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송태한
나 떠나가면 오직 돌 하나만 남기리 서슬 푸른 세상사 돌덩이 같은 살점 이제 내려놓고 봇짐 싼 근심 풀어버리고 낯 붉은 욕망도 발 아래 묻고서 모양도 빛도 없는 서늘함 속으로 길 나서리
좀이 퍼진 기억 한 올 미련일랑 소슬바람에 쥐어주고 해가 찔러주는 연서 구름이 떨궈놓은 눈물 사연마저 등 돌리고 귀로 흘리며 포대기 속 아이처럼 산만치 무거운 눈꺼풀 누르는 졸음에 겨워 천년 그늘 채우리
고인돌은 문자다. 삶의 역사이며 인류의 발자국이다. 산기슭 지형도와 돌의 중량을 측정하는 방법. 그리고 하늘과 땅의 이치를 말해주는 옛사람들의 기록이다. 현대인들은 고인돌에서 삶의 방법과 천문지리의 해석, 인간의 생존경쟁을 전부 읽어 냈다. 만약 고인돌이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를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한반도에는 고인들이 다른 나라 보다 훨씬 많은데 우리의 문명이 인류의 최첨단에 서서 이끌어 왔음을 말해준다. 고인돌은 말 그대로 세워진 돌이다. 기둥 독 위에 넓은 바위를 얹어 시신을 안치한 무덤이다. 삶의 종말을 맞이한 인간의 전부를 기록한 표석이다. 송태한 시인은 그런 고인돌을 보고 자신의 흔적은 그렇게 남기를 바란다. 삶은 현존해 있을 때 삶이다. 살아있어야 죽음도 알 수 있고 이루진 탑을 높이를 잴 수 있다. 그래서 욕심을 부린다. 돌덩이에 되지도 않은 시를 새기는 것도 모자라 높은 탑을 만들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허상을 바라본다. 그 욕망이 근심걱정을 낳고 찬바람을 부른다. 그것 뿐이 아니다. 더 가지려는 욕심으로 남을 헤치고 빼앗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그게 필요치 않다는 것을 죽는 순간에 알게 되는 데 그때는 늦다. 송태한 시인처럼 살아 있을 때 이렇게 정리를 해야 한다. 돌 하나만 남겨도 후세에 모든 것을 전할 수 있는데 왜 쓸데 없는 허욕을 부리는가. 하루를 살아도 천 년을 산 것 같은 삶을 살려면 구름이 떨궈놓은 눈물 사연마저 잊어야 한다. 그게 시인의 바램이고 고인돌의 뜻이다. [이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