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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먹으면
(9.24. 마예란)
1. 밥은 굶어도 사과는 먹는다. 어릴 때부터 사과를 좋아해서 오빠는 " 넌 과수원 집에 시집가 랩이"라며 놀렸다. 사과를 빼놓고는 과일을 야기할 수 있으랴. 과일의 대명사는 사과가 아닌가 싶다. 사과는 늘 가까이에 있지만 항상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정겨운 과일이다.
2. 딸기나 수박, 복숭아, 포도 같은 것도 좋지만 사과를 당할 것이 없다. 하우스 재배로 모든 과일을 사계절 먹을 수 있지만 딸기는 봄에, 수박과 복숭아는 여름에, 포도는 가을에야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다. 반면 사과는 봄부터 겨울까지 등장한다, 나들이 갈 때 딸기나 포도, 바나나는 포장으로 대접을 해줘야 하는 반면 사과는 순박한 시골 아이처럼 귀하게 모시지 않아도 손쉽게 챙겨 갈 수 있다.
3. 사과는 우선 과일 중에 크기가 가장 적당하다.
수박은 구매할 때부터 망설여진다. 배달해줄까? 고민하게 되고 먹고 남은 껍질 분량 역시 만만치 않다. 한 통을 자르면 끝까지 다 먹기는 참으로 어렵다. 냉장보관이 길어지면 당도가 떨어져 수박 한 통을 다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포도 한 송이 식탁에 얹으면 반 송이는 남는다. 복숭아는 먹고 남은 씨앗처리가 곤란하다. 종량제에 담으면 날파리가 생겨서이다. 가족이 둘러앉아 조각내어 먹기에는 역시 사과가 최고다.
4. 사과가 대단한 것은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기별 등장하는 종류 또한 많으며 겸손하다. 수많은 종류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과는 7월 중순부터 등장하는 파란 사과, 일명 아오리가 있다. 사과 중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새콤달콤한 맛이 으뜸이다. 9월부터는 아리수가 등장하고 이어서 껍질을 깎아 두어도 갈변이 적어 술안주로 사용한다는 양광이 인사한다. 그 외 홍옥, 홍로, 축관이 등장하고 10월 늦가을에는 부사가 반갑다. 과일가게 진열장을 보면 앞 줄에는 딸기. 바나나. 참외. 자두, 복숭아 같은 과일이 자랑스럽게 앉아 있고 사과는 대부분 뒷줄에 자리하며 겸손을 보인다.
5. 한 번 베어 물었을 때 씹히는 과육의 감촉이야말로 어떤 과일도 사과의 맛 수가 되지 못한다. 홍옥은 담백하면서도 자극적인 신맛의 과즙으로 한 입 베어먹으면 심신이 상쾌하다. 한 입 베어 먹었을 때 사각사각 씹히는 소리가 경쾌하고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것이 가물가물 눈까지 시큼 거리면서 씹지만 끝내 상쾌한 단 맛을 주는 아오리의 과즙. 생각만 해도 피로가 내려앉는다. 나약 무더운 여름의 입맛을 돋우는 아오리의 과즙을 특히 좋아하여 여름을 좋아하게 된 지도 모른다. 깊은 산 골짜기 맑은 옹달샘처럼 입속 군침을 모으는 사각사각 소리는 달콤한 향과 함께 세포를 깨운다. 입속에 음식 머무는 시간과 씹는 횟수가 치매와 연관 있음을 읽은 적이 있다. 음식을 오래 씹는 사람, 치아가 많은 사람일수록 치매 확률은 줄어든다고 한다.
6. 사과는 적당히 잘라 출근길에 먹거나 외출복을 입으면서 베어 먹은 사과 한 족각의 식감은 최고의 청량제가 된다. 아침에 토마토를 갈아 마시거나 생식을 먹을 여유도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아온 나는 식탁에 앉아 뭔가를 먹고 출근할 수 가 없었다. 특히 사과의 젊은 향기를 가진 홍로의 과즙은 입안에 넣는 순간 새콤함이 심장으로 달려가 누워있는 세포들을 깨운다. 육질이 단단하고 단맛과 신맛의 적절한 조화를 만들어 내는 부사의 과즙은 켜켜이 쌓여 있는 어릴 적 사과 꽃 닮은 내 친구를 기억하게 한다.
7. 사과는 우주를 품고 있다. 둥근 우주를 닮았고 사계절의 색깔을 가졌다.
보기만 해도 시큼하여 더운 여름 입맛을 돋우어 주는 아오리의 싱그러운 연두색은 봄을 닮았다. 눈부신 햇살을 담은 홍옥의 매혹적인 빨강은 여름을 닮았으며, 사과를 가꾼 사람의 땀방울을 담은 선홍색의 아리수와 태양의 정열을 담은 홍로의 진빨강은 가을 단풍을 닮았다. 사과나무의 세월을 담은 불그스레한 부사의 색깔은 겨울을 닮았다.
8. 저장성이 사과만 한 과일은 없다.
실온에 보관해야 당도를 느낄 수 있는 복숭아와 자두, 살구는 길어야 보름 정도 저장이 가능하고, 수박은 크기가 너무 커서잘라야 보관이 가능하여 이것 또한 보름을 넘기면 식탁에 올리기 어렵다. 반면 사과는 껍질이 단단하고 당도의 변화가 없어 부사 같은 경우 냉장 보관을 잘 하면 이듬해 7월까지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이런 장점으로 인해 어릴 적 고향에서는 부사 한 그루이면 논 한 마지기와 맞바꾼다고 할 만큼 몸값이 비쌌다. 이런 장점으로 인해 사과는 정물화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게다가 홍옥 같은 경우 사 온 봉지 속에서 한두 개 먹어서 신맛이 감당하기 어려울 경우 미련 없이 싹싹 닦아서 예쁜 바구니나 접시에 담아 거실 장식장에 올려놓으면 그 그림과 향만으로 본전은 나오리라. 그렇게 며칠 삭이다 먹으면 단맛이 살아난다. 부사 같은 경우 냉장 보관만 잘 하면 다음 해 7월까지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9. 그러나 이 정도로 사과의 덕을 다 예찬했다고 할 수는 없다.
건강의 제왕으로 만든 것은 사과에 들어 있는 식물성 섬유인 펙틴이다. 펙틴은 장 청소기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 펙틴은 하얀 속살보다 빨간 껍데기에 더 많이 들어있다. 껍질째 먹으면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당, 농약, 다이옥신 등의 유해 물질이 이때 함께 빠져나가니, 장은 그야말로 반짝반짝 윤나는 마룻바닥처럼 깨끗하게 청소된다. 이처럼 장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면 대장암 발생의 걱정이 줄어든다. 사과를 껍질째 '아삭' 씹어 먹는 것은 치아에도 좋고 펙틴 질을 많이 섭취하는 것도 된다. ' 껍질의 영양학'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사과를 흐르는 물에 솔로 잘 씻어서 먹으면 농약쯤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한다. 설령 농약 성분이 잔류한다 해도 결국 펙틴질이 다 끌고 나갈 테니 걱정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쌀뜨물 발효제나 베이킹 소다로 씻는다. 이것도 없을 경우는 찬물에 5분 정도 담가두었다가 잘 씻어 아삭 베어 문다.
10. 참, 대구 아가씨가 능금 때문에 예뻤다고 한 말은 사실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사과의 AHC(Alpha-Hydroxy Acid) 성분이 피부의 각질을 제거해 주고 피부 보습력을 향상 치켜 주기 때문이란다. 자외선을 받아서 손상된 피부를 회복시켜 주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한 다다. 능금 산이 그 역할을 해 주고 있는데 여자들 화장품을 들여다보면 AHC 성분이 들어있다고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과를 먹다가 잠시 딴 일을 하고 다시 사과를 먹으려면 속살이 갈색으로 변한 것을 보게 된다. 사과의 빨간 껍질이 그동안 속살을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가 '양산' 이 벗겨지니까 타 버리는 현상이란다.
11. 새콤달콤한 맛에 사각사각 물기가 많고 식감 좋은 사과, 다른 과일에 비해 저장성이 좋아 일 년 내내 즐겨 먹을 수 있는 사과는 겸손하여 위로가 된다. 작은 사과 한 알을 본다. 노르스름한 육질 속을 리듬감 있게 베어 먹을 때 넘치도록 피어나는 향수에 젖는다. 동그랗게 잘 익은 사과를 먹으면 세상도 둥글어 보이고 옆 사람도 예뻐 보이고, 나는 조금 더 착해셔서 미소가 번진다.
첫댓글 저도 사과 좋아하는데 공감이 됩니다. 입에 침이 고이며 바로 사과 하나 먹고 싶어집니다. 세심한 표현력에 한 수 또 배웁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