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십자성의 추억 여행
(2018 베트남 전적지 순례)
1. 집 결(7월2일)
대한민국상이군경회충북도지부가 주최/주관하고 충청북도가 후원하는 “2018 베트남 전적지 순례”행사를 위해 충주에서 오후 3시에 가방을 꾸려 청주로 출발하였다
이번 전적지 순례행사는 강대호 충북도지부장께서 충북도지사에게 해외전적지순례를 건의하여 예산지원을 받아 실시하는 행사로 과거 월남전참전자들이 많은 각 지회장들과 중앙대의원, 그리고 도지부 임직원들과 함깨 하는 여행이었다
내일 아침 4시30분에 청주를 출발한다는 일정에 따라 미리 충북도지부에 집결하여 잠을 자고 새벽에 출발하기위해 부득히 7월2일 오후에 차를 몰아 음성지회에 들려 김성구 음성지회장을 태우고 같이 청주 충북도지부사무실에 들렸다
반갑게 맞이하는 도지부장과 도지부직원들의 영접을 받으며 도착하니 모두들 상기된 표정으로 내일 시작하는 여행길을 설레이며 기다리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우리 일행은 다같이 저녁식사를 근처 식당에서 마친후 일찍 도지부 복지관 물리치료실에서 잠자리에 들었으나 물리치료실에 짙게 스민 파스 약품냄새때문에 그런가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해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 일찍 찌부듯한 몸으로 일어났다
2. 여행 1일째(7월3일)
부리나케 세면하고 차량으로 올라타니 벌써 다른곳에서도 모두들 모여들어 반갑게 인사들을 한다 여행을 수없이 하여 익숙함에도 항상 여행은 설램 그 자체인것 같았다
우리일행 28명을 태운 청주 아일관광(대표 김광삼) 전세버스는 일로 인천공항을 향해 달려가는데 끝없이 펼쳐진 바둑판같은 들판에 벼들이 싱그럽게 푸른 들판을 뒤덮고 있어 신선한 광경에 가슴이 탁 트인다
거대한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저마다 어디를 그렇게들 가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출국수속을 밟느라고 분주한데 우리일행도 차질없이 출국수속을 마치고 오전 10시 20분 베트남항공기에 몸을 실을수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하늘길에 보이는 것은 눈아래 구름, 구름뿐.
50여년전 군인으로 전쟁터를 향하는 길은 부산항에서 일주일 걸리는 엄청난 파도와 뱃멀미에 시달리는 머나먼 길이었는데 이제 편안하게 비행기에 몸을 실어 관광 여정으로 출발한다
좁은 비행기안이 불편하였지만 기내식등을 제공받으며 5시간여를 가다보니 어느새 베트남 호치민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문을 나서니 후꾼한 열대 온도가 피부에 감지된다
50여년전에도 파병되어 긴 항해 끝에 도착한 나트랑해안에 LST상륙정으로 내릴때 이렇게 후꾼한 열기를 느끼며 내렸든 기억이 난다
군인으로 세계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의 파병길은 전쟁의 공포, 그리고 영광스럽게 군인의 길을 무사히 마칠수있을까? 불안한 마음이었다면 이제 홀가분한 관광여행으로 참으로 추억도 많고 사연도 많았던 이 땅을 그당시는 20대 혈기왕성한 대한민국 국군으로써 씩씩하게 비장한 각오로 왔었지만 이제는 70대 늙스그레 중늙은이가 되어 어기적 어기적 노인티를 내면서 오랜만에 다시 밟았다
당시에는 전시 풍경이라 어디를 가든 군부대와 작전차량의 굉음이 진동했는데 이제 평화로운 일상의 모습들만 보인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향하는 관광버스에서 내다본 광경은 우선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에 정신을 못차릴지경이다
차도 많이 있지만 오토바이가 더 많아 차와 오토바이가 뒤엉키는 혼돈속에 그렇게 무질서해도 접촉사고 한번 없는것이 요령껏 잘도 피해가는 그들의 운전실력이 신기할 정도이다
대기하든 현지 하나투어여행사 가이드 김부장의 인솔하에 식당으로 가서 출출한 배를 먼저 채우고저 맛있는 쌀국수 점심을 먹었다
국내에서도 몇 번 먹어봤지만 현지에서 전통 쌀국수를 먹는 맛이 색달랐고 먹을만 했다
점심식사를 마친후 첫 번째 일정으로 과거 남부 월남정부시절 대통령궁으로, 남부월남의 행정과 전쟁의 중심부였든곳을 지금은 통일궁으로 불린다는데 그곳을 찾아가니 오늘 따라 중앙정부 중요한 행사가 있어 관람이 안된다고 하여 대통령궁은 다음기회로 미루고 근처 전쟁기념관을 돌아봤다
옛날 전쟁시절 아군과 적군으로 나눠 각종 무기로 무장한체 서로 겨누고 쏘았든 무시무시한 탱크,헬기,각종총기 포대등 무기들이 이제는 역사의 유물로 남아 전쟁기념관에 전시물로 남아있다
50여년전 저 무기들로 서로 겨눴든 그당시 시대상황이 새삼 떠오르는데 이제 전쟁기념관에서나 그 유물을 관람한다니 새삼 오랜세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 한편에는 당시 베트콩을 체포하여 감금하고 고문을 하였다는 모형을 재현해놓았는데 단두대등 그 끔직한 모습이 바라보는 여성회원들을 자지러지게 한다
전쟁기념관을 관람하고 일단 숙소인 뉴월드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은 비교적 깔끔하고 정갈한 맛을 느끼게 하는 좋은 호텔같았다
잠시 휴식을 취한후 다시 호텔을 나와 씨클러라는 자전거인력거에 몸을 실고 호치민 시내를 누비며 달렸다
나를 담당한 인력거꾼이 나이도 들어보이고 몸도 연약해보이는데 무게가 좀 나가는 나를 밀고 가기가 힘겨운지 경사진곳을 올라갈때는 헐떡이는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였다
목적지에서 내려 팁을 주면서 몇 살이냐고 물어보니 53세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내가 보기엔 70세가 넘어보이는데 그들의 삶의 무게가 버거웠든지 우리보다 10-20년은 더 빨리 늙는것 같았다
씨클러로 호치민시내 거리를 누비면서 바라본 도시풍경은 무질서한 오토바이 행렬속에도 열심히 살고자 하는 분주한 모습들이 매우 활기있어 보인다
옛날 처음 파병당시 우리 젊은 장병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든 날씬한 아가씨들의 하얀색 아오자이 차림은 이제 원색의 아오자이로 바뀌어 붉은색,노란색,푸른색등 더 화려해진것 같다
씨클러 거리 관람을 끝내고 우리가 도착한곳은 베트남의 맛사지 코너로 베트남에 젊은 여성들이 전신맛사지를 해주는데 오랜 세월 나이따라 찌들어 버린 몸을 풀어주니 그 시원함이 너무 좋았다
시원한 맛사지를 끝낸 우리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려 구수한 삼겹살로 비운 배를 채웠다
베트남의 돼지고기는 우리고기보다는 기름기가 덜한것 같고 맛이 담백한것이 먹을만 했다
두둑히 배를 채우고 호텔로 들어오니 이런 여행을 마련해준 도지부장님과 지부 직원들에게 새삼 고마음을 느끼며 룸메이트인 청주지회장과 함께 깊은 꿈나라로 들었다
3. 여행 2일째(7월4일)
아침 6시 모닝콜에 따라 기상한 우리는 숙소인 뉴월드호텔 구내식당에서 조식으로 현지식과 한식이 곁드린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 다음 코스 메콩델타지역 미토지구 관광을 나갔다
산이라고는 하나도 안보이는 끝없는 초원지대 벌판을 호치민에서 약 2시간가량 달려가면서 차창밖에 베트남의 농촌풍경을 바라보니 50여년전 파병시절 벼를 베든 월남인들의 논에 들어가 벼를 베어주면서 낫질 솜씨를 자랑했든 시절이 생각난다
아직도 그때와 다름없는 농촌풍경을 바라보며 멀리 미토지구 메콩강유람 및 전통마을을 돌아봤다
말로만 듣던 거대한 메콩강은 색깔이 누런 흙탕물로 각종 부유물이 같이 떠내려오는데 가이드 설명은 물 색갈이 흙탕물로 보이는건 물의 입자가 굵어서그렇다는데 이해가 안되고 우리나라 장마때 내려오는 흙탕물 같았다
쩡크선이라는 큰배에 몸을 실어 메콩강유역을 돌아보고 도착한 곳은 전형적인 베트남의 원주민들의 전통마을로 물고기를 잡고 관광객을 맞이하기위해 벌꿀을 생산하고 열대과일로 만든 초코렛등을 만들고 토속물품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팔면서 생활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손주들에게 줄 초코렛등과 지인들에게 선물할 그곳 특산품 로얄제리를 몇개 사고 열대과일등과 간단한 술을 곁드린 휴식을 취하면서 테이불마다 찾아와 노래를 부르는 그곳 토속 가수주민들의 노래에 박수처주며 같이 흥얼거린다
그곳에 전통마을은 아직도 옛날같이 초막으로 집을 짓고 원두막 비슷한 움막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쩡크선등 배를 의지하여 강을 건너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관람과 휴식을 끝내자 일행은 한배에 2명씩 밖에 못타는 쪽배에 몸을 실어 좁은 물줄기를 따라 쩡크선 유람선까지 나오는데 역시 왜소한 그들의 체력으로는 우리 일행을 태우고 노저어 나오기 벅찬지 모두 힘겹게 노를 젓는 그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쪽배에서 나와 큰배에 몸을 실어 그곳을 떠나니 언제 또 이 드넓은 메콩강을 볼것인가? 아쉬운마음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나오면서 바라본 베트남의 들판은 관개시설도 잘되어있고 농업,어업이 혼재하는 평화로운 그들의 삶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내로 나온 우리는 베트남 전통식사로 중식을 잘먹고 시내 관람길에 나섰다
이번 베트남 여행에서 또 한가지 자랑할것은 가는곳 식당마다 열대과일을 풍성하게 주고 함께 같이간 아일관광 김광삼 사장이 수시로 열대과일을 사주어서 이번 여행에서 망고 등 열대과일은 원없이 먹었든것 같다
특히 틈틈이 “자유시간”이라는 초코렛을 주면서 혈당 떨어지면 안된다고 익살스럽게 말씀하시면서 우리 일행들을 여행 내내 즐겁게 해주셨다
다시 호치민 시내로 나와 어제 못보았든 과거 월남정부 대통령궁 으로 그당시 역사를 보존한 지금은 명칭이 통일궁으로 바뀐 대통령궁을 향해 달렸다
우리가 도착한 그곳은 과거 대통령궁답게 웅장한 건물에 주변에 거대한 열대나무등 패망한 정부에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곳을 돌아보았다
지상건물 실내에는 그당시 남부월남의 정부로써 각종 국무회의라든가 비참한 패망의 역사가 고스란히 스며든 현장을 보았고
지하실로 내려가니 지하에 당시 전쟁사령부였든 실내에는 그당시 베트콩이나 월맹군의 적정을 표시한 작전 지도에 우리 대한민국국군의 내용도 있어 무언가 가슴에 와닿는 느낌을 받았다
옥상에는 그당시 대통령 헬기가 전시되어있는데 그당시 대통령 비서실장도 적의 스파이로 중요한 작전회의가 끝나면 10분정도되면 월맹 전선사령부에 내용이 전달 되었다니 당시 해이된 그들의 군기가 얼마나 엉망이었고 패망하지 않을수없는 자유월남의 안보태세를 생각하면서 우리 대한민국도 당시 자유월남의 패망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것이다
전쟁에서 패망한 정부에 비참한 현실을 바라보게되니 과거 50여년전 세계자유평화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백마도깨비부대원으로 참전하여 피흘렸든 그 땅에 다시 서는 감회가 남달랐다
가이드 김부장의 설명으로는 그당시 패망한 자유월남국민들이 월맹 공산세력이 밀려오자 수백만명이 국외에 보트피풀신세로 탈출하다가 바다에 빠저죽고 병든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단다
남은 사람들은 처형되거나 숙청당하고 지금도 남부 베트남의 각 관공서 고위직들은 전부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나라를 빼앗기거나 전쟁에 패망한 민족의 말로가 어떤것인지 실감이난다
착잡한 마음으로 통일궁을 돌아보고 나와서 유명한 “노틀담의곱추성당”과 “중앙우체국”등 과거 프랑스식민정권시절 건립된 역사적인 건물들을 바라보면서 호치민시내를 달려 도착한 곳은 호치민시내에서도 번화가인 싸이공강 유역에 위치한 “BITEXCO타워” 라는 58층 건물에올라 50층 스카이라운지에서 어둠이 깃든 사이공강과 호치민시내 밤경치를 내려다보면서 시원한 맥주한잔에 분위기를 잡고 보니 세상이 다 내것인듯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국내에서 감히 흉내를 내지못한 호사스런 노릇을 베트남에서 누리게 되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으랴
과거 월남전쟁에 참전하여 작전중 내 한눈을 잃어버린 월남땅에 5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 이런 순간을 누릴줄 꿈엔들 생각했을까?
스카이라운지 관광을 끝내고 일행은 사이공강 선상 디너쇼장으로 자리를 옴겼다
유람선을 2층으로 꾸면서 1.2층에서 사이공강을 유람하면서 베트남 전통 식사와 술도 한잔 곁드려 연예인들이 나와서 각종 노래와 써커스묘기를 펼치는 공연을 관람하면서 즐기고 있자니까 갑자기 우리노래 “소양강처녀“가 흘러나온다
모두 하나같이 그 노래를 따라부르니 어느새 우리노래가 적힌 노트를 가저와 한곡 부르라고 재촉한다
모두들 노래적어 한곡조씩 부르고 “허공”을 신청한 내가 부르는데 목이메어 소리가 잘 안나오니 모두들 히죽히죽 웃는다
유람선은 사이공 밤 공기를 가르며 유유히 흐르고 흥겨운 쇼를 관람하고 참여하다보니 어느새 1시간의 유람선 여행이 끝나고 선착장에 도착한다
아쉬움을 뒤로한채 배에서 내리니 다시 버스에 태워 시내로 들어가는데 베트남 전통시장에 데리고 들어가 각종 만물이 진열된 시장을 구경했다
그들이나 우리나 역시 전통 재래시장은 똑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한 야시장에는 없는것이 없는듯 온갖 잡화들이 진열된 가운데 베트남 상인들이 저마다 한 개 매상을 올리려고 접근하여 흥정을 벌인다
어느것을 사야될지, 얼마를 깍아야 될지, 어떻게 사야 제값을 주고 사는건지, 도대체 말이 안통하니 답답하다
그래도 그들의 전통시장을 돌아보며 비록 외국이지만 그곳에서 사람사는 냄새만 맡은것도 우리가 시장구경하는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숙소인 호텔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잠시 소화도 시킬겸 호텔밖을 나와 검은 밤하늘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온몸이 오그라드는듯한 전율을 느꼈다
아! 아!
저 밤하늘에 영롱히 반짝이는 남십자성. 저별! 저별!
50여년전 부대내 참호에서 보초를 설때나 작전이나 매복중 밤이슬과 비를 맞으며 어느 산속이나 벌판에서 숙영할때면 검은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유심히 크게 보이는 별을 바라보면서 고국을 그리고 부모형제를 그렸든 순간. 그 별! 남십자성이.
그 순간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온몸이 오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나 저별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렸든가? 얼마나 저별을 바라보면서 제발 살아서만 돌아가 그리운 가족을 만날수만 있다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고향의 봄! 음률을 읍조리며 참호속에서 또는 어느 산속 야영숙영지에서 불렀든 고향 그리움 등
참으로 많이도 빌었든 기도가 그 별에 스며있었다
그 별이 잊고 있었든 50여년이 흐른 지금도 변함없이 영롱난 자태로 내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아무리 전적지 순례라지만 그저 무심한듯 덤덤히 맞이한 여행이었는데 이 순간 갑자기 그 별을 바라보자 심장이 뛰고 지나간 그 아품에 역사가 파노라마 같이 스처 지나간다
같이 작전하다가 전사한 전우들의 얼굴. 같이 부상당한 전우의 절규하든 모습등, 비참한 상황이 눈앞에 어른거려 한동안 먹먹한 가숨을 진정할 수가 없고 갑자기 복바치는 감정을 추수릴수가 없어 혼자 진정시키려 애썼다
누가 알겠는가? 이 아품을. 누가 헤아릴까 50여년 이 상처를.....
아마도 나같은 부상을 당한 사람이 아니면 이 마음을 모를것이다
우리 일행들 모두 과거 이전쟁터에서 두다리, 또는 한다리, 또는 눈을 잃어버렸거나 고엽제 질병에 시달리는 모든 여러사람들이 말은 안해도 그 아품은 모두 가슴에 품고 있을터.
한동안 과거로 돌아가 먹먹해진 가슴을 진정한채 숙소에 들어오니 좀체 잠을 이룰수가 없어 뒤척이다가 어느때인가 꿈을 꾼것 같다
4. 여행 3일째(7월5일)
여행 3일째를 맞이한 우리일행은 호텔에서 식사를 마친후 저 유명한 월남전쟁의 아푼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당시 베트콩들의 요새인 “구치터널”을 관람하기 위해 버스를 달렸다
호치민에서 약 1시간 정도 달려간 전형적인 농촌 고무농장속에 위치한 구치터널에 당도하니 많은 관람객이 앞서서 보고있었다
정글속 평범한 지형속에 형성된 여기 저기 산재한 터널 입구와 그당시 터널 내부를 재현한 요새를 보면서 21세기 현대 문명 첨단무기도 그들의 원시적인 투쟁수단을 이기지못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렇게 미군들이 폭격을 퍼부우며 점령하고자 했든 요새는 땅속 250킬로미터가 미로처럼 뻣어간 굴속에 베트콩들을 섬멸하지 못한채 미군들은 막대한 피해만 입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100킬로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위한 땅굴이었고 나중에 미군을 피해 조성한 땅굴이 150여 킬로미터란다
구치터널은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사회주의 통일을 위한 투쟁의 상징같은 존재인 것 같았다
단순한 땅굴이 아니라 미로처럼 생긴 작은사람 겨우 빠저나갈 수 있는 통굴에 땅속 깊은곳에 층층 병원 학교까지 마련되고 그 답답한 굴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다니 가히 그들의 투쟁정신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일행들은 가이드의 설명이 없드라도 그 좁은 땅굴에 현장에서 직접 땅굴 체험도 해보고 각종 부비츄렙 모형을 바라보면서 50여년전 작전 나가서 직접 보았든 부비츄렙을 이곳에서 다시보는 감회가 남달랐다
밟으면 터지는 폭탄지뢰, 함정을 파놓고 대창이나 쇠꼬챙이를 무수히 박아놓아 밟으면 그냥 몸째 빠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가 하면,
도어부비츄렙은 문짝을 열면 대나무를 꼽은 문이 닿히거나 화살이나 창이 날라오는 무시무시한 무기였다
실제 백마11호작전때는 함정에 대창을 박은 부비츄렙이나 풀속에 풀 길이와 똑같은 대창을 꼽아놓은것도 있었고 또 줄을 건드리면 근처 산위에서 바위가 굴러오게 장치한 것들도 있었다
저 무시무시한 부비츄렙에 우리 장병들이 얼마나 무수히 다치거나 죽어 나갔는가?
평소에 풀과 나무로 위장하여 덥허놓았다가 무심코 지나가다 실수로 밟으면 터지거나 빠저서 헤어날 수 없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다
이번 여행을 하는 우리 일행중에도 저 부비츄렙에 부상당한사람들이 많으니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무기였다
어제밤 빛나는 남십자성에 마음 심란했는데 오늘 구치터널 현장에서 당시의 끔찍했든 부비츄렙을 다시보니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마음속으로 삭이며 구치터널을 돌아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않았다
어쩌면 투어를 같이하는 사람중에도 이 착잡한 마음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당시 전쟁을 치루면서 보았든 그리고 격어본 아품이 너무나 컷기에 이 땅굴과 부비츄렙을 다시보는 심정은 결코 격어보지못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가슴속 깊은 곳에 남아있는 아품이었다
언제 다시이곳을 또 찾을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당시 같이 총을 겨눴든 베트콩들이 지금이라도 닥아와 악수라도 나누고 같이 소주한잔이라도 나누면서 냉전시대에 불가피했든 시대상황속에 불행하게 살아온 똑같은 처지에 희생자들끼리 화해하는 자리라도 마련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아쉽게도 그당시 베트콩들은 우리보다 일찍 노쇠하여 일찍 죽었거나 쇠약하여 나오지 못한다는 가이드 설명에 역사의 희생자들끼리 화해의 만남을 갖지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어쩌면 나도 그들과의 전투에서 파편에 맞은 눈에 부상만 없었다면 오늘 이런 착잡한 감정을 갖지는 않았을런지 모른다
50여년을 한눈을 잃은채 힘겹게 살면서 아푼 기억은 잊고자 했든 지난 세월이 갑자기 50여년전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착잡한 마음에 얼른 그곳을 떠나고만 싶었다
그 신비로운 땅굴 현장을 나와 근처 베트남식당에서 현지식으로 식사를 하면서도 조금전 견학한 구치터널의 끔직한 잔영이 남아 식사내내 혼란스런 마음을 금할수없었다
구치터널의 착잡한 마음을 뒤로한채 우리는 다음 방문지인 캄보디아로 가기위해 호치민공항으로 가다가 중간에 신비의 명약으로 알려진 “노니”를 판매하는 매장에 들렀다가 공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베트남 현지 가이드김부장과 작별한후 캄보디아 씨렘립공항을 향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캄보디아로 넘어가는 비행기 아래 끝없이 펼쳐진 눈아래 저 벌판과 정글속에 50여년전 이몸의 정열을 불태웠든 그 현장을 떠나는 감회가 남다르게 가슴에 닥아왔다
베트남도 이제는 사회주의국가이면서도 자유경제체재로 국가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려 매년 6-7%의 경제성장을 이루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과거의 전쟁의 역사는 다 잊은듯 전쟁을 하였든 우리 한국의 기업이 약 6,000여개가 베트남에 진출하여 광범위하게 경제교류를 하고있고, 미국과도 철천지 원수지간으로 15년넘게 전쟁을 하였든 역사가 있었음에도 이제는 경제와 군사를 공유하는 관계로 발전하였다니 과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수없다
약 1시간 가량 비행하여 도착한 캄보디아에 씨엠립공항은 우리 청주공항정도의 작은 공항인데도 관광객이 많아서 그런가 비행기가 자주 뜨고 내린다
현지 이재선 하나투어 가이드와 접선하여 상견례를 겸한 인사에서 베트남 가이드와는 다르게 유모어가 있는 다른 분위기에 가이드라 여행내내 즐거움을 주었다
씨엠립은 작은 도시로 베트남과 다르게 건물이 5층정도 밖에 안되는 전부 얕은 건물이고 가정마다 터는 넓게 자리잡은것 같았다
거리는 베트남같이 오토바이가 많지는 않아도 역시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주 이동수단인것 같고 거리는 비교적 깨끗하게 잘 가꾸어놓은것같았다
교통신호도 별로 없고 무질서한듯 하면서도 서로 양보하고 요령껏 피해가는 운전기술이 대단하다
인구에 대부분 30대미만 청년층과 아이들이 약 60%가 넘든다는 이야기에 어쩐지 거리에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했다
아직은 영세한 국가라서 그런지 평균수명이 우리보다는 10-20년은 짧은가보다
같은 연령대인것 같은데 물어보면 우리보다 15세는 낮은것 같았다
가이드의 설명은 과거 인도지나 공산화 당시에 크메르루즈세력이 캄보디아를 점령하여 크메르루즈군의 지도자인“폴포트“라는 독재자가 “킬링필드”라는 영화에 나오듯이 지식인,기술자,정치인등 당시 캄보디아 지식인들을 모두 학살하여 약 300만명가까운 국민 이 학살당하거나 오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국경근처 밀림개발현장에 투입하였다는 설명을 들었다
한사람의 지도자가 펼치는 정치에 따라서 그나라 국민들의 흥망성쇠가 달려있을진대 폴포트한사람의 잘못된 정책이 얼마나 많은 목숨을 앗아같으며 2,000만 캄보디아 국민들이 아직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않는가?
그런데 폴포드 정권이후에 훈센이라는 현재 총리도 30년넘게 캄보디아를 다스린다는데 1인독재가 불러온 폐단이 얼마나 많은지 보아왔기에 이나라도 아직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은 영원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씨엠립시내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삼겹살 정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앙코르미라클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5. 여행 4일째(7월6일)
호텔 구내식당에서 일찍 조식을 마친 우리일행은 저 유명한 앙코르왓트사원을 관람코저 버스에 올랐다
사실 이번에 가장 하이라이트관광이 이곳 앙코르관광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과연 세계 7대불가사의의 사원이 어떤모습일까 궁금하고 한시바삐 보고싶었다
사원은 씨엠립에서 약 30분정도 달려 평원속에 밀림속으로 들어가더니 어느지점인가 넓은 물길이 나오고 다리가 보이면서 버스에서 내리는데 저 멀리 검은 돌무더기 조각품같은 모습이 보이는데 저것이 앙코르사원이란다
사원에 점차 닥아갈수록 그 장엄한 모습이 눈앞에 펼처지는데 아!아! 이것이 인간이 만든 조각품이라니 상상이 안간다
그 오랜세월 이끼끼고 빛바랬어도 그 웅장하고 오묘한 상태는 아직도 최근에 쌓은것인양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수맥년전 수천년전 그당시 인간이 얼마나 발달되었기에 이같은 엄청난 조각품을 만들어냈을까 가히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
옛날 12세기초에 당시 황제 수로비야바르만2세를 위해 창건된 캄보디아 앙코로에 건립된 사원으로 옛 캄보디아 크메르제국의 경탄해 맞이않는 건축기술이라 한다
우리는 그 웅장하고 끝없이 펼처진 사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바빳다
언제 이곳을 또 와볼런지도 모르고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가운데 하나라는 사원에 하나라도 소홀이 지나칠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저 엄청난 궁전같은 석조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과 고역이 얼마나 컷을까? 얼마나 많은 노역자들이 많이 동원되었을까? 궁금하기까지 하였다
가이드는 앙코르사원의 역사성과 건축의 과학적인 의미를 열심히 설명을 하나 한번에 다듣고 머릿속에 넣기에는 그 웅장한 규모를
감히 다 알아간다는 것이 어리석고 부질없는 짓인 것 같았다
그저 아! 멋있다! 정말 대단하다! 정말 잘왔다! 감탄만 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108배가 어떻고 그 사원과의 거리를 큐빅이라는 단위로 설명을 해도 잠깐동안에 그 모든걸 알수는 없어 들어도 들어도 모를 그 신비가 웅장한 사원에 겉모습만 보아도 알수가 있었다
건축 모두가 돌과 돌을 조각하여 깍고 다둠어서 퍼즐 맞추듯 하나하나 끼워맞춘 그 구조가 참으로 신비하고 인간이 갖고있는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경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다만 평생에 한번을 꼭 가보아야할 세계 7대불가사의의 하나인 건축물을 직접 보았다는 것, 인간으로써 어찌 이런 건축을 할수있을까? 그 신비한 의문을 간직하는것만으로도 이번 관람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본건물인 앙코로사원을 관람하고 뒤쪽으로 나가자 거기에 대기하고있든 툭툭이라는 오토바이에 두사람이 탈 수 있는 이동수단을 이용하여 또 다른 건축물을 찾아 떠났다
사원을 둘러싼 돌담을 돌고돌아 그렇게 먼거리를 달려도 끝이없는 웅장한 규모의 또다른 사원들이 여기저기 산재하여 그 신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사원이 폐쇄된후 500여년을 인간의 발길이 닫지않았었다는데 모든 석조구조물이 검게 변색되고 일부는 허물어지고 돌틈에 뻣어간 나무뿌리가 건축물 사이로 용트림하여 하늘높이 솟구처있다
그 또한 500여년을 돌보지않은 수많은 건축물이 원형은 남아있어 그 나무뿌리 용트림에도 엣모습을 간직한 것을 보면 그 건축물이 얼마나 웅장하고 견고하였나 생각되었다
관람을 끝내고 나오는데 이번여행중 처음으로 소나기가 퍼부어 시원하게 적셔준다
신비롭고 웅장한 앙코르사원 관람을 더 많이 못보는 아쉬움속에 끝내고 돌아와 시내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캄보디아식 중식을 한 우리는 씨엠립시내에 있는 트릭아트미술체험관에 들렸다
젊은 사람들이랑 어린 학생들같이 즐겨하는 세계불가사의 경치를 배경으로 각종 포즈를 애들마냥 해보면서 잠시 젊은 시절로 돌아갔다
다음은 긴 시간 앙코르사원 관람에 지친 몸을 풀기위해 맛사지 숍에 들렸다
베트남과는 또다른 분위기에 캄보디아 맛사지를 받으니 고단한 하루의 지친 몸이 일순 풀리는 것 같았다
시내 식당에서 쌈장 정식으로 저녁식사를 한후 브로드웨이쑈라고 캄보디아 성전환자 게이들이 펼치는 쑈 공연장으로 이동하여 게이쑈를 관람하였다
공연 중간에 우리 “아리랑”곡에 맞춰 무용도 해주고 가수 싸이에 “오빤 강남스타일”등 한국관광객들을 위한 특별 코너도 마련해주어 모두 따라부르면서 흥겹게 관람하였다
성전환한 남성들이라는데 그 교태스런 몸짓하며 간드러진 노래가락등 어디 남자였다는 사람들이라고 믿을수없게 여성스러웠다
공연 관람을 마친 일행은 시내 거리에서 야외 라이브카페로 이동하여 시원한 맥주한잔에 야외에서 우리노래를 신청하여 듣고 춤도 추면서 여행에 지친 몸을 풀었다
숙소인 앙코르미라클 호텔에 돌아와 여장을 풀면서도 낮에 본 앙코르사원의 거대하고 신비한 광경과 브르마이드쑈의 잔영이 남아 한동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6. 여행 5일째(7월7일)
남국의 기온은 낮에는 햇볓에는 좀 따갑지만 그늘에 들으면 시원한 것이 우리나라보다 습도가 없어 오히려 더 견딜만 했다
호텔에서 기상하여 식사를 마치고 호텔밖으로 나오면 오히려 시원한 것이 상쾌한 기분을 느낄수 있었다 이번여행에서 가장 다행스러운건 날씨가 좋았다는 것이다
우기철이 시작되었지만 내내 비는 안맞고 구름 그늘속에 시원한 분위기로 관람을 잘했든 것 같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모든 짐을 다 정리하여 끌고나왔다
이제 오늘 일정을 마치면 밤 비행기로 귀국길에 오르기 때문이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캄보디아내 대호수인 톤레삽으로 향했다
톤레삽으로 향하는 도로가 갑자기 막혀 처움격는 캄보디아에서의 교통정체라 궁금했는데 입헌군주국인 이나라의 총리를 뽑는 선거가 시작되는 날이라 선거운동 하느라고 선거운동차량과 행렬이 다 지나가도록 모든 교통이 올스톱되어 행렬이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나라같으면 그런 행위했다가는 낙선운동이라도 펼칠 듯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그곳은 사회주의 독재국가라 그런것도 용납이 되고 특히 총리후보가 현재 총리인 훈센총리 1명이 출마한다는데 그렇게 요란하게 선거운동을 왜 하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오랜 내전과 킬링필드역사에서 보듯 모든 지식인들이 다 처형되고 숙청되었고,
나라 발전에 근간이 되는 지식자원이 고갈되다싶이한 처지에 경제발전이라도 강력히 추진하여 모든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면 좋겠지만 1인독재가 30년이 넘게 이어오면서 아직도 동남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니 1인독재가 계속되는한 앞으로 이나라에 어떤 정변이라도 일어나지않을가 염려되었다
그러한 교통 체증을 뚧고 거대한 호수에 존재하는 수상민족들의 생활근거지를 찾아 달려간 톤레삽호수에는 원시적인 개발되지못한 바다같이 큰 호수에 배를 개조하여 호수위에서 수많은 선상가옥촌락을 이루고 살아간다는데 그들 선상가옥 인구는 약 15,000명정도이고 그 선상가옥촌에 학교도 있고 보건소도 있고 파출소도 있단다
그곳 주민 90% 대부분이 75년도 베트남이 패망하면서 국외로 탈출한 베트남 난민들이 육지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목민마냥 호수위 배에 겨우 초라한 초막을 짓고 살면서 시작된 삶이 지금은 조금 발전된곳이라 한다
그들은 호수에서 고기도 잡고 우리같이 찾아가는 관광객들에게 수공예품등을 팔면서 생활한단다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가면서 주변 호수위 거주민들을 바라보니 그 비참한 생활상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나라가 패망하면 백성들이 저렇게 고생들을 한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강위를 질주하든 배가 어느 수상마트 배앞에 정박하여 내려서 망고과일에 맥주한잔등으로 잠시 휴식을 취한후 큰 호수를 나가는데 마치 바다가 펼쳐진 듯 호수 끝이 안보이는 거대한 내륙 바다였다
장마때는 우리나라 경상남도 가까운 면적이 물에 차서 어마어마한 바다를 이룬다는 이야기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톤레삽대호수에 선상마을을 관람하고 다시 돌아오는데 그들의 전통혼례식이 열리는 듯 동리사람들이 그나마 깨끗한 정장차림으로 혼례장을 향하고 신랑 신부인 듯 곱게 가꾼 사람들과 둘러리 축하객들이 몰려가는모습을 보니 과거 우리나라 농촌에 혼례식을 보는 듯 하기도 했다
이어서 계속 2차선 도로가 길이 막혀 짜증이 날정도로 지루하여 불쾌하였는데 역시 앞에는 장례행렬이 지나가서 그렇다고 가이드가 설명한다
장례행렬이라도 길은 피해줘야 하는데 그들은 아무런 불평없이 장례행렬이 다 지나가도록 참고 기다려주는 것이었다
시내에 나와 점심 식사를 마친후 왓트마이라는 재래시장을 방문하여 이것저것 구경하고 다음 방문지인 상황버섯을 선전하는 쇼핑센타를 방문하였는데 만병통치약이라고 선전해서 그런지 일행들이 많이 구매하는 것 같았다
쇼핑을 끝낸후 우리는 다음 관람지인 캄보디아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전쟁기념관이라고 해야 넓은 야외 공간에 당시 탱크,포, 포탄,총기등을 진열하여 놓은 곳으로 기념관이라기보다는 옛 무기 전시장 같았다
그래도 우리가 월남파병당시 사용하였든 무기들이 눈앞에 전시된 것을 보니 새삼 그당시 자주 보았든 무기들이기에 눈여겨 살펴보았다
모든 일정을 마친 우리는 씨엠립공항으로 들어가기전 공항근처 식당에서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친후 씨엠립공항에 들어가 수속을 마친후 짧지만 많은 추억을 남긴 캄보디아를 떠났다
높이 솟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캄보디아의 저녁 오늘은 우리나라나 그곳이나 똑같이 아름답게 노을지어 넘어가고 있었다
비록 인종과 기후가 다르고 체제가 다르지만 이 지구상의 같이 존재하는 인간이기에 그들에게도 언젠가 번영된 나라가 이록되기를 간절히 빌어보았다
중간에 하노이공항에서 다시 인천공항으로 오는 베트남항공기에 갈아타기위해 하노이 공항에 내려 기다리다가 다시 밤 비행기로 귀국길에 올랐다. 비록 4박6일간의 여행이었지만 과거 월남전쟁에 전투부대로 참전하여 악전고투하다가 불의의 전상을 입고 전상 국가유공자로 살아온 것이 어언 50여년
그 수많은 날들을 부상의 의한 후유증으로 시달리면서도 한가정 이루고 번영된 조국에서 이만큼이라도 행복을 누리면서 그 역사적인 전쟁의 현장을 다시 찾아 돌아보고 많은 감회를 느꼈다는 것에 이번 여행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돌이켜보면 동서냉전시대와 한 사람의 지도자들의 그릇된 통치방식에 따라 국민들이 비참한 전쟁 소용돌이에 힙쓸려 우리같은 전쟁피해자들이 일생을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전쟁 당사국 수많은 국민들이 기아와 가난에서 허덕이고 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우리나라도 저 북쪽에 3대 독재자들도 제발 자신들의 체제보위만 혈안이 되어 쓸데없는 핵무장이라든가 국민들을 억압하지말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수있도록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자유경제체제를 추구하는 우리가 순례한 캄보디아.베트남 두나라의 현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제 베트남은 오랜 전쟁의 역사도 잊은체 오직 잘살아보려는 일념으로 경제개발에 총력을 기울려 한해 6-7%의 높은 경재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우리 대한민국 기업이 약 6,000여개가 진출하여 양국간 활발한 경제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단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이번 전적지 순례를 회상하면서 당시에 불가피했든 시대상황의 일원으로 저 엄청난 고통의 세월은 내일생의 가장 보람되고 영광된 순간이었다는 자부심만 갖고 열심히 살아가고자 긴여정을 끝낸 지금에서 다시한번 다짐해본다
끝으로 이번순례행사를 마련해주신 강대호 도지부장님과 도지부임직원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여행 내내 끝까지 세심하게 챙겨주면서 불편없이 여행을 마칠수있도록 배려해주신 아일관광 김광삼 사장님께도 고마움을 전해드린다
2018. 7. 15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충청북도지부 충주시지회장 손 택 수
첫댓글 젊음의 혈기속에 국가 명받고 싸우던 옛 전쟁터 상기하시며
많은 저적지를 다녀 오시여 올리신 현지의 글 보며 감사합니다
옛날생각하며 한번 들어갔다가 짧은 거리인데도 죽는줄 알았죠,다시 기회가있어또 한번 갔었는데 안들어갔어요,어찌하다보니 배트남을 5 번이나 댕겨왔는데 또 가고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