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시편 46: 1~5
독일의 신학자 본 훼퍼(Ditrich Bonhoeffer, 1906~1945)는 “먼동이 떠오르는 새벽은 부활을 믿고 사는 성도들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미국 남침례교회 목사로, 전 세계를 순회, 부흥회를 인도하며, 2억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1918~2018) 목사님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캐나다의 새벽은 숲속의 새들이 잠을 깨웠고, 일본의 새벽은 공장의 요란한 엔진소리가 잠을 깨웠는데, 한국의 새벽은 교회당에서 울려나오는 은은한 새벽 종소리가 잠을 깨웠다.”고 했습니다. 과연 어느 나라가 소망이 있으며, 어떤 사람에게 내일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왜 새벽기도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새벽에는 어떠한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첫째, 새벽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이겼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시험했습니다.(창 22:1-2) 그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모리아 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그 순간 여호와의 사자가 그것을 만류하고 이삭을 대신하여 미리 예비해 놓으신 수양으로 번제를 드리게 했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난’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이기고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시험 앞에서 너무 무기력하고 쉽게 쓰러진다고 생각하십니까?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읍시다. 그리고 만나는 시험이나 문제마다 극복할 하늘의 능력을 구합시다.
에스겔 12:8 “... 아침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둘째, 새벽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추격해 오는 애굽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여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 때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고 지팡이를 들어 바다 위로 내밀었습니다. 홍해는 갈라지고 이스라엘 민족은 바다 가운데로 유유히 통행하여 나아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뒤쫓아 오던 애굽 사람들은 마침내 회복된 바닷물에 덮이어 다 죽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때가 새벽이었습니다.(출 14:21-25) 내 인생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과 믿음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 때문에 원망하고 있습니까?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을 찾읍시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과 환희를 반드시 경험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21:48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셋째, 새벽에 만나를 거두어 들였습니다.
만나란 “무엇인가?”란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늘 양식이었습니다.(시 78:24) 이 만나는 밤이슬과 함께 진 사면에 내렸는데 아침 일찍 나가서 매일 거두어 들였습니다.(출 16:13-15)
집집마다 집안에 성경, 찬송가가 두 벌, 세 벌, 다섯 벌씩 꽂혀 있어도 내 심령에는 말씀이 없어 기갈을 느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풍성한 구원의 양식을 거둬들입니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새해 첫 시간을 기도로 시작합시다. 새해 첫 날을 성령으로 시작합시다. 새해 첫 주간을 말씀으로 시작합시다. 새해 첫 달을 믿음으로 시작합시다.
사무엘상 29:10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넷째, 새벽에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굳게 닫힌 여리고성은 2중 성벽이었습니다. 외벽의 두께는 2미터, 내벽의 두께는 4미터이며 두 벽의 간격은 5미터입니다. 여리고성의 높이는 약 10미터로, 아파트 3층에 해당하는 높이입니다. 벽돌을 진흙으로 발라 쌓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성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 여리고성을 한 바퀴씩 돌았고, 이레 째 되는 날에는 일곱 번 돌았습니다. 끝까지 순종한 것입니다. 그 때에 큰 여리고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수 6:15-21) 할렐루야!
내 앞에 어떠한 이중, 삼중의 난공불락의 철벽같은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습니까? 새벽마다 일찍이 일어나 하나님께 아룁시다. 그 어떤 난공불락의 장애물도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 것입니다.
시편 143:8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다섯째, 새벽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한나는 눈물의 기도로 하나님께 구하여 아들 사무엘을 얻었습니다. 어머니 한나는 서원한대로 젖을 떼자마자 아들 사무엘을 엘리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갔습니다. 어린 사무엘은 제사장 엘리 앞에서 하나님 섬기는 법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사무엘은 세마포 에봇을 입고 하나님을 섬기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은총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은 어린 아이 때부터 경건하게 자라났습니다. 하루는 사무엘이 하나님의 전, 법궤 곁에서 누워있는데,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삼상 3:1-11)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때 사무엘의 나이를 열두 살로 추정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음성이 엘리 제사장에게는 들리지 않고 사무엘에게만 들렸습니까? 새벽에 깨어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여섯째, 새벽에 다윗의 기도는 상달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기의 보호자로 알 뿐 아니라 전적으로 의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기도하였습니다.
다윗은 시편 5:1-3에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편 88:13에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 하리이다.”라고 새벽기도의 응답을 확신하였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불안하고 두려우십니까?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모읍시다. 기도로 시작한 하루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신 하루요, 보장하신 하루입니다.
일곱째,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보러 왔습니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처음 만나보는 감격에 넘친 환희의 새벽을 경험했습니다.(마 28:1-10) 그리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전도자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무엇을 잃어버리고 고민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인심을 잃었습니까? 덕을 잃었습니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습니까? 삶이 고달프고 허무합니까?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져 있습니까?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주님을 찾읍시다. 주님을 만납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넉넉할 것입니다.
시편 90: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자는, 하루 종일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피하여 다닐 것입니다.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새벽에 도와주십니다. 새벽기도로 하루하루를 감사와 감격으로 이끕시다. 새벽기도로 하루하루를 승리와 영광으로 이끌어 갑시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시편 46:1~5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출처: ╋예수님좋다오 글쓴이: 김병훈목사
하나님을 앞서지 말라.
시편 46편 8-11절
살다 보면 인간적인 수단을 동원해 하나님을 앞서려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높이지 않는 태도다.
하나님은 누구보다 높임 받으셔야 하고 찬양받으셔야 한다.
하나님께서 죄가 넘치는 땅을 황무지로 만들 수 있는 권세가 있고
대적을 패퇴시키고 전쟁을 그치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다(8-9절).
그 능력의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앞서지 말라.
성령 충만을 방언하고 입신하고 영서(靈書)를 쓰고 넘어지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현상과만 연결시키지 말라.
성령 충만의 핵심 뜻은 하나님의 뜻을 자기 뜻보다 앞세우는 것이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기가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성령 충만과 순종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만이 성령 충만은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성령 충만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너무 안달하고 발버둥치고 초조해하지 말라.
환난이 있을수록 더 침착해지고 여유를 가지고 하나님이 앞으로 일으키실 역사를 넉넉한 믿음으로 기다릴 줄 알라.
현실은 만족스럽지 못해도 하나님의 때를 넉넉한 믿음으로 기다리라.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
하나님의 미련함이 사람의 지혜보다 낫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낫다.
사람의 치밀한 계획과 달리 현실은 하나님의 뜻대로 펼쳐진다.
힘들다고 감사를 잊고 금방 원망하면 믿음과 인격에 문제가 있는 노예적 사고다.
뜻이 있는 사람은 “빵 대신 자유를 달라!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지만
노예 백성은 자유 대신 빵을 찾고 빵이 없으면 금방 불평한다.
믿음이 성숙해지면 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 침착한 태도를 취하고 하나님의 인도와 약속을 믿는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반전의 역사를 큰 가슴으로 기다린다.
그렇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 쉬어야 할 때는 쉬라 >
성도는 부지런히 뛰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가만히 쉬는 것도 잘해야 한다.
놀이와 휴식 시간을 적절하게 가지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
부족한 영양섭취도 잘하고 적당한 운동과 여가를 즐기는 것도 잘하라.
엘리야가 낙심했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마시게 하고 먹이고 재우셨다.
쉴 때는 쉬어야 한다.
그러나 여가활용이나 휴식도 성도답게 가져야 한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여가를 보내면 영혼은 더 피곤해진다.
엘리야는 먹고 마신 후에 기운을 차려 호렙산으로 갔다.
거기서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사명을 부여받고 새롭게 사명의 길을 힘차게 출발했다.
그처럼 휴식 시간을 사명의 길을 새롭게 출발하는 재충전의 계기로 삼으라.
쉼은 일의 목적을 상기하고 내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한 의미 있는 시간이다.
쉼이 있을 때 인간은 상품처럼 되지 않고 인간답게 된다.
그처럼 일과 휴식을 적절히 배분할 때 참된 행복이 주어진다.
하나님이 주신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은 무엇보다 복된 명령이다.
그때가 깊은 내면의 힘이 축적될 때다.
외면보다 내면이 중요하다.
내면세계가 튼튼하면 인생이 튼튼해진다.
특히 예배하는 삶은 튼튼한 내면세계 구축에 아주 효과적이다.
하나님 앞에 와서 만물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안에서 교제하는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면
내면세계는 더욱 튼튼해지고 풍성해질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가만히 서 있는 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세상의 어떤 것이 무너져도 인생이 무너지는 것은 막을 수 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바쁘게 살되 하나님을 잃어버릴 정도로 바쁘지는 말라.
사람 됨됨이는 일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파악되지만 휴식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파악된다.
너무 일에 매달리지 말라.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있는 훈련을 통해 든든한 내적 세계를 구축할 때 진정한 작품 인생이 펼쳐진다.
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글쓴이: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