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지지老馬之智를 아십니까? 허 열 웅
늙음과 낡음은 글자로는 불과 한 획의 차이 밖에 없지만 그 품은 뜻은 정반대의 길로 살아갈 수 있다.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것은 ‘오래 사는 것보다 깊게살 때’이며 늘어가는 나이테에 지혜를 함께 둘러야한다.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1세로 OECD 평균을웃돈다.
65세 이상 노인이 550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11.3%나 된다.이렇게 되다보니 어린이 분유보다 머리 염색약 소비가 앞서고,아기 지저귀 보다는 요실금 팬티가 더 팔리는 사회, 청소년 캠프대신에 효도관광이 줄을 잇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나이 들어 낡아가고 있으면서 늙어가고 있다고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늙어간다는것은 살아온 세월을 바탕으로 노련미의 감동을주는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는 새로운 문화와 정보에 적응해 가면서 금강석처럼 찬란하고 향기로운 무게로 견고 해지고 새로워지는 일이고값진 일이다.
허지만 나이든 것을 깨닫지 못하고 ‘ 그래도 내가 왕년에는…어마어마했지’ 소리나 하면서 인터넷 등 새로운 정보나 현대문명 기기는 외면한 채, 이 나이에 그런 걸 배워서 뭘 해?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은 낡아가고 있는것이고. 썩어 소멸해 가는 것이고 미망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냄새나고 추한 것이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동호인 모임에 가장 존경스러운 선배가 있다. 그는 명문 S대를 졸업하고 서울철도청장을 끝으로 퇴직을 20여년이 지난 80세에 가까운 나이시다. 지금은 방송통신대에서 중국어를 배우시며 중국에 가서 어학연수 중이다.
일본어과는 이미 졸업하시어 유창하게 구사하신다.그 뿐이 아니다 스마트폰도 폭 넓게 활용하고 문화센터에 나가 시, 수필 등을 공부하면서 글도 자주 발표하고 계시다. 젊은 사람들과도 자주 어울려 대화를 나누려하고 술값도 먼저 내려고 하신다.
이 천년 전에도 로마의 키케로는 늙어 할 수 있는 지적활동이 무궁무진하다며 봉사, 글쓰기, 외국어배우기, 철학 공부를 꼽았다. 봉사활동을 하면 4년의 수명을 늘려준다는 연구도 있다. 은퇴 후20~30 년도 넘게 남은 바다 같은 세월을 때울것인가, 누릴 것인가? 의 선택은 순전히 자신에게 달렸다고 본다. 일 년에 몇 번 쯤 들려보는 동창회 사무실이나 퇴직 사원 동호인 휴게실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담배 연기 자욱한 가운데 바둑,장기, 고스톱을 치면서 온 종일을 보내고 있다.
물론 서로 대화도 나누고 오락도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중간에 책도 좀 보고, 악기 하나쯤도 배우고, 서예라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나 운동에 투자하는 것은 은빛 노년을 더 빛나게 만들고 건강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비록 겉으론 낡아가도 속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름답게 늙어가는 모습일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부터 노인은 삶의 지혜를가진 존재로 여겨왔다. 그리스 격언에 ‘집안에 노인이없거든 빌리라’ 뜻은 삶의 경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보여준다. 영국에서는 노인 한 명이 죽는 건 도서관 한 개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어, 노인의 죽음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재능과 지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말 이었다.
허지만 지금 각종 지식과 정보가 인터넷 등 각 종 매체에 둥둥 떠다니고 있어 물려줄 지식이 없을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서 배워야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 젊은이들과 경쟁에서 벗어나 여유와 경험의 노련미를 보여줘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앞,뒤와 좌, 우를 살피고 때로는 흐린 날에도 구름 너머에 있는 태양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노마지지老馬之智역할을 할 수 가 있다.
노마지지란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환공이 지금의 하북성에 있던 고죽국에 쳐들어갔다가 돌아오는 중에 길을 잃어 곤경에 빠졌다. 출전 할 당시는 여름이었으나 돌아올 때는 겨울로 바뀌어 눈이 수북이 쌓였던 것이다. 이 때 명재상 관중이 늙은 말의 지혜에 착안해 나이든 말을 골라 길라잡이로 풀어놓아 무사히 귀국 할 수 있었다는이야기다.
진군할 때 젊은 말들은 의기양양 하게 앞만 보고 달렸지만 나이 든 말들은 좌우 산세를 익히고 강물의 깊이를 가늠하고 동네어구를 살펴보면서 그 들의 뒤를 따라갔던 것이다.
나는 요즈음 하루 두 세 시간이상 인터넷에서 각 종 정보와 역사와 인문학에 관한 지식을 검색하여 메모도 해놓는다. 그리고 매일 친지들과 각 종 메일을 주고받는다. 일주일에 문예지를 제외한 전문서적한 권 이상 읽기를 실천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활동이 치매를 예방한다는 조사보고도 있으니 무서운 복병에 안심해도 될까 싶다. 아침 일찍운동장에 나가 테니스도 열심히 한다. 운동장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나이도 몇 살 아래로 낮춰 말하고 그들과 어울리다 보면 실제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반말을 들어도 개의치 않는다.
또 한 각종 모임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귀중한 정보도 얻고 글의 소재도찾는다. 종합대학을 몇 개 운영 하는 ‘길’병원 원장은 나이를 묻자, ‘인생은 얼마나 살았냐보다 뭘 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나이 밝히기를 거절했다. 나이가 들수록 산속보다는 사람들 속에 묻혀 살면서 때로는 가벼운 언쟁도 하고 부대끼며 화해하면서 살아가다보면 좋은 하루도 있고 나쁜 하루도 있을 수 있다. 학교 후배나 젊은이들과도 가끔 어울리면서 늙어가는 노인이 되지말고 존경받는 어르신이 되어야 한다.
곱게 늙어간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의미이기에 이것 보다 더 한 영광이 땅위를 사는자들에게 또 무엇이 있겠는가? 싱싱한 젊음은 우연한 자연현상이지만 아름답게 노년을 만드는것은 예술이 될 수 있다. 인생은 유한한 만큼 멋지게 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늙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낡아 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나를 뒤돌아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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