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요새 1층에 카페 딸기라떼가 그렇게 맛있다고 다들 그러던데"
한창 일을 하고 있는 도중 키보드를 투둑투둑 치다 갑자기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리는 정국을 보고 여주가 파티션 너머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그리고 하던 걸 마저 저장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팀장이 외근 나가 자리를 비운 상태라 정국의 어깨를 툭툭 치며 조용히 손으로 나가자는 표시를 했다.
"가자. 잠깐 쉬는 김에 내가 사줄게"
그 말에 정국이 씨익 웃으며 바로 하던 일을 저장하고 기지개를 앞으로 쭉 폈다
"아이, 뭐 대리님이 정 그러시다면야. 사주시겠다고 하시는데 저 이런 거 굳이굳이 거절은 잘 안 하거든용"
"....전정국 너 많이 컸다?"
너무 나갔나 싶어 순간 정국이 여주를 슬쩍 봤는데 여주는 그런 정국이 귀엽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옛날에는 내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바짝 긴장해가지고는 프린트 나오냐고 물으면 뛰어가서 '네! 잘 나옵니다!' 하고 사무실 안에서 쩌렁쩌렁 크게 소리치던 게 진짜 엊그제 같은데"
"아, 대리님 언제적 얘기를"
정국이 옛날 얘기에 민망해져 투덜거렸다.
여주가 충전 중이던 핸드폰을 툭 빼고 일어났다.
"가자. 나도 마침 진한 커피 마시고 싶었거든"
/
".....혹시... 한여주 대리님?"
갑자기 들린 제 이름에 놀란 여주가 급히 호석의 품에서 빠져나와 재빨리 호석을 등 뒤로 숨겼다.
"........누구세..!.....어? 전정국?"
정국은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에 말을 더듬었다.
"아, 죄..죄송해요. 일부러 방해한 건 아니고, 혹시나 했다가... 반가워서 그만...어.... 대리님 남자친구분 만날 줄은 몰랐고...어... 방해해서 죄송.....어... 전..이만... 그럼 두 분 하시던 거 마저.."
당황해서 말을 더듬은 정국이 손을 살살 흔들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니, 잠깐. 뭘 하던 걸 마저 해"
여주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때 등 뒤로 숨겼던 게 무색하게 호석이 여주 옆에 나란히 섰다.
"누구? 여주 너 아는 사람이야?"
뒷걸음질 치던 정국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큰 눈이 작아졌다가 순식간에 커졌다. 저분이 대리님 남친분인가... 하고 봤는데 어둠속에서 눈이 익숙해지니 어쩐지 저한테 낯익은 얼굴이 점차 선명해졌다.
"...혹시..정...........호석님...?"
"야, 너 이렇게 나오면 어떡해"
분명 앞에 있는 건 아니, 코끼리코 15바퀴, 20바퀴를 돌고 봐도, 어떤 누가 KTX를 타고 봐도 정호석이었다.
정국이 허업!!!!!! 하고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고 여주는 순간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아......"
"그쪽은, 여주 회사 동료?"
세상에 정호석이 저한테 말을 걸어주다니 성덕도 이런 성덕은 없었다.
"네? 아, 네. 같은 회사 다니고 있고... 제 이름은 전정국이라 하고요! 옆에 계신 한여주 대리님이 제 사수이십니다!"
호석이 여주를 넌지시 쳐다보자 여주가 난감하다는 듯이 이마를 긁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후배야"
그제야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 호석이 웃으며 긴 다리로 정국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정호석입니다. 우리 여주, 잘 부탁해요"
두손으로 잡으며 꾸벅 인사하던 정국이 절레절레 저었다.
"부탁은! 아닙니다! 제가, 제가 대리님께 잘 부탁드린다고 말해야"
호석의 손에 은근히 힘이 들어갔다.
"여주 힘들게 하지도 말고요"
"..예? 아, 네!"
아직까지도 어벙벙한 정국에 "얘가 뭐래, 뭘 힘들게 해. 애 놀라잖아" 하고 여주가 호석의 팔을 붙잡아 옆으로 끌고 왔고 정국에게 물었다.
"아니, 그건 그렇고. 정국이 너 집 이쪽 방향 아니지 않아? 지하철역은 여기 반댄데 이쪽 길은 어쩌다가"
"아, 지하철이 연착 됐다고 해서 버스정류장 가는 길이었는데 대리님이 멀리 보이시길래.. 인사할까 하려다 그냥 말았는데 좀 어두운 골목길로 사라지셔서 순간 걱정이 돼서 따라와봤다가..."
우물쭈물 대답하는 정국에 여주가 나지막이 웃었다.
"와, 진짜로 꽁꽁 숨겼는데 이렇게 들킬 줄 꿈에도 몰랐네"
"저 진짜 입 무거워요!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해요!"
입으로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는 정국을 보고 여주가 웃었다.
"그럼 이제 혹시나, 혹시나 소문나면 바로 전정국부터 잡아봐야겠네"
"진짜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해요. 진짠데. 저 진짜로 입 무거워요ㅠ"하고 울상인 정국을 보고 여주가 "농담이야 농담"하고 웃었다.
옆에서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호석은 남들이 보면 무표정에 화가 난 것처럼 보였겠지만 실상은 여주의 회사 동료를 알게 돼 내심 기분이 좋아져있는 상태였다.
호석은 늘 여주의 모든 걸 알고 싶어했다. 여주에 관해서는 제가 모르는 게 없어야 했다. 여주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것 외에도 친구, 직장 동료 등 여주의 일상에 조금이라도 얽힌 사람들을 많이 알고 싶어했다. 하지만 여주가 항상 "나중에" 하고 선을 그었기 때문에 그 선을 자의로 넘을 수는 없어서 아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었다. 맨날 밖에서는 007 작전처럼 숨어숨어 만나거나 집에서나 보던 게 다였다. 때문에 이렇게 밖에서 여주의 지인을 우연히 보게 되니, 없던 호의를 베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겼다. 그 예로 정국에게 "집이 어디 쪽이세요? 버스 타지 말고 제 차 타세요. 집까지 태워다드릴게요"하고 직접 먼저 묻기까지 했다.
그에 웬만하면 예의상 몇 번 거절할 법도 했지만 정호석의 열렬한 팬이었던 정국이 성덕이 되는 이 기회를 그냥 놓칠 리 없었다. 아까 울상이던 표정은 어디로 가고 눈을 내심 초롱초롱 빛내며 "정말이요..?" 하고 호석을 바라보고 이내 여주에게 '저 정말 타도 될까요?'하는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그래, 시간도 늦었고 내일 출근도 해야하는데 타. 데려다줄게"
여주가 차의 뒷문을 열어주고 정국에게 타라며 고갯짓을 했다.
조심스럽게 "그럼 실례하겠습니당" 하고 뒷좌석에 앉아 야무지게 안전벨트를 매는 정국이 긴장감에 허리를 꼿꼿이 펴고 두 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 무릎에 살포시 올려뒀다.
여주가 타는 걸 보고 호석도 운전석에 올라탔다.
"호석이 너 안 피곤해? 괜찮아?"
"데려다줄게 하고 본인이 아까 얘기해놓고는"
"야, 먼저 그 얘기 꺼낸 건 너거든"
호석이 웃었다.
"알았으니까 벨트 매. 그리고 전혀 안 피곤하니까 걱정 마세요"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인 정호석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거기다 앞에서 정호석이 일상적인 얘기하는 것도 듣는, 이 모든 상황이 아직까지도 현실 같지 않아 얼떨떨해하는 정국에, 앞에 앉아 있던 여주가 뒤를 돌아보며 말을 조금씩 걸어줬다.
"정국아"
"네?"
"너 집, 연화역에서 어디로 가야한다 했지?"
"아, 저 그냥 연화역 근처 아무데나 세워주시면 돼요. 연화역에서 좀 걸으면 금방 집인데 골목이라...이렇게 비싼 차가 들어가기에 엄청 좁을 거 같아서"
다시 여주가 슥 돌아봤다.
"정국이 너 호석이 팬이라고 했었지?"
"아..넹"
그 말에 호석이 거울 너머로 정국을 슬쩍 봤다.
"거봐. 우리 회사에 너 팬 많다니까"
호석이 낮게 웃었다.
"예예,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게요"
"이렇게 회사 오다가 내 언젠가 들킬줄 알았어"
"그래서 회사 앞에 안 가고 골목 안에 댔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주는 뭔가 숨통이 트인 듯 홀가분하게 얘기했다.
"누구한테 들킬까 싶었는데 정국이 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어느덧 연화역에 도착한 호석이 차를 잠깐 세우자 정국이 내렸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조심히 가요"
호석이 창문을 내리고 인사했다.
"아, 태워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여주도 고개를 돌려 정국을 바라봤다
"정국아, 조심히 가고. 내일 보자"
"넹, 조심히 가세요"
인사하고 가려는 정국을 여주가 붙잡았다.
"정국아"
"네?"
"그리고... 그.. 정말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으면 좋겠어. 무슨 말인지 알지..?"
정국이 고개를 다시 끄덕끄덕하며 웃었다.
"저 입 무거워요" 하고 입에 지퍼를 다시 잠그고 인사를 꾸벅 했다.
"조심히 가세요"
/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정국이 딸기라떼 빅사이즈를 호로록 마셨다.
"저 근데 진짜 아직도 안 믿겨요"
"뭐가"
정국이 앞뒤좌우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뒤에도 속삭이듯 얘기했다.
"어제 악수도 하고 차도 얻어타고 와....저 심장 터지는 줄 알았어요."
"진짜 뻥 안 치고 악수했던 손 씻을까 말까 고민까지 했었다니까요. 아직도 심장이 나대네"
"또또 오버는"
여주가 웃었다.
"이번주에 광고 찍잖아요. 저희도 가나요? 아니지...대리님은 백퍼 갈 거고...거기 저도 좀 데려가주시면 안 되나요"
아직 사인도 못 받았는데 하고 정국이 눈을 초롱초롱거리자 여주가 못 말린다는 듯이 웃으며 "안그래도 한두명 정도는 같이 더 데려가자고 팀장님이 말하셔서 이따가 너한테도 말하려 했어."
예쓰!! 하며 정국이 야호 하고 소리를 질렀다.
"너무 좋아하지는 마. 이미 콘티나 그런 것들은 다 넘겼고 실질적인 건 그쪽 회사에서 다 할 거야. 촬영업체도 다 섭외해놨고 우리가 거기서 정호석이랑 마주칠 일은 잘 없으니까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는 개뿔.
여주 바로 앞에 앉아 있는 호석이 촬영 스케치를 슥슥 넘겼다.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콘티를 꼭 다시 봐야겠다면서 굳이 직원들을 잠깐 불러모았다.
"저기 정호석 씨, 지금 와서 어떤 부분을 다시 검토하시려는 건지.. 이거 최종본 아니었나요?"
하는 팀장의 말을 가볍게 넘기고 웃었다.
"아, 지금 와서 촬영 전에 이것저것 수정하자 뭐 양심없이 그런 건 아니고.. 한번 다시 검토도 해볼 겸, 직원분들 얼굴도 익힐 겸 뭐 겸사겸사 오늘 열심히 촬영해보자고 말씀 드리려고요. 다들 귀한 시간 내서 오셨는데. 콘티는"
호석이 여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주 좋네요. 콘티가 너무 예쁘네. 오늘따라 더 예쁜 거 같기도 하고...뭐, 이 말씀 드리려고 했어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콘티가 예뻐? 그게 무슨 말이지? 우리가 모르는 신종 현장 은어인가?' 다들 물음표만 가득한 채로 호석을 쳐다봤고 호석이 씨익 웃은 채로 움직였다. 남준도 고개를 숙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호석을 따라갔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정국만 눈동자를 굴려 호석과 여주를 쳐다봤고 여주는 손으로 눈을 가려 호석을 피했다.
얼굴이 붉어져 있는 건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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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인데 순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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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내 팡팡 터지는 조명과 함께 포스터 촬영이 계속 이어졌다.
지금 여기는 일터고, 공과 사는 엄밀히 구분해야한다지만 자꾸 사적인 마음이 강하게 드는 건 여주도 어쩔 수 없었다.
강한 조명에도 아랑곳 않고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데 새삼스럽게 정호석이 연예인은 연예인이구나 싶었다.
제가 일하는 현장에서 남자친구가 같이 일을 하는데 그 기분이 무척이나 생소하고 또 묘해 여주는 괜스레 마음이 아까보다 더 두근거렸다.
"와, 어떻게 같은 포즈가 하나도 없냐"
"그러니까 정호석이지. 괜히 정호석이겠어?"
"본투비 파워연예인이라니까. 좀이따 사진 찍어달라하면 찍어줄까?"
"아서라~ 말이나 붙일 수 있으면 다행이게. 그냥 얼굴만 즐겨"
"잘생기긴 진짜 잘생겼네"
옆에서 사람들이 속닥속닥거리는 칭찬에 괜히 뿌듯해져 입꼬리가 올라갔다가 정국이 입을 꾹 다문 채로 웃으며 여주를 쳐다보자 눈이 마주친 여주는 눈을 피한 후 숨을 몇 번 깊게 들이 마셨다 내뱉으며 웃음을 애써 감췄다.
정국이 그런 여주를 보고 슬금슬금 여주에게 다가왔다.
"대리님 안 숨겨지는데요. 어떻게, 보기만 해도 심장이 억 거리나요. 아니 그럴 거면 그냥 크게 웃어요"
여주가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살피다 속삭였다.
"야, 내가 언제 크게 웃으면서 내 남자친구라고 자랑했냐?"
"전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
아하, 정국이 씨익 웃었다.
"그게 딱 대리님 속마음이었구만? 자랑하고 싶어서 완전 입이 근질근질거렸겠넹"
"야, 너 일 안 해? 놀러 왔어? 촬영에 안 거슬리게 저것도 재빨리 좀 치우고 어? 이것도!"
괜히 찔린 여주가 정국에게 일을 시켜도 정국은 킥 하고 웃으며 휘파람을 불고 "넹넹~" 하고 여유롭게 돌아다녔다.
"자, 차에서 나와서 한바퀴 돌고 차 위에 살짝 앉는 거까지 한번 쭉 그대로 가볼게요"
한창 촬영을 하고 있는 호석을 보고 있는데 옆에 직원들의 감탄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와, 정호석 대단하긴 대단하다 맞죠. 차에서 내려서 차 주위 돌 뿐인데 여기 사람들 시선을 이렇게, 단번에 팍! 끌어모으잖아요"
"네? 아, 네. 그렇죠. 대단하죠."
여주가 동조한다는 듯 끄덕이자 타부서 남직원이 거기에 한마디를 더 얹혔다.
"대단하긴 대단하지. 아주 그냥 내 성 정체성까지 의심하게 만든다니까?"
다른 직원들도, 여주도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로, 내 속에 잠재되어있던 그 뭔가를 막 이렇게 이렇게 꺼집어낸다니까. 아무튼 정말로.... 위험하다 위험해"
한창 촬영을 하고 있던 호석의 시야에 여주가 박혔다. 정확히는 남자 직원들 사이에 있는 여주의 웃음소리가, 웃는 얼굴이 그대로 박혔다. 물론 여자 직원들도 충분히 많이 있었지만 호석의 눈에는 그저 여주에게 한마디라도 더 붙이려는 수작부리는 놈들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긴 일을 하는 일터이니 직원들끼리 충분히 대화를 나누는 게 당연했지만 호석에게는 그 모든 게 수작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호석의 눈이 가늘어졌다.
분명 그냥 대화일 텐데, 저렇게 웃고 있는 여주의 모습을 보자니, 그걸 보며 웃는 남자 사람들을 보자니 제 안에서 뜨거운 숨이 툭 튀어나왔다.
이내 손을 번쩍 들고 "잠깐만 쉬었다가 할게요" 하며 곧장 여주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직원들끼리 얘기 나누던 중 멀리 호석이 손을 들고 잠깐만 쉬자고 한 게 보였다. 물론 남준이 보고 챙겨주겠지만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물이라도 챙겨줄까'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옆에 직원들이 수군거렸다.
"...이쪽으로 오는데?"
"정호석 여기로 오는 거 같지 않아? 뭐지?"
여주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몇 걸음 앞까지 호석이 다가와있었다.
정호석이 이쪽으로 올 일은 없는데 싶은 순간
"한여주 대리님"
호석이 제 이름을 부르고 동시에 직원들이 여주를 쳐다봤다.
당황스러움에 여주는 "..네..네? 저요?" 하고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호석이 잠깐 고갯짓을 하고 "잠깐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했다.
"저한테요..?"
"조용한 곳에서 얘기드릴 게 있는데요. 잠깐이면 됩니다"
주위 직원들을 둘러보며 '나도 몰라. 왜 나를?'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마를 긁으며 여주가 조용한 곳으로 가자 호석이 따라 갔고 직원들 시야에서 둘의 모습이 사라졌다.
"희한하네.. 여주 대리님한테만 굳이 얘기할 게 따로 있나...?"
"그러게?"
간이 회의실로 온 여주가 주위를 슥 둘러보다 호석을 올려다봤다.
"네, 말씀하세요. 어떤 것 때문에.."
호석이 팔을 쑥 뻗어 문을 잠그며 동시에 여주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그에 여주가 감전이라도 된 듯이 놀라 펄쩍 뛰었다.
호석을 재빨리 툭 밀고 주위를 둘러봤다. 밖에서는 안 보이는 회의실 안이긴 한데 불안했다. 목소리를 낮추고 "야, 미쳤어? 여기 사람들 들어오면 어쩌려고 이래" 여주가 버럭했다.
그럼에도 호석은 웃으며 한번 더 입을 맞췄다.
"야, 정호석! 왜이래"
호석이 여주의 얼굴을 두 손으로 푹 감싸며 지그시 한참을 쳐다보다 품에 가득 안았다.
"야, 정호석"
"와, 진짜 누나 너무 이뻐서 나 어쩌지? 내가 이렇게 참을성이 없는 인간이었나? 아닌데. 아 돌겠네 진짜. 아니, 도대체 누나는 원래 이렇게 인기가 많아? 여기 현장 말고 회사에서도 말이야"
"얘가 뭐래?"
"누나, 잘 들어봐. 중요한 얘기니까. 진짜 이거 심각한 자뻑으로 들릴 수도 있는데 누나는 잘 못 느끼겠지만 나 정호석이야"
여주가 그래서 하고 웃었다.
"아니, 웃지만 말고. 나 이래 봬도 정호석인데, 어디든 먹히는데, 누나는 그런 정호석 만나고 있는 거라고. 와, 근데 안 먹히는 건 진짜로 누나밖에 없지. 어떻게 나 애태우는 건 진짜 누나밖에 없어서 진짜로 돌아버릴 것 같아."
호석이 여주를 품에서 떼어내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 현장에서 남자직원들이랑 한 열 걸음 떨어져 있어. 다가오면 그만큼 옆으로 떨어져. 혹시라도 남자직원들이 뭐라고 말을 하든 아까처럼 그렇게 이쁘게 웃지 마. 웃어주지 마. 나한테만 웃어. 그 자식들 뭐라 하는 거 다 너한테 한마디 붙여보려고 개수작부리는 거니까 그런 거에 웃어주지 말고...그래 그냥 화를 내"
여주가 그 말에 웃었다.
"갑자기? 뜬금없이 거기서 화를 내라고? 완전 갑분싸돼서 나 이상한 사람으로 소문나 그럼"
"그래, 차라리 그렇게라도 아무도 안 오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얘가 미쳤어. 수작은 무슨. 니 눈에만 콩깍지 씌인 거지. 딴 사람들 눈에는 나 완전 평범 그 자체야. 수작은 무슨"
호석이 한숨을 내쉬며 여주를 꼭 안았다.
"그래, 평생 그게 수작인지도 몰랐으면 좋겠다. 이대로 내 눈에만 제발 콩깍지였으면 좋겠어. 하긴 내가 콩깍지가 어마어마하게 씌이긴 했는데, 남들보다 열 배는 씌였을걸. 뭐 이제 와서 벗기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여주가 웃자 호석도 따라서 노랗게 웃었다. 곧 호석을 품에서 떼어내고 시계를 봤다.
"촬영 대충 순서 맞췄다고 얘기할게. 뭐 이게 먹힐진 모르겠지만. 이제 이만 가자. 너무 오래 시선을 끌었어. 다들 우리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늦어지면 이상하게 생각해."
문을 열려는 여주를 호석이 잡아 돌렸다.
그리고 양볼을 손으로 감싸 깊게 입을 맞췄다. 갈 곳을 잃은 두 손이 호석의 어깨를 툭툭 쳤다. 진득이 섞인 키스에 여주의 볼이 붉게 타올랐다.
"정호석 너..."
호석이 여주의 입술 위로 짧게 맞췄다. 그리고 붉게 물든 여주의 얼굴을 감싸고 이마를 기댔다.
"진짜 좋아서 돌아버리겠어. 이런 멘트 완전 철 지난 싸구려 구식인 거 아는데, 에너지 충전 완료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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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인데 순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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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야, 일어나" 하고 호석이 여주를 깨웠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는 여주를 보고 일찍 일어나있던 호석이 토스트에 달걀을 넣고 반으로 잘라 여주의 입에 넣어주었고 여주가 오물오물 먹다 자신을 바라보는 호석의 입에 짧게 키스를 남겼다.
양치하기 전 미리 옷을 꺼내려다 순간 호석의 옷장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제 옷들을 묘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호석이 뒤에서 다가와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출근 준비 안 하고 우리 대리님은 멍 때리실까"
"그냥 갑자기 문득 자연스럽게 니 옷장에서 내 옷 꺼내는 그 행동이 낯설기도 하고..기분이 갑자기 묘해서"
"안 되겠다. 우리 진짜 결혼해야할까봐"
호석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행복한 상상이 가득 펼쳐졌지만 다시 입매가 가지런해졌다. 그런 여주를 보고 호석이 "농담이야. 양치하고 얼른 가자" 하고 여주의 볼을 톡톡 치며 웃어 넘겼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칫솔을 하나씩 들고 같이 거울을 보며 양치를 하고, 웃다가 치약이 거울에 튀면 "아 더러워!" 하고 웃으며 거울을 닦기도 했다. 입을 헹구고 입에 묻은 물기를 수건으로 닦다 호석과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호석이 여주의 얼굴을 붙잡고 키스를 했다. 서로에게서 같은 치약향이 나는 게 행복했다. 둘이 같은 생각을 하는지 순간 서로를 보며 웃다 다시 키스가 깊어졌다.
분명 이렇게 아침까지는 행복했었다.
출근해서 기사를 보기 전까지는.
[단독] 정호석, B기업 손녀와 열애 중...?
(망상일보 = 한남철 기자)
인터넷 연예 커뮤니티에서 정호석이 B기업 손녀와 열애 중이라는 글이 연일 화제다. 한 연예 커뮤니티 글을 보면 최근 한 직장인 블라인드에 정호석이 최근 광고를 찍은 것도 B기업 손녀의 영향이 컸다는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모 아이돌로 광고 후보가 확정되었지만 한창 열애 중이던 B기업 손녀가 정호석을 적극 밀어붙여 정호석이 최종 모델이 되었다는 내용이 순식간에 퍼졌고 실제로 둘이 함께 있는 사진도 있다며 B기업 내에서는 둘의 연애가 공공연한 사실로 알려져 있다. 광고 촬영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는 정호석의 지인의 소개로 이루어졌었다는데 친구에서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하였으며 현재까지도 서로의 기념일을 챙겨주는 등 좋은 만남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유명 C베이커리에 대표적인 케이크가 B기업 손녀 SNS에 올라온 날 베이커리 내 정호석의 목격담이 뜨기도 했다. 이에 대해 B기업 및 해당 소속사에 정확한 확인 요청을 하였지만 아직까지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이 기사 덕에 또 회사 내는 정호석 기사 봤냐는 대화들이 오갔고, 사무실 내에서는 여주가 무표정으로 핸드폰의 기사 한글자 한글자를 읽었다. 정국이 여주의 눈치를 살살 봤고, 다 읽은 여주에게서 깊은 빡침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나지막이 말을 내뱉었다.
"아, 미쳤나 이것들이"
여주도 제대로 빡치면 욱하는 스타일...(호석도 못 봄)
+)하이고........늦어져서 죄송합니다..ㅠ 기다리시는 분 계실지는 모르겠으나,,, 후딱 올려봅니다ㅠ 회사 이직 문제로 이것저것 해결해야할 일들이 길어졌는데 드디어 잘 해결이 됐어요🥺슙💜
++) 1-2편 내로 완결✨ / 오타 등은 둥글게 얘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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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주도 한 성깔한다 이거여!