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전문성과 소통 부족이 낳은 또 하나의 외교 참사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15일 새벽에 중앙일보 단독 보도 기사로 네덜란드 측에서 최형찬 주네덜란드 한국대사를 초치한 사실이 알려졌다. 초치한 시점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11~15일)을 열흘 앞둔 지난 1일이었으며 사유는 과도한 경호 및 의전 요구에 우려를 표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중앙일보는 관련 사정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의 전언을 인용해 네덜란드 정부는 최 대사를 불러 국빈 방문 경호와 의전을 둘러싼 한국의 다양한 요구에 ‘우려와 당부사항’을 전달했다고 알렸다. 또한 경호상의 필요를 이유로 방문지 엘리베이터 면적까지 요구한 것 등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하며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결례로 인한 외교 참사가 발생한 셈이다.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특히 반도체 장비 기업인 ASML의 기밀 시설 ‘클린룸’ 방문 일정과 관련해 한국 측이 정해진 제한 인원 이상의 방문을 요구한 데 대한 우려도 컸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중앙일보 측에 “네덜란드가 상대국 정상의 방문을 앞두고 주재 대사를 불러 항의한 건 이례적”이라고 전했다고 한다.
정상 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호 의견 차이가 있을 경우 서로 양보하지 않고, 물밑에서 상대에게 양해를 요구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국빈 방문 전에 상대국 대사를 초치까지 했다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얼마나 무리한 의전 요구를 했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초대국인 네덜란드에 어지간히 결례를 범하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일어나긴 힘들어 보인다. 또 외교 소식통은 중앙일보 측에 “네덜란드 측은 외교채널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협의와 조율을 시도했으나 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항의 표시로 대사를 초치해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윤석열 정부가 네덜란드 측에서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고집을 꺾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여 결국 참다 못한 네덜란드가 한국대사를 초치하는 지경에 이른 셈이다. 초치 직후 주네덜란드 대사관은 본부에 전문을 보내 상황을 보고했다.
1961년 수교 이후 62년 만에 처음 이뤄진 한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앞두고 이런 의전 갈등이 정상외교 자체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초치 사태를 통해 윤석열 정부 내 소통과 전문성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계속해서 중앙일보 기사를 살펴보면 네덜란드 측은 대통령실·외교부·대사관 등 각 채널에서 각기 요구사항을 산발적으로 전달하는 협의 태도에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즉, 각 채널이 공통된 요구사항이 있으면 하나로 통일해서 전달해야 하는데 여기서 딴 소리, 저기서 딴 소리를 했다는 뜻이 된다.
이 때문에 외교가 안팎에선 대통령실 의전 라인 전문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실의 전임 의전비서관이었던 김승희는 이벤트 대행회사 대표 출신으로 당시에도 의전 업무의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이번 초치 사태는 이를 보완해야 하는 외교부 의전 라인 역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보여줬다.
또 중앙일보는 이번 일이 벌어진 배경에 대해 대통령실·외교부·대사관 등에서 정보 공유를 통한 업무 성과 증대보다는 정보를 독점해 성과를 독차지하려는 분위기가 강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외교라인 내부의 전언을 인용해 “서로 정보를 숨기고 지휘계통도 무시하는 일이 있다”는 불만도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7월엔 리투아니아 빌뉴스를 방문했을 당시 김건희 여사의 ‘명품 쇼핑 논란’에 대통령실이 “호객행위를 당해 매장에 들어갔다”고 해명한 게 논란이 됐고, 당시에도 의전 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전직 고위 외교 당국자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전 분야에서 원칙이 흔들리고 업무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건 정상외교의 기반과 토대 자체가 부실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한다.
한편 이번 일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중앙일보 측에 “(이번 초치는) 국빈 방문이 임박한 시점에서 의전 관련 세부사항을 신속하게 조율하기 위해 이뤄진 소통의 일환”이라며 “네덜란드 측은 우리 의전팀의 전문성과 정확성을 평가하면서 사의를 수차례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이 사실을 알리면서도 헤드라인에 ‘초치’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그저 〈네덜란드, 한국 대사 불러 '국빈방문 의전 우려' 전달〉이라고만 썼다. 중앙일보의 해당 기사를 인용 보도를 한 프레시안과 MBC 등에선 ‘초치’란 단어를 쓴 것과 대조적이다.
초치는 한 국가의 외교당국이 양국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외교적 사안을 이유로 자국에 주재하는 어떤 나라의 대사, 공사, 영사의 외교관을 자국 외교 관련 부서의 청사로 불러들이는 행위를 말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헤드라인을 저렇게 쓰면 사안의 심각성을 알기 힘들다. 정부의 외교 참사를 언론이 의도적으로 축소해 보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출처 : 굿모닝충청(http://www.goodmorningc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