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 가마솥 - 노혜정
어린 시절, 하얀 눈 내리는 겨울날이면
아버지는 아침 일찍 비를 들고 마당을 쓰시고
언니는 양동이를 들고 나는 방망이를 들어
집 앞, 우물을 찾으시는 엄마 뒤를 따라나섰다
꽁꽁 언, 우물을 언니가 방망이로 얼음을 깨고
엄마는 물을 길어 식사 준비로 분주하던 아침
굴뚝엔 하얀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가마솥에 밥 짓는 냄새가 집안 가득 풍기면
밑불 꺼낸 아궁이엔 구수한 된장찌개도 끓어 넘치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간 고등어 석쇠에 얌전히 누워
몸을 뒤척이며 노릇하게 익어가면 냄새에 이끌려
하나둘, 아궁이 앞으로 모여드는 동생들
부뚜막에 걸터앉아 가마솥 누룽지
설탕 뿌려 달라며 울먹이던 막냇동생 겨우 달래고
내 팔보다 긴 나무주걱으로 가마솥 누룽지 휘저으며
밥상에 올릴 구수한 숭늉을 끓여냈던 무쇠 가마솥
매주 쑤는 날이면 삶은 콩 한 줌 얻으려고
아궁이 옆을 지키다 가마솥 뚜껑이 열리면
우르르 몰려드는 우리에게 퍼 주셨던 콩 한 바가지
입에 넣고 씹으면 그렇게 고소하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보리밥 보기만 해도 먹기 싫지만
그 시절엔, 보리쌀 삶아 대나무 광주리에 걸어두고
가마솥에 무 밥을 하여 커다란 함지박에 밥을 비비면
구멍이라도 낼 듯 바닥까지 긁으며 깨끗이 비워냈다
외양간 누렁이도 무쇠 가마솥에 쇠죽이 끓어 넘치면
왕눈을 끔뻑이며 쇠죽 냄새에 못 견뎌 배고픔을 느끼는지
긴 혀가 터널 속을 지나듯, 콧구멍 사이를 들락거리더니
더는 참을 수 없는지 고삐 풀릴 듯 콧김 날리던 누렁이
무쇠 가마솥은 내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첫댓글 무쇠 가마솥에 밥을 해 먹으면
밥도 차지고 숭뉸도 맛있는데
현대시대는 가마솥을 외면하는지 모르겟어요
불 지피고 밥 하는게 귀찮잖아요
요즘은 거의 식당가서 해결 하시는 분도 많이 늘고 있지요
사서 해 먹는 재료비 보다 더 싸고 편하니까요
무쇠솥을보니 옛생각이 나네요
그리운 향수가 묻어나는 가마솥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