배로 들어갔다. 본선측에서는 비상용 바테리까지 방전이 되고나니 본선에서 복구가 불가능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터그보트에서 내는 로우프마저도 선원들이 모두 나와서 손으로 당겨서 비트에 걸어야 했다. 터그보트 6척이 총동원 되어 육지로 밀려오는 것을 저지하고 있는 동안 본선에 들어간 전기기술자와 본선 선원들이 합심해서 비상발전기실의 해수를 퍼 내고 비상배전반을 청수로 씻어낸 다음 건조시켜 갖고 들어간 새 바테리로 연결하여 비상발전기부터 살린 다음 주보일러에 불을 붙여 8시간만에 동력을 회복, 사고 복구를 한 것이었다. 자칫했으면 대형유조선 좌초사고로 이어질뻔한 사고였다. 사고원인은 비상발전기실의 드레인 구멍이 막힌 것인데 담당3기사의 무관심과 부주의였다.
나의 경우도 겸용선을 탈 때 두어번의 블랙아웃 사고가 발생하였다. 블랙아웃이 일어나면 비상발전기가 자옫기동하게 돼 있는데 문제는 비상발전기에 부하가 걸리면 냉각수 온도가 올라갔다. 냉각수는 라디에이터로 냉각이 되도록 설계돼 있고 전열효과를 높이기 위해 냉각수관에 작은 휜이 많이 붙어 있는데 노후되어 녹이 나고 일부는 삭아서 떨어져 나가버린 것이다. 따라서 기동후 약 15분정도가 지나면 냉각수 고온으로 비상발전기마저도 트립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블랙아웃 사고가 나면 15분 이내에 사고수습이 완료되도록 해야 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오금이 저린다. 달러 벌이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